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기획 / 사이버 문화의 새로운 비전. 사이버 문화가 문화예술에 미치는 영향
탈산업화 시대, 문화예술의 새로운 유통방식
박규현 / 서울사회과학연구소 연구원
■매체는 메시지다
매체는 단지 의사 전달의 도구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적극적으로 매체의 내용과 그 매체를 사용하는 인간의 문화 및 정서에 영향을 미친다.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거장 벤야민은 일찍이 구텐베르크의 인쇄술 발명이 서구 문화 전체에 미친 영향을 논하면서 이 발명이야말로 근대적 합리화의 직접적 매개가 되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인쇄술의 발명은 문학과 음악에서 그전의 '이야기꾼'과 '미네징거(음유시인)'의 역할을 텍스트와 악보로 바꾸어 버렸고 문자 교육을 일반화시켰으며 음성 중심의 문화를 시각 중심의 문화로 이전시켰다는 것이다. 이것은 전체적으로 근대 특유의 이성중심주의를 결정적으로 강화하고 그럼으로써 근대 합리화의 동력이 되었다.
캐나다 출신의 저명한 매체비평가 맥루한은 이러한 매체의 적극적 역할을 '매체는 메시지다'는 언명으로 표현하였다. 즉 매체는 단순한 전달 도구가 아니라 그 자체 강력한 내용 규정력이 있음을 주장한 것이다. 맥루한은 TV를 비롯한 각종 대중매체를 구텐베르크의 인쇄술 이후 메말라진 서구 문화를 다시 풍요롭게 만들 수 있는 가능성으로 인식했다. 활자에서 벗어나 살아 움직이는 동영상과 실시간 중계가 주는 효과를 낙관적으로 평가했던 것이다. 그는 또 쿨 미디어 cool media 와 핫 미디어 hot media를 구분하여 전자가 일방적 의사소통 관계를 설정하는 매체라면 후자는 쌍방향의 의사 소통이 가능한 매체라고 구분한다. 그의 관점에서 보자면 핫 미디어의 발전과 만개가 인류의 새로운 문화를 이끌 핵심 요소다.
천년의 세기가 저무는 20세기 후반, 우리는 맥루한의 예언이 현실화되고 있음을 목도하고 있다. 그것을 과연 맥루한처럼 낙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인지와는 별도로, 시대는 바야흐로 또 한번의 전환적 매체 혁명을 겪고 있고 그 핵심은 그의 전망대로 핫 미디어적 성격을 띠는 컴퓨터 통신 기술의 발달이 되고 있다. 컴퓨터 기술의 발전에 기반한 통신문화의 발달은 아직은 우리 사회 '일부'의 문화지만 이미 2∼30대 세대에서 오피니언 리딩 opinion leading 매체 역할을 하고 있고 그 영향력은 비약적인 확대 일로에 있다.
앨빈 토플러의 예언대로 산업 전반이 '탈공장굴뚝'화되고 있는 추세를 감안하면 사이버 문화의 영향력이 더욱 더 생활 깊숙이 파고 들 것이란 전망은 필연적인 것처럼 보인다. 문화예술 분야 역시 이 영향으로 직간접적인 변화들을 겪고 있다. 이 글에서는 구체적으로 사이버 문화가 우리 문화예술에 미치는 영향들을 생각해보기로 한다.
■저장 유통되는 문화
예술 수용자측에서, 그리고 사이버 문화의 발전이 가져다 준 혜택이라는 점에서 생각해 보자면 사이버 문화의 발전으로 바뀐 풍속 중 가장 먼저 들 수 있는 것이 아마도 예술작품의 소장과 향유의 편리성인 것이다. 예전에는 그림을 보려면 화랑을 가야했고 음악을 들으려면 공연장을 찾든지 최소한 직접 CD와 테이프를 고르는 수고를 해야했다. 그러나 사이버 문화의 발전은 집안의 컴퓨터만으로 웬만한 작품의 소장과 향유를 가능하게 한다. 하이텔과 천리안 등의 국내 통신은 말할 것도 없고 인터넷상에는 수많은 예술 관련 사이트들이 존재한다. 이 사이트들에서는 최근의 뉴스와 함께 혹은 친절한 평까지 곁들여 수많은 작품들을 압축파일로 제공한다. 사용자의 검색 능력에 따라서는 최신 유행의 작품부터 국내 도서관에서도 찾기 힘든 자료까지 작품의 양질의 범위는 무한대다. 불과 몇 년 전 윈도우95라는 기종이 대중화되기 전까지만 해도 사이버세계에서 자료로 제공되는 작품은 기술적 제한 때문에 매우 한정적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예컨대 음악 파일의 경우 MP3, RA라는 확장자를 가진 최신 압축파일들은 만든 프로그래머의 능력에 따라 시중 CD에 비해 전혀 손색없는 음질로 제공되고 있다. 작년 인터넷상의 공짜 음악 파일들을 저작 보호법 위반으로 고소한 EMI레코드사의 사례는 이 파일들의 양질이 어느 정도인지를 잘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그림 파일은 JPG라는 확장자를 가진 파일을 많이 쓰는데 이 파일은 기본적으로 256색 이상을 자유자재로 사용하고 혼합한 화면을 제공한다. 루벤스의 「폭풍의 언덕」과 프랑스 혁명의 「군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은 더 이상 수고를 들여 찾아봐야 할 작품이 아니라 컴퓨터를 켜기만 하면 등장하는 배경화면의 그림으로 삽입될 수 있게 되었다. 그림이나 음악보다는 좀더 고난도의 기술을 요하는 동영상 자료 역시 이미 보편화된 추세다. 파일의 용량이 크다는 문제를 제외하고는 컴퓨터를 통해 TV화면과 다르지 않은 영상을 즐길 수 있다. 인터넷상에서는 이미 TV와 연계된 방송이 직접적으로 개인의 모니터 상에 자유로이 뜨고 있고 실시간 중계도 가능해진지 오래다. 한 발 더 나아가 사진기, 비디오 등 리모콘으로 콘트롤이 가능한 모든 가전 제품은 컴퓨터와도 연결 실행이 가능해졌다. 요컨대 컴퓨터는 인공적으로 재처리된 예술품들에 대한 접근 가능성을 accessability 대중적으로 한껏 통합시키고 높여놓았다.
