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두대담 / ITI총회 및 세계연극제를 개최하며

공연예술계의 새로운 도약을 위하여




대담자 : 김정옥 / ITI 세계본부회장, 세계연극제 조직위원장

양혜숙 / 한국공연예술원 원장

일시 : 1997년 5월 17일(토)

양혜숙 세계연극제가 9월로 성큼 다가왔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이런 날씨에도 세계연극제 준비로 여념이 없으시죠?

김정옥 연극인들 모두 성공적인 세계연극제 개최를 위해 더위도 잊은 채 막바지 작업에 열중하고 있습니다.

양혜숙 세계 공연예술인들의 축제, 벌써부터 가슴이 설레이는데요, 그럼 제27차 ITI총회와 세계연극제에 대해서 몇가지 궁금한 점을 여쭈어 보겠습니다. 올해는 한국연극계, 특히 동양의 공연예술계로서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 한 해가 될 것 같습니다. 아시아권에서는 처음으로 서울에서 세계공연예술축제가 열리는 해 아닙니까? 아시아 공연예술계로서는 새로운 도약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 같은데요….

김정옥 우리나라 뿐만이 아니라 아시아 문화를 세계에 알릴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는 기회가 되리라고 생각됩니다.

양혜숙 그런데 세계연극제 얘기를 하기 전에, 우선 ITI는 무엇을 하는 기구인지, 또 그 역할은 무엇인지, 그리고 세계 속에 얼마나 오랫동안 존립해 왔었는지 간략하게 설명을 좀 해 주시죠.

김정옥 ITI는 우리말로 하면 국제극예술협회 International Theatre Institute입니다. 문학에서의 펜클럽과 같은 위상을 지닌 세계 유일의 공연예술 국제기구로 현재 세계 100여 개 국이 회원국가로 가입해 있습니다. 내년이 되면 ITI세계본부는 창립 50주년을 맞게되고, 한국ITI는 ITI에 가입한지 40주년을 맞이하게 됩니다. 벌써 반세기를 맞이한 거죠.

그런 ITI의 역할을 한마디로 간단히 설명하기는 어려울 것 같고, 우선 시대적 배경을 살펴보면 지금 우리는 20세기말을 살고 있는데, 현 시기는 100년 전인 19세기말하고 특히 구분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19세기말은 정말 격동의 시대였다는 말이 실감이 나는 시기였죠? 인류의 역사 속에서도 이렇게 숨가쁘게 지나온 세월은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우리나라만 보더라도 19세기말의 한국이라면 대단히 불안한 시기였고 외국의 침략을 받아야만 했던 불행한 시대였습니다. 그런 역사적 비극 뒤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 하나는 우리가 너무 폐쇄되고 세계와 문을 닫고 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어떤 국가도 세계 질서 속에서 호흡해야 하고 세계와 경쟁하면서 살아야지, 세계와 문을 닫고는 살 수 없는 거죠. 다행히도 오늘날 우리는 19세기에 비해서 세계 속의 한국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세계 속의 한국을 생각할 때 우리 ITI가 담당해야 할 역할이 상당히 많습니다. 우리가 1997년 세계연극제와 ITI총회를 유치한 것만 봐도 서울이나 한국이 더이상 세계 속의 변방이 아니라 이제는 세계의 중심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전 세계에 과시하는 계기가 된 거죠.

양혜숙 지금 말씀을 듣다보니까 새삼스럽기도 한데, 사실 현재가 100년 전에 비해서 굉장히 발전한 것은 사실이죠? 그러나 달라진 것도 많지만 아직 변하지 않은 부분도 많은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90년대 들어서서 세계의 냉전체제는 무너졌지만,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아직도 남북으로 국토가 분단되어 있지 않습니까? 우리나라가 100년 전의 비극적인 상황과 많이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궁극적인 해답은 안 풀리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ITI가 해야 할 몫이 있지 않을까 생각되는데요…….

김정옥 맞는 말씀입니다. 냉전 체제를 얘기하셨는데요. 구소련 시대에 우리나라 국적을 가진 사람들이 최초로 모스크바를 방문할 수 있었던 것이 바로 모스크바 ITI총회에 참가한 일입니다. 그만큼 ITI가 세계의 벽을 넘고 개방하는데 큰 역할을 했던 거죠.

