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 프리즘

1938년의 입장세법




박영정 / 연극평론가

■ 일제말기의 입장세

장세가 국세의 하나로서 신설된 것은 1938년 3월 31일자로 공포된 「조선지나사변특별세령」(제령 제12호)에 의해서이다. 당시 일제는 중국과의 전쟁을 치르면서 늘어나는 전비를 확충하기 위해 입장세 및 특별입장세를 비롯한 각종 세금을 신설하고, 기존의 세금은 증률(增率)하는 조치를 취하였다. 이에 '입장세는 입장료의 100분의 5로 한다'(동령제 26조)는 규정에 의해 연극이나 활동사진, 운동경기를 불문하고 5퍼센트의 동일 세율을 적용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 입장세는 극장주나 공연 주최자가 관객들의 입장료에 5퍼센트의 세율을 부가하여 징수하는 방식을 취하였기 때문에, 관객들에게는 일시에 입장료가 5퍼센트 인상되는 부담으로 나타나게되었다. 동 법령에서는 1인 1회 관람을 위한 입장료가 39전 미만 경우에는 면세해 주고, 39전부터 세금을 부과하였는데, 39전의 입장료로 공연을 보고자 하는 관객은 5퍼센트의 세율을 더하여 40전(세금이 포함된 가격)에 입장권을 사야 했던 것이다.

이후 1940년 3월 31일자로 「조선입장세령」(제령 제22호)이 정식 공포됨으로서 입장세가 국세의 하나로 자리잡게 된다.

전체 18조로 되어 있는 「조선입장세령」에서는 입장료에 따라 최저 5퍼센트에서 최고 20퍼센트까지 입장세를 부과하도록 그 규정을 세분화함으로써, 사실상 세율을 인상한다.

이렇듯 극장 입장료에 세금을 부과하는 것은 그 세율의 고저를 막론하고 결과적으로 입장료의 상승을 가져옴으로써 연극 흥행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연극 활동을 억제하는 기능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일제가 전쟁을 치르면서 사회의 전 부문을 전시체제로 바꾸어 간 데서 비롯한 것으로, 입장세가 처음부터 반문화적, 반연극적 입장에서 만들어진 것임을 말해 준다.

■ 미군정하의 입장세

해방이 되자 대부분의 연극인들은 이처럼 반연극적인 입장세가 자동으로 폐지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해방 이후 미군정 하에서는 입장세가 폐지되기는커녕 오히려 세율이 인상되는 '사태'를 맞게 된다.





「조선입장세령」(制令 제22호)의 정식 공포 내용




● 第三안 入場稅의 稅率은 左와 같다.

·第一種의 場所

入場料가 一人一回一圓五十錢 未滿일 때 入場料의 百分의 五

入場料가 一人一回一圓五十錢 以上 四圓 未滿일 때 入場料의 百分의 五

入場料가 一人一回 四圓 以上일 때 入場料의 百分의 二十

回數, 定期 또는 貸切로 入場契約을 한 때 入場料의 百分의 十五

·第二種의 場所

撞球場 入場料의 百分의 八

其他 入場料의 百分의 十五

本令에서 入場料라 함은 그 名義 如何를 不問하고 第一種 場所에 入場 또는 第二種의 場所의 設備를 利用하기 爲하여 支拂하는 金額을 말한다.



미군정 당국은 사회 각 분야에서 일제시대의 법률이나 관행을 유지하였는데, 입장세에 있어서도 해방 1년간은 앞의 「조선입장세령」에 근거하여 입장세를 징수하였다. 그러다가 군정청은 1946년 8월 31일자로 「세법 개정」(법령 제101호)을 공포하여 입장세 관련조항을 개정하게 된다. 이 개정 조항에 의해, 연극 흥행(제1종)의 입장세율은 종전에 5∼25퍼센트이던 것을 일괄하여 30퍼센트로 인상된다.

