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예술 상설 무대의 꾸준한 증가
이병옥 / 용인대학교 예술대학 교수, 전통 예술 평론가
■ 각 공연장에서 마련된 국악 상설 무대들
우리의 공연 예술 현장 속에는 크고 작은 전통 예술 공연이 꾸준히 펼쳐지고 있다. 그러나 세인들의 관심이나 매스컴의 관심은 그리 크지 못하다는 느낌이 든다. 오늘날의 문화 예술이 말로는 '전통 문화의 세계화'니 '찬란한 문화유산'이니 운운하지만 청소년들과 일반인들은 대중예술에, 예술인들은 창작예술에 지나치게 편중되어 정작 우리의 전통 예술은 노년층이나 소수의 뜻 있는 사람들만의 관심사에 머물러 있어 안타깝기 그지없다. 그러면서도 최근에는 각종 극장에서 꾸준히 전통 예술의 상설 공연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벌써 15년째 토요 상설 무대를 열고 있는 국립국악원은 전통예술의 전당답게 그 동안 소극장(우면당)밖에 없어 소외됐던 대극장(예악당) 무대가 건립되어 비중 있는 전통 예술 공연을 동시에 펼칠 수 있게 되었다. 그리하여 올해는 전통 공연의 다양화를 꾀하기 위해 중요 무형문화재 무대 종목 전승자들이 꾸미는 '화요 상설 공연'과 대학생들과 청소년을 대상으로 젊은 국악인과 창작 국악을 중심으로 한 '젊은 목요 광장', 초등학생과 학부모를 대상으로 하여 해설과 배우기를 곁들인 '우리 음악 감상 교실' 등 특정층을 겨냥한 상설 무대도 마련하였다.
특히 예악당에서는 토요 상설 공연으로 「종묘제례악」,「수제천」 등의 궁중음악과 「학」,「연화대」,「합설」,「처용무」 같은 궁중무용을 비롯하여 민속 무악까지 곁들여 무대를 장식함으로써 전통 예술의 대극장 시대를 열고 있다. 여기에는 국립국악원 정악 연주단, 민속 연주단, 무용단 등이 출연하여 원숙한 기량으로 국내 최장수 상설 공연답게 짜임새 있고 수준 높은 전통 예술을 감상할 수 있어 가장 많은 고정 관객을 확보하고 있다.
또한 국립극장은 전통의 '완창 판소리 무대'를 마련하여 보통 3시간에서 5시간씩 걸리는 판소리 한바탕을 끝까지 들을 수 있는 유일한 공연을 비롯하여 이어 5월부터 시작되는 야외 공연으로 국립극장 놀이마당에서 펼치는 '수요가정문화극장'과 매주 토요일에 펼치는 「문화 광장」을 선보이고 있으며, 세종문화회관에서는 시립국악관현악단의 매월 마지막 토요일 상설 공연이 마련되고 있다.
정동극장과 '한국의 집'은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관광 상품으로 개발하여 상설 공연을 펼치고 있다. 특히 다양한 아이디어로 관객의 관심과 구미에 맞는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는 정동극장은 전속 무용단까지 창설하여 민속악 위주의 전통 예술의 상설 공연을 기획하여 매주 화·금요일에 펼치면서 관객과 함께 하는 뒤풀이 마당과 전통차 무료 제공까지 하고 있다.
그밖에도 마당놀이 종목의 공연으로 서울놀이마당에서는 4월부터 10월까지 매주 토·일요일에 중요 무형문화재 마당종목을 중심으로 공연되고 있으며, 민속촌 놀이마당에서도 전속 농악단 풍물의 매일 공연과 초청 무형문화재 마당종목이 주말과 공휴일에 펼쳐지고 있다.
이상과 같이 서울 지역에서는 그래도 다양한 장르의 전통 예술 공연 기회를 가짐으로써 기호에 맞는 공연을 감상할 수 있다. 즉 장중하고 유려한 정악에 심취하고 싶을 때는 국립국악원으로, 판소리와 창작성이 높은 전통 예술은 국립극장으로, 전통 음식을 곁들인 감상 기회는 한국의 집으로, 신명나는 민속놀이는 서울놀이마당으로 발길을 돌리면 된다.