이렇게 우리 사회, 역사의 여러 가지 장벽을 넘어서기 위해서도 그렇고, 또 19세기의 비극이 국가의 폐쇄성에서 온 것이기 때문에 이제는 민족의 발전을 위해서도 시야를 세계로 돌리고 세계의 중심으로서의 한국을 생각해야 할 때입니다. 이런 시대적 상황에서 어떤 의미에서든지 북한도 우리의 그런 물결 속으로 끌어들여야지 북한만 폐쇄된 사회로 남아 있는 것은 불행한 일이라고 볼 수 있죠.

양혜숙 그러니까 세계를 향한 노력과 북한을 그런 시대적 물결 속으로 끌어내는 것이 모두 ITI가 담당해야 할 몫이라는 말씀이시죠?

앞으로 ITI의 활동이 기대가 되는데요, 그런데 선생님께서 국제극예술협회 세계본부 회장을맡게 되심으로 해서 공연예술계에서는 사실 우리가 세계의 중심이 될 수 있는 중요한 계기를 마련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런 점에서 선생님이 정말 자랑스럽게 생각되는데요, 저희 ITI 한국본부가 40년만에 이런 위치를 차지하게 된 데는 그동안 애쓰신 분들도 많을 겁니다. 어떤 분들이 계셨는지 간단하게 소개를 해주시면, 한국ITI가 제대로 소개 될 것 같습니다.

김정옥 ITI 세계본부는 1948년에 발족이 되었고, 1958년에 ITI 한국본부는 세계본부에 가입을 했습니다. 한국 초대 회장은 유치진 선생님이셨는데 유치진 선생님이 작고하신 후에 여석기 선생님, 그리고 지금 저로 이렇게 이어져 내려오는 거죠. 그동안 많은 연극인들이 ITI에 참가해서 여러 가지 활동을 펼쳤고 그런 노력에 힘입어 현재는 아시아에서 가장 활발한 활동을 하는 국가로 인정을 받고 있습니다.

양혜숙 아시아뿐만이 아니라 세계에서 인정을 받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그런데 ITI의 국내 활동을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로 하여금 세계 공연예술계에 눈을 뜨게 하는 데 큰 역할을 담당하지 않았습니까? 또 문화적인 측면에서만이 아니라, 아까 냉전시대의 개방에 대해서도 말씀을 하셨지만 세계의 흐름을 보는데도 대단한 역할을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한국 ITI가 세계에서 인정을 받게 된 것은 물론 하루 이틀 사이의 일은 아닐 겁니다. 그동안 한국ITI의 활동과 ITI총회 및 세계연극제를 개최하게 된 배경과 약사를 설명해 주시겠어요?

김정옥 사실 한국 ITI가 국제 ITI본부에서 제 역할을 담당한 것은 서울에서 개최됐던 제3세계 연극제(1981년)가 계기가 됐습니다. ITI가 주최하는 제3세계 연극제를 성공적으로 개최하면서 그 이듬해 마드리드에서 열린 ITI 총회에서 우리나라가 최초로 집행위원국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때 중국과 영국, 그리고 우리나라가 경쟁을 했는데, 중국과 영국을 물리치고 당당하게 집행위원국이 된 거죠. 그러다가 1991년 터키 총회에서 우리나라는 집행위원국 투표에서 뜻밖에도 최다 득표를 하는 이변을 낳았습니다.

양혜숙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나라가 ITI에서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했던 것은 공산주의 국가들이 언제나 반대표를 던졌기 때문 아닙니까? 그런데 터키 총회때 회원국들이 제3세계 연극제를 성공적으로 치른 것을 인정해 주었고, 늘 우리를 견제하던 공산주의 국가들 역시 우리를 지지하는 태도를 보이기 시작했죠. 여러 회원국들이 그런 변화를 보인 것은 선생님을 위시해서 우리나라 대표들이 민간외교를 훌륭하게 해낸 결과였다고 생각되는데요.

