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기획 / 우리나라 국제예술제의 의미와 발전방향. 국제음악제의 효용과 남용

창작계의 역량이 총합된 현대음악제를 기대하며…




황성호 / 작곡가, 서울대 교수

다양한 국제음악제들

지난 9월 26일부터 10월 3일까지 8일 동안, 97세계음악제가 서울을 중심으로 열리고 있다. 이 대회가 끝남과 동시에 또 다른 현대음악축제인 팬뮤직 페스티벌이 3일에 걸쳐 열릴 것이며, 지난 9월 6일에서 11일까지 부산과 대구에서 제7회 영남국제현대음악제가 이미 열렸다. 또한 이 기간 이전부터 한국음악협회 주최, 97 서울국제음악제가 있었으며 이외에도 대전현대음악제, 대구현대음악제, 서울컴퓨터음악제가 이미 열렸거나 열릴 예정이다. 이들 음악제는 서울국제음악제를 제외하고 모두 현대음악제들이다. 이 같은 집중포화식 현대음악제는 올해만의 일이 아니다. 다른 어느 해보다도 현대음악제로 바빴던 지난해 10월에는 대전음악제와 20세기 현대음악축제를 시작으로 팬뮤직페스티벌, 영남국제현대음악제가 연이었다. 비슷한 시기에 이같은 규모의 것은 아니지만 서울-베를린 축제가 있었으며 한 개인 연구소가 개최한 음악제도 있었다. 전국이 가히 현대음악의 가치에 휩싸였다고 할까? 심한 경우 1993년 아세아작곡가연맹대회와 팬뮤직페스티벌이 예술의 전당과 국립국악원에서 동시에 개최된 경우도 있었다.(우리의 국제음악제는 제주국제관악제, 서울국제음악제, 그리고 지난해에 열렸던 세계합창제, 세계피리축제 등을 제외한 대부분이 현대음악을 대상으로 하는 특징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글은 창작계의 국제음악제만을 다룬다). 물론 각 음악제들이 지역마다 타당한 이유를 갖고 태어났겠지만 좁은 우리나라로 볼 때, 우리 사회의 창작계에 대한 관심으로 볼 때 불가사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같은 국제음악제의 난립은 많은 예산의 중복 투자, 공연장 확보의 문제점, 행사 진행인력난, 청중 확보의 어려움 등 많은 문제를 야기시켰다. 결국 이는 순수한 문화적 의미보다는 연례 행사차원의 진부한 것으로 그 의미가 퇴락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기존 창작 발표회의 의미 역시 축소시킬 수 있다. 자! 그렇다면 수많은 창작 단체에 속한 작곡가들이 기존 작품발표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예산과 노력이 집중되는 음악제를 스스로 양산하게 하는 배경은 무엇일까?

국제현대음악제의 배경

우리 창작음악은 주로 창작단체 발표회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개인 발표회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작곡가들은 작품 수와 비용 문제로 단체에 발표회를 애용한다. 이는 기존 창작음악 모임의 기능이 작품 사조나 경향에 의한, 적극적인 의미의 동인적이 아니라 작품발표 기회를 제공하는 소극적인 것임을 뜻한다. 소액의 자체 기금과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의 지원금에 의해 빈한하게 치뤄지는 이들 모임의 발표회 내용은 가곡과 소규모 실내악에 제한되어 관현악이나 합창 등의 대편성 작품이 연주되는 일은 거의 없다. 그러나 예산의 집중 지원과 홍보가 가능한 음악제는 소극적인 발표회가 할 수 없던 일들을 가능하게 한다. 그리하여 우리 현대음악제의 기능은 폭넓은 장르의 음악들의 집중적인 발표와 신인의 등단 기회제공, 국제 교류의 창구로 나눌 수 있으며 최근에는 세미나 등 학술 기능도 덧붙여 많은 음악인 및 음악학자들의 포괄적인 공간이 되고 있다. 이러한 공간에 대한 음악가들의 갈망이 1차적인 배경이다.

국제음악제 양산의 또 하나의 배경은 지방자치제에 따라 독자적인 문화사업을 바라는 각 지역 기관들과 활동을 확대하려는 지방 문화단체들의 욕구, 그리고 문화를 홍보 전략의 수단으로 삼는 일부 대기업이 있다. 최근 들어 문화예술 행사의 지방자치단체나 기업의존도가 높아지면서 역내 납세자와 소비자의 기호, 홍보 효과를 배려한 후원자의 요구가 거세지고 있다. 이는 미래의 문화정책과 기업 후원이 얼마든지 대중 기호에 맞춘 이벤트 중심일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대중적 요소가 순수 목적을 균형 맞춘 가운데 기업이나 기관의 지원 정책을 유도하는 음악제 경영 마인드가 절실하다.

