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 리뷰 / 미술

범자연주의

-이일 교수의 후기 비평




서성록 / 미술 평론가

■ 한 시대의 미술 또는 특정 경향의 미술 운동 선도적 추진자

1980년 일본 후쿠오카에서 열린 '아세아 현대 미술제' 한국 섹션에 붙여진 카탈로그 서문에서 이일 선생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나라의 현대미술이 구미 미술의 맥락에서 일탈하면서 동시에 그 맥락에 적극적으로 역작용 함으로써 국제 미술 속에 스스로의 위상을 정립한다는 것, 그것이 한국 현대미술의 야심의 하나이다.' (「세계 속의 한국 현대미술 」, 1980)

한국 현대미술의 야심을 실현시키기 위해 1970년대 이후 선생은 한편으로는 한국 현대미술의 정체성을 다지고, 다른 한편으로는 여러 국제전에 참여하면서 한국 미술의 위상을 높이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생각나는 국제전만 해도 '카뉴 국제 회화제', '동경 국제 비엔날레', '서울 국제 판화 비엔날레', '타이베이 국제 판화 비엔날레', '서울 국제 미술제', '아세아 현대 미술제', '상파울로 비엔날레', '베니스 비엔날레' 그리고 각종 아트 페어(미술견본시) 등 주요 국제전을 통하여 커미셔너 운영위원 또는 심사위원으로 참여하여 '한국 미술의 전도사'로서 역할을 해냈다. 유창한 어학 실력(일본어와 프랑스어 그리고 영어)과 국제적 감각을 겸비한 지적 역량은 우리 미술에 있어 국제화 시대를 이끌어 내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물론 그가 단순히 우리 미술을 알리는 데만 전념했던 것은 분명 아닐 것이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는 한국의 현대미술이 지닌 특수한 성격을 구명하고 해석하는데 많은 시간을 쏟아 부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한국 미술, 그 오늘의 얼굴」(1982), 「현대미술의 시각」(1983), 그리고 「현대미술에서의 환원과 확산」(1991)은 그러한 노력으로 얻어낸 결실이자 한국 현대미술의 정체와 그 동향을 해명한 명쾌한 지침서라 해도 지나침이 없다.

흔히 비평이란 한 시대를 획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일 선생도 이런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았다. 그는 한가로이 '해박한 이론가'에 안주하기보다 한 시대의 미술 또는 특정 경향의 미술 운동의 '선도적 추진자'로서 작가들과 마찬가지로 직접 동시대의 미술 동향에 참여하면서 새로운 예술적 비전을 제안하고 개진하고자 했던 실천가였다.

그렇다면 그를 움직이게 했던 에너지와 소스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 문제는 이일 선생의 후기 비평을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가 된다. 만일 모노크롬(단색 주의)에 대한 각별한 애정과 관심이 없었다면, 아마 그의 후반기 시대를 열어 준 독창적인 비평 세계는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모노크롬과 모더니즘, 그리고 동양의 자연관은 중핵적 개념으로서 그의 평론을 장식하게 되며 후기 비평의 주된 문제로서 등장하게 된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위의 세 개념에 국한하여 1970년대 중반 이후에 드러나기 시작하는 비평적 특성을 살펴보게 될 것이다.

한국의 모노크롬이 하나의 경향으로서 본격적으로 제기된 것은 1975년 일본 동경 화랑에서 열린 '한국 5인의 작가, 다섯 가지 흰색전'이 열리면서이다. 이 전시는 우리 모노크롬을 해외에 알린 첫 행사였을 뿐만 아니라 모노크롬을 공식적으로 표명하게 된 계기였다는 점에서도 큰 의미를 지닌다. 이 전시의 카탈로그에는 기획자인 일본의 나까하라 유스케(中原佑介)와 함께 이일 선생의 서문이 나란히 수록되어 있다.

'백' 또는 '백색'은 우리에게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실상 백색은 전통적으로 한국 민족과는 깊은 인연을 맺어 온 빛깔이다. 그리고 이 빛깔은 우리에게 있어, 비단 우리 고유의 미적 감각의 표상일 뿐만 아니라, 우리 민족의 정신적 상징으로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나아가 그것은 우리의 사고를 규정짓는 가장 본질적인 하나의 언어이다. 요컨대 우리에게 있어 백색은 단순한 하나의 빛깔 이상의 것이며, 백색은 스스로를 구현하는 모든 가능의 생성의 마당인 것이다.

