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자율과 창의성 달성 위해 불필요한 간섭 배제한 불간섭주의
-예술촌의 운영과 미래성
서연호 / 본지 편집자문위원, 고려대 교수
카나자와시의 공공홀 운영재단
필자는 지난 여름 방학에 교육부가 지원하고 춘천의 한림대학 일본학연구소(소장 池明觀 박사)가 주관한 해외지역 연구의 일환으로 일본 카나자와 시의 문화분야를 조사 연구했다. 이번 조사연구를 통해서 얻은 결과를 여기서 몇 차례 간략히 소개함으로써 국내 해당 분야의 방향 설정과 운영에 참고자료로 제공하고자 한다. 먼저 그곳 예술촌과 직인대학교의 운영과 미래성에 대하여 논하고자 한다.
한국인들에게 카나자와 시는 거의 생소하다. 15년 동안 수십 차례 일본을 왕래한 필자에게도 그곳은 처음이었다. 1995년 기준 국세조사통계에 의하면, 그곳은 인구 30만 이상의 일본 전국65개 도시가운데서 45만 4천 명으로 29위에 속한다. 인구에 비해서 행정구역 면적은 전국13위에 드는 4만 6천 8백km, 인구밀도는 59위, 도시공원 면적은 13위에 드는 쾌적한 환경조건을 지녔다. 한국의 춘천시와 유사한 조건을 지녔다. 또한 자주재원비율은 전국 39위, 경상수지비율은 토요타시 다음으로 2위(66.54%)로서 도시정비, 시민복지를 위한 투자를 많이 하고 있다. 적은 인구수에 비해서 소학생수27위, 중학생수 38위, 고등학생수 7위, 대학수 7위, 대학생수 13위로서 전국적으로 교육열이 높은 도시이다.
에도시대의 카나자와는 백만 석 대명(大名, 쌀 1섬은 약 180L, 무가시대에 지방영주나 무사에게 지급된 토지나 녹봉의 단위였다)인 마에다씨의 성하(城下) 도시로서, 에도(오늘의 동경), 오사카, 교토 다음으로 큰 도시였다. 에도시대 이전의 이 지역은 카나자와 사찰이라고 불리는 불교의 정토진종 신도들에 의한 자치정부이자 전국 대명들의 권한이 미치지 않는 일대 종교도시였다. 그곳에는 카나자와 사내마을(寺內町)이라 불리는 성채(城砦)도시가 있었는데, 이것이 카나자와의 시작이다. 오다노부나가시대에 사내마을은 함락되어 성하도시로 발전해 나갔다. 에도시대 마에다씨의 노력으로 17세기 후반에 오늘날의 도시원형이 만들어졌다. 18세기 이후에는‘작은 에도(小江戶)’라고 불릴 정도로 아름다운 도시로 발전했다. 카나자와는 교토와 더불어 2차대전시 미군의 폭격을 맞지 않은 도시로서 옛 문화재가 거의 그대로 남아 있어 일본 최고 관광도시의 하나이다. 훌륭한 환경과 문화, 유리한 경제와 기술이 오늘날의 유명 도시를 만든 바탕이 되었다.
카나자와 시에는 공공홀(公共ホ–ル)운영재단에서 관리하는 예술촌이 지난해 완공되었다. 이 재단(약칭)은 예술촌 이외에도, 뒤에서 소개하게 될 관광회관, 문화홀, 시민예술홀 등 4개 기구를 관장한다. 모든 시설은 시당국이 수년간 계획하고 저축하고 건설해서 만들었지만, 일단 완공된 이후에는 시측(시장, 공무원, 의회)의 불필요한 간섭을 배제하고 자율성을 높이며, 효율적이고 전문적인 운영을 위해서 재단을 설립한 것이다. 재단 기구에는 이사회를 상급조직으로 해서 그 밑에 기획운영위원회, 사무국, 분야별 자문위원(어드바이저)들로 구성돼 있다. 자문위원은 재단에서 해당 분야의 최고의 전문인으로 위촉하지만, 위원의 입장에서 보면 연중 무보수로 자원 봉사한다. 임기는 1년이고, 정규회의는 연3회 한다.