김정옥 우리 대표들하고 각 나라 대표들이 잘 조화되어 이루어낸 결과였죠. 사실 한국의 ITI총회 유치문제도 그때 최초로 거론이 됐었습니다. 우리가 최다득표를 하자 거기에 고무된 우리 대표들 중에서 ITI 총회를 유치하자는 의견이 나오게 된 거죠. 하지만 당시만 해도 행사비용을 비롯해서 여러 가지 문제가 있어서 계속 미루어 오다가 지난 1993년, 뮌헨 총회에서 ITI 서울 총회가 결정이 됐습니다. 또 1995년 베네주엘라 총회에서는 다시 한번 서울 총회 개최를 확인함과 동시에 세계연극제도 서울에서 개최하는 것으로 최종 결정이 된 거죠.

양혜숙 정말 감격스러운 순간이었죠? 저희가 26차 베네주엘라 총회를 잊을 수 없는 것은, 세계연극제를 한국에서 개최한다는 점도 있었지만, 특히 김정옥 선생님께서 아시아권에서는 최초로 세계본부 회장이 되셨다는 것이 저희로써는 더욱 영광스럽게 생각됐었습니다.

김정옥 그 부분은 제 개인의 영광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그동안 우리 대표단들의 활동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죠. 대표단들은 사비를 털어가면서 열성적으로 활약을 했고, 그런 점이 다른 국가의 대표들에게, 한국은 작은 나라지만 한국ITI는 굉장히 활발하게 활동한다는 인상을 심어줬습니다. 그러한 우리나라에 대한 인상이 터키 총회에서의 최다득표로 이어진 거겠죠. 우리 한국 ITI의 위상을 높이게 된 또 한가지 원인이라면 우리 대표단과 중국, 그리고 일본 대표단들 사이에 상호 협력이 잘됐다는 점을 들 수 있을 겁니다. 아시아권에서 총회와 세계연극제를 개최하자는 데는 그 두 나라가 뒷받침해 준 것도 중요한 이유가 됐던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ITI총회나 세계연극제가 서울에서 개최되기는 하지만,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라 동북아 문화권의 노력과 협력이 승리를 거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양혜숙 한국과 중국, 일본의 그런 협력 관계는 어쩌면 베세토연극축제를 함께 하면서, 삼국이 서로 교류를 쌓아온 결과가 아니었을까요?

김정옥 그렇죠. 한·중·일 3국이 참여하는 베세토연극축제는 지난 94년에 창설됐습니다. 올해로 4회째를 맞는데 역사는 짧지만 한국과 중국, 일본이 공연예술을 통해 서로의 문화를 이해하고 협력 관계를 쌓아오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이 베세토연극 축제는 사실 한국ITI본부에서 나온 발상이고 그것을 추진한 것도 한국ITI입니다. 이런 점에서도 서울이 동북아 공연예술이나 문화권의 중심이라는 자부심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됩니다.

양혜숙 베세토연극축제를 통해서 국제간에 서로 협력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었다는 것은 한국 ITI의 진정한 저력이고 힘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정작 이렇게 여러 가지 노력과 국제 협력을 통해서ITI총회와 서울연극제를 개최하게 됐는데요, 이것이 아시아권에서 개최되는 최초의 세계적인 연극제 아닙니까? 얼마나 많은 나라들이 오고 또 어떤 형태로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소개를 좀 해주시죠.

김정옥 그 전에 잠깐 세계연극제에 대한 소개를 먼저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세계연극제라고 하는 것은 원어로는 Theatre of Nations로 우리말로 옮기자면 세계 여러 나라의 공연예술축제라고 하는 것이 정확하겠죠. 이 연극제는 1950년대에 파리에서 최초로 개최가 되었는데 사실 연극뿐만이 아니라 모든 공연 예술이 망라된, 스포츠로 따지자면 올림픽에 비유될 수 있는 공연 예술계의 가장 중요한 페스티벌이라고 불 수 있습니다.

양혜숙 그러니까 ITI는 공연예술에서 각 나라의 모임들이 한 자리에 모인 것이고, 세계연극제는 스포츠의 올림픽처럼 이런 각국의 모임들이 한자리에 모여 각국의 공연예술을 소개하는 페스티벌이라고 볼 수 있는 거죠?