-「백색은 생각한다.」(1975)

위의 글에서 보듯이, 이일 선생이 문제로 삼았던 것은 왜 그렇게 많고 많은 색깔 중에서도 유독 흰색이 한국의 많은 화가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지 또 흰색이 지닌 특별한 성정(性情)은 무엇인가 하는 문제였다. 그의 해명은 백색이 우리의 정서로 걸맞을 뿐 아니라 '우리의 사고를 규정짓는 가장 본질적인 언어' 라는 데 있었으며, 그 자체가 '스스로를 구현하는 모든 가능의 생성의 마당' 이라는 그의 특별한 관점에서 연유한다. 즉 색을 물리적 대상의 차원을 넘어 정신적이요, 형이상학적 의미를 담고 있는 심오한 존재로서 파악하고자 했던 것이다.

나까하라 유스케의 견해도 이와 유사했지만, 이일 선생은 나까하라의 시각을 재검토하는 데서 보다 구체적인 단서를 발견하고자 했다. 한국의 모노크롬에 대하여 나까하라는 '색채에 대한 관심의 표명으로서의 반색채주의가 아니라, 회화에 대한 한국 화가들의 관심이 색채와는 다른 곳에 있다는 증거'라는 의견을 피력한 바 있다. 이 지적과 관련하여 두 가지의 문제 제기를 읽을 수 있겠는데 '반색채주의'의 문제와 '색채와는 다른 관심'이라는 말과 관련된 문제이다.

반색채주의 넘어선 초색채주의적 시각

이일 선생의 입장에서 보면 '반색채주의'라는 관념은 우리 화가들과는 애초부터 무관한 것이다. 한국의 모노크롬은 결코 의도적인 반색채주의가 아니며 단지 감각적이자 물질적인 색채를 배제하고 있을 뿐 색채에 대한 '무관심'의 표명은 아닌 것이다. 이 점은 서구 미니멀리즘이 모든 색가(色價)를 부정하고 그럼으로써 일체의 일루젼에서 벗어나려고 했던 양상과는 반대편에 선다. 한국 모노크롬은 미술의 내적인 문제를 뛰어넘기 위해서 색가를 저버리는 게 아니라 감각적, 물리적 차원을 넘어선 색채주의, 요약한다면 '초색채주의'의 성향이 농후하며, 그리하여 모든 색채의 잠재성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고 간주했다.

이 같은 시각은 놀랍게도 무려 27년 뒤에 발표된 또 다른 글에서도 확인된다.

'색채는 색채이되 그것은 회화적 요소로서의 감각적인 미니엄이 아니라, 우리에게 고유한 사고의 본질적인 한 패턴이요, 자연에 대한 우리의 고유의 비전의 표상이다. 모노크롬은 그것이 어떠한 색상의 것이든 다름 아닌 <자연에 준하는> 색채요, 그 색채는 자연의 근원적인 생성을 그 속에 내재하고 있는 색채이다.

-영국 리퍼플 테이트 갤러리에서 열린 한국현대미술전 서문 「working with nature」(1992)

후자의 경우, 우리나라 특유의 모노크롬 회화가, 동양의 자연관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은 오히려 당연한 일이라 할 것이다. 자연을 두고 '본연의 모습을 스스로 드러나게 하는 것'이라 했을 때, 그것은 곧 가장 원초적인 것에로의 회귀를 의미할게 분명하고 그 회귀가 예술 행위와 맞물리면서 예술 행위 자체는 자연에 준한 본래의 상태로 돌아간다. 바로 이 지점에서 미술을 미술답게 만들고 자연을 비로소 '자연으로서' 바라볼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는 것이다.

물론 이 같은 시각은 흔히 생명주의적 비평가로 앙리 포시옹 Henri Focillon과 허버트 리드

Herbert Read의 비평을 연상시킨다. 선생의 글에서도 종종 두 비평가가 거론되고 있음도 결코 우연의 일치만은 아닐 것이다. 앙리 포시옹의 「형태의 생명」은 청년기 그의 비평적 시각을 정립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주었던 책이며, 허버트 리드의 저술 또한 후반기 평론이나 작가론에서 자주 등장할 만큼 이론적 동질성을 갖고 있는 게 사실이다.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순수한 형태 속에서 '추상적 이데아 abstract ideal'를 얻고자 했던 앙리 포시옹이나, 유기적 물체의 기하학을 통해 본연의 생기 anima를 추출하고자 했던 허버트 리드의 관점과 언뜻 유사해 보이지만, 형태 또는 물질 대신 색채를 모델로 삼았고 예술 작품 자체가 내포하는 가치 내지 '본연의 삶'의 문제를 상정하는 대신 그가 '자연의 정신성'을 표상하려고 했던 점은 사뭇 다르다. 더욱이 특기할 만한 사실은 동양의 철학에 기대어 현대미술을 해석하려 했던 것인데 이런 방법론의 적용은 동서의 미술 개념이 지닌 특수성의 통찰에서 비롯되었으리라 짐작된다.

