함께 해서 좋은 행복한 만남
박정영 / 공연기획가
러시아의 위대한 예술가이자 서양연극사의 한 획을 그은 스타니슬라브스키. 그는 자신의 예술 인생을 완성해 나가는데 없어서는 안되는 연극동지로 네미노비치 단첸코를 꼽았다. 이 두 사람은 배우와 연출가로 만나 서로의 연극세계에 대해 뜻을 같이하여 당시 관습과 허위에 물들어 있는 러시아 연극계에 새로운 파문을 일으켰고 '스타나슬라브스키 시스템'의 원천이 되는 모스크바 예술극장을 창단 하였다. 부유한 집안태생으로 선천적인 배우 기질을 타고난 스타니슬라브스키와 당시 극작가로 탄탄대로를 걷고 있는 이 둘의 만남은 처음 만나는 순간부터 '필연적인 만남'이라 생각이 들 정도로 연극에 대한 생각과 계획이 일치했다고 한다. 이 둘의 첫 만남에 대해 기록한 글을 보면 네미노비치와 스타니슬라브스키는 처음 만난 날 18시간 동안 대화를 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첫 만남에서 모스크바 예술극장을 탄생시켰다. 그들은 이 만남의 날을 후에 기록하기를 베르사이유 조약에 비유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들은 모스크바 예술극장이 독일 순회공연을 다녀온 해이자 스타니슬라브스키가 자신의 연기 시스템에 대한 탐구와 회의를 시작한 때이기도 한 1906년까지 거의 10여 년간 서로의 연극세계와 작업방식에 도움을 주면서 친구로서 동지로서 함께 했다.
한 예술가의 그늘에는 언제나 그에게 영향을 주고 함께 그 예술세계를 만들어낸 파트너가 있다. 특히 여러 분야가 조화롭게 만나야 하는 공연예술에서는 그들의 만남 자체가 공연 결과를 귀결짓는 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만남은 때로는 충돌로 때로는 조화로 이어지면서 하나의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각각의 전문세계를 가진 예술가들이 만나 서로의 세계를 넘나들면서 만들어내는 과정 이면에는 서로에 대한 신뢰와 예술가적 동지애가 형성된다. 그래서 서로의 세계를 이해하고 뜻이 맞는 파트너를 만난다는 것은 그 어떤 만남보다 값지고 행복한 만남이 아닐 수 없다. 우리 공연계를 보면 그 행복한 만남을 누리고 있는 행운의 커플들이 많다. 먼저 연극계의 대표적인 커플로 연출가 윤호진 무대미술가 박동우씨를 꼽을 수 있다. 두 사람은 극단실험극장의「실비명」으로 그해 서울연극제 작품상과 무대미술상을 받으면서 좋은 인연을 맺어 윤호진씨의 연출 작업의 무대를 함께 했다. 최근 무대「겨울나그네」는 우리나라 뮤지컬의 영역을 한 차원 뛰어넘는 무대미술과 연출로 올해 뮤지컬 대상을 차지했다. 그리고 연출가 김아라씨와 음악인 임동창씨의 경우 단순한 연출과 음악인과의 만남 이상의 세계를 창조해낸다. 두 사람의 이상적인 만남은 바로 1995년 서울연극제 대상을 타낸 「오이디푸스의 왕」에서 두드러진다. 임동창의 피아노 연주와 장난스러운 출연은 김아라의 연출을 보다 확연하고 풍부하게 해주는 큰 힘이었다. 또한 한국 뮤지컬에 무섭게 도전하고 있는 연출가 배해일씨와 극작가 오은희씨 그리고 작곡가 최귀섭씨는 이미 지상에 공개된 행복한 파트너들이다. 오래된 연배로 연출가 김정옥씨와 무대의상가 이병복씨, 연출가이자 배우인 최형인씨와 무대미술가 신일수씨, 연출가 문석봉씨와 안무가 안애순씨, 그리고 연출가 김효경씨와 분장가 김종한씨를 들 수 있다. 이들은 각자 자신의 영역을 지키는 전문가로 만나 친구로 선후배로 파트너로 서로를 신뢰하고 도와준다. 무용계로 눈을 돌리면 그 만남은 조금 더 끈끈하다. 