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 리뷰 / 미술

문화교류 현장의 밀도 있는 예술적 체험

-샤라쿠의 재해석·앙리 카르티에-브레송 사진전




김현도 / 미술평론가

문화교류의 현장 확인할 수 있는 알찬 기획들

지난달에는 최근에 가속화되고 있는 문화교류의 현장을 확인할 수 있는 알찬 기획들이 전시문화를 즐기는 관객들에게는 매우 밀도 있는 예술적 체험을 선사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 같은 전시들로, 이집트의 고대 유물을 전시한 '이집트 고대 문명전'(예술의 전당, 6. 4∼7. 20), 추사의 제자들과 교분을 나눴던 청대 화가들의 작품전이었던 '중국근대 회화전'(간송미술관, 5. 18∼6. 1), 18세기 일본 유끼요에 판화의 명인이었던 도슈우샤이 샤라쿠의 복각판화와 현대 작가들의 그 현대적 변용을 다룬 특이한 전시였던 '샤라쿠에의 재해석' (1부/ 1.복각판, 2.그래픽 샤라쿠, 2부/ 샤라쿠에의 찬사, 주한일본대사관 공보문화원, 5. 26∼6. 17), 그리고 앙리 카르티에-브레송의 초기 작업-1930∼1934-을 다룬 사진전(동아갤러리, 6. 5∼7. 20)등을 들 수 있다.

우리는 올 여름만 해도, 문명의 발상지 이집트의 고대 유물, 동북아 문명의 황금기였던 18 세기 청조와 일본의 수묵화와 판화, 그리고 금세기 초 서구 다큐멘터리 예술 사진의 진수를 섭렵할 수 있었던 셈이다. 사실상 조형예술의 분야는 어떤 역사적인 시대성을 막론하고 일단 그 양식의 외형을 실존적으로 우리의 시야에 펼쳐 놓음으로써 그 전문적 배후로의 매혹적인 입구를 열어 놓는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이 전시들의 산발성이나 불연속성에도 불구하고 여기 참여하는 관객의 의식 속에서 일련의 추체험으로 되살아난다는 점이다.

얼핏 이러한 전시들은 전반적인 이국취향 exotism의 물결처럼 우리에게 다가온다. 물론 그것은 우리가 한편으로 의식하고 있는 정체성의 문제와 아주 무관한 것은 아닐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조형예술에 있어서 정체성의 문제가 단지 우리의 기억에 남아있는 이미지를 근거로 해서만 배타적으로 적용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우리는 이러한 낯선 타자의 미의식을 통해서 우리의 편협한 미적 판단의 뿌리에 대해서 다각적인 성찰의 기회를 가진다.

한글세대에게 전하는 이색 전시

주한 일본대사관에서 열린 '샤라쿠의 재해석'전은 역사적으로 일본 문화의 문외한이 될 수밖에 없는 한글세대에게는 특히 이색적인 전시였을 것이다. 도슈샤이 샤라쿠는 18세기말 단지 10개월간의 작품활동으로 후세의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전설적인 판화가로 알려져 있다. 그는 생몰 연대를 포함해서 그의 생애에 관한 일체의 기록도 남아 있지 않은 인물이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마치 영국의 셰익스피어의 경우처럼, 샤라쿠는 다른 저명한 예술가가 그 이름을 빌어 일시적으로 작업한 별칭이라는 설이 있다(심지어 얼마 전에는 매스컴을 통해서 이 판화의 작품들이 말년의 김홍도(金弘道)가 일본에 건너가서 제작한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었다). 샤라쿠가 서구에 본격적으로 소개된 뒤로부터, 대담한 평면적 표현 기법과 색채 감각의 일본 판화-유끼요에-의 대표적 작업들이 빈센트 반 고호를 비롯한 서구의 현대 작가들에게 상당한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샤라쿠는 당신의 디자인이나 팝아트의 상업적 기법으로 활용되었던 유끼요에 판화 형식을 통해 인물 초상의 역사적 시각에서 매우 독특한 예술성을 표현해 냈다. 유끼요에 판화는 당시의 일본 민속극-가부끼나 교겐-의 배우들을 홍보하기 위한 목적으로 제작된, 이를테면 오늘날 대중예술에 종사하는 스타들의 선전용 브로마이드 사진과 같은 응용미술의 일종이었다.

'샤라쿠에의 찬사'는 흥미롭게도 현재 일본의 대표적인 젊은 작가들이 샤라쿠의 역사성과 예술성을 주제로 삼아 최근에 제작한 현대미술의 작품들을 전시했다. 특히, 관객이 태엽을 감으면 샤라쿠의 작품의 인상을 음색으로 청취하도록 제작한 「샤라쿠 박스」를 출품한 유끼오 후지모도의 작업, 오늘날 대중만화의 캐릭터를 아크릴 물감으로 재현해 냄으로써 대중적 스타의 변모하는 초상을 시사적으로 추적한 무라까미 다까시의 작업,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자화상들을 교묘하게 샤라쿠의 판화들에 합성시킨 야수마사 모리무라-이 작가는 샤라쿠의 판화 외에도 동서양 대가들의 인물 초상에 자신의 이미지를 대입한 컴퓨터 합성사진 computer generated image 작업을 꾸준히 발표함으로써 주목을 받고 있는 작가이다-의 「샤라쿠의 자화상」이 눈에 띄었다.