김정옥 그렇죠. 그래서 세계연극제는 큰 테두리이고, 그 안에는 베세토연극축제도 들어있고 서울연극제라든지 과천에서 열리는 세계마당극 큰잔치 같은 다양한 행사들이 마련되는 거죠.

양혜숙 지금도 잠깐 설명을 해주셨는데, 이번 행사에는 여러 가지 다양한 공연이 펼쳐지는 것 같습니다. 어떤 행사들이 있는지 소개를 좀 해주시죠.

김정옥 이번 세계연극제에서는 100여 개 이상의 공연이 열릴 예정입니다. 기간은 8월31일 개막식 공연(국립극장 대극장과 야외무대)을 시작으로 9월 1일부터 정식 일정에 들어가서 10월15일(초순)까지 서울과 경기, 과천 일대에서 펼쳐집니다. 행사 내용을 개략적으로 살펴보면 올해로 21회째를 맞는 연극협회가 주최해 온 서울연극제도 그 연장으로 계속되고, 올해로 제4회째를 맞는 베세토연극제, 마당극제, 해외초청 작품들, 이 네가지가 어우러져서 벌어지는 축제라고 할 수 있죠. 또 ITI총회의 행사로는 총회와 심포지엄, 그리고 젊은 연극인들을 위한 워크숍 등 다양한 행사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총회에 참석하는 나라는 40,50여 개국에 이르고, 대학연극제에 초청된 나라가 11개국, 그밖에 (25개국에서 30여 국외공연단체가 참가할 예정입니다. 또한 이번 축제를 계기로 「한국공연예술Korean Performing Arts」이라는 책자도 영문판으로 출판될 예정이지요.

양혜숙 지난 6월15일부터 29일까지 경기도 포천에서 워크숍이 열리지 않았습니까?

김정옥 ITI가 마련한 젊은이들을 위한 기구로는 크게 세 개가 있습니다. 그 하나는 UTN University of Theatre of Nations(1961년 발족) 이라고 하는 기구로 이는 국제연극대학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젊은 예술가들을 위한 국제 워크숍 형태의 모임입니다. 이번 한국에서 열리는 연극제에서도 이미 1997년 6월에 2주 동안 포천에서 행해져 6월 24일 발표회를 끝낸 바 있습니다.

너무 좋은 젊은이들의 모임이었는데 기자들의 관심이 없었던 것도 유감입니다.

두 번째로는 IFHETI International Festival of Higher Education Theatre Institute(이태주 교수 팀장) 세계대학 연극축제로 연극대학이나 연극학과가 있는 대학생들의 공연축제입니다.

세 번째로는 지난번 베네주엘라에서 열린 26차 총회에서 발의된 행사로 New Project Group이라는 명칭으로 이번 총회를 기해 치뤄질 다국적 공연예술 프로젝트 International Work shop on Acting got young Professional라고 번역될 수 있는 행사입니다.

미국, 독일, 일본, 한국이 지원하는 행사로 제가 연출을 맡고 9개국 전문, 젊은 연기자들을 뽑아 Lear왕을 만들어 세계로 순회공연하는 행사지요.

양혜숙 그렇군요. 그렇다면 ITI총회와 세계연극제의 서막은 이미 올라갔다고 봐야할 것 같네요. 이번 행사 참 다양하고 규모도 큰데, 행사의 경비는 얼마나 예상하고 있습니까?

김정옥 그게 참 어려운 문제죠. 금년 들어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지 않습니까? 당초 예산으로는 45억 정도의 규모여야 된다고 예상을 했는데, 정부나 문화예술진흥원, 서울시, 경기도 등에서 지원하는 것이 21억원 정도입니다. 그 나머지 20억원은 스폰서나 공연 수익으로 얻을 수 있으리라 기대를 했는데 그것이 현실적인 여건으로 인해, 현재로서는 35억원 정도 규모의 행사를 치루게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양혜숙 그러니까 21억 원 정도가 확보된 상태고, 티케팅하는 것을 합해서 15억쯤 더해 35억 원으로 모든 행사를 진행하시는 겁니까?