재단이 설립된 이후에도 산하의 문화 기구들은 시의 예산지원으로 운영된다. 자체 수입은 거의 없거나 있다고 해도 미세하다. 시와 재단 사이의 사무협조를 위해 시공무원과 재단직원이 공동으로 운영 및 관리에 종사한다. 월급은 시공무원이 약간 높은 수준이다.
예술촌의 조직 및 시설현황
예술촌은 1996년 10월에 문을 열었다. 시민 누구든지 작품을 만들어 보고, 느껴보고, 배우고, 자기 소리를 낼 수 있는 창조의 공간으로서 설치되었다. 1920년대 중반기에 건축된 대화방적의 창고를 매수하여 새로운 시설로 개보수한 것으로 부지면적은 97,289㎡, 건축면적은 3,261㎡이다. 건물 내부에는 환경에 대한 인식을 체험적으로 높이기 위한 에코라이프공방(工房, 피트1), 지역연극의 거점인 드라마공방(피트2), 전면에 수상무대(水上舞臺)까지 배합시킨 개방적 장소인 오픈스페이스(피트3), 연습과 발표공연이 가능한 뮤직공방(피트4), 전시와 제작이 가능한 아트공방(피트5)등이 연이어 있고, 유럽풍의 가페 및 그릴이 입구에 붙어 있다. 또한 교외에 있던 옛 농가를 예술촌의 마당 한 구석에 이축해서 문화재로 보존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2층은 전시실로, 아래층은 일본식 공연장 및 문화교류의 공간으로 널리 사용하고 있다.
예술촌의 시측 사무직원은 촌장 밑에 보좌(1), 주사(1), 촉탁(2)이 있고, 재단에서 위촉한 전문운영자로서 총합디렉터(1)와 서브디렉터(1), 각 공방 이용자회의 대표 가운데서 위촉된 분야별 디렉터(8)가 있다. 총합 및 서브디렉터는 예술촌의 운영관리에 관한 사항, 각 공방 디렉터와의 협의, 전체 이용의 활성화, 이용단체간의 조정, 각 공방간의 조정 등을 맡는다. 분야별 디렉터는 시설이용의 활성화 전략, 공방 독자사업의 기획, 이용자로부터의 문제점 및 과제의 협의, 이용단체(자)의 조정, 지역사회와의 관계 등을 맡는다.
이들은 디렉터회의를 통해 이상의 모든 사항들을 조정하고 협의하여 결정한다. 이른바 디렉터시스템으로 운영된다. 모든 디렉터는 재단측에서 위촉하며, 임기는 1년, 정례회의는 월1회, 기타 임시회의를 갖는다. 재단측에서 위촉한 예술촌의 자문위원(어드바이저)은 운영에 관한 차원 높은 지도와 조언과 방향을 제시한다. 임기는 1년이고, 정규회의는 연3회, 연극(3), 음악(1), 미술(1) 등 5인으로 구성되었다.
모든 시설은 24시간 사용할 수 있다. 심야(자정∼6시), 오전(6시∼12시), 오후(12시∼18시), 야간(18시∼24) 등 4단위로 구분하여 단위당 사용료는 청소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각 1천 엥(한국돈 약8천 원)인데, 피트2에 부설된 음악연습실과 회의실은 5백 엥에 불과하다. 물론 예술 이외의 다른 목적의 사용으로는 대관 되지 않는다. 앞서 지적한 피트1은 148.34㎡으로 전시, 제작, 연수, 음악, 연극 등의 연습이 가능하다. 피트2는 842.27㎡으로 연습, 발표, 제작, 연수가 가능하다. 여기에는 2개의 음악연습실이 겸비되어 있다. 피트3은 계단부분 502.91㎡, 창고부분 268.54㎡, 수상무대 6×6m의 규모로 공연, 전시 연수, 교류, 연습, 휴식이 가능하다. 피트4는 정원 1백 명인 중앙스튜디오 240㎡ 이외에 그보다 작은 스튜디오가 5개 있고, 최신식 완벽한 음악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작은 스튜디오는 2시간에 3백 엥, 1시간 추가에 불과 150엥의 사용료를 낸다. 모든 요금은 연중 동일하고, 냉난방비가 포함된다. 약간의 소비세가 가산된다. 7일간을 초과해서 사용할 때는 5할이 가산된다.