우리 한국무용의 대표 얼굴인 국수호씨와 의상디자인의 대가인 그레타 리씨와의 오랜 우정과 신뢰감, 무용평론가이자 시인인 김영태씨의 대본만을 고집하는 발레인 전홍조씨의 세대를 뛰어넘는 만남, 현대무용가 남정호씨와 무대의상가 배용씨, 현대무용가 김복희씨와 음악가 강준일씨 역시 안무가 박명숙씨와 작가 김용범씨, 현대무용가와 의상디자이너 선미수씨, 사진작가 최영태씨와 발레리나 문훈숙씨의 또 다른 만남. 이들 모두 그 어떤 이해관계를 떠나 서로의 예술계를 인정하고 함께 꿈을 이루는 동지로 서로의 세계를 행복하게 공유하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이들의 만남은 제작 여건이 넉넉하지 않은 공연계에 큰 이점으로 작용한다. 우선 예술가들의 공동작업은 서로의 스타일과 느낌을 잘 알기에 합의되고 공유하는 시간이 절약된다. 굳이 일일이 설명을 하지 않아도 서로 원하는 것이 잘 나온다. 제작시간이 필요한 의상이나 무대 미술 같은 경우에는 좋은 장점이다. 그리고 작품의 흐름을 이해하고 있는 음악인과의 작업은 오히려 작품의 플러스 효과를 가져온다. 그러나 이런 만남에서 경계해야 할 것도 있다. 바로 이점을 무용평론가 장광열씨는 '서로가 너무 익숙해지다 보면 시야가 좁아질 수도 있고 그러다 보면 자칫 어느 스타일로 굳어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그 공연이 그 공연일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 그 만남은 서로를 정체시키는 만남이다. 서로가 발전하면서 만나지는 관계, 서로가 서로를 자극하면서 같이 가는 동반자적인 관계, 그런 만남 속에서 진정한 예술은 탄생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 한국적인 언어의 탐색자와 조련사
극작가 이만희 - 연출가 강영걸
1990년 대학로에는 이름도 생소한 한 신인 극작가와 연출이라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한 노련한 연출가의 행복한 만남이 시작되고 있었다. 극작가 이만희씨와 연출가 강영걸씨「문디」라는 작품으로 극작가로서 통과의례를 무사히 통과한 이만희씨의 새 작품「그것은 목탁구멍 속의 어둠이었습니다」는 연출가 강영걸씨에게는 마치 고기가 물을 만난 듯 편안하고 마음에 쏙 맞는 작품이었다. 강영걸씨는 승려들의 세계를 그린 이 작품에서 우리 '말'을 자연스럽고 정감 어리게 구사하는 작가 이만희씨에게 호감을 가졌고 이만희씨는 인간에 대한 연민과 따뜻한 성찰을 표현해내는 연출가 강영걸씨에게 반했다고 한다. 이후 이 두 사람의 이름은 항상 붙어 다니게 되었고 우리 연극계의 가장 이상적인 극작가와 연출가 커플로 거론된다. 7년 차의 연배도 불구하고(이만희씨는 43세, 강영걸씨는 55세) 두 사람이 서로를 신뢰하고 싸움 한번 하지 않고 행복하게 연극을 할 수 있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두 사람은 바로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궁극적인 질문에 대한 대답이 같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그것은 어떻게 보면 "세상을 보는 눈높이"가 같음이며 그 세계를 살아가는 방법이 같다는 것이다. 연극이란 세상에 대한 말걸기이라고 볼 때 두 사람의 인간에 대한 가치관의 일치는 그 어떤 방해꾼에 의해서도 끊어질 수 없는 튼튼한 고리쇠가 된다.