미군정청의 입장세율 인상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군정청에서는 1948년 5월 1일 「유흥음식세 및 입장세령 등의 개정」(법령 제193호)을 공포하는데, 여기에는 종래 30퍼센트의 연극 입장세가 100퍼센트로 대폭 인상되는 유례없는 악법 조항이 포함되어 있다. 예를 들어 20원의 입장료에 다시 20원의 입장세가 붙게 되어 관객들은 40원에 입장권을 사야 했던 것이다. 여기에는 연극이야 어찌되었든 조세 수입만 올리고 보자는 당시 정책 입안자들의 사고 방식이 바탕에 놓여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법령의 시행이 연극인을 비롯한 문화예술계의 강한 반발에 부딪쳤음은 물론이다.

1948년 6월 1일부터 극장과 극단 측에서는 '입장세율 저하'를 내걸고 일제히 극장문을 폐쇄하고 일체 예술활동을 중지하는 동맹파업에 들어간다. 일반 관객의 편의를 위하여 3일 만에 다시 극장문을 열기는 하지만 연극인들의 세율저하 운동은 계속된다.

한편 6월 4일 개관한 극장들은 관객의 격감으로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된다. 실제로 당시 연극을 주로 하던 중앙극장·단성사·동양극장·성남극장의 4극장은 입장자가 하루 평균 66퍼센트가 줄어들고, 국도극장·수도극장·서울극장 등 영화를 전문으로 하는 극장들은 하루 평균 47퍼센트의 관객 감소를 보였다 한다.

도표(서울시내 7대 극장 하루 평균 입장자 수)에서 보이듯 100퍼센트 입장세 실시 이후 극장 관객이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던 것이며, 결국 연극문화의 발전에 커다란 타격을 주었던 것이다.

해방 직후의 사회가 과도기적 상황이었으므로 당국의 안정된 연극 정책을 기대할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입장세 100퍼센트와 같은 반문화적 조세정책의 실시는 요즘의 연극인들로서는 상상하기조차 힘들 것이다. 이 무렵의 선배 연극인들이 겪었을 어려움 또한 쉽게 상상되지 않는 것은 물론이다. 동랑 유치진은 「암흑 초래한 악법」이라는 글에서 법령 제193호를 미군정의 무정견과 무질서한 행정이 초래한 '악법'으로 규정하며 그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가하고 있다.

마지막 악법은 금년 6월 1일부터 발효한 법령 제193호다. 이 법령은 전대미문의 악법으로서 유흥세 3할에 대하여 입장세를 10할로 인상했다. 기생을 끼고 노는 모리간상배의 유흥에는 3할이요, 가난한 대중의 유일한 오락물이자 민족예술의 전당인 극장에는 10할 인상이란 결국 모리간상배를 양성하고 문화를 압박하자는 수작밖에 안 된다… 새로운 우리 정부가 이상의 악법을 즉시로 고치지 못하고 의연히 무정견·무질서한 만행을 계속하여 모리배를 엄호하고 문화를 압박하는 정책을 답습한다면 우리 문화인은 세부득이 지하로 숨는 수밖에 없고, 제2차대전 후 사상전이 첨예화한 이때 문화를 천대함으로써 사상전에 패배 당할 것은 명약관화한 사실로써 새 정부의 운명은 불행하게도 길지 못할 것이다.

―유치진, 「경향신문」, 1948. 8. 8)

위 인용문은 당시의 연극인들이 '100퍼센트 입장세'에 어떠한 태도를 견지하고 있었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조선입장세령」(制令 제22호)의 정식 공포내용




● 第三條 入場稅의 稅率은 左와 같다

. 第一種의 場所

入場料가 一人 一回 一圓五十錢 未滿일 때 入場料의 百分의 五

入場料가 一人 一回 一圓五十錢 以上 四圓 未滿일 때 入場料의 百分의 十五

入場料가 一人 一回 四圓 以上일 때 入場料의 百分의 二十

回數 定期 또는 貸切로 入場 契約을 한 때 入場料의 百分의 十五

. 第二種의 場所

撞球場 入場料의 百分의 八

其他 入場料의 百分의 十五

本令에서 入場料라 함은 그 名義의 如何를 不問하고 第一種 場所에

入場 또는 第二種 場所의 設備를 利用하기 爲하여 支拂하는 金額을

말한다







「유흥음식세 및 입장세령 등의 개정」(법령 제193호)