운영현황 및 미래성
1996년 10월부터 1997년 6월까지 예술촌의 운영현황을 보면, 카나자와 시민들의 창조적인 의욕을 짐작할 수 있다. 사용자 단체 수는 4천 612단체, 이용자수는 12만 875명, 입촌자 수는 21만 6천명, 관찰자는 수는 318단체에 6천402명이었다. 불과 9개월만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이용하거나 관람하기 위해 찾아들었다. 그동안 267일을 개관했고, 음악분야인 피트4의 사용시간은 36.8퍼센트, 나머지 모든 시설의 사용률은 44퍼센트였다. 사용률이 높은 시설은 피트2와 피트5이다.
예술촌 소개에 덧붙여서 동일한 영역에 설립되어 있는 사단법인 카나자와 직인대학교에 대하여 언급해 두고자 한다. 이 대학은 카나자와의 우수한 전통문화를 계승하고 현대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예술촌과 함께 개교되었다. 학비는 무료이고 실험강좌비의 일부를 수강자가 부담할 뿐이다. 과정은 3년, 연수일은 월 2회, 주로 야간 7시부터 9시까지 연수한다. 입학자격은 30∼50세의 기술자 및 기능자를 대상으로 하며, 강사는 해당분야의 최고 경험자와 기술자들이 맡는다. 대학에는 역시 최고기구로 이사회가 있고, 학교장, 사무장, 사무차장(3), 사무직원(1) 등이 운영, 관리를 맡는다.
교양강좌, 견학체험, 기술습득, 제작 및 실습 등으로 연수가 진행된다. 대학에는 사무실, 연수실, 회의실, 실습실, 각종 도구와 재료, 창고 등의 모두 구비되어 잇다. 제1기의 연수자 정원은 석공(5), 기와(5), 미장이(5), 정원사(5), 목수(10), 다다미(5), 문짜기(5), 판금(5), 표구(5)등 50명이다. 연수 희망자는 적지 않지만 자격미달로 입학이 허가되지 않아서 현재의 연수자 수는 정원에 미치지 못한다. 대학측에서는 각 업종 조합에서 추천을 희망하고 있으며, 해당 전문직업인으로서 일생을 바칠 인재를 증시하고 있다.
예술촌과 직인대학은 현재는 물론 장래에도 운영재산의 적자를 면할 수 없다. 누구보다도 이 사실은 그곳 시장과 시의 회원들이 잘 인식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엄청난 투자를 감행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 마디로 카나자와의 발전을 위한 미래에의 투자라는 목표이다. 전통의 보전과 계승, 삶의 질을 높이는 새로운 도시문화의 수립, 문화관광지로서의 소득증대, 지속적인 발전의 원동력이 되는 기술과 창조력의 신장 등을 위해 그들은 문화투자를 실천하고 있었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진정한 자율과 창의성을 달성하기 위한 공무원들의 불간섭주의이다. 이것은 재단이라는 조직으로 제도화돼 있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전문가들에 의해 운영되고 있으며, 1년에 한 번씩 객관적인 평가를 통해 방향과 방법을 수정해 나가고 있다. 전문화된 시공무원과 재단의 사무원들이 협력하여 시설관리와 사무를 뒷받침해주고, 실제 창작이나 교육이나 실습은 해당 전문가들에 의해 이루어지고, 방침이 수립되는 과정을 통해 그들은 시민의 세금을 시민을 위해, 시의 미래를 위해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다. 우리에게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참고해야 할 제도이자 운영방법으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