김정옥 당초 계획에서 보면 예산이 줄어든 상태죠. 예산이 삭감되고 보니까 행사 진행에 어려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 정도 예산이면 세계연극제를 봐서도 그렇고 단일 페스티벌이나 총회로서는 결코 적은 예산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양혜숙 제가 보기에도 어려움 속에서도 굉장히 알차게 준비가 되고 있는 것 같더군요. 처음 생각보다 규모가 많이 적어지기는 했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그런 어려움을 이겨내고 잘 진행을 해나가는 것이 다행이라고 여겨집니다. 이렇게 어려운 가운데 행사 준비를 하고 있는데요, 특히 아시아권에서는 처음으로 열리는 세계연극제라 성공적으로 개최해야 한다는 부담감도 있을 것 같습니다. 김정옥 선생님께서는 세계본부 회장이시면서 한국본부 조직위원장으로 계신데, 이번 행사를 어떤 정신과 형식으로 이끌어야겠다고 생각을 하고 계십니까? 특히 아시아권에 대한 비중은 얼마나 두고 계신지 말씀을 부탁드립니다.

김정옥 당연히 아시아권에 비중을 둬야 하고 또 우리의 전통문화권에 비중을 둬야겠죠.

그런데 Theatre of Nations라는 명칭은 ITI총회의 허가를 맡아야 하는 사항입니다. 여기서 Nations라는 단어에는 여러 국가라는 뜻도 있지만 여러 대륙이라는 뜻도 포함이 됩니다. 따라서 세계연극제에는 각 대륙을 대표하는 모든 공연이 포함돼야 하고, 나아가 오대륙의 알려지지 않은 연극을 발견한다는 것도 세계연극제의 중요한 역할입니다. 세계연극제가 초창기 파리에서 이루어질 때도 일본의 가부키, 중국의 경극, 우리나라의 판소리(창극) 춘향전이 초청된 바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2차 대전 이후 동양의 연극을 최초로 발견해 준 것도 세계연극제였다고 볼 수 있죠.

양혜숙 그러니까 이번에 서울세계연극제가 아시아권에 비중을 둔다고 하더라도 사실상 그동안 아프리카 연극이라든지 혹은 다른 대륙에서 조명을 받지 못했던 연극을 발굴하고 또 그것을 세계인(?)과 만나게 하는 그런 의미로 행사를 치뤄야 하겠군요?

김정옥 그런 발견의 자세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양혜숙 그런 세계연극제의 정신하에서 앞으로 100개이상의 공연이 치루어질 텐데요, 이번 세계연극제에서 소개될 공연들을 형태적으로 구분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런 구분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설명을 좀 해주시죠.

김정옥 이번 세계연극제는 양적으로도 풍부하지만 여러 가지 다양성이 수용된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겠습니다. 대단히 사실주의적이고 전통적인 공연 형태도 수용되지만 동시에 실험적인 연극도 수용이 됩니다. 또 동양과 서양의 만남에서 이루어지는 연극도 구상할 수 있을 테고, 형식면에서는 극장에서 이루어지는 공연만이 아니라 한국의 마당극이라든가 서양의 거리의 연극과 같은 여러 가지 형태의 공연도 수용되고 있습니다. 형태성, 공간성도 다양하고 정신도 다양하고, 어떤 의미에서는 이번 연극제는 멀티 컬쳐의 정신이 펼쳐지는 그런 공연이 되리라고 봅니다.

양혜숙 이번 연극제의 특징은 한마디로 다양성에 있겠군요? 어떻게 보면 그것이 다원화, 다양화를 추구하는 요즘의 시대 정신에 가장 부합되는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앞으로 세계연극제가 열리려면 한달 정도가 남은 셈인데, 그동안 세계연극제 조직위원회가 연극제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해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준비 과정이 얼마만큼 진행이 됐고, 또 앞으로 어떤 일들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김정옥 지난 1993년 뮌헨 총회에서 제27차 서울ITI총회 개최가 확정된 후에 4년 동안 여러 가지로 준비를 해왔습니다. 이제 거의 준비가 완료됐고, 지금까지 서울연극제를 기념하고 홍보하는 여러 가지 행사도 열렸었죠? 지난 5월 24일에는 세계연극제 D-100일 행사가 대학로에서 열렸습니다. 또 D-50일 전 행사로 무주구천동에서 연극인들이 단합대회를 1박2일로 가졌고, 그 사이에 아까 말씀 드렸던 UNT 워크숍도 성공적으로 끝났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연극제까지 남아있는 행사는 D-30일에 있을 티케팅 행사를 들 수 있습니다.

