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껑 열린 인간복제의 판도라 상자
김지원 / 출판저널 편집장
■공포와 희망을 동시에 안겨주는 인간복제의 문제
인간자체에 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다. 최근 한 대학신문에서는 인간복제에 대한 의식을 주제로 설문조사를 벌일 정도다. 생체 복제실험이 잇따라 성공했다는 소식은 우리에게 공포와 희망을 동시에 안겨준다. 생명체 복제문제는 급기야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이 인간복제 연구에 들어가는 모든 연방예산 지원을 중단하겠다고 발표할 만큼 심각한 경계의 대상이 되고 있다.
1932년에 씌어진 옴더스 헉슬리의 소설 「멋진 신세계」에서도 이미 복제인간을 예언한 바 있거니와 최근 현실로 나타난 복제 양(돌리) 논리는 지구촌을 온통 들썩거리게 만들었다. 우리나라에서도 복제문제를 다룬 책들이 새삼스런 주목을 받으면서 독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1977년 제레미 리프킨이 「누가 신을 조롱하는가」라는 책을 통해 재조합 DNA를 비롯한 분자생물학의 신기술에 반기를 들고 나온 이래, 유전자 조직과 유전정보 이용 문제는 생물학에서 가장 복잡하고 민감한 쟁점으로 남아 있다. 유전자 치료는 지능과 육체능력을 향상시키는 데 사용돼 열등한 유전자를 가진 생물학적 하층민을 만들어낼 수 있다. 판도라의 상자는 이미 열렸고 우리는 그 가장 아래에 있을 희망을 찾기까지 숱한 어려움을 감수해야 한다.
로버트 쿡 디간의 「인간 게놈 프로젝트」(황현숙 옮김, 민음사)는 인간의 원형을 밝히려는 거대한 계획을 펼쳐보인다. 게놈은 생물 유전자의 총집합, 한 생물에 반드시 필요한 유전정보의 총량이다. 사람을 만드는 데 필요한 모든 정보를 담은 인간 게놈은 세포 내에 DNA분자로 존재한다. 인간 세포의 DNA안에 들어 있는 전체 30억 자(字)의 유전암호를 모조리 해독해서 완전한 지도를 만들겠다는 목표 그 계획을 둘러싼 이야기가 이 책에 담겨 있다.
'인간이라는 책'의 내용을 밝히기 위한 과학의 대장정이라 불리는 게놈 프로젝트 논쟁은 우생학과 인종차별주의의 어두운 그림자를 환기시키기도 한다. 이 책에서 독자들은 '생명체'에 대한 끈질긴 지식 탐구의 끝에 서 있는 인간을 뒤돌아볼 수 있다.
저널리스트이자 변호사, 철학자인 앤드류 킴브렐의 「휴먼 보디 숍」(김동광 옮김, 김영사)은 이미 열려진 '판도라의 상자'에서 튀어나온 온갖 '악'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곧 '인체의 상업화'다. 지구 전체가 거대한 기업으로 탈바꿈한 오늘날 인간의 육체는 갈기갈기 찢겨 이용 가능한 기관, 조직, 유전자를 징발당하고 있다.
'인체시장'은 이미 우리가 미처 심각성을 깨닫기 전에 개인의 생활 속에 뛰어들었다. 아이를 생산하는 십여 가지 새로운 방법의 개발은 수태에서 분만에 이르는 전과정에 복잡한 방식으로 개입하고 있다. 장기제공자들은 자신의 혈액기관, 생식에 필요한 요소를 판매하고 있다. 생명의 고귀함, '성스러운' 영역이던 인체는 급속도로 새로운 '생물산업시대'의 원료로 전락하고 있다는 것.
저자인 킴브렐은 날카로운 시각으로 이 경악스러운 '멋진 신세계'의 개막 앞에서 정치·경제·윤리적 영향에 대처할 아무런 준비도 갖추고 있지 못함을 지적한다. 그리하여 저자는 이렇게 마지막 결론을 맺는다. '인체는 우리의 사고를 오랫동안 지배해온 기계주의와 시장의 교의에 맞서 싸워야 하는 최후의 전쟁터이다.'
인간복제에 관한 충격적인 내용은 우리에게 '인간이란 무엇인가', '생명이란 무엇인가'의 철학적인 질문으로 되돌린다. 과학과 철학이 만나는 지점에서 빼어난 저작으로 평가받는 프랑수아 자콥의「생명의 논리, 유전의 역사」(이정우 옮김, 민음사)는 유전의 문제에 초점을 두고 생물학이 제기하는 철학적 물음을 하나하나 파고든 책이다.