두 사람은 그동안 4개의 작품을 만들어냈다. 현재까지 최고의 장기 흥행작으로 기록되는「불 좀 꺼주세요」국립극단의「피고지고 피고지고」그리고 현재 공연되고 있는 「아름다운 거리」이다.「불 좀 꺼주세요」는 작가가 처음부터 연출가와 배우를 생각해서 쓴 작품으로 이만희씨의 걸쭉한 입담과 인간심리를 재미있게 살려낸 연출력이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그리고 국립극단의「피고지고 피고지고」는 성격이 각각 다른 세 노인을 통해 인생을 따뜻하게 관조할 수 있는 작품이었다. 이 두 사람이 만들어내는 작품은 무거운 메시지를 통해 교훈을 한다거나 어려운 실험을 하지 않는다. 그저 우리 삶에서 만날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이며 질박하고 옹골찬 우리네 인생사가 담겨 있다.
술을 좋아하는 강영걸씨와 만나다 보니 그리 술을 즐기지 않는 편이었던 이만희씨가 어느새 술자리가 편해졌고 어떤 작품이라도 연출적인 입장에서 뜯어고쳐야 직성이 풀렸던 강영걸씨가 대사 하나 자르지 않고 연출을 하는 것도 두 사람이 만난 후 생긴 일이다. 두 사람의 행복한 만남은 이들의 최근 작품인「아름다운 거리」에서 볼 수 있는 인간 사이의 '거리'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 전통의 현대화와 대중화의 18년지기
작곡가 박범훈-연출가 손진책
80년대 우리연극계는 많은 색다른 시도가 있었다. 특히 전통의 현대화와 대중화라는 흐름으로 요약되는 일련의 작업에는 마당놀이라는 새롭다면 새로운 장르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연출가 손진책씨, 그는 극단 민예를 거쳐 현재 극단 미추의 대표이며 우리 전통극에 대해 오랫동안 고민하고 그의 현대적인 무대화를 실험해 온 연출가이다. 국악인 박범훈씨. 작곡가이며 교수로 국립국악관현악단 단장이라는 직함이 말해주듯 우리 국악계의 큰 대들보이다. 우리 연극에 대해 누구 못지 않은 애정을 가지 손진책씨와 우리 국악을 어떻게 하면 좀더 대중적으로 우리화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던 박범훈씨의 만남은 어떻게 보면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두 사람은 18년 전 서라벌예대에서의 봉산탈춤 공연이 인연이 되었다. 이 공연은 두 사람이 연극인으로 국악인으로 각각 우리 것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같다는 것을 확인하는 자리였고 아직까지는 서로의 영역 안에서 각자 탐색하는 시기였다. 이후 두 사람의 본격적인 만남은 바로 MBC 마당놀이에서 이루어졌다.「춘향전」,「놀부전」,「별주부전」,「심청전」등 우리 전통극을 새롭게 대중적으로 부활시킨 '마당놀이'의 탄생은 박범훈씨의 과감한 국악의 현대화와 전통마당극에 서구적인 연출기법을 시도한 손진책씨와의 모험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두 사람은 마당놀이를 통해 우리 전통에 대한 대중적인 애정의 깊이를 가늠할 수 있었고 두 사람의 작업이 결코 헛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두 사람의 행보는 계속해서 연극「지킴이」,「남사당의 하늘」,「천명」,「하늘에서 땅에서」로 이어졌다. 주로 공연중에 라이브 연주를 고집하는 이들은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서는 작곡가와 연출가로, 공연중에는 지휘자와 연출자로 만난다. 그러므로 두 사람은 그 어떤 이들보다 많이 부딪치고 또 도와준다. 두 사람은 서로의 교류를 '품앗이'로 정의한다. 이쪽에서 음악이 필요하면 돕고 또 저쪽에서 연출이 필요하면 가는 우정의 도움인 것이다. 그런 우정과 신뢰로 우리 전통극과 음악은 오늘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가까이 와 있다.
● 창작발레의 새로운 공간 창조
안무가 제임스 전-무대미술가 이태섭
무대는 언제나 새로운 공간이다. 그곳은 시간을 초월하기도 하고 시대를 넘나들기도 한다. 그곳에 한 춤꾼이 서면 무대는 바로 춤판이 되고 연주가가 바하를 연주하면 그곳은 바로크시대가 된다.