시대를 풍미했던 인물들의 개성을 포착하고 전달한 사진전

앙리 카르티에-브레송 Henri Cartier-Bresson의 초기 작업(1930∼1934) 역시 한시대를 풍미했던 인물들의 개성을 포착하고 전달해 준다는 점에서 '샤라쿠에의 찬사'와 공통점이 있다(적어도 그들은 그들이 소속된 시대의 가장 대중적인 시각매체-판화와 사진-으로 당시 문화적 스타의 초상-배우와 예술가-의 성격을 통해 예술적 표현의 한 형식을 제시해 내는데 성공하고 있다). 까뮈, 보나르, 샤르트르, 브레똥, 마티스, 샤갈, 퀴리부부, 피카소, 모리악, 이오네스코, 베케트, 샤넬, 말로……

20세기 전반기의 문화예술을 찬란하게 꽃피웠던 문화예술계의 세계적인 스타 26 명의 생생한 표정이 젊은 브레송의 시각에 노출된 채 전시실을(성좌처럼) 가득 수놓았다. 그렇다고 브레송의 시선이 어떤 과장이나 숭배의 감정에 사로잡힌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 초상들의 이미지는 20대의 젊은 사진가가 당시의 유명인사를 촬영한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담담해 보였다.

그러나 반세기가 지나는 동안 이 사진들의 의미는 그 표정 자체와는 무관하게 점차 달라져 왔을 것이다. 앞으로도 이 초상들은 그것이 전시되는 장소와 시간에 따라 조금씩 의미를 달리해 가며(동서양)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을 것이다. 우리는 이 흑백의 인물사진으로부터 흘러간 초현실주의와 실존주의, 부조리 연극의 역사성, 그들의 과학과 철학, 또는 열정과 허무를 읽어내려고 애쓴다. 브레송의 역량은 점차 역사적인 의미를 더해 가는 이 인물들의 한때의 표정을 아무 편견 없이 기록해 낸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브레송의 시각이 그들을 미화하거나 왜곡하지 않았다는 점은 오히려 다행으로 여겨지게 된다. 여기서 이 인물들의 초상은 역사의 면전에 일종의 통시성(通時性)을 확보하고 있다. 그리고 이 부근에서 다음과 같은 브레송의 발언이 선명한 의미를 드러낸다. 그것은,

관찰을 하기 위해서는 겸손해야만 하며 눈에 띄지 않고 넘어갈 수 있어야만 한다. 그것이 유일한 이치이다.

또는,

어떤 사람이 표현의 단순성에 이르게 되는 것은 바로 수단을 크게 절제함으로써 이다. 사진을 찍을 때는 언제나 주제와 자신을 최대한 존중하면서 찍어야만 한다.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스쳐 지나가는 실재의 외관에 모든 능력이 집중되는 순간에 숨을 죽이는 것이다.

라는 것이다.

여기서 19세기 일본의 유끼요에 판화가 샤라쿠와 20세기 불란서의 사진작가 브레송의 동질성과 이질성을 비교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 될 지도 모른다. 게다가 이집트의 고대 유물과 추사의 영향을 받았다는 청조의 문인화가 등의 역사적 연관성을 거론하는 것은 전적으로 무모한 일이 될 것이다. 이들의 작업이 공시적(共時的)인 의미를 지니고 다가온 것은 물론 이들의 전시가 최근 서울에서 (우연히) 같은 시기에 열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인위적인 문화의 우연한 충돌은 뭔가를 사전에 계획하고 전제하는 문화적 계몽 이상의 신선한 체험을 선사하기도 한다. 그것은 대중의 입장에서 전시문화의 독특한 장점으로 체험될 수 있다.

물론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러한 전시문화 속에서 스스로 자발적인 문화 지도를 그릴 여가가 없을 것이다. 따라서 개성 있는 전시들이 제공하는 이러한 묘미는 대중의 편에 다가가기 전에 소실되거나 결과적으로는 낭비되는 것이 아닌가 싶은 현실에 아쉬움을 느끼게 된다(여기서 과연 우리의 시각문화는 어떠한 전시형식으로 해외에 소개되고 있는가를 자문해 볼 필요도 있다). 물론 그 대신에 매스미디어-인터넷을 포함하여-가 이러한 문화적 지도를 정성껏 제작해서 대중에게 전달하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의 대안일 뿐이다. 그것은 우연하게 충돌하고 있는 역사적 인위의 현장에서 관객 스스로가 문화적 체험을 몸소 시도하는 즐거움에는 아직 미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