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을 대비하는「문화비전 2000」/ "문화의 세기가 오고 있다"
문화현실과 문화정책
송태호 / 문화체육부장관
문화의 정의와 그 중요성
우리말 사전에 보면 대체로 문화란 '사회구성원에 의하여 습득, 공유, 전달되는 행동양식 내지 생활양식의 총체'라고 풀이되고, 그 예로서 '언어, 통습, 도덕, 종교, 학문, 예술 및 각종 제도 따위' 등을 들고 있다.
따라서 우리 생활의 전부, 즉 생활의 모든 틀을 규정짓는 것이 문화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며, 또한 과학기술 발전 등 시대의 변화에 따라 그 개념이 확산·발전되기도 한다.
문화의 개념을 좁혀서 해석하더라도, 문화는 인간의 정서 순화라는 고전적 기능을 넘어 사회의 정서를 결정하고 건강성을 좌우하는 사회통합의 중심적 요소가 되는 것이다.
존경하는 우리나라 독립운동의 영웅 김구 선생은 「백범일지」를 통해서 문화에 관한 불후의 명언을 남기기도 하였다.
'오직 한없이 갖고 싶은 것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인류가 현재에 불행한 근본 이유는 인의(仁義)가 부족하고 자비가 부족하고 사랑이 부족한 때문이다. 이 정신을 배양하는 것은 오직 문화뿐이다.'
이 말은 현대를 사는 우리 모두에게 시대를 뛰어넘는 교훈을 주는 것이다.
한편 '새뮤얼 헌팅턴 Samuel Huntington'은 「문명의 충돌」이라는 최근의 저서에서 세계질서에서 문화가 점점 중요한 문제로 부각되는 현상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해 주고 있다. '세계는 냉전시기처럼 이데올로기에 의해서가 아니라 문화에 의해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문화충돌>의 시기로 접어들고 있다. 때문에 이제 갈등은 파시즘과 사회주의와 민주주의들간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서구, 이슬람, 일본, 힌두 등 세계의 주요 문화 집단간에 발생한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앞으로는 문화적 차이가 더욱 크게 부상할 것이며, 모든 사회는 문화의 우열, 문화의 경쟁력에 의해서 위상이 결정되고 우열이 가려진다고 전망하는 것이다.
또 다른 면에서 문화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는 「TRUST」의 저자 후쿠야마씨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과거 <신고전파 경제학>은 80퍼센트 정도는 정확성을 갖고 있었다. 나머지 20퍼센트가 불명확했던 것은 문화적 요인을 고려하지 않은 이유 때문'이라는 것이다. 즉, 삶의 속에 뿌리깊이 내려 있는 사회 관행, 도덕, 관심, 삶의 가치를 이해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신뢰의 문화가 기반으로 잘 짜여진 나라만이 국제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데 가족밖에 믿지 못하는 이태리, 스페인, 중국 심지어 일본까지도 한계가 있고, 그것을 넘어 다양한 사회 구성원간에 사회적 신뢰가 존재하는 영국, 미국, 서구 사회가 궁극적인 경쟁우위를 갖는다는 주장인 것이다.
또한 드골 정부에서 10여 년간 문화성 장관을 지냈던 앙드레 말로도 '문화의 가치는 세계가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는가를 판가름하는 방법을 알려주는데 있다. 그러므로 보다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 정신과 물질의 문화를 상호 교환하여야 한다'며 문화의 의미와 중요성을 역설한 바 있다.
우리나라도 법령 DB를 조회해 보면 이미 '문화'라는 용어가 들어간 법령 수가 369개로서 전체 조회가능 법령 수의 25퍼센트를 차지하고 있어 정부 정책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미뤄 짐작할 수 있다.
우리나라 문화의 현실
우리나라도 지난해 OECD에 가입함으로써 선진국의 문턱에 들어섰다고들 한다.