이번 세계연극제를 맞아 문화예술에도 전산정보화 시대가 도래하는데요,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전국을 대상으로 한 공연티켓 예약, 예매 전산시스템이 도입됩니다. 이를 위해 8월2일 티켓 발매와 함께 티켓 발매 정보망 개통식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러고나면 바로 연극제에 참가할 사람들을 맞이해야 하는데, 세계의 극단들은 자기의 공연 날짜에 맞춰서 8월말부터 속속 입국하게 됩니다. 연극제는 8월 30일의 개막식으로 성대한 막을 연 후, 9월 1일부터 본격적인 행사에 돌입하게 되는 거죠. 그런가 하면 추석 주간인 9월 14일부터 일주일 동안은 '문명의 전환과 21세기의 공연예술' 이라는 주제로 제27차 ITI총회와 심포지엄이 열리게 됩니다. 이번 총회와 심포지엄은 세계의 저명한 예술가, 연극학자, 미래학자 등이 머리를 맞대고 21세기 공연예술이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는 자리가 될 것이며 침체된 공연예술의 르네상스 방안도 제시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습니다.

양혜숙 세계연극제 안에서도 다양한 행사들이 마련되어 있지 않습니까?

김정옥 그렇습니다. 9월 1일부터 서울에서는 실내 공연이 펼쳐집니다. 그런가 하면 경기도 과천에서는 세계마당극 큰잔치가 열리고, 9월 7일부터 한 일주일 동안은 세계 연극학교 페스티벌도 시작됩니다. 연극학과가 있는 대학이나 연극학교 학생들의 페스티벌이라고 할 수 있겠죠.

양혜숙 이렇게 ITI총회나 세계연극제같은 국제적인 행사를 치루다보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에 따른 부대행사들도 열리게 마련인데요, 이번에 열릴 부대 행사들은 어떤 것들을 계획하고 계시는지요?

김정옥 우선 세계연극제 기간 동안 각종 스포츠와 무대미술 전람회가 열릴 예정입니다. 또 이 기간 동안 세계무대미술가협회 OJSTAT의 총회가 열리고 연극평론가협회 AICT에서도 총회를 개최합니다.

양혜숙 다양한 행사가 기대되는데요, 이번 세계연극제는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 최대 규모의 공연예술 축제인 동시에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든 특색있는 연극제로 벌써부터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지 않습니까? 소요 경비면에서도 35억 원이면 결코 적은 비용은 아니라고 생각되는데요. 이렇게 큰 행사를 치르고 나면, 우리나라 문화계에 미칠 영향도 적지 않을 것 같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이번 행사에서 어떤 효과를 기대하고 계신지요?

김정옥 여러 가지 파급 효과가 있겠죠.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나라가 더 이상 세계에서 낙오하고 정체된 것이 아니라 이제는 당당하게 세계 속의 한국으로 걸어들어간다는 국민 의식이 무엇보다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될 것 같습니다. 또 공연예술의 입장에서는 적어도 아시아권에서는 한국이 공연예술의 중심이라는 자부심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되리라고 봅니다. 문화적 의미에서 본다면, 최근 '한국의 위기'라는 것이 부상하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나라의 오늘날의 위기를 일반적으로 경제적인 문제로만 축소시키는 경향이 있는 것 같은데, 사실 냉정히 생각해 보면 이런 위기론은 경제적인 문제보다는 우리 사회의 비문화적이고 반문화적인 의식에서부터 유래되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세계연극제와 같은 문화적 만남은 세계에 한국을 주장하는 계기도 되겠지만 동시에 국내의 위기를 극복하는 데도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양혜숙 그러니까 지금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여러 가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경제적인 면으로 해결돼야 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적으로 해결돼야 한다는 말씀인가요?

