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두대담 / 지역문화축제

전통문화를 지키려는 노력과 함께 이뤄져야 할 축제의 세계화와 현대화




대담자 : 임동권 / 중앙대 명예교수, 민속학

신찬균 / 세계일보 논설위원, 문학박사

신찬균 우리나라 축제의 기원을 보면, 우리 민족이 농경민족이기 때문에 봄에 씨를 뿌릴 때나 추수를 마친 가을에는 하늘에 감사를 드리고 기쁨에 겨워 축제를 열어서 통과의례를 지내던 데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옛날에는 축제가 아주 성하다가 일제 때 잠깐 단절이 되기도 했었습니다. 1960년대 접어들면서 이른바 한국학 개발붐과 함께 전통문화에 대한 인식이 바뀌게 되면서 최근에는 옛날의 전통을 되찾고 있습니다.

임동권 선생님께서는 요즘 전통문화를 주제로 한 민속 축제가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보십니까?

임동권 말씀하신 대로, 사실 우리는 농경민족이라는 것을 자청하고 있고요, 그래서 농자천하지대본이라고 해서 농업생산을 생활의 기본으로 여기는 생각을 가지고 살아왔습니다. 그러니 자연히 농사가 잘 돼야만 생활도 윤택해 지는 것이고, 이런 의식에서 농사와 관련된 제천의식을 지내왔습니다. 봄에 씨를 뿌리면서 농사가 잘되기를 기원하던 제천의식, 또 가을이면 추수를 거두고서 풍요에 대해 하늘에 감사를 드리는 의식 … 이런 제천의식들은 일종의 종교적인 행사인 셈이죠. 그런데 종교적인 행사를 하는 직접적인 동기는 농경민족이 소원을 빌고 거기에 대한 감사를 하는 행위였습니다. 그런 생각의 하위기반에는 물론, 종교적인 의식이 있었습니다만, 그 의식을 진행하는 과정에서는 음주가무, 즉 남녀노소가 모여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췄고, 배불리 먹고 술을 마셨습니다. 이런 형식으로 나타난 거죠. 이것은 하나의 원시적인 축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축제가 한 2000 여 년 전부터 계승되어 오다가 조선조에서 한때 제지를 당한 일이 있었습니다. 유교 사회는 인간에게 외향적인 것보다는 근엄한 태도를 요구했던 것이죠. 소위 점잖다는 용어는 바로 이런 인간의 행동을 저지하는 것인데요, 놀이라는 것, 축제라는 것은 신체를 움직이고 음주가무를 해야 됐거든요. 유교윤리에서 보자면, 우리 놀이는 사회의 견제를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경우, 서민들이나 농민들의 놀이는 있지만 양반층의 놀이가 없는 것이겠죠. 굳이 놀이를 찾아보자면 남자들 골패라든가, 가족적으로 윷놀이, 그리고 시를 읊고 시조를 읊는 정도였고, 그런 놀이에는 어떤 행동이 없었습니다. 반면에 농민들 세계에서는 활발하게 춤도 추고 노래도 부르고 농악도 치고 있었습니다. 이런 놀이 형태가 조선조의 그 어려운 유교사회에서 비판을 받아가면서도 전해 내려오다가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일제 때 다시 한번 견제를 받게 됩니다.

물론 일제 때의 견제는 조선조 유교사회에서 양반들이 견제한 것과는 의미가 다릅니다. 유교사회에서 양반들이 축제를 견제한 것은 지적 수준이 낮다는 관점이었거든요. 그것은 축제에 대한 인식의 차이에서 나온 것이죠. 하지만 일제가 우리나라 놀이를 철저히 견제한 것은 우리 민족이 공동체를 이루는 것을 봉쇄하기 위한 것이었거든요. 놀이에 참여한다는 것은 공동체 의식을 갖게 된다는 것인데, 일본측에서 보면, 한국사람들이 단결되는 것을 꺼려할 수밖에 없는 거죠. 이런 의미에서 일제는 우리의 놀이문화, 축제를 조직적으로 혹은 계획적으로 견제를 하게 됐고 우리의 놀이 문화는 일제 때 사라지게 됐습니다.