■ 어버이날 맞은 세종문화회관의 전통예술 상설무대 국악대공연
이번 어버이날을 맞이하여 전통예술 상설무대 국악대공연 16번째 행사가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 열렸다. 올해엔 국립국악원 무용단 「선유락」, 이생강 「대금산조」, 이애주 「승무」, 김혜란 「서울굿」, 김호성 시조, 황병기의 가야금 연주, 명창 안숙선의 판소리, 국립 국악원 사물놀이 팀의 북모듬으로 다채롭게 꾸며졌다. 나이 지긋한 세대들이 볼만한 공연이 드문 현실에서, 모처럼 부모를 즐겁게 해줄 수 있는 기회였다.
첫 순서인 「선유락」은 아리따운 기생들이 궁중 뜰 안에서 뱃놀이 장면을 연출하는 궁중 정재. 40여 무용수들이 배를 둘러싸고 춤추며 농암 이현보의「어부사」를 부르는 장관을 빚어냈다. 대금 명인 이생강의 순서는 주목할 대목, 현대 감각에 맞게 속도감 있는 대금산조를 12분 동안 선보였다. 원래 28분 짜리 대금산조를 최근 2시간 분량으로 재창조해 낸 대금 솜씨의 정수를 맛볼 기회였다.
인간 문화재 이애주의 「승무」와 김혜란의 「서울굿」으로 우리 춤사위의 아름다움에 빠져들다 보면 옛 선비들의 낭랑한 시조 소리가 들려 온다. 김호성이 사설시조 「1년 3백60일은……」과 엮음지름시조「푸른 산중」을 선보였다. 엮음지름시조란 초장 뒷부분부터 중장까지 세마치 장단에 맞춰 사설을 많이 하다 종장은 다시 평시조로 돌아가는 형식을 말한다
가야금 달인 황병기는 백제가요 정읍사 첫구에서 제목을 따온 「달하노피곰」을 연주했다. 중간에 유명한 동요 「달아달아 밝은 달아」 가락이 삽입돼 있어 귀에 익다. 설명이 필요 없는 판소리 명창 안숙선은 「심청가」 가운데 '심봉사 심청 만나 눈뜨는 장면'으로 청중들을 사로잡았다. 마지막은 국립국악원 사물놀이 팀이 여러 가지 새롭게 변형한 북으로 다채로운 가락을 연주하였다. 이번 공연은 우리 국악과 전통 춤의 진수를 보여주는 다채로운 무대로 관객들의 호응도도 상당히 높았던 보기 드문 수준 높은 무대였다.
■ 전통 예술 감상의 기회와 배움의 기회 병행되어야
이와 같이 다양한 전통 예술의 장르별로 특색을 가지고 공연을 하고 있으므로 기호에 맞게 그리고 여가 시간과 장소에 맞게 선택하면 얼마든지 전통 예술을 접할 수 있는 기회는 많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전통 예술의 공연 현장에는 대부분이 단골손님 중심으로 객석을 차지하는 현상을 보이고 있으며, 정보 부족인지 관심의 부족인지는 몰라도 일반인들은 어디 가야 전통 공연을 자주 접할 수 있느냐고 묻는 이들이 의외로 많다 이것은 전통 예술 공연의 종합적인 홍보 체계와 안내가 이루어지고 있지 않고 극장별로 단편적인 안내만 하고 있기 때문에 홍보의 한계성에서 비롯된 현상이다.
아울러 다양하고 특색 있는 레퍼토리 개발과 관객이 보다 편리하게 찾아오고 안락하게 감상할 수 있으며 또다시 찾아 올 수 있는 마음이 솟아나도록 신명의 한마당 잔치가 되게 좀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최근에는 전통 예술을 감상하는 수준을 넘어서서 이제는 민요나 판소리나 사물놀이를 한 수 배워 보고 싶어하는 일반인들이 의외로 많다. 그러나 이러한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사회 문화 교육의 기회나 여건이 그리 성숙되지 못하고 있다. 국립국악원이나 국립극장예술진흥회 등에서 일반인들을 상대로 한 전통 예술의 교육 프로그램이 있으나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이러한 배움의 기회와 혜택을 받고 있을 뿐이다.
열 번의 감상의 기회를 가진 사람보다 한번의 배움의 기회를 가진 사람이 훨씬 전통 예술에 대한 이해와 관심은 높다. 즉 이것은 배워서 조금이라도 알아야 관심도 높아지고 참여율도 높아져 전통 예술의 애호가로 자리잡게 되는 것이다. 결국 전통 예술의 저변 확대라는 측면에서 보더라도 '감상의 기회'와 '배움의 기회'는 병행되어야 할 문화 인프라의 과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