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현장 / '97 영암왕인문화축제

기암괴석의 월출산, 벚꽃 1백 리, 살아 숨쉬는 왕인의 체취




이건상 / 전남일보 문화부 기자

겨울이 가고 봄이 오면 남도(南道)는 노란색으로 단장한다. 지리산 자락에서 노란 산유화가 꽃 사태를 이루면, 산유화를 시샘하듯 개나리가 앞다투어 봄빛을 풀어헤친다. 한해 농사를 위해 갈아놓은 붉은 향토와 노란 산유화, 개나리는 남도의 봄을 알리는 전령사에 다름 아니다.

개나리가 3월을 희롱하고 4월을 맞이할 때면 남도는 금새 노란 옷을 벗어버리고 하이얀 봄꽃으로 치장한다. 개나리가 진 자리에 벚꽃과 배꽃이 들어앉는다. 한날 한시에 무더기로 피었다가. 한날에 바람처럼 지고마는 벚꽃이 우리네 심성과는 맞지 않더라도 무더기로 핀 벚꽃에 탄성을 지르지 않을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전남 영암에서 열리는 왕인문화축제는 벚꽃이 무더기로 핀 날에 시작해 남도가 다시 노란 유채꽃으로 몸단장을 할 무렵 끝을 맺는 한마당판굿이다.

본디 영암은 1천 5백여 년 전 영산강 유역에서 둥지를 틀었던 마한의 고도였으며, 남도의 금강산이라는 월출산이 듬직하게 버티고 서 있는 명혈의 땅이다. 또 국보 231호 「청동기 용범」이 보여주듯 영암 땅은 청동기시대 이후 민족문화의 보고로, 일본 아스카 문화를 개화시킨 왕인 박사가 성장한 민족적 자부심이 가득한 곳이기도 하다.

왕인문화축제는 흐드러지게 핀 벚꽃을 무대 삼아 한·일 양국의 공동발전을 도모했던 왕인 박사의 숭고한 유지를 계승하는 행사이자, 도포제 줄다리기 등 사라져 가는 우리 것을 오늘에 되살려내는 전통민속잔치에 다름 아니다.

지난 4월 9일부터 13일까지 5일 동안 영암군 군서면 동구림리 왕인 박사 유적지 일대에서 벌어진 이 축제는 기념행사, 문화예술 공연, 전시, 경연, 기획행사 등 36개 행사가 다채롭게 펼쳐졌다.

축제 첫째날인 9일에는 왕인 박사의 위대한 업적과 자취를 기리는 '왕인 박사 춘향대제'가 열렸다. 왕인 박사 춘향대제는 백제시대 의복을 차려입은 학생과 유림, 지역민 5백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전통 유교 방식에 따라 2시간동안 엄숙하게 거행됐다. 이날 기념행사에는 '일본 오사카 일·한 친선협의회' 소속 수미오 아베카와 회장을 비롯, '왕인 박사 현창회', '왕인의 묘를 지키는 모임' 등 일본인 30여 명이 직접 참가해 왕인 사당에 헌화하며 박사의 위업을 기렸다. 일본인들은 왕인 박사의 유적지가 마련돼 있고, 이를 기리는 축제가 열리는 데 대해 큰 감명을 받았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들은 '왕인 박사가 일본 역사교과서에 등장하지 않음에 따라 청소년들이 왕인의 업적을 잘 모르고 있다'며 '왕인의 업적이 역사 교과서에 기술되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10일에는 영암군 도포마을에서 행해지던 '도포제 줄다리기'가 시연돼 관람객의 눈길을 사로 잡았다. '도포제 줄다리기'는 풍수지리설에 따라 동도포와 서도포로 편을 갈라 줄을 당겨 승패를 가르는 것으로 서도포는 여자를 동도포는 남자를 상징했다. 이 줄다리기에는 여자를 상징하는 서도포가 이겨야 풍년이 온다는 속설이 전해져 온다. 다행해 올해엔 서도포가 승리해 풍년을 예약했다. '도포제 줄다리기'는 길놀이로 시작해 진놀이, 고걸이, 제사, 결전, 대농마당 등 6마당으로 이뤄졌다. 줄다리기에는 모두 4백여 명의 마을 주민들이 참여하나. 이번 시연에는 장소가 비좁아 2백여 명이 참여, 완전한 원형을 보여주는 데는 다소간 아쉬움을 주었다.

