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 리뷰 / 무용

여름, 그 뜨악한 햇살처럼 빛나는 춤의 빛깔들




장승헌 / 무용평론가

부산여름무용축제 10년, 제2 도약이 필요한 시점

지난 1988년 여름, 휴양지 부산에서 작은 반란이 일어났다.

앞으로 20-30년 이내에 프랑스의 아비뇽 페스티벌이나 영국 에딘버러 페스티벌과 같은 여름무용축제로 발전시켜나가고 싶다는, 다소 현실성이 결여된 듯하지만 나름대로는 꽤 야무진 기획으로 첫 출발을 선언한 부산 경성대학교 무용학과 주최의 '부산여름무용축제'가 어느새 10주년을 맞이했다.

서울에 소재한 대부분의 직업무용단들이 휴가중이거나 대학 및 동문단체들 또한 여름방학을 활용, 특강이나 연수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으며 혹은 멀리 외국으로 해외연수를 겸한 페스티벌 참가로 공백이 생긴 틈새를 공략하면서 이제 부산지역의 명물(?)로 인식될만치 그 비중 또한 꽤 커져버린 부산무용축제의 10주년 행사를 지켜보면서 느낀 점이 있다면 그동안 이 페스티벌의 성과는 인정하면서도 일견, 21세기 세계화 시대에 걸맞는 국제적인 행사로 가꾸어가려는 주최측의 열린의식과 넓은 상상력, 그리고 제 2도약을 위한 행사 전반에 대한 냉정한 재점검과 함께 이를 실제로 연계해 나갈 수 있는 집약된 무용사회의 힘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7월 4일부터 12일까지 경성대학교 콘서트홀과 무용연습실을 중심으로 개최된 국제학술세미나와 무용지도자 강습회 및 예술성과를 공개하는 실기 강습, 중견무용가들과 젊은 춤꾼들의 작품세계를 엿볼 수 있는 극장공연, 그리고 금년에는 우천관계로 아쉽게도 극장무대에서 공연되었지만 매년 광안리 바닷가에서 펼쳐지는 야외공연 등은 부산지역 주민뿐만 아니라 여름철 휴양지를 찾은 다른 지역의 방문객들로 부터도 큰 호응을 얻을만치 우리 무용계에 또 하나의 무용 텃받을 이루어 나가고 있다.

특히 평소 교과 과정에서는 만날 수 없었던 강사진들의 독특한 수업 방법으로 진행되는 실기강습의 경우, 참여한 학생들의 진지한 수강태도는 무더위를 잊을만큼 열기를 뿜고 있었다. 뉴욕에서 활동중인 손인영(36, 뉴욕 퀸즈대학 강사)은 "부산지역의 특성을 일찍이 알고는 있었지만 학생들의 의욕과 관심은 여느 다른 수업에서와는 달리 에너지를 느낄수 있었다"며 강의를 마친 소감을 들려주었다.

7월 9일, '젊은 무용인의 밤(경성대 콘서트홀)'에도 네 명의 신진 안무자들의 작품이 펼쳐져 관심을 모았지만 이번 페스티벌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7월 10일 '중견무용인의 밤(경성대 콘서트홀)'에는 국내외 무대에서 나름대로 다야한 자품세계를 펼치고 있는 5명의 중견들이 초청되었는데, 아쉬운 점은 신작이 한 편도 없었다는 점이다.

서원대 무용과에 재직하면서 활발하게 활동중인 김명희는 금년 '현대춤작가 12인전'을 통해 초연된 창작발레 「마흔 셋-그해겨울 Ⅱ」를 제공연했다.

40대 중년 여인의 일상에 대한 나른함, 한 남자를 격렬히 사랑하지만 그것으로도 채울 수 없는 허무와 짙은 외로움의 상처를 난도 높은 2인무로 표현하고 있다. 결말 부분의 반전이 다소 의아하지만 클래식 발레의 틀 속에서 늘 고민해 온 발레파트 안무자들에게 창작발레의 한 전형을 제시했다는 점이 돋보였으며 파트너인 정운식(서울발레시어터단원)의 에너지 넘치는 테크닉과 열기를 중견 발레리나의 연륜으로 상대한 김명회의 건재와 연기력은 객석으로부터 큰 호응을 얻어냈다.