1995년 6월 문예회관 대극장에는 뉴욕 도심의 한복판 어느 허름한 빌딩의 옥상이 들어섰다. 바로 서울발레씨어터의 창단공연인「현존」의 무대. 제임스 전이라는 뉴욕에서 무용을 배운 젊은 무용가의 창작발레 무대이다. 이 무대는 기존의 우리 발레 무대가 보여왔던 우아한 무대와는 판이하게 다르다. 고물차가 서 있고 깨진 유리창이 볼썽 사납게 드러나고 할렘가의 싸구려 네온사인이 배경으로 쳐져있다. 마약과 매춘에 물들은 반항적인 젊은이들은 이 황량한 도심 한복판에서 랩 음악과 디스코 음악에 몸을 흔들어댄다. 미국이민 2세대인 제임스 전은 그의 성장배경인 뉴욕의 거리를 솔직하게 표현해냈다. 기존의 무용무대에서는 금기시되다시피한 파격과 실험을 과감하게 표현했다. 그의 이러한 과감한 시도 뒤에는 항상 무대미술가 이태섭씨가 있다. 두 사람은 항상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발레라면 항상 고급 저택이나 아름다운 숲속, 으리으리한 궁전 등만 보아온 우리 관객들에게는 무대 자체에서부터 그 기대감을 배신한 것이다. 그리고 무대에서 만나는 춤꾼들은 왕자나 공주가 아닌 창고 안에서 디스코 춤을 추는 젊은이들이고 각설이며 방황하는 현대인이다. 어떻게 해서 이런 무대, 이런 공연을 만들었을까? 그 해답은 바로 제임스 전이라는 발레리나와 이태섭이라는 무대미술가를 직접 만나면 알 수 있다. 먼저 두 사람은 매우 솔직하다. 없는 것을 있다고 있는 것을 없다고 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자유롭다. 발레라는 것에, 무대라는 것에 해서는 안될 것은 없다. 생각이 가고 그것이 필요하면 춤도 무대도 그 영역의 구분이 없다. 두 사람 모두 뉴욕생활을 했다. 한 사람은 12살 때 이민을 갔고 한 사람은 유학을 했다. 둘 다 웨이터 생활도 하고 빈민가 언저리에서 미국인의 이면도 경험해 봤다고 한다. 그래서 두 사람은 처음 만났을 때부터 통했다. 같은 체험을 한 동질감, 우리 현실로 돌아오면서 느꼈던 문화적인 느낌이 두 사람을 공범자로 만든 것이다. 안무가 제임스 전과 무대미술가 이태섭씨. 이 두사람 사이에는 우리 공연계 현실에서는 직업적인 만남으로만 끝나기 쉬운 관계 이상의 끈끈한 동지애가 느껴진다.
● 우정으로 만들어 가는 방
현대무용가 황미숙-의상디자이너 이미현
둘은 동창이다. 전주여고를 나왔고 이대 무용과를 나왔다. 그래서 두 사람은 친구이다. 8년여 같이 학교를 다닌 두 사람은 이제 다른 영역에서 각자의 길을 가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아직도 함께 한다. 한 사람은 춤을 추고 한 사람은 그 춤꾼에게 옷을 입힌다. 섬세한 여성적인 시각과 내밀한 움직임으로 한국 여성의 한과 울림을 표현해 내는 황미숙씨의 무대에는 부드럽고 따뜻한 재질로 몸짓으로 아름다움을 더해주는 이미현씨의 의상이 함께 한다. 무용수에게 의상은 또 다른 표현이며 재료이다. 그것은 무용수에게 옷이라는 물질적인 개념 이상의 것을 의미한다. 그렇지만 옷은 무용과는 다른 차원이다. 거꾸로 옷을 만드는 의상디자이너에게는 무용은 다른 세상이다. 그래서 이 두 영역의 전문가들이 만나면 무척 까다롭고 예민하게 부딪힌다. 그러나 황미숙씨와 이미현씨, 두 사람에게서는 그런 우려는 일찌감치 배제된다. 