신찬균 그러니까 축제란, 문화행사를 통해서 지역사회 구성원들이 공동체적 삶으로 묶어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면서 이를 통해 공동체 의식을 강화하는데 그 의의가 있다는 말씀이신 것 같습니다. 사실 그것이 우리의 전통적인 민속축제인데, 요즘 축제에 가 보면 그런 의의는 찾아보기가 힘든 것 같습니다. 주민들은 참여의식도 없고 멀리서 구경만 하고, 축제를 오히려 관에서 주도하는 것이 옛날과는 다른 모습인데, 그 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임동권 그 점에 대해서는 놀이라든가 축제의 양식, 혹은 진행방식이 유럽과 사뭇 달랐던 것 같습니다. 서양의 경우, 공연예술은 극장에서 이루어지지 않습니까? 연기자는 무대에 올라가고 관객은 앉아서 보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 나라의 공연예술은 관람자도 흥이 나면 뛰어들어가고 그러다가 싫으면 나오고…… 이런 식으로 연기자와 관람자가 구분이 없고, 그것이 바로 서민들이 말하는 축제, 놀이인 거죠.

오늘날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이런 극장 문화가 하나의 연희형식으로 굳어져 버린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요즘은 농촌에 가도 관객은 관객일 뿐이지, 놀이에 참여하는 사람을 별로 볼 수가 없습니다. 말하자면 우리의 전통 놀이 형식이 지금은 붕괴가 돼버렸다고 볼 수 있죠. 지금은 서양식의 연희양식이 우리 인식에 남아버렸습니다. 이것이 첫 번째 원인이고, 그리고 관의 참여라는 것은, 일제 때로 거슬러 올라갈 수가 있겠죠. 일제 때 총독부에 의해 우리의 놀이문화가 제재를 받았습니다. 그러다가 해방이 되고, 우리는 경제적으로 참으로 어려운 고비를 넘겨야 했죠? 그런 상황에서도 정책으로는 우리나라의 전통문화를 계승하자는 의욕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국민들에게는 그런 의식이 부족했었죠. 우선 당장 밥 먹기가 급한 시대였으니까 당연한 일이었을 겁니다. 그런 상황에서 국민들의 전통문화에 대한 의식이 각성도 하기 전에 몇몇 선각자들은 관을 움직여서 민속예술 경연대회 같은 것을 주최하기 시작했던 거죠.

우리나라 해방 직후의 축제들은 민중의 의식에서보다는 선각자들의 생각에 따른 것이기 때문에, 축제를 움직이기 위해서는 관이 주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원래 공연의 형태는 아닙니다. 따라서 우리가 어느 시기에 이것을 청산하고 이제는 순수 민간 차원에서 민간인 스스로 만들어가야만 합니다.

신찬균 얼마 전에 강릉단오제를 갔다 왔는데요, 강릉단오제는 다른 지역의 축제에 비해 주민들의 참여의식이 매우 높았습니다. 가장행렬이 출발할 때 주민들은 서로 참여하려고 촛불을 하나씩 사들고 그 뒤를 따라가는 것을 보았는데요, 주민들은 그런 행위를 영광스럽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진정한 주민들의 축제란 생각이 들더군요. 하지만 그에 비해서 일부 지역의 축제들은 표면으로는 몇 회가 되었다고 선전을 하지만은 내용을 보면 국적불명이고 지역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축제도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지역을 가건 똑같은 내용과 형식의 축제가 이루어지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 것들을 주민들이 반대하고, 참여의식이나 공동체 의식에 의해 좀 새로운 방식으로 엮어 가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어떤 내용으로 엮어 가면 좋을까요?