■ 후기 비평의 특성

실인즉 후기 비평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 사실 중 하나는 서양 미술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우리 고유의 미술의 특성을 발견하고 자신의 비평에 그러한 특성을 근거로 삼아 얼개를 짓는 일이었다. 아무리 미술이 보편적이라 해도 동서의 미술 사이에는 오랜 기간 흐르면서 축적된 상이한 미적 전통을 지닐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상이한 미적 전통은 상이한 조형 세계를 낳게 마련이다. 가령 그가 모더니즘의 '환원'에 대해 말하였을 때, 그 용어는 미니멀리즘의 환원과 다른 의미가 된다. '환원적'이라고 했을 때, 그것을 물리적인 2차원 공간에로의 환원, 즉 물질적인 공간의 문제가 아니라, 보다 정신적인 차원에서의 자기 환원을 의미하는 것이며, 나아가 그림을 그린다는 행위의 극소화 minimalisation를 의미하는 개념으로 사용되었다

이 같은 사실은 '표현' 개념에서도 똑같이 드러난다 그에 의하면, 우리나라 모노크롬에 있어 작품 발상이나 제작 수법은 철저하게 '자연에 준'하므로 거기에 어떤 '표현'이 있을 수 없다고 보았다. 서구에 있어 '표현'의 일반적 의미는 물론 개별적이자 주관적인 외부 세계에 대한 자기 투영을 의미한다. ex-press란 말 그대로 프레스를 바깥으로 내보내는 것이다. 그러나 동양의 그림은 im-press, 즉 프레스를 안으로 수용하는 측면이 강하다. '전신'이라든가 '기운생동'과 같은 전통화론은 다같이 외부의 정황을 내면화한다는 특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국가간 경계가 가까워졌다 해도 쉽사리 바꿀 수 없는 문화적 전통이 한국의 현대 미술 안에 투영되어 있다고 믿었던 셈이다.

아닌게 아니라 우리나라 화가들에 있어선 인간과 자연(외부 세계)이 화면 속에서 다같이 '투명화(透明化)'되어 자연발생적인 행위의 장으로서 스스로를 드러낸다. 그리하여 표현의 배제는 설사 화면을 지배하는 것이 색채라 할지라도 물질적, 감각적인 세계 너머의 무한대로 확산되는 공간을 그 속에 담아 낼 수 있게 되는 거이다. 이렇게 마련된 공간이란 다른 말로 정리하면 '정신 공간'이라 할 수 있으려니와, 그 공간은 바로 보다 원초적인 것, 즉 자연에로의 회귀, 자연의 생성과의 동화에서 태어나는 것이기도 하다.

이와 함께 이러한 모노크롬이 지닌 성격은 궁극적으로 동서의 서로 다른 자연관과도 깊이 관련된다고 보았다. 도식화시켜 말하자면, 서양에 있어 자연이 정복의 대상이라면 동양에 있어 자연은 지혜의 보고(寶庫)이자 배움의 터전이 된다.

유럽인의 야심은 '인간으로 하여금 자연의 주인이자 그 소유주가 되게 하는 것'(데카르트)이라고 했다. 그것은 곧 자연이 인간의 정복 대상이라는 말로 정리된다. 그것을 가능케 하는 것이 한편으로는 과학이요, 또 한편으로는 예술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예술에 있어서는 바로 '사실주의'가 그 근간을 이루고 있으며 그러한 의미에서 사실주의는 어떤 특정 유파이기 이전에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를 지각하고 또 재현하는 기초적인 방식의 하나이다. 그리고 자연주의는 사실주의의 연장선상에서 파악되는 개념의 것이며, 때로는 사실주의와 동의어로 쓰여지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사정은 전혀 다르다. 우선 자연주의에 대한 발상 근원부터 다르다. 우리에게 있어 자연은 인간에 의한 정복의 대상이 아니라, 동화하고 합일하는 자연, 요컨대 그 생성을 함께 사는 자연이다. 그리고 만일 우리가 '자연주의'라는 용어를 쓴다고 했을 때, 그것은 바로 그와 같은 자연관을 바탕에 둔 것이다.