재미무용가 김영순(화이트 웨이브 라이징무용단 예술감독)은 지난해 포스트극장에서 자신의 개인공연 때 선보였던 레퍼토리를 다시 무대에 올렸다.

소품으로 등장한 심플한 모양의 의자와 간편한 검은 색깔의 속옷의상, 그리고 다소 여유로운 몸의 분위기와 함께 동작은 다이나믹하면서도 반복적인 움직임을 보여준다.

자아를 찾으려는 일련의 방법으로 그녀는 어린 시절의 기억을 모티브로 사용하고 있다. 조명의 효과가 보완되었더라면 보다 더 명쾌한 결론을 유출해 냈을 법하다.

한국무용가 이영희(경성대 교수)의 살풀이 춤은 기존의 애잔한 느낌과는 전혀 다른 경사도식 덧배기춤의 툭툭 떨어지는 손끝과 어깨춤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했으며, 일본 도쿄 시티발레단에서 주역으로 활약하고 있는 이다찌 예쯔꼬는 소녀적 취향의 전형적인 소품 발레를 선보였는데 완성도나 시적 상상력은 관객들에게 별다른 느낌을 제공해 주지 못했다.

마지막은 현대무용가 이정희(중앙대 교수)의 솔로 작품인 「검은 영혼의 노래 Ⅰ」가 장식했다.

1980년대 초연 당시 포스트모던한 작품이라는 평가와 함께 무음악과 절규를 응축시킨 미니멀적인 움직임으로 화제를 불러일으킨 이 작품을 10여년이 흐른 이즈음 다시 감상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반가웠으나 당시의 그로테스크함 속에 감추어진 메시지를 전달받기에는 왠지 어색함이 느껴졌다.

'부산여름무용축제'가 이제 10주년을 맞이하기 까지 많은 무용인들이 직·간접적으로 이 페스티벌과의 인연을 쌓아왔다. 중앙이 아닌 부산지역의 무용축제가 이제 국제적인 페스티벌로 성장할 수 있도록 무용계의 지속적인 관심과 아울러 주최측의 21세기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기획력이 다시 한번 요구되는 시점에 와 있음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존경심과 아름다운 마음들이 함께 한 발레공연:

로이 토비아스 고희기념 갈라 페스티벌

서로 아끼고 존경하며 교류하는 아름다운 마음들이 큰 무대를 만들었다.

지난 7월 19일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에는 한국 발레계와 30여 년 이상 인연을 맺어온 미국 국적의 한 원로 무용가의 예술인생을 기리고 축하하기 위해 국·내외 8개 발레단체들이 대거 참여하여 화려한 국제 갈라 페스티벌을 펼친 것이다. 로이 토비아스 Roy Tobias (70, 서울발레시어터 예술감독), 그는 너무도 한국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아울러 발레 인명사전에도 이름이 오를만치 세계 발레계에서 비중이 큰 인물일뿐 아니라 우리 한국 발레의 발전과 성숙을 주도한 그의 예술적 업적이야 말로 이번 고희기념 무대가 아닐지라도 무용사적인 측면에서 반드시 한번쯤 평가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1965년 프랑스 발레단원으로 처음 서울을 방문한 이후 1982년 국립발레단 초청에 의해 두 번째 방한하여 세 편의 작품을 안무했을 뿐 아니라 1987년 부터는 유니버설 발레단의 3대 예술감독으로 취임, 「코펠리아」,「고집장이 딸」,「뉴 와인」등 수십편의 작품을 안무해 오는 동안 예술적 품격과 음악적 감수성이 돋보이는 특유의 작품 분위기를 연출, 한국의 발레 수준을 한 차원 높은 위치에 올려 놓은 장본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지난 1995년부터는 서울발레시어터의 예술적감독 겸 상임안무가로서 이즈음까지 노익장을 과시하면서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번 갈라 페스티벌은 한국 발레의 대중화와 세계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서울발레시어터(단장 김인희)의 열린의식이 만들어낸 금년 무용계의 경사이다.