임동권 우리나라 현대의 축제가 시작된 것은 1960년대 이후이니까, 그 동안 한 30여 년이 흐른 셈이죠. 그 사이 국민의 수준이 상당히 높아졌습니다. 그래서 그 전에는 참여를 피하던 사람들이 요즘 와서는 자발적으로 참여를 하게 될 만큼 향토문화에 대한 인식이 높아졌습니다. 이런 변화는 아주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겠죠? 그러나 현대의 축제가 전통을 지키지 못하고 정체불명의 놀이가 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이런 현상은 서구 문화의 영향 때문인데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전통적인 리듬은 유장합니다. 템포가 좀 느린 거죠. 그래서 동작도 느리고, 그것이 승화된 예술의 세계, 차원이 높은 예술의 세계를 이루어 온 겁니다. 그렇지만 현대는 템포가 빠르지 않습니까? 우리의 젊은 사람들에게는 빠른 리듬이 감각에 맞거든요.

일례로 요즘 대학생들이 우리나라의 전통문화 중에서도 사물놀이에 접근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사물놀이는 사람을 급작스럽게 몰아쳐대죠. 그만큼 우리의 감각이 변한 것이고, 굳이 책임의 소지를 따지자면 매스컴의 책임이라든가 서구의 영향을 들 수 있을 겁니다. 어쨌든 이러한 생각이 정체 불명의 향토문화축제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신찬균 지금까지 얘기한 것은 전통축제의 얘기고, 다른 방향으로 한번 접근을 해보겠습니다. 지금 많은 농촌들이 도시화 되어가고 있지 않습니까? 가령 전통적으로 고싸움을 해오던 전라남도 광산군은 시가 되어 전통 마을의 모습은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농촌지역이 도시가 되고 사람들도 없고, 축제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 같은데요, 이렇게 사회가 도시화되면서 축제가 어떻게 변모하고, 또 도시에서는 전통적인 축제가 어떤 모습으로 남는다고 보시는지요?

임동권 도시화 현상이 지금 당장은 축제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런 현상은 극복해야 될 문제이고, 또 반드시 극복되리라 믿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은 외국의 예에서도 볼 수 있는데 가장 가까운 일본을 보면, 일본은 우리보다 7,80년 정도 먼저 개화를 했죠. 우리나라의 사회 구성원을 살펴보면 조선조 말기까지 농민이 9퍼센트 정도를 차지했고, 일본도 개화 이전까지는 우리나라와 마찬가지 상태였습니다. 그러다가 일본이 산업화되면서 이농현상이 진행됐고, 역시 농촌 전통문화나 축제는 사양길로 접어들고 말았습니다. 전통문화의 과도기적 공백기를 겪은 셈이죠. 전통문화가 도시에서는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형성이 되지 못하다가 지금은 완전히 제자리를 찾고 성공을 거두었거든요. 그 성공은 경제적인 성과라고 생각됩니다.

우리 농촌 축제도 이런 측면에서 해석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해방 직후에는 먹을 것이 없으니까 축제도 있을 수 없죠. 하루 노는 것보다는 먹고 살기 위해 일을 했는데, 요즘은 생활의 여유가 생기니까 하루쯤 노는 것이 문제가 될 것이 없습니다. 물론 아직까지는 놀이문화로 이어지지 못하고 소비적인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 것도 있죠. 우리 사회는 지금 서구적인 것을 마구 수용하고 있지만, 서구적인 것도 어느 정도 지나가면 식상할 때가 오게 됩니다. 대학가의 축제만 봐도,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전부 서양적인 행사로 이루어지던 것이, 최근에는 한국의 전통예술을 재현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런 식으로 시간과 경제적인 여유를 갖게 되면 그때 문화적 자각의 세계로 돌아오게 되는 겁니다.

우리도 지금 농촌 사람들이 도시로 와서 도시에서 제대로 정착을 못하고 있습니다. 이 고비를 넘어서면 그때는 고향의 문화를 도시에서 자연스럽게 재현해 나가게 되는 거죠. 지금 우리는 과도기에 있기 때문에 문화적 혼돈을 겪고 있는데, 이걸 해결하기 위해서는 경제적인 안정이 우선돼야 하고, 그러면서 우리 전통문화가 끊임없이 사람들에게 자극을 주게 되겠죠. 그래서 농촌에서 도시로 온 사람들이 완전히 정착할 단계에 이르면 그때는 농촌 문화를 회상하고 수용하게 되는 건데요, 아직은 그 단계로 가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신찬균 그런데 도시축제의 전형으로는 서울 용산의 남이장군제가 있지 않습니까? 주로 시장을 중심으로 상인들이 벌이는 축제인데, 그 축제를 보면,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 유지급에 속하는 사람들은 참여를 거부하는 것 같습니다. 이런 사회 분위기에서 과연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기면 축제가 정착이 될 수 있을 것인지, 아니면 비관적으로 도시화되면서 사라져 버리고 말 것인지 참으로 걱정입니다.