그러나 우리가 흔히 선진국이라고 할 때 경제적 또는 물질문명 지수를 꼽지만, 정신문화 활동지수가 높지 않으면 선진국이라 할 수 없고 그런 점에서 우리는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1989년 UN에서는 실질구매력, 문맹률, 평균수명, 생활 만족도 등을 토대로 국가별 행복지수를 매겼는데 여기에는 상위 12개국이 선진국으로 꼽히고 있다. 참고로 일본, 스웨덴, 스위스, 네덜란드, 캐나다, 노르웨이, 호주, 프랑스, 덴마크, 영국, 독일, 미국 등이 이에 속한다.
이들 선진국과 우리나라를 몇 가지 정신문화 활동지수를 통해서 비교해 보면 우리 문화현실의 한 단면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이에 따르며, 연간 1천 명당 도서대출 권수는 한국이 235권인데 반해 선진외국 평균은 6천 588권이며 덴마크 1만 6천여 권, 네덜란드 1만 2천여 권, 영국 1만 1천여 권으로 나타난다. 또한 연간 1천 명당 영화 관람자 수를 보면, 한국이 1천170명이고 선진외국은 평균 2천3백 명이며, 미국 4천5백 명, 캐나다 3천 명 순이다.
이밖에도 연간 5천 명당 무대예술 관람지수는 한국 1백 명, 선진외국 평균 341명이고, 연간 1천 명당 박물관 관람자 수에서는 한국 6명, 선진외국 평균 1천177명으로 조사되고 있다.
이 네 가지 항목을 종합한 정신문화 활동지수 면에서 한국은 선진국 평균을 100으로 볼 때 14.8에 불과하며 가까운 대만, 홍콩, 싱가포르에도 뒤진다. 이것은 연간 1인당 독서량이 일본 19.2권에 비해 우리나라는 9.1권에 불과하다는 사실과 맥락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지방자치 실시, OECD 가입, 국민소득 1만 불 시대 진입에 따라 문화에 대한 국민적 욕구는 급속히 늘어나고 있지만, 아직 문화 기반은 취약(脆弱)하고 문화향수의 기회는 빈약하다.
금년도 문화체육부 예산은 정부 전체 예산 71조 4천억 가운데 6천5백억 원으로 약 0.91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다. 이중에는 청소년, 체육 등의 예산도 포함되어 있음은 물론이다. 당초 문화예산 1퍼센트 확보가 대통령 선거공약이었는데 어떻든 내년 문체부 예산은 정부 예산의 1퍼센트 달성이 목표이지만 그 달성은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의 문화인식 수준이라고 보는데, 앞에서 보듯이 현재 우리나라는 폭발하는 문화 수요에 비하여 공급이 부족해 국민들은 많은 문화적 갈증을 느끼고 있다. 그러나 문화에 대한 열망이 높았다고 하여 그 문화수준까지 자동적으로 높아지지는 않는다. 문체부 산하 연구기관인 문화정책개발원에서 1996년도 조사한 '국민문화복지 수요조사'의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50퍼센트 정도가 1년 동안 거의 한번도 영화, 음악회, 전시회 같은 가족 동반의 문화활동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가족들로 자리를 메우는 귀국독주회의 양산과 같이 단지 외형적인 성장이 아니라 진정으로 문화인식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가는 다시 한번 생각해 볼 문제다. 지식인은 양산되지만 진정한 교양인은 많은가, 또 문맹률은 낮지만 과연 독서를 즐기는 국민이라 할 수 있는가 등에 대하여 우리 자신을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는 각종 정책 추진에 있어 예산당국자 등 관계부처와 협의 시에도 마찬가지다. 경제가 어려운 때에 '문화예술활동 등은 사치요 소비적인 것'이라는 시각이 정부 부처 내에 상당히 강하다는 느낌을 종종 받게 된다.
문화정책의 방향
문화는 궁극적으로 민간의 자율적 영역이다. 그러나 상술했듯이 우리의 문화현실은 민간영역에 전적으로 맡기기에는 아직 부족한 점이 많다. 순수예술 영역은 대부분 영세성을 면치 못하고 있고, 날로 증대하는 문화 수요에 비해 이를 뒷받침할 적정한 문화향수 여건 조성은 요원한 상태인 것이다. 한마디로 지금으로서는 시장 실패의 영역이라 볼 수 있다.