'도포제 줄다리기'에 이어 왕인 박사가 일본으로 건너간 장면을 재현한 '왕인박사 도일 가장행렬'이 1천여 명의 군민들이 참여한 가운데 열렸다. 구림 초등학교에서 왕인 박사 유적지, 왕인 박사가 배를 타고 떠난 상대포까지 이어진 가장 행렬에는 백제시대 의복, 삼국시대 선박이 등장했다. 월출산 천황사 용바위에서는 국태민안과 영암군민의 안녕, 풍년을 기원하는 '월출산 바우제'가 열리기도 했다.

본격적으로 축제의 물이 오른 셋 째날 11일에는 전남도립국악단의 흥겨운 사물놀이와 걸쭉한 남도민요 가락으로 막이 열렸다. 민속마당으로 차려진 이날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장부질 노래」였다. 영암지역은 영산강 하류의 낮은 바다를 간척지로 만드는 제언(提偃)과 관련된 민요가 발달했다. 바로 「장부질 노래」는 간척이라는 고된 노동을 흥겨운 막걸리 가락에 삭여 녹이는 민초들의 노동요로 영암군 서호면 성재리, 태백리, 금강리 일대에서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왔다.

12일에는 정월 대보름 새벽에 마을의 큰 샘에서 마을의 재난을 예방하고, 풍년과 풍어를 기원하는 제사의식인 '정동정호제'가 선보였다.

새끼를 꼬면서 부르는 술배소리, 샘을 청소하면서 부르는 당금소리 등 5마당으로 구성된 민속신앙이었다. 제사가 끝난 뒤 마을 사람들은 샘굿과 당산굿을 열고 남녀노소가 한 덩이로 어우러져 덩실덩실 춤을 추며 회합을 다졌다.

왕인문화축제의 대미는 벚꽃아가씨 선발대회와 왕인가요제가 장식했다. 내년 축제의 홍보 사절로 활동하게 될 벚꽃아가씨 선발대회는 남도 처녀들의 아리따움을 한껏 과시했으며, 왕인가요제는 술과 가무를 즐긴 옛 마한인의 후손답게 흥취가 절로 나는 한마당이었다.

축제기간 동안 무려 30만 명의 인파가 몰린 왕인문화축제는 지역향토사를 복원하고 이를 관광자원화함으로써 지역경제의 활력화를 도모한다는 취지에 걸맞은 성공적인 행사임에는 틀림없었다. 축제를 찾은 외지인도 멀리 서울과 경기, 제주, 부산 등 전국적으로 골고루 망라돼 이 축제가 전국민의 사랑을 받고 있음으로 보여 주었고, 특히나 마지막에는 20킬로미터에 걸쳐 줄지어 선 차량행렬 속에서 그 인기도를 실감케 했다.

그러나 이번 1997년 왕인문화축제가 축제의 모티브라 할 수 있는 '왕인'을 형상화하고 구체화한 이벤트가 거의 없었다는 것은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가장행렬과 춘향대제가 열리기는 했으나, 대부분 1회 성 행사로 갈무리되면서 축제 전기간동안 지속되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축제의 주된 이벤트가 가요제와 먹고 마시는 음식바자회로 비쳐지면서 주제의식이 실종돼 갔다. 또한 주요행사들이 대부분 오락적이고 소비적인 성격을 지님에 따라 여타 지역축제와 차별성을 획득하는데도 한계를 노출했다. 행사장 주변을 가득 메운 포장마차와 각종 사행성 놀이기구들은 문화축제라기보다는 바자회를 연상시켰다. 더욱이 관람객들이 축제기간 동안 음식값 등으로 지불한 20억 원에 달하는 관광수입이 외지인이 운영한 포장마차를 통해 그대로 '역외유출' 됐다는 지역민의 문제제기가 나오기도 했다.

영암군의 왕인문화축제가 전국적인 문화축제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왕인과 월출산, 영암지역의 전통민속문화를 3각축으로 삼아 내용성과 작품성을 갖춘 영암지역에서만 볼 수 있는 '유니크한 볼거리'를 개발해야 한다는 점이 과제로 남겨졌다. 전국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포장마차와 놀이판, 즐비한 음식점, 가요제, 아가씨 선발대회로는 지역축제의 전국화나 세계화에 멀찍이 떨어져 있다는 지적인 것이다.

빼어난 기암괴석의 월출산 자락과 영암읍에서 삼호면 용당까지 무려 1백 리 길에 흐드러지게 핀 벚꽃, 그 안에 살아 숨쉬는 왕인의 체취는 왕인문화축제가 세계적인 지역축제로 성장할 수 있는 자양분임에 틀림없다. 내년 봄날 남도에 다시 벚꽃이 필 무렵 세계화된 왕인문화축제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