그러나 오히려 더욱 중요한 변화는 단지 접근 가능성의 고양이 아니라 수용자의 작품에 대한 개입 가능성이다. 전문지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말할 것도 없고 대중적으로도 컴퓨터 내의 파일들은 얼마든지 수용자 자신의 취향대로 바꿀 수가 있다. 이제 대중은 「폭풍의 언덕」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명암과 색을 변화시키고 대중가요의 특정 부분을 자기 식으로 연주를 삽입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때문에도 사이버 세계는 대표적 핫 미디어로 불릴 수 있다. 더 이상 예술의 수용자는 수동적이 아니다. 작품이 기술적으로 처리되고 저장 유통되는 이상 이제 수용자의 작품에 대한 개입 정도는 이전과 비할 바 없이 커졌다. 파일에 대한 자유로운 조작과 개입은 기존 작품의 오리지널러티를 더 이상 불변의 것으로 고정시켜두지 않는다. 이런 경험의 축적은 수많은 패러디 작품들을 가능하게 하고 수용자측에서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정서적 기초를 제공한다. 시대정신으로서 포스트모더니즘이 미학적 해체주의로 표현되는 것에는 사이버세계의 발전과 그를 뒷받침하는 기술적 변화들이 깔려 있는 것이다. 작품에 대한 개입이 자유로울 때 고유성과 원저자성은 주장되고 유지되기 힘들어진다. 또 이것은 창작에 있어서도 점차 창조와 모방 그리고 표절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든다. 일찍이 1980년대에 해체주의의 선두주자 자크 데리다는 순전히 표절만으로 한 권의 책을 만들어 보임으로써 모든 글쓰기는 사실상 다소간 표절일 수밖에 없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준 바 있다. 이러한 태도가 옳으냐 그르냐의 문제는 논란의 여지가 있겠지만 이러한 발상이 가능해지고 또 수용되는 데에는 사이버 문화의 발전이 한 몫을 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요컨대 사이버 문화의 발전은 한편으로 예술작품에 대한 대중의 접근가능성, 즉 대중성을 고취시키면서 다른 한편으로 작품에 대한 대중의 능동성을 함께 고취시킨다. 그리고 이것을 가능케 하는 기술의 핵심은 작품을 저장, 유통하는 방식이다. 일찍이 예술을 포함한 정신노동을 저장 유통되는 상품으로 파악한 대표적 논자는 프랑스의 료따르다. 포스트모더니즘과 정보화 사회에 대한 논의를 본격적으로 촉발시켰던 료따르는 그의 저서 「포스트모던의 조건」에서 지식의 새로운 위상을 논한 바 있다. 거기서 그는 이제까지 지식들, 특히 인문예술 분야의 담론들은 과학과는 무관한 신학적 혹은 신화적 가정에 기대어 왔다고 비판하면서 정보화 사회의 지식은 과거와 같은 정신이나 인격 도야와 무관할 것이라 전망하였다. 지식의 공급자와 수용자가 지식에 대해 갖는 관계는 상품의 생산자와 소비자가 상품에 대해 갖는 관계, 즉 가치의 형태를 띨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지식이 정보상품화 되는 사회가 곧 정보화 시대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러한 시대의 지식은 더 이상 신화적 가정들에 기댈 수 없고 유용성이라는 관점에서 평가되고 사회적으로 해독이 용이하게 수량화 혹은 표준화될 것이라고 보았다. 그가 그리고 있는 사회상이 바람직한 것인지 어떤지 여부와 무관하게 사이버 문화의 실태는 탈산업화 시대에 문예의 새로운 유통방식을 보여주는 것임에는 틀림없다.
■순기능과 역기능
많은 사회현상들이 그러하듯 사이버 문화의 발전 역시 사회적 순기능과 역기능을 함께 가지고 있다. 위에서 지적한 대중성과 수용층의 능동성의 고취는 상대적으로 순기능이라고 보여진다. 그러나 과연 이런 순기능뿐인가?
동전의 양면이겠지만 사이버 세계를 통한 예술작품에의 접근은 하나의 정보 상품으로 가공 처리되기 전의 작품만이 가질 수 있는 많은 면을 상실한 것이기도 하다. 하나의 예술 작품에 대한 풍부한 해석의 가능성 역시 컴퓨터 언어로 변형되는 과정에서 상실되기 쉽다. 효율성과 예측가능성을 추구했던 근대 합리화가 예술적 상상력과는 대립적이었던 것처럼 저장 유통이 가능하기 위한 작품의 기술적 표준화 역시 인간 본연의 예술적 능력 고취에는 별 도움이 못될 것이다. 위대한 예술은 언제나 현실과 역사와 자연과의 진정성 있는 교감 속에서 탄생한다. 이 기본적 인식이 바탕 될 때에만 사이버문화의 우리 시대 문예에 대한 순기능 역시 유지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