그렇다면 현실은 정부에게 어떤 정책적 역할을 요구하고 있는가.
정책은 현실의 반영이다. 국민의 요구가 무엇인가에 끊임없이 귀기울이고 이를 정책화시키는 것이다. 이는 정책의 실효성과 직결된다.
그런데 시대에 따라 환경의 요구는 변화되며 그때마다 그에 적실성 있는 정책이 만들어져 시행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문화정책도 변화하는 시대 요구에 부응하여 다양한 모습을 보여왔다. 여기서는 이해를 돕기 위해 우리나라 문화정책 역사의 흐름을 간략히 소개하고자 한다.
1950∼1960년대 초창기에는 보존과 규제 중심의 소극적인 정책이 주류를 이루어 왔다. 이시기에 문화재관리국이 설치되고 문화재보호법이 제정되어 소멸해 가는 우리의 전통문화재를 유지, 보존, 관리하는데 문화정책의 중점을 두었다.
이어 1970년대는 규제 중심의 정책을 벗어나 본격적인 지원체제가 확립된 시기이며 문화예술진흥법 제정(1972년), 문화예술진흥원 설립(1973년) 등의 성과를 보았다.
1980년대 들어서는 문화발전이 국가발전의 중요한 요소로 인식됨으로써 문화정책의 스케일이 커지게 된다. 이때에는 예술의 전당, 독립기념관, 국립현대미술관, 국립국악원 등 매머드한 문화시설, 즉 문화의 Infrastructure가 건립되기에 이르렀다.
이어서 1990년 1월에는 문화정책을 전담하는 독립 부서로서 문화부가 출범하고 우리나라 문화정책은 또 한번의 도약 기회를 맞게 된 것이다.
1990년대에는 지속적인 문화 수용의 증대와 더불어 국민의 삶의 질이 중시되면서 국민의 문화향수권과 참여권을 신장하는 문화복지의 개념이 도입되고 관광, 여가, 체육, 환경 등이 문화복지의 중요한 내용으로 포괄되게 된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나라 문화현실이 요구하는 것은 무엇이며 이에 따른 우리 문화정책의 방향은 어떤 것인가.
문화체육부는 먼저, 진정한 국민복지의 실현은 먹고사는 사회복지 차원을 넘어 삶의 질 향상을 위한 문화복지달성을 통해 가능하다는 인식 하에 정책을 개발·추진하고 있다. 이는 문화를 단순한 교양수준이 아닌 경제발전과 사회병리 해결을 도모하는 생산적·예방적 개념으로 확대시킨 것임을 의미한다.
과학기술 발전에 따른 영상문화산업 등 새로운 영역에 대한 정책 개발과 세계화 시대에 따른 국제간 문화교류 및 관광의 확대 그리고 통일시대에 대비한 통일문화 조성 등 날로 문화정책의 영역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특히 정보화, 디지털화에 부응한 영상 소프트웨어 산업은 우리의 지적 문화 예술적 역량을 바탕으로 무한한 발전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만큼 집중적인 육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문화는 궁극적으로 민간의 자율영역이므로 민간 문화활동의 활력을 주기 위한 간접적인 지원정책에도 주력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각종 문화·예술 활동에 대한 지원은 물론, 예총과 전국의 문화원, 그리고 전국의 향교에 대한 지원도 강화해 나가고 있다. 또한 기업메세나협의회 활동을 통해서 기업의 문화예술 지원활동을 유도하고 있다. 몇몇 기업을 중심으로 문화지원 활동이 활발해져 왔으나 금년에는 경제 여건이 나빠져 그 활동이 주춤하는 것 같은 느낌이다.