창단 3년된 민간 직업발레단의 눈물겨운 자생력과 그동안 원로무용가와 예술적 교류를 나누었던 미국, 모나코, 일본 그리고 한국의 4개 발레단 한 무대에 선 이번 헌정공연은 이미 공연 전부터 큰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첫 번째 무대는 서울발레시어터의 「카프리치오 브리안테 Capriccio Brilliante」. 로이 토비아스가 직접 안무한 이 작품은 멘델스존의 음악 아래 다섯 장면의 '춤 분위기의 변이'를 추구하는 네오 클래식(신고전주의)계열의 작품이다. 푸른 의상이 한 층 시원함과 가벼운 분위기를 느끼게 해주며 남자 주역으로 특별 출연한 유룩 사이먼(독일 뒤셀도르프 발레단 주역)과 연은경의 2인무 사이로 정지영, 전정아, 박성희, 김영주의 4인무가 매끄럽게 스며들며 오프닝 분위기를 밝게 유도했다.

두 번째는 일본 벨아므발레단(단장 타고 수와코)의「로망스 Romance」. 1974년 초연된 이 작품은 달빛 아래 사랑하는 두 남녀의 애잔한 마음을 담고 있다. 다소 작은 키에도 불구하고 정확한 테크닉과 작품을 서정적으로 해석한 우에하라 수미코 Sumiko Uehara의 연기가 뛰어났다.

세 번째 무대는 조승미발레단의 「기쁨의 왈츠」,이 작품 역시 로이 토비아스가 안무한 네오클래식 발레로 초연 당시 조승미 교수가 직접 출연하기도 했다. 무용수들의 무거운 움직임과 의상의 조화를 이루지 못하였으나 출연진들의 열기는 뜨거웠다.

다음은 모나코 왕립발레학교 재 학생들이 출연한「도니제티 Doni Zetti Variations」가 이어졌다. 죠지 발란신 George Balanchine 이 직접 안무했다는 점에서 기대를 모았으나 어린 학생들이 이 작품을 완벽하게 소화하기에는 다소 버거워 보였다. 그러나 무용수들의 고른 기량과 밝은 표정, 그리고 여유있는 포르드 브라(손동작)와 발 포인트는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또한 로이 토비아스와 오랜 우정을 나누고 있는 마리카 베소브라소바 Marica Besobrasovs 의 방한은 이번 행사의 또 다른 수확이라고 볼 수 있다.

팔순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건강한 모습으로 연습과 리허설을 진행하는 마리카의 모습에서 우리 무용계 원로무용가들의 모습을 새삼 떠올리게 된다.

Ⅰ부의 하이라이트는 단연코 국립발레단의 「돈키호테」였다. 이즈음 한국 최고의 발레리노로 평가받고 있는 김용걸과 국립발레단의 발레리노로 평가받고 있는 김용걸과 국립발레단의 신데렐라 김지영과의 그랑 파드되는 이들의 열연만큼이나 객석을 환호우螁 물결로 몰아넣기에 충분했다. 금년 모스크바 국제발레콩쿠르에 참가, 3위에 입상한 김용걸은 아직도 무한한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만큼 훌륭한 안무자 및 지도자와의 만남이 지속적으로 이루어 졌으면 싶다.

Ⅱ부의 막을 연 미국 아메리칸 발레시어터의 간판스타인 줄리켄트 Julie Kent와 로버트 힐 Robert Hill 은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환상적인 연기와 현란한 테크닉을 펼쳐보여 또 다시 관객들로부터 탄성과 박수갈채를 유도해 냈다.

이 두 사람의 명연기는 아마 오래토록 여러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비발디 Vivaldi의 감미로운 음악에 실려 6명의 남녀 무용수가 펼치는 서울발레시어터의「바람의 노래」(안무/제임스전)는 전날 정기공연 무대에서도 호평을 받은 모던발레이다. 무용수들의 세련되고 날렵한 움직임과 연결고리로 이어지는 발레 미니멀리즘을 통해 한층 성숙해진 제임스 전의 안무력이 돋보였다.

모모코타니 발레단의「Grand Pas Classique」를 춤춘 이시이 류이치 Ryuichi Ishii와 타가베 히사코 Hisako T마ꍈsms 부족한 신체적 결함에도 불구하고 깨끗한 테크닉과 안정감 있는 호흡을 통한 밸런스의 유지를 통해 클래식 발레의 한 전형을 보여 주었다.