임동권 축제는 아주 사라지지는 않을 겁니다. 지방 유지들이 축제에 참여하지 않는 것은, 과거 양반들이 지니고 있던 편견을 계승한 거에 지나지 않죠. 그러나 종교적인 측면에서는 상당한 긍정을 보이고 있습니다. 지금 말씀하신 남이장군제도 그런 경우인데, 사람은 어쩔 수 없이 급박한 상황에 처하면 신에게 의지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또 다른 측면에서 생활이 넉넉하면 낭만적인 기분도 생기게 되죠. 그때는 축제로 돌아가게 됩니다. 여유가 생기면 그 다음에는 마음의 욕구를 충족시키려는 생각이 들게 되거든요. 그 충족의 방법이 바로 축제에 참여해서 더불어 어울리는 것입니다.

사실 현대 핵가족 사회에서 사람들은 문을 닫고 살지 않습니까? 소위 문단속의 시대라고 할 수 있는데 문을 닫고 살다보면 자유를 느끼기도 하지만 그것도 한계에 부딪히게 되죠. 어느 순간 고독을 느끼게 돼요. 그때는 어울려서 사는 세계, 즉 기문만복래(開門萬福來) '열림'이 세계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요즘 사회적으로 '열린'이라는 수식어가 많이 떠도는 것도 바로 이런 현대인의 심리를 역설적으로 드러내는 것 아니겠습니까?

사람들이 폐쇄된 상태에서 열린 상태로 전환하면 어울리는 세상이 되고, 또 서로 목적의 동질성이 있으면 사람들이 서로 모이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을 억지로 끌어 모을 수는 없으니까 모으는 방법은 이럴 때 축제가 필요한 거죠. 축제는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기회도 되고, 아까 남이장군제처럼 시장 사람들의 사업번창이란 목적의 동질성에 의해 사람들을 끌어 모아 축제를 벌릴 수도 있는 거죠. 그러니까 욕구와 실리가 맞아떨어지면서 축제도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도시는 사람들이 모여 살기 때문에 결국에 가서는 함께 어울리게 되고 그렇게 되면 도시 축제가 형성이 될 수밖에 없고, 그때는 축제도 생명력을 얻게 된다는 얘기가 되겠죠. 다만 아직 우리 사회가 거기까지 이르지 못했다는 것뿐입니다.

신찬균 지금까지 도시에서의 축제 가능성에 대해서 말씀하셨는데요, 얼마 전 전라북도 무주에서는 '반딧불 축제'가 열렸습니다. 그곳은 반딧불 천연기념물 보호지역으로 지정된 고장입니다. 축제가 열린 거죠. 사실 반딧불이라는 것이 어릴 때의 아련한 추억을 안겨주지 않습니까? 요즘은 물론 반딧불을 볼 수가 없고, 그만큼 어린이들의 꿈도 없어지고……

무주에서 양식한 반딧불을 날려보내면서 축제를 여는 것도 이런 의미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 축제에는 한 오천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모였다고 하니까 대단한 수준인데요, 아마도 잃어버린 꿈을 찾고 새로운 축제 가능성을 제시하는 그런 모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선생님께서는 이런 축제를 통해서 지방에서 새로운 축제를 성취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십니까?

