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 동질성 회복으로 이질성 극복
김종원 / 영화 평론가
■ 수직적 수용과 수평적 교감
통일 후 남북 문화가 직면하게 될 여러 현상들을 가상하고 그런 전제 아래 앞으로 우리 영화가 극복해야 할 문제점과 이에 대한 대안을 모색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도 찾는 정도(모색)가 아니라 내보여야 한다(제시)면 더욱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난제로의 접근은 통일이라도 그 방식이 흡수 통일이냐, 아니면 민족 화합을 이루는 공론적 평화 통일이냐의 여부에 따라 다른 대안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어느 한쪽 체제로의 통합을 뜻하는 통일이라면 상호주의적 균형은 깨어질 수밖에 없다. 이는 곧 수직적인 문화의 수용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문화는 베푸는 것이므로 상대적이며 강요한다고 수용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문화는 수평적 교감 위에서 수혜되는 특성을 지닌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민족 동질성 회복이라는 명제 아래서 통일 시대 통합 문화로서의 영화의 길을 찾는 데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질감 심화시킨 교화 수단
반세기가 넘는 남북 분단의 벽은 특히 대중과 밀접한 관계인 영화 분야에 대해 이질감을 심화시켰다. 인간이 삶의 주체가 되는 자본주의 사회의 영화 반대편에서 북한의 사회주의 영화는 사상 이념을 교화시키는 수단으로 변질되었다. 현실을 진실하게 반영하되 당의 노선과 정책에 입각하여 작품의 소재를 선택하고 어느 한 계급의 입장을 대변, 절대 옹호하는 성격을 지녀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북한 영화는 헌법에 규정된 사회주의 문화 예술론에 따라 '당보(黨報)의 사설과 같은 호소성'이 강조되면서 '매단계 동원적 역할'을 해 나가지 않으면 안되었다. 이러한 영화관은 그들 스스로 '제작자의 재정에 의해 지배되는 자본주의 사회의 감독과는 달리 당과 인민에 대하여 책임을 지는 자립적인 창조 성원(제작에 참가하는 사람들의 총칭)으로서의 예술가, 정치·사상·생활에 이르기까지 전적인 책임을 지는 지휘관'이라는 사회주의 영화 예술론(1973년 김정일에 의해 발표)에서 출발한 것이다.
북한 영화를 보면 남북이 통합으로 가는 길이 간단치 않음을 알 수 있다. 이념과 정서의 차이가 빚은 엄청난 문화의 이질성은 어느 방향에서 어떤 방식으로 풀어 나가야 할지 심각할 정도이다.
같은 소재라도 남과 북은 작품에 대한 해석과 전개 방식이 다르다. 가령 「임꺽정」만 하더라고 한국의 「임거정(林巨正)」(1961년 유현목 감독)이 탐관오리의 수회(收賄)로 도탄에 빠진 민생을 위해 관권과 맞서 싸우는 의적의 모습으로 그리고 있는데 비해, 1988년부터 1989년까지 5부작으로 만든 북한의 「임꺽정」(장영복 감독)의 경우는 가혹한 봉건 통치 제도의 수탈과 억압에서 벗어나기 위한 계급투쟁의 시각으로 임꺽정이라는 인물을 부각하고 있다. 이 영화가 노린 것은 '억압이 있는 곳에 반항이 있다는 투쟁의 진리'이다
「홍길동」의 경우도 이와 다를 바가 없다. 1958년 김일해 감독에 의해 완성된 한국의 「인걸 홍길동」이 서자의 설움을 안고 태어나 탐관오리들을 응징하는 서민의 벗으로 초점을 맞추고 그 활약상에 관심을 보였다면, 1986년 제작된 추석봉 주연의 홍길동을 왜적의 침입에 맞서 싸운 항일적 존재로 묘사했다.
이 두 편만 놓고 보면 한국판과 북한판 「홍길동」이 서로 바뀐 느낌을 준다. 한국판이 계급적 요소를 깔고 있는데 비해 북한판은 이념성보다 애국심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필요에 따라 원작의 해석을 달리한 증거이다. 뿐만 아니라 「춘향전」의 해석에도 그 차이점이 여실히 드러난다. 그 동안 열두 번에 걸쳐 필름으로 옮긴 「성춘향」(1961년 신상옥 감독) 등 우리의 「춘향전」이 정절과 이도령의 금의환향에 앵글을 맞추었다면 1959년에 이어 두 번째 만든 북한의 「춘향전」(1980년 조선예술영화촬영소 제작)은 춘향의 수절이 봉건제도의 순종이 아닌 타파로 표출했음을 환기시킨다.
이와 같은 현상은 안중근 의사의 일대기를 그린 남북 영화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안중근 사기(史記)」(1946 이구영 감독), 「고종 황제와 의사 안중근」(1959년 전창근 감독)에 이어 세 번째 내놓은 주동진 감독의 「의사 안중근」(1971년)이 굴욕적인 을사 보호조약의 체결과 함께 일본의 한국 침략 야욕을 드러내자 블라디보스토크로 망명, 하얼빈에 잠행 끝에 이등박문을 죽이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는 애국적 연대기를 담고 있으나, 「피바다」(1970), 「꽃 파는 처녀」(1972년)와 더불어 불후의 3대 명작으로 꼽히는 월북 배우 황영일 주연(1989년 사망) 「안중근, 이등박문을 쏘다」(1979년)는 이등박문을 저격하는 대목에 초점을 맞추면서도 안의사의 의거가 '김일성과 같은 지도자를 갖지 못했기 때문에 헛된 것이 되었다'고 주장(라스트 신의 나레이션)함으로써 김일성을 민족의 지도자로 부각시키고 우상화하는 기회로 활용하고 있다.