마지막 무대는 로이 토비아스 선생이 지난 1995년 유니버설 발레단 예술감독 퇴임 당시 직접 안무한「결혼파티 Wedding Party」가 장식했다.

결혼식 피로연을 코믹하게 풍자한 이 작품은 밝고 깨끗한 작품 분위기와 무용수들의 흥겹고 가벼운 춤사위로 시종일관 보는 사람들에게 편안함을 제공해 주었다. '로이 토비아스 선생님의 생신을 축하드립니다'라는 마지막 장면의 현수막은 또 다른 이벤트로서 입가에 웃음을 머금게 만들었다.

1995년 창단 이후 숨가쁘게 달려온 서울발레시어터의 김인희와 제임스 전은 이번 1997 정기공연과 갈라 페스티벌을 성황리에 치루어내면서 주위 여러 사람들의 걱정과 우려를 불식시켜 주었다. 아울러 한국 발레의 성숙기를 다지고 있는 파란눈의 노신사 로이 토비아스의 고희기념 헌정무대라는 또 하나의 아름다운 축제를 통해 한 여름의 무더위를 잊게 해 줄 만큼 우리에게 즐거움을 선사해 주었다.

해외공연의 또다른 긍정적 의미 : 김말애&출타래무용단 LA초청공연

해마다 이맘때 쯤이면 많은 무용단체들이 관광을 겸한 해외 연수나 외국의 이름모를 페스티벌 참가로 국내 무대가 한동안 휴먼기에 돌입하곤 한다.

국·시립무용단을 제외하고는 이렇다 할만한 매니지먼트사의 기획이나 초청에 의해 공연이 성사되기까지 모든 여건이 어렵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도 있지만 아따금 외화내빈(外華內貧)의 행사용차원에 머물고 마는 해외공연 결과와 뒷소식이 늘씁쓰레하고도 남음이 있다.

경희대학교 한국무용 전공생들의 동문단체인 '김말애&춤타래무용단'이 미주 한국예술문화단체 총연합회의 창립 12주년의 일환으로 초청을 받아 7월 15일 저녁 미국 로스엔젤레스 시의 유서깊은 윌셔 이벨 극장 Wilshire Ebell Theater에서 공연을 마련, LA교민들은 물론 미국 현지 외국인들로부터 뜨거운 호응을 받았다.

Ⅰ부 창작춤「회귀선」(안무 김말애)과 Ⅱ부 우리춤 무대로 짜여진 프로그램은 약 2시간 가량 진행되었는데 작품 막간 사이 한국와 영어로 해설을 하는 등 관객들의 작품이해를 높이는 세심한 배려도 잊지 않았다. 춤타래 무용단의 LA초청공연은 1천 3백여 석의 객석에 빈자리가 거의 없을만치 많은 관객들이 입장, 한국춤의 멋스러움과 정중동의 아름다움에 관객들이 환호하며 새삼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특히 외국인들은 Ⅱ부 우리춤의 다양한 춤사위와 의상 및 소품의 빚깔들에 찬사를 나타낸 반면, 한인교포들은 작곡된 창작음악 아래 우리 인간의 긴 인생 여정을 한 척의 배를 통해 상징적인 의미를 부여, 보편적 정서와 인간의 회귀본능을 그린 Ⅰ부 창작춤 「회귀선」에 높은 관심을 보였다

그동안 국·시립·직업무용단의 해외 순회공연이 민속춤 위주의 '한국 알리기'식의 홍보차원에 주력하고 있는 현실에서 이번 춤타래의 LA 초청공연에서는 흑백 인종 갈등 문제가 유난히 심각한 LA현지인들에게 무용예술을 통한 정서 순화와 함께 한국교민들에게 고국의 수준높은 창작무용을 감상하게 함으로써 문화향수권 확대라는 긍정적의미에서도 큰 성과를 일구어냈다.

한인 상공회의소 및 미주 예총으로부터 내년에 다시 초청하기로 제의를 받는 등 연일 매스컴과 LA시민들의 입에 오르내릴만치 호평과 환대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