임동권 네. 그렇습니다. 이번 무주의 반딧불 축제는 기존의 발상을 뒤집은 것이죠. 일종의 인간의 자연회귀현상이라고 볼 수 있는데요, 사실 현대인들은 달이나 반딧불의 고마움을 잘 모르고 있습니다. 전기의 발명으로 인해 이제 이태백 같은 시인이 나올 가능성은 없어진 거죠. 언제든지 필요하면 불만 켜면 되는 전깃불 속에서 사는 현대인들은 달의 고마움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전기는 쉽게 켤 수 있지만, 달은 아무리 밝히고 싶어도 그것은 안 되죠? 한 달에 한번 오기를 기다리기만 해야 합니다. 그 날이 오면 기쁘고…… 그런데 만월을 기다리고 기뻐하는 것은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화는 아닙니다. 고래로부터, 원시사회의 문화에서는 만월이 되면 축제의 분위기에 휩싸였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추석, 대보름은 물론이고 유월 유두, 칠월 백중이 모두 만월 때 아닙니까? 보름이 되면 명절로 여긴 거죠.

그럼 왜 만월을 기뻐하느냐 하는 문제가 남는데요, 그것은 원시시대부터 우리는 어둠을 죽음, 공포로 여겨왔습니다. 맹수나 적이 쳐들어와도 어둠 속에서는 존재를 확인할 수가 없기 때문에, 불의의 사고가 일어날 수도 있어 불안하고 공포에 떨어야 했던 거죠. 하지만 달이 밝아지면 위험을 눈으로 확인할 수가 있고, 그래서 달이 밝다는 것은 고마운 현상이고 인간들은 달밤에는 축제를 벌였죠.

반딧불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반딧불은 하나 하나 날아다니는 벌레의 자연현상이면서도, '형설의 공(螢雪之功)'이란 말도 있듯이 역사적으로 문학적으로 참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지 않습니까? 거기다가 반딧불은 벌레가 불을 켠다는 신비성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무주의 반딧불 축제는 자연의 세계에 대한 낭만적인 접근이고, 또 우리 조상들의 풍류를 느껴지는 축제라고 볼 수 있겠죠. 따라서 무주지방의 새로운 축제로 정착될 가능성이 많다고 생각됩니다.

신찬균 저도 이번 축제를 지방문화축제로 정착시켰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얘기한 것은 현대적인 축제고, 옛날에는 축제를 하기 전에는 동제와 같은 제사를 지낸 다음에 축제를 열지 않았습니까? 제가 참여했던 감동적인 축제의 하나는 태백제였는데요, 그것은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것을 대신하여 갖가지 행사가 가능하고 또 상처를 감싸안을 수 있었던 축제였습니다. 그런 축제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임동권 태백제라든가 강릉단오제 같은 것도 그렇고 아까 얘기 됐던 고싸움도 원래는 밤에 당제를 지내고 낮이 되면 고싸움이나 축제를 벌이는 거였죠? 그런 것들을 볼 때, 인간은 근본적으로 자기 능력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고, 그 한계를 누군가가 보안해 주는 존재로써 신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 한국에서는 한울님이 되는 것인데, 이런 신이라는 막연하고도 추상적인 존재가 구체화된 것이 태백산이라면 천왕성이라는 산신, 강릉의 서낭신, 은산의 별신, 이렇게 신이 지역별로 전설적인 개념에 의해서 형성이 된 것이죠. 인간의 능력으로 어쩔 수 없는 궁극적인 소원을 성사시킬 수 있는 신에 대해서, 사람들은 소망을 빌고 제사를 지내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제사를 지낼 때 단지 소원을 비는 것이 아니라, 신의 뜻도 받들어야 되거든요…… 신도 노래와 춤을 즐깁니다. 신을 즐겁게 하기 위해서 오신 행위로 노래와 춤을 추면서 여러 가지 축제를 벌이는 것이죠. 그러니까 축제의 기원은 궁극에 가서 보면 신과 관계가 있습니다. 고대 사회에서 신과의 관계에 있어서 신이 거대하고 위대한 힘을 지니고 그 힘을 신앙하는 사람이 많을 때 큰 축제가 벌어졌습니다. 즉 신제와 축제는 깊은 유대가 있었습니다. 그런 축제에 관계되는 사람, 한 산신을 모시는 몇 개 마을 사람들은 공동체를 이루게 되는데, 적을 때는 부족신앙, 크게 보면 단군 신앙처럼 민족 신앙으로 승화될 수도 있는 것이죠. 그러니까 공동으로 섬기는 신을 매개로 마을 사람들이 공동의식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신찬균 축제는 무엇보다도 사람들이 많이 참여를 해야 하는데요, 요즘 축제를 보면 주민의 참여도가 별로 없습니다. 축제가 유명 연예인을 초빙해서 공연을 가지기도 합니다. 그렇게 하면 사람이 많이 모이는 건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공연이 끝나면 다시 사람들이 빠져나갑니다.