정부는 이처럼 문화예술의 발전과 국민 문화복지 증진을 위한 직·간접적 노력과 함께, 다가오는 새로운 시대에 부응하는 새로운 정책을 지속적으로 개발·추진하고 있다.
특히, 문화체육부는 지난 4월부터 문화의 세기라 예견되는 2000년대에 대비하여 문화 한국의 밑그림을 마련하고 다음 세기를 준비하고자 하는 취지의 '문화비전 2000' 사업을 추진 중에 있다.
2000년 1월 1일 0시는 100년 단위의 21세기가 시작하는 동시에 1000년 Millenium 단위의 '제3천년기'를 출발하는 문명사적 대전환점으로서 매우 뜻깊은 시점이다. (※ 21세기의 출발 시점은 2001년부터라는 해석이 논리적이지만, 통념적으로는 2000년의 시작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따라서 이를 계기로 우리 문화를 총 점검하고 아울러 새로운 문화 패러다임과 비전을 제시함으로써 2000년대 문화시대에 '문화한국'을 만들기 위한 정책 토대를 마련하려는 것이다. 지금 최정호 연세대교수를 위원장으로 하여 문화관련 각 분야의 권위자들로 구성된 '문화 비전 2000 위원회'가 열심히 작업 중에 있으며, 지난 5일에는 문체부 건물 전면에 '문화의 세기가 오고 있다'는 문구의 산뜻한 전광판을 설치하고 점등 행사를 가진 바 있다.
민족의 문화역량 증진에 노력할 때
문화를 끌어안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이 시대의 숙명적인 요구이자 엄연한 현실이다. 여러 가지 어려운 여건을 안고 있는 문화의 현주소와 이를 시급히 개선해 나가야한다는 당위적 요구, 이 두 가지는 정책 결정자가 언제나 염두에 두어야 할 현실인 것이다. 앞으로도 문화체육부는 이러한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건실한 문화정책을 세우고 집행해 나가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누구나 문화선진국이라 주저 없이 얘기하는 프랑스조차도, 문화성장관이 지난날 문화정책을 더 적극적으로 추진하지 못했음을 비판하고, 앙드레 말로 이후에야 비로소 문화행정을 '공공문화 서비스'로 접근했던 사실을 부끄럽게 생각한다고 말한 바 있다. 또한 자신들의 문화정책이 지나치게 이지적인 면으로 치우쳐 있어, 젊은 세대들을 포용 못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과감히 청소년들을 위한 정책방향의 전환을 모색 중이라 한다. 이 모든 사실은 우리 모두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겠다.
요즘 대선 정국으로 온통 나라가 시끄럽지만 어느 분이 되든 2000년대 문화 천년기를 맞이할 차기 대통령은 '문화대통령'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제까지 몇 차례 대선 예비 후보 또는 후보자들이 TV 토론에서는 유감스럽게도 문화에 관한 질문이나 답변이 매우 빈약했다는 느낌이다.
어쨌든 현재는 물론 다음 정부 역시 미래에 대한 비전을 갖고 정책의 무게중심을 문화로 한 발 더 가까이 가져가야 할 것이다. 다만, 여기서 정부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 정부의 노력과 함께 민간 부문의 노력과 성숙이 점차 더욱 중요해진다는 뜻이다. 한 경제학자는 경제가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훌륭한 제도, 우수한 공직자 이전에 온 국민의 경제 하려는 의지 the will to economize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했다. 문화도 국민의 '문화 하려는 의지'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 국민은 예로부터 가무를 즐기고 글을 아끼는 오랜 문화민족의 전통을 이어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진국에 비해 갖가지 문화지수가 뒤떨어지는 것은 그 민족적 소질을 발양시킬만한 여건조성이 뒤따라 주질 못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럴수록 정책담당자로서 책임감은 더욱 무겁게 느껴지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매우 중요한 시점에 서 있다. 이제는 문화의 중요성을 정부와 국민이 함께 깊이 인식하고 민족의 문화역량 증진에 노력할 때라 생각한다. 국민 여러분의 문화에 대한 애정과 적극적인 협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