● 第三條 入場稅令의 改正

라. 入場稅의 改正

1940년 3월 31日附 制令 제22호 朝鮮入場稅令(改正)에 規定된 稅率을 左와 如히 改正함

(一)第一種 十圓을 超過하는 入場料金 料金의 百分之百

(二)第二種 水球場, 拋雀場, 舞踏場

料金의 百分之百

氷場, 卓球場, 射弓張, 射擊場의 入場稅는 玆에 廢止함

(三)第三種 利益없이(非營利的) 公開하는 行事에 대한 特別稅

入場稅는 比에 廢止함




■ 정부 수립 이후의 입장세

그런데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에도 여전히 입장세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유치진은 '입장세 100퍼센트'법이 시행된 이후 1948년도 후반기 연극계가 '사멸상태'에 빠져 있는데도, 새 정부에서도 조차 그 문제가 개선되지 않고 있음을 개탄하고 있다(유치진, 「활기 없는 후반기―입장세율 높아 물의 분분」, 「서울신문」, 1948. 12. 26).

이러한 상황은 1949년 상반기까지도 계속되다가, 9월 24일 정부안 '흥행장 입장세법'이 국회에 상정됨으로써 비로소 입장세법 개정 논의가 시작된다. 그런데 개정안으로 제출된 정부안에서도 여전히 연극 70퍼센트, 영화 90퍼센트의 높은 세율로 되어 있었다. 이에 전국 문화단체총연합회·무대예술원·서울시극장협의회·대한영화협의회 등 관련 문화단체의 항의가 잇따르고, 국회에서도 여러 수정안이 나와서 재심의한 결과, 9월 26일 민경식 의원이 제출한 '연극 30퍼센트, 영화 60퍼센트'의 수정안이 가결됨으로써 이 입장세 문제는 일단락 된다.

이 수정안은 1949년 10월 21일 「입장세법」(법률 제61호)으로 공포되는데, 이 법률의 주요 내용은 아래와 같다.


1949년 10월 21일 수정 공포된 「입장세법」주요 내용

●第三條 入場稅의 稅率은 左와 같다. ⼘第二種 入場料의 百分之百二十

⼘第一種 本法에서 入場科라 함은 그 名義의 如何를

不問하고 第一種 場所에 入場 또는 設備利用

第一號 場所 入場科의 百分之三十 하거나 第二種 場所의 設備를 利用하기 爲하여

第二號 場所 入場科의 百分之六十 支拂하는 金額을 말한다.

第三號 場所 入場科의 百分之百十 前項의 入場科의 算定에 關하여서는 大統領令 으로 定한다.


즉, 종전의 100퍼센트의 입장세가 연극 30퍼센트, 영화 60퍼센트로 인하되었다. 그렇지만, 이 또한 일제시대의 「조선입장세령」의 5∼20퍼센트에 비하면 여전히 높은 편이다. 또 하나 「조선입장세령」에서는 세금 포탈자의 처벌규정이 '3백만 원 이하의 벌금이나 과태료'(제17조)에 지나지 않았지만, 이 「입장세법」에서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그 포탈하거나 포탈하고저 한 또는 감면을 얻거나 감면을 얻고저 한 세금의 5배 이상 10배 이하에 상당하는 벌금에 처하거나 또는 징역 및 벌금을 병과'하는 식으로 더욱 강화되었다. 이렇게 보면 미군정 시기이거든 정부 수립 이후이든 오히려 일제시대보다 연극 정책이 더 후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요즘에는 '서울 티켓'이나 '사랑의 티켓'과 같은 제도를 통해 관객들의 연극 관람을 실질적으로 지원해 주기도 한다. 이는 연극행정 또는 예술행정이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앞에서 살펴본 대로 해방 전후의 시기에는 예술 행정 또는 연극 행정이 아예 존재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입장세와 같이 연극 활동에 직접적으로 타격을 주는 반연극적 행정이 시행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