국제현대음악제의 종류

또한 국내에서 치뤄지는 국제음악제는 아세아작곡가연맹대회나 세계음악제처럼 외국에 본부가 있고 매해 개최국을 달리하며 열리는 것과 국내 기관이 주관하면서 외국음악인들을 초청하여 이루어지는 두 가지로 대별할 수 있다. 월드컵 유치처럼 개최를 원하는 여러 회원국들과의 경쟁, 혹은 제의로 열리게 되는 전자의 경우 높은 국제 인지도로 홍보와 국제적 관심면에서 프리미엄이 있다. 그리하여 성공적인 개최의 경우 국제 음악계에서 우리 음악인들의 지위는 높아질 것이다. 그러나 철저한 개최 역량에 대한 총제적인 검토와 준비가 없어 부실한 대회 운영을 했을 경우 이리 전체 음악인들의 신용도는 국내외적으로 추락함은 물론 운신의 폭을 좁히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국제 사회보다도 국내에서 신용을 잃는다는 것은 창작음악계 존립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국내 기관이 음악제 전 과정을 주도하는 것으로는 팬뮤직페스티벌이 대표적인 경우이다. 올해로 20여 년이 되는 이 음악제는 서구 모더니즘을 우리나라에 소개하는 첨병 역할을 맡고 있다. 1990년대 들어 앞서 거론했던 국제현대음악제들이 부산, 대구, 대전 등지에서 생겨났다. 이들 음악제는 대부분 매해 개최됨으로써 주관 단체의 입장에서는 매우 과중한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앞서 지적했던 것과 같이 중복 개최를 피하기 위해 비엔날레와 같은 격년제 음악제가 필요하지 않을까? 또한 이에는 이를 가능하게 하는 지원 정책이 필요하다.

음악제의 순기능

수많은 외국 음악 정보를 여러 채널을 통해 접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에게 국제현대음악제가 필요한 것일까? 앞서 언급했던 여러 이유를 차치하고 우리는 음악제의 축제성을 들 수 있다. 많은 기성 단체의 발표회가 동종의 작품들을 위한 장이라고 볼 때 음악제란 다른 종과의 만남에 의미 있지 않을까? 그리하여 늘 듣고 만나는 울타리 안의 음악이 아니라 낯설지만 제3종의 종들을 접하면서 서로를 확인, 이해, 상호 작용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더군다나 국제음악제의 경우에는 더더욱 그러하다. 이 장이 만일 창작음악의 서구 선진화를 확인하는 기능으로만 존재했다면 그것은 과감히 부정되어야 할 것이다. 이제 서구의 한정된 음악은 더 이상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보다 다양한 시각과 교류의 장이 극동 아시아에 위치한 우리의 국제음악제가 되어야 할 것이다. 최근 남미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서구 중심 음악계에 대한 반발 등은 주의 깊게 볼만한 일이다. 서구 중심의 현대음악제가 아니라 우리의 시각이 중심인 음악제를 만들어야 한다. 이 점에서 분명하고 철저한 기획이 요구된다.

음악제의 효능을 위하여

각 음악제는 그것을 떠올릴 때 생각나는 고유의 기획 정신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없을 때 다른 음악제와 차이는 지역이나 주도하는 인물, 집단 밖에는 없다. 불행히도 이는 그 음악제에 대해 더 이상 흥미를 갖지 않게 한다. 고유성이란 점에서 매해 7월초에 열리는 대구현대음악제는 좋은 예다. 이 음악제는 신인들의 데뷔 및 교류의 장이면서 학습과 실험의 장으로서 다른 기성 현대음악제와 구분되는 고유성을 갖고 있다. 물론 일관된 고유성이 다른 것과 차별을 이룰 수 있지만 해마다 다양한 주제로 이를 얻을 수도 있다. 그것이 없을 경우 매년 똑같은 인상의 백화점식 음악회 연속으로 끝나고 말 것이다. 주제는 몇 년 앞을 내다보는 장기적인 안목으로써 하나하나의 과정으로 구상될 수도 있다.