■ 범자연주의의 제안

이와 같은 동서의 서로 상치되는 개념상의 혼란을 피하기 위해 이일 선생은 '범자연주의 Pan-naturalism'라는 말을 제안한 바 있다. 같은 말이더라도 동서의 자연주의는 상당한 편차, 어쩌면 정반대라고 할 수 있는 의미를 동반하고 있는 것이다. 만일 자연을 '스스로 그렇게 있는 것'이라고 받아들였을 때, 그 자연은 구체적, 물질적 형상 또는 현상으로 드러나기 이전에 모든 삼라만상 속에 내재되어 있는 그 어떤 원초적인 상태일 수 있다고 여긴 이일 선생은 그 세계를 가리켜 '자연편재(自然遍在)' 또는 '기(氣)'의 세계라고 요약하였다.

자연 중시는 세계를 지각하고 또 재현하는 기초적인 방식의 하나로서 인식되어 온 서양과 달리 또 다른 결과를 낳는다. 그 결과가 다름 아닌 '초극의 논리'인데 그 초극의 논리로 인해 예술은 흡사 나무에 매달린 과일 또는 어머니의 품속에 안긴 아이처럼 대자연의 품안에서 자라나 과일이 된다. 만일 서양의 현대미술이 생성, 성장, 노쇠, 그리고 소멸을 맞는 형태적 메타모르포시스 metamorphosis에 초점을 맞춘다면 우리의 미술은 그보다는 나무의 근원, 즉 그러한 형태 변환을 가져오는 모르포제니시스 morphogenesis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전자에 있어 단계별 관찰과 분석, 그리고 원인과 결과에 대한 체계적 계통화가 주목된다면, 후자에 있어선 보다 근원적인 생명의 통찰, 과학적 해명으로는 불충분한 직관적 통찰이 주목된다. 이와 같은 사실은 이일 선생이 한국과 서구의 현대미술을 지탱시키는 논리 구조를 살펴볼 때 한층 분명해진다.

한국 모더니즘에 어떤 논리가 있다면, 그것은 서구에서 보듯 근대 미술 전개 속에 내재되어 있는 하나의 '맥' 또는 줄기, 미술 작품 접근에 있어서의 하나의 시각이자 그 논리적 체계화, 그리고 그 시각을 하나의 원리로 삼아 현대미술의 구조 자체를 밝히는 형식주의와는 엄연히 구별된다. 서구 모더니즘이 논리의 체계화 내지 규범화를 내세우고 있다면, 한국 모더니즘의 논리는 앞에서 말한 것처럼 '초극의 논리'로서 설명되는데 그가 말한 '초극의 논리'란 '논리 이전의 논리'의 세계이며, '우리 미술을 서구적인 형식주의로 묶을 수 없는 그 너머의 세계에로 들어갈 수 있는 통로'를 말한다. 이때의 '초극'은 물질과 정신이라는 이원적 세계관의 극복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며 필경은 물질과 정신의 합일이라고 하는 동양적 대명제, 즉 자연관에 귀착한다.

-「working with nature」 (1992)

그러한 자연편재의 논리가 창조의 에너지로 전환되어 모노크롬 속에서 표상되는 것이 다름 아닌 '무위' 이다. 그에게 있어 무위란 '아무 것도 행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작의적'인 것, 다시 말해서 부자연스러운 것, 꾸밈(인공적인)을 행하지 않음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연스러움'이란 곧 '스스로 그렇게 있는 것'을 가리킨다. 요컨대 '무위자연'이란 '자연을 따른다'는 뜻으로 요약되거니와, 그리하여 가장 무작위적인 것을 통해 가장 많은 것, 즉 '자연'과의 합일이 이루어(앞의 글)진다고 보았던 것이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이일 선생이 한국 미술의 정체성을 밝히는데 전통의 양식을 현대적으로 계승 또는 번안하는 상투적인 방법론 따위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따라서 과거의 회화적 어휘라든가 소재를 되찾는 일에는 일체 흥미를 느끼지 않았다. 그것을 '무의미'하다고 여겼을 만큼 확신에 찬 그 무엇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일 선생은 '우리 고유의 전통적 양식을 창출해 낸 보다 근원적인 뿌리를 되찾는다는 데'(「세계 속의 한국 현대미술」, 1980) 시선을 집중했다. 작가론, 시론, 논문 등 그의 수많은 논고들은 우리 미술에 잠재되어 있는 영구적이요, 부동의 실체를 구하는데 바쳐졌다. 그리하여 '근원적인 뿌리', 바로 그런 뿌리 찾기의 도정(道程)에서 대자연의 은총 속에서 태어나고 자라난 한국 모노크롬의 진가를 발견해 낼 수 있었던 것이다. (1997년 4월 호 이일 교수의 초기 비평에 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