임동권 우리나라 축제를 보면 본연의 제의 공연보다는 여러 가지 부대행사가 더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강릉 단오제라면 단오굿하고 단오놀이만 하면 될텐데, 축구시합, 씨름대회, 농악대회, 미술실기 대회, 이런 것들이 더 많습니다. 물론 씨름이나 농악은 축제와 관련시킨다고 할 수 있지만 축구대회나 미술실기 대회까지 축제에 포함시키는 것은 좀 애매하죠. 그런데 이런 행사를 개최하는 것은, 이런 부대행사로 인해 학생이나 시민을 모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축제에 참여자가 없기 때문에 참여자를 끌어들이는 수단인 셈이죠.

이번 서울시의 단오축제에서도 그런 일이 벌어졌지만 가수들을 불러서 공연을 했더니 사람들이 그 공연에 너무 많이 몰렸고, 공연이 끝나고 나니까 손님들이 다 가고 말았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현실이죠.

이런 현상을 분석해 보면 첫째는 시민들이 아직 전통문화와 우리의 축제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는 것을 꼽을 수 있습니다. 둘째는 지금 현대인들에게는 전통문화보다는 서구문화가 오히려 호흡이 맞는다는 얘기거든요. 이것을 단순히 의식의 부족이라고만 나무랄 수는 없고, 사회적으로는 민족의식과 우리 전통문화에 대한 의식을 심어줘야 할 것입니다. 우리나라 젊은이들은 아직도 전통문화에 대한 인식보다는 감각적이고 향락을 즐기는 것을 보다 더 중요한 것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경제적 여유가 생기고 지금의 향락적인 문화에 지치면 달라질 것으로 봅니다.

얼마 전에 한 지방의 초등학교에서 운동회가 있었는데, 서울의 동창들이 운동회에 참가하기 위해 내려가는 것을 본적이 있습니다 모교 동창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서울 패와 지방 패로 나눠져 줄다리기도 하고 함께 놀이를 하면서 친목을 도모했습니다. 물론 이런 행사도 사람들의 생활이 그만큼 기동력이 생겼기 때문에 가능한 거죠. 이러한 사회 분위기가 자꾸 무르익으면 언젠가는 고향, 전통문화로 회귀할 날이 올 것으로 생각됩니다. 지금 대학생들이 대학축제의 서구일색을 청산하고 한국적인 것으로 돌아오는 현상을 보여주고 있지 않습니까?

신찬균 축제 기간은 적어도 출향자들이 전부 모이는 기간이 되면 가장 바람직하죠. 서양에서는 고향 축제를 '홈 커밍 Home coming'라는 말로 표현을 하죠? 그런 축제 기간 동안에 동창회도 하고, 초등학교 운동회도 하고, 그런 식으로 연계가 된다면 축제도 되고, 고향 찾기 운동도 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축제 부흥을 위해 이런 방법을 동원하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임동권 그러니까 축제를 국민생활에 정착시키기 위해서 저변확대다, 토착화다라는 말을 쓰고 있지 않습니까? 일본에서도 이런 움직임이 있었는데요, 일본의 경우에는 음력으로 이루어지던 축제를 전부 양력으로 바꿨습니다. 국가나 정부, 회사의 공식적인 행사와 연계를 갖추기 위해 이런 조처를 취한 것이죠. 그리고 축제일을 양력으로 고치면서 가령 10월 첫째주말, 셋째 주말 하는 식으로 날짜에 융통성을 두고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고향을 떠났던 사람도 참여할 수 있게끔, 큰 테두리는 두고서 다소 융통성을 발휘한 것이죠.