적지 않은 음악인들이 음악제의 실질 작업에 스태프로 참여하고 있다. 대부분 대학 강단에서 후진을 양성하는 이들의 참여는 곧 수업 결손과 부실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또한 작곡가로서의 본분보다는 행사 요원으로 매해 정력을 낭비하는 안타까운 일도 본다. 그러면서도 이들의 참여는 실질적인 것이라기보다도 대부분 비전문적인 단순 영역이다. 그렇다고 사업 전체를 장악하면서 총제적으로 지휘하는 기구나 인력도 거의 없다. 대회 규모는 커지지만 이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주먹구구식이다. 이제는 음악제에 걸맞는 전문 인력의 확보와 상설 기구를 가져야 한다. 따라서 문예진흥정책 역시 단체를 대상으로한 기존의 지원과 별도로 음악제를 위한 실질적인 지원과 감독제도가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국제 행사에 걸맞게 인터넷과 같은 정보망을 이용해야 한다. 세계음악제의 경우 홍보에 있어서 홈페이지 구축 등을 일찍부터 시도했다면 많은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홈페이지 구축은 행사전과 진행 중은 물론 이후에도 그 효과를 지속시키는 장점이 있다. 현재 한국전자음악협회의 제4회 서울 컴퓨터음악제는 외국 작품의 공모에서 선정, 프로그램 작업 등 그 진행 상황을 전 세계에 인터넷 http://plaza.snu.ac.kr/∼digit/CMF97E01.를 통해 홍보하고 있다. 이러한 네트워크를 이용할 경우 특정 개인중심의 국제 교류라는 이전의 관행을 벗어나 독자적으로 음악제가 추구하는 목적에 맞춰 교류를 할 수 있다. 또한 전 세계 음악전문 사이트에 링크됨으로써 전 세계의 음악인과 음악제를 대상으로 일을 추진할 수 있다. 또한 네트워크와 같은 통신망을 활용할 경우 전국의 음악인들이 공동의 목적으로 단일 사업을 추구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이제 우리는 소위 우리 현실에 국제현대음악제가 너무 남발되고 있음을 인정하고 역량을 모으는 일을 해야 할 것이다. 97 세계음악제 경우만 하더라도 우리나라 전체음악인들의 잔치로 보기에는 서울 중심적이다. 초기부터 그 조직에 있어서 전국전인 배려가 있었다면 행사의 집중도는 높아졌을 것이며 방문 단체들의 활용 등 효용성을 높이는 방법을 찾을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이 행사를 전후해 여러 국제음악제들이 열리고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 이는 큰 낭비가 아닐 수 없다. 분명히 우리 현실로는 비현실적이겠지만 지방 예산에 의한 행사들이 세계음악제와 같은 큰 행사에 공동 주관 혹은 후원으로 참여할 수 있었다면 예산, 홍보, 규모에 있어서 더욱 알찰 수 있지 않았을까? 또한 많은 설득과 이해가 뒤따라야 할 일이지만 이런 기회로 전국의 작곡가 모임이 하나로 힘을 합하는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한다. 물론 낭만적인 생각이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각 지역마다의 국제현대음악제들이 과연 타당한 것인가에 대해 우리는 냉철히 생각해야 한다. 그만큼 국제현대음악제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면 효율적이며 기능이 강화된, 우리 창작계를 대표하는 국제현대음악제를 기획하는 것이 생산적이지 않을까? 필자는 솔직히 현재 서울을 비롯 각 지역의 국제음악제들이 언제까지 지역사회의 도움을 얻어 지속될 것인지 의문이다. 현대음악이란 점과 국제교류란 점에서 큰 축제는 하나면 족하다. 그리고 서울 중심이 아니라 인접도시들이 공동으로 하거나 순회하며 개최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이런 기획을 통해 창작인들끼리의 무관심도, 지역 간의 무언의 벽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단일화가 비현실적이라면 이미 언급했던 국제음악제로서의 효용성을 높이는 일들이 추진되어야 한다. 또한 외국 음악가와의 교류도 중요하지만 국내 음악인들 간의 상호 관심사에도 주목하여 국내 음악인들의 교류의 장이 활발해지기를 바란다. 대부분 주관 단체회원 중심의 특정 지역인들의 장이 되고 만 현 음악제는 외형상 국제적인 것인지도 모르지만 정작 타 지역 작곡가에게는 무관심하다. 음악제를 통해 여러 지역 작곡가들의 작품 및 인사교류가 국제교류 못지 않게 활발해야 할 것이다. 물론 일부 원로 작곡가의 경우 초대되는 경우가 많지만 이는 교류가 아니다. 젊은 작곡가들 간의 교류가 활발하길 바란다. 그들에게 보다 많은 기회를 주어야 한다. 진정한 교류는 어느 한 지역의 잔치로만 남을 수 있는 음악제를 전국적인 것으로서, 그 기능을 증폭시킬 것이다. 이에 덧붙여 앞으로 해결해야 할 것은 다양한 장르의 포용이다. 한국문화예술진흥원 및 기업 등 스폰서의 이해가 뒤따라야 하는 대목이지만 단일 발표회에서는 불가능했던 관현악 및 합창 등의 대편성이나 실험 작품의 생산터로서의 음악제를 뜻한다. 물론 전문화한 소규모 음악제의 필요성도 인정하지만, 아직 우리에게 없는, 이상의 일들이 가능한 본격적인 창작계의 역량이 총합된 현대음악제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