김정옥 그렇죠. 우리 사회의 문화 인식의 상실에서 사회의 여러 비리가 발생한 것이고 경제도 파탄에 이른 것이지, 경제적인 문제에서 다른 문제들이 파생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양혜숙 그렇다면 지금 선생님의 말씀을 이렇게 정리를 할 수가 있겠네요. '반문화적이다'

'비문화적이다'라고 하는 것은 비인간적인 사회를 만들었고, 그러한 생활 속에서 우리 경제라든가 사회 척도가 뿌리를 내리다 보니까, 이제는 문화를 통해서 다시 인간을 찾아줘야 할 그런 때가 됐다는 것이겠죠. 경제를 통해서 할 수 있는 것은 사람을 바꿔놓는 것이지만, 문화를 통해서 할 수 있는 것은 사람들에게 반성하게 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으니까 말이죠. 그런 점에서 이번 축제 행사를 통해서 사람들을 끌어안는 그런 역할을 해야되지 않을까요?

김정옥 문화는 교육과는 다르기 때문에, 서로 말없이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야겠죠.

양혜숙 그렇군요. 이번 연극제가 우리 사회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러면 향후 세계연극제의 개최 계획에 대해서 말씀을 좀 해주시죠. 올해의 경우는 27차 세계 총회가 열리는 시기에 때맞춰 세계연극제도 열리게 됐는데, 세계총회는 2년마다 개최되고 있죠?

김정옥 그동안 ITI총회는 2년마다 개최되어 왔고, 세계연극제도 대체로 2년만에 열리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그것이 융통성을 갖게 돼서, 내년에는 스위스 쮜리히에서 세계연극제가 개최될 예정입니다. 스위스가 세계연극제를 개최하겠다는 명분은 내년이 ITI가 창립된지 50주년을 맞는 해이고, 또 국가적으로 보면 스위스는 헌법에 멀티 컬쳐 조항을 갖춘 세계 최초의 국가입니다. 그래서 내년에는 스위스에서 연극제가 열리지만, 물론 ITI총회는 열리지 않습니다. 지금 ITI에서는 세계연극제의 형태에 대해 여러 가지로 연구하고 있는데, 지금처럼 세계 여러 나라에서 유치하는 형태도 있을 수 있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서울이나 파리, 혹은 아테네…….

이런 식으로 한 곳에서 4년마다 정기적으로 개최하고, 고정적인 공간에서 동서 교대로 개최해 가는 방식도 검토해 보자는 논의가 일고 있습니다.

양혜숙 연극의 발전을 위해 바람직한 방향이 제시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마지막으로, 21세기가 목전에 다가오지 않습니까? 21세기를 바라보면서 세계공연예술계가 다가올 세기에 대비해야 할 어떤 정신적인 자세나 예술적인 방향 제시가 있다면 말씀해 주시고, 한국의 공연예술이 지향할 바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김정옥 3년 후면 21세기가 되는데, 이건 사담 같지만 저는 21세기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21세기는 우리들 나이든 사람들의 시대가 아니라 젊은이들의 시대입니다. 그 시대가 되면 문화와 정보는 역사상 어느 시대보다, 그리고 사회의 어느 영역보다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세계의 중심이 되기 위해서는 문화의 중요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그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ITI도 이번 총회에서 정관 일부를 개정할 계획입니다. 그동안 2년에 한번씩 열던 총회를 3년 단위로 바꾸려고 하는데, 그렇게 되면 다음 제28차 총회는 다가오는 2000년에 개최되겠죠? 이런 시도는 ITI 역시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좀더 젊어져야 한다는 인식에서 출발합니다. 사람이나 단체나, 오래되면 침체되고 발전을 멈추게 되지 않습니까? ITI총회에서 젊은 연극인의 워크숍이나 연극학교 페스티벌을 중요시 여기는 것도 젊은 연극인들이 다음 세대의 주인공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려는 노력의 일환입니다. 이런 노력들을 통해 ITI는 21세기에 보다 젊은 모습으로 새로 태어나리라 믿습니다. 이런 점에서 이번 총회는 20세기를 끝내는 총회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양혜숙 그렇다면 이번 총회가 한 세기를 마무리짓는 총회가 되겠군요?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앞으로는 정보가 다원화되면서 문화가 담당할 몫이 점차 증대할 테고 젊은이들이 짊어지게 될 역할도 많아질 텐데, 이번 ITI총회가 그런 토대를 준비해 줄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장시간 동안 대담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김정옥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