은산 별신제의 경우 정확한 날짜를 얘기할 수가 없었죠. 2월이라는 것은 틀림없는데, 그것도 정초가 되어 화주를 선출하고 화주의 사주를 봐서 날짜를 정했던 겁니다. 날짜가 일정하지 않으니 홍보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옛날의 농경사회에서야 사람들이 다 그곳에 살고 있으니까 이런 방식도 가능했지만, 요즘처럼 이동이 빠르고 이농현상이 많은 현대사회에서 그런 방식으로는 축제 참여를 유도하기가 곤란하죠. 그래서 최근에 2월의 셋째 주말이라고 정해 버렸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관광공사의 달력에 오를 수가 없고, 거기에 올라 가야지만 외국이나 국내에 홍보가 될 수 있거든요.

강릉 단오제의 경우는 음력이라도 단오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모일 수가 있는 거죠. 이러한 정도의 융통성은 축제의 기일을 정할 때 보여줘야지,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는 날짜로 잡아 참여할 기회가 제공되는 것 아닙니까?

신찬균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외국에서도 우리 축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데요, 실제로 어떻습니까? 축제의 관광화라든가 상품화가 이루어지면, 그로 인한 경비도 나오게 되고 외국에도 우리 문화가 널리 알려지게 되는 것이잖아요?

가령 진도의 연등제 같으면, 천년 전 아니 그보다 더 오래 전부터 바닷물이 갈라지는 현상이 있었을 텐데, 새삼스럽게 보도가 되고 해외에 알려지게 된 것은 '모세의 기적이 여기도 있다'는 방식이었습니다. 모세와 진도 바다가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인지……이런 현실에서 우리 전통문화를 해외에 알리고 관광화시키는 방향으로 나가려면 어떤 방법이 있겠습니까?

임동권 진도의 경우, 기독교 문화가 들어오면서 모세를 갖다 부친 것이죠. 사실 그런 것과 관계없이 독자적으로 축제를 관광화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일부 순수한 학자들은 이런 부분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시간과 공간을 이동시키니까 아무런 의미도 없다고 부정을 하는 사람들도 있거든요. 하지만 축제는 사람이 있어야지, 사람이 없으면 이루어질 수 없는 거죠. 축제의 의미를 주변사람들에게 인식을 시켜야만 참여가 이루어지고 문화도 계승이 되는 것 아닙니까? 그러려면 사람을 모으게 하는 대책을 마련해야 하고, 어떤 의미에서는 적극적으로 손님을 끌어들여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래야 축제가 지닌 의미가 전달이 될 수 있습니다. 관광만 위주로 하면 순수성이 퇴색될 수도 있어 문화 의식을 가지고 관광화하는 노력이 있어야죠.

신찬균 마지막으로 진도의 경우는 연등제뿐만이 아니라 씻김굿도 있고, 만가도 있고 소위 상품화될 수 있는 종목이 많이 있지 않습니까? 그것만 공연해도 얼마든지 사람들을 모을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임동권 진도의 경우는 개성이 강한, 그러면서도 매력적이고 현대인들에게도 공감을 줄 수 있는 문화 요소가 많이 있습니다. 그것을 연결시켜서 하나의 축제를 벌인다면, 장래에는 지방축제 중에서 관광화가 될 수도 있고, 세계적인 축제로 만들 수도 있죠. 그리고 가령 천년 동안 우리가 연등제를 지내고 있다 할 때 천년 전에 지금 그대로 연다는 보장이 없거든요. 사실 문화는 우리가 순수성을 유지하려는 노력을 해도 시대에 따라 시대감각이나 시대 문화가 자연적으로 첨가되는 것입니다. 민속극도 윤색하고 첨가되어 왔지 원형 그대로 전승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따라서 우리는 전통문화를 지키려고 노력하면서도 한편으로 시대감각이 첨가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신찬균 축제의 세계화, 현대화가 필요하다는 말씀이시군요. 지역문화 축제에 대해 앞으로도 많은 과제가 남겨진 셈인데요, 앞으로 이 부분에 대해서 정립하는 과정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시간이 꽤 많이 흘렀는데요, 장시간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임동권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