하물며 김일성을 전지전능한 항일 투사로 묘사하여 그에 대한 인민의 충성심을 자아내게 한 전 10부의 대작 「조선의 별」(1980∼1987년 이종순 각본)에 이르면 남북 영화의 판이함과 이질성은 물과 불의 차이만큼 엄청나리라는 것을 쉽게 예측할 수 있다.
이처럼 영화를 '사상 세뇌의 효과적인 무기'로 인식하는 북한 영화의 시각에서 볼 때 한국 영화는 '황금만능주의, 방탕 풍조에 만연된 반동적 산물'로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닌게 아니라 그들은 6·25전쟁 소재의 우리 영화 「돌아오지 않는 해병」(1963년 이만희 감독), 「증언」(1973년 임권택 감독) 등에 대해 '주민들의 고통, 군인들의 죽음의 책임을 미국과 한국 정부에 있다는 진실을 숨기고 공산주의자들에게 돌린 허위 날조의 작품'(북한 영화의 전망과 우리 영화에 관한 시각, 최척호)이라고 비난한 바 있다.
■ 탈 이념, 인간 찾기의 해법으로
이런 사실로 비추어 볼 때 통일시대, 통합 문화로 가는 길목에서 영화가 넘어야 할 장애가 결코 간단치 않음을 예상할 수 있다. '혁명의 요구대로 사람들을 참다운 주체형의 공산주의자로 교양 개조'하려는 북한 영화와 그들 지적대로 '소박하고 예절 바른 조선 여성을 색정만 밝히는 여성으로 모독하고 성의 도구로 전락'시키는 데에 서슴지 않는 남쪽 영화가 만났을 때 직면할 현상과 정체성의 혼란은 앞으로 통합 영화를 이루는데 적지 않은 걸림돌이 될 것임에 틀림없다.
따라서 처음엔 뒤로 가더라도 북의 문화에서 접합점을 찾으면서 보조를 맞춰 나가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어느 단계까지는 첨단적인 기술에 의존하는 자본주의적 특질의 영화 비중보다는 정상적 인간과 삶의 질을 높이는 보편적 소재의 방향으로 물꼬를 트는 것이 바람직하다.
급격한 변화가 가져올지 모를 부작용을 감안, 빗나간 이념의 노예, 우상 조작의 꼭두각시로 변질돼 왜곡시킨 인간부재의 영화예술관부터 바로 돌려놓고 그 자리에 체취와 입김을 불어넣는 인간성 회복의 순서로 진행되어야 한다. 오랫동안 굶주린 사람에겐 정상적 배식 보다 가벼운 음식이 이롭듯이 달라진 주거 환경이나 변질된 입맛을 제대로 돌려놓기 위해서는 이에 적응하는 슬기로운 의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그것만이 변화의 충격을 완화시키면서 새로운 문화 향수의 길로 연착륙케 하는 첩경이 될 것이다.
어차피 대중성을 젖줄로 하는 영화라는 나무는 오락적 성취도를 섭취하며 자랄 수밖에 없다. 오늘날 사회주의 체제가 무너진 동유럽과 러시아의 영화가 이를 잘 말해 주고 있다. 그래서 한시적이나마 남과 북의 이질성을 중화시키는 중간 기착지가 요구된다.
그러므로 잠시 우리의 기득권을 접어 두는 한이 있더라도 북의 영화와 그 매체의 교화에 길들여진 닫힌 대중(관객)의 취향과 관념을 변화시키는데 힘을 모으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남북이 친숙한 소재, 이를테면 다소 진부하더라도 중년 이상의 관객을 겨냥한 「임꺽정」,「심청전」류의 고전물은 물론 「세종대왕」,「단종애사」,「이순신 장군」과 같은 역사 전기물, 보편적인 남녀의 사랑 이야기, 진한 모성애로 감동을 주는 가정극, 역경을 극복한 인간의 승리담, 향토색 짙은 문예작품 등에서 소재를 끌어내 새로운 해석과 기법으로 흥미를 불어넣는 일에도 주저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또한 북한에선 영화화에까지는 이르지 않았지만 이른바 영화 문학(시나리오의 형식을 빌리어 재조명(「조선영화문학선집 1」수록 1994년 문학예술종합출판사 발행)함으로써 높이 평가한 나운규 각본·감독 「아리랑」(1926년)의 경우도 남북인의 동질성을 확인하는 좋은 소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작품에 대한 남북의 접합점은 흙냄새나는 정겨운 향토색과 풍치, 일제 암흑기 아래서 겪었던 동병상련의 수난이다. 이는 서로 이질적인 사상, 이념과 정서의 부담을 덜어 줄 공유감으로 나타나게 할 하나의 대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보다 바람직한 남북 문화의 통합은 미풍양속의 민족 전통과 정서뿐만이 아니라 건강한 윤리관, 애정을 가진 새로운 인간형의 창출을 통해 민족의 동질성을 회복하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선 남북이 갖고 있는 이념의 경직성과 향락적 개인주의의 때와 얼룩을 씻어 내고 서로의 장점을 찾아 민족의 정체성을 살리면서 21세기 통일 시대를 향한 통합 영화의 문을 의연하게 열어 나가야 한다. 벌어진 불신과 이질성의 극복은 이와 같은 매듭 풀기의 해법으로 이루어나갈 수 있다. 통일 시대, 통합 영화로 가는 길이 아무리 험준하다고 하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