저자에 따르면 '생명이 세계에 있어 같은 것이 같은 것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보다 더 명백하게 보이는 현상이 없다.' 저자는 고양이가 고양이를, 채송화가 채송화를 낳는다는 사실, 곧 유전의 개념아래 과학사를 탐구함으로써 과학의 인식을 제고시킨다. 유전의 개념은 또다시 동물의 사회적 행동진화와 유전자의 관계 속에서 '생물학 결정론'에 대한 논쟁을 낳는다.
40억 년 전 스스로 사본을 만드는 힘을 가진 분자가 나타난 이래 우리의 몸과 마음을 창조해 왔고, '우리의 존재를 위한 유일한 이유'로 보는 결정론적 생명관은 리처드 도킨슨의 「이기적 유전자」(홍영남 옮김, 을유문화사)에서 명백하게 드러난다. 저자는 '인간은 이기적 유전자를 보존하기 위해 맹목적으로 프로그램 된 로봇'이라는 말도 서슴치 않는다.
이같은 생물학 결정론은「사회생물학」(E. O.윌슨),「공적성에 관하여」(콘라드 로렌츠),「털없는 원숭이」(데스먼드 모리스) 등에서 나타난다. 결정론적 생명관에 대한 이들 저서에 대한 비판을 가한「우리 유전자 안에 없다」(스티븐 로우즈 외 지음, 이상원 옮김, 한올)는 일대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국내 저자들이 이 논쟁의 진상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놓은「인간은 유전자로 결정되는가」(서유현외 지음, 명경)는 '생명'에 대한 올바른 판단을 유도한다. 유전자로 생명체 제조가 가능한가의 문제에서부터 인간의 본능이란 무엇인가의 문제까지 생물학 결정론을 둘러싼 옹호자와 비판자의 견해를 엄정하게 밝히고 있다.
■ 소설 속에서 더욱 적나라해지는 인간복제
한편 유전자 조직에 의한 인간 복제는 소설 속에서 더욱 적나라하게 묘사하곤 한다. 과학자이자 SF소설가로 유명한 아이작 아시모프가 공동 집필한「양자인간」(두산동아)은 과연 '인간', '이성적 사고를 지닌 존재'를 어떻게 규정해야 하는가의 문제부터 파고든다. 로빈 쿡의 「돌연변이」(열림원)는 생명공학 박사가 아내의 난자를 채취, 6번 염색체 DNA 부분을 돌연변이시켜 신경성장인자를 삽입, 잇따라 천재들을 태어나게 하는 끔찍한 상황을 리얼하게 전개시킨 소설이다. 또 딘 쿤츠의 「복제인간 알피」(열림원)는 유전자 이식으로 태어난 복제인간이 조직의 음모에 방출되면서 일어나는 살인과 혈투가 역시 회색 빛 '멋진 신세계'의 실체를 그려나가고 있다.
국내 소설로는 장강명의 「클론 프로젝트」(동아일보사)가 인간복제를 향한 인간욕망의 종말을 그린다. 복제생물(인간)이라는 뜻의 '클론'과 오리지널 인간과의 능력을 비교하기 위해 3인의 오리지널 인간과 3인의 클론이 캄보디아 인질 구출 명목으로 파견된다. 클론의 잠재의식 속에 사살명령을 내려놓음으로써 오리지널 인간은 각각 자신의 클론과 맞붙어 싸우다 자기와 똑같은 얼굴을 발견하고 경악한다. 고도의 지능과 능력을 갖춘 '값싼 전투인력'을 양성하기 위한 군부의 야심과 함께 어느 선에서 인간과 생체로봇의 경계를 그어야 하는가의 문제를 생각케 하는 소설이다.
송은영의「인과율」(무당)은 인간 게놈 프로젝트와 인간복제, 불로장생을 향한 과학이 던지는 위협을 경고한 소설이다. 소년을 형님이라 부르는 노인의 의문사 속에서 드러나는 것은 아인슈타인의 쌍둥이학설 '두 생명체를 하나는 빛에 근접한 속도로 우주여행을 시키고, 하나는 지구에 머물게 할 경우 전자는 늙지 않고 후자는 늙는다'.
생명체의 복제문제는 그것이 초래할 일파만파를 미처 정리하기도 전에 뚜껑이 열리고 말았다. 오리지널 인간과 복제인간이 '존재의 정체성'을 놓고 벌이는 처절한 사투.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복제인간 등 '인간복제'를 둘러싼 충격적인 내용을 담은 책들은 우리로 하여금 도대체 '인간이란 무엇인가'의 근원적 물음을 묻게 한다. 21세기를 한발 앞에 둔 20세기의 끝에서 우리는 다시 '인간'을 생각할 때인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