무용을 함께 하였고 세월을 오래했다. 그래서 두 사람은 얘기를 하지 않아도 통한다. 이미현씨와 황미숙씨는 많은 공연을 함께 했다. 1989년 황미숙이 무용단을 창단하여 발표한「이사도라」에서부터 그의 대표작이자 시리즈로 발표하고 있는「방」그리고 1993년 신세대 가을 신작무대에 참가하였던「꿈을 저장하는 여자」1994년 황미숙 여성춤굿으로 발표한「생각」 그리고 올해 일본 사이타마 콩쿨에서 입상한 작품인「눈물」까지 이미현은 황미숙 곁에 있었다. 이 둘은 안무가와 무대의상가이기 이전에 춤을 생각하는 무용인으로 서로의 생각을 읽었으며 때로는 어렵고 힘든 슬럼프를 말없이 지켜봐 주는 친구이다. 황미숙씨는 이미현씨를 "편안하게 얘기를 잘 들어주는 친구"라 하고 이미현씨는 황미숙씨를 "마음을 함께 하는 믿음직한 친구이자 자신의 세계를 잘 만들어 가는 진짜 춤꾼이라"고 말한다. 이미현씨는 외향적인 반면, 황미숙씨는 내성적이다. 이미현씨는 결혼을 하였고 황미숙씨는 미혼이다. 그런 두 사람의 대조적인 성격의 차이를 뛰어넘을 수 있는 곳이 바로 무대이며 우리는 그곳에서 두 여성의 아름다운 우정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 작품의 완성 그 마지막을 함께 하는 팀웍
연출가 김효경-분장아티스트 김종한
분장은 연기의 완성이다. 무대를 만들고 연습을 하고 조명이 켜지고 배우가 무대에 나오는 마지막 순간 분장가는 바쁘다. 분장가들은 이 짧은 순간에 숙련된 솜씨로 메이크업을 하고 수염을 달고 배우의 성격을 창조 해낸다. 우리 공연계에는 많은 분장가가 있다. 아직은 열악한 환경인 공연계에 전문 분장가들의 존재는 분명 귀중하다. 김종한씨. 그는 분장계에서도 큰 일을 많이 하는 편이다. 국립극장과 예술의전당, 서울시립단체 등 그의 손이 가서 완성되는 작품의 크기도 크다. 1년에 많게는 50여 개의 크고 작은 작품에서 의뢰가 온다. 그런 그가 바쁜 스케줄과는 상관없이 언제든 뛰어가는 곳이 있다. 연출가 김효경씨의 작품이 있을 때이다. 그들은 서울예술단 공연에서 만났다. 조금은 넉넉한 제작 조건인 서울예술단이나 국립극단의 작품에서는 분장 제작비에 대한 고민은 남에게 미룰 수 있었다. 그러나 김효경씨가 직접 제작하는 작품에 가면 사정은 조금 다르다. 김종한씨는 그런 사정을 잘 알고 '돈'에 대한 이야기는 열외로 둔다. 1996년 극단 동랑레퍼토리의 창단공연「DMZ」와 1997년「베이비 베이비」는 그런 속사정이 있었던 작품이다. 그런 이유는 간단하다. 김효경씨의 작품을 하는 것이 어떤 경제적인 이득보다 더 좋은 이유이다. 그리고 그런 김종한씨와 그의 팀 오픈 스테이지 사람들이 고맙고 편안하다. 그러나 일로 들어가면 치열하다. 주로 대인원이 나오는 시대극이나 뮤지컬을 연출하는 김효경씨의 분장 영역은 만만한 작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김종한씨와 오픈스테이지의 전문 분장가들은 일단 작품을 맡으면 연습 초기부터 함께 한다. 연기자의 철저한 역할 분석과 무대조건 조명과 의상체크하기에서 리허설 일정까지 그들은 한 작품에 열심이다. 연극의 마지막 단계, 그 완성의 시간을 함께 하는 김효경씨와 김종한씨의 만남은 인간적인 따뜻함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