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들의 춤 이해를 높히려는 다양한 작업
- 줄거리가 있는 무용공연
장승헌 / 무용평론가
세계연극제 97서울/경기 공식초청 무용단체로 내한공연을 마련한 독일 쟈샤발츠 무용단
좀처럼 접하기 힘든 독일의 현대무용 공연이 선보였다.
건국이래 가장 큰 연극축제인 '세계연극제 97서울/경기'의 공식초청 해외무용 단체로 내한한 독일 쟈샤발츠무용단 Sasha Waltz and Guests, Germany은 1993년 창단, 베를린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무용단의 역사가 몇 년 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 활동영역을 세계무대로 넓혀하고 있는 야심만만한 단체이다.
이 무용단이 짧은 활동 경력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으로 관심을 모으고 있는 이유는 「여행 3부작」이란 작품을 공연, 그로닝겐 안무경연대회에서 안무상과 「베를리너자이퉁」지의 비평가상을 수상한 후 독일문화원의 적극적인 지원아래 해외공연을 다니면서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고 한다.
세계연극제 개막 분위기를 고취시키기 위해 이들이 선보인 작품은 「코스모나우텐 거리에서」(9.1∼4, 세종문화회관 소강당)이다. 각기 다른 상황에 처한 사람들을 모델로 삼아 실제 인터뷰한 내용을 안무 모티브로 사용한 「코스모나우텐 거리에서 Allee der Kosmonauten」는 다소 과장되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끊임없이 충돌하면서 상황을 연출하는 6명의 가족 얘기를 다루고 있다.
이미 '독창적이고 숨막히는 아이디어, 부조리할 정도의 재치로 베를린 무용계를 한단계 끌어 올렸다'는 평을 받을만치 우리 관객들에게도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무용수들은 몸을 날리고, 서로 부딪치고, 탁자 밑으로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 아코디온을 켜고, 진공청소기와 함께 춤을 추고, 나무판자 사이를 곡예하며 무대를 헤짚고 다닌다.
마치 잘 훈련된 중국의 곡예단을 보는 듯한 충격의 연속이 진행됨과 동시에 분절되는 동작들은 한치의 오차도 없을만치 완벽한 호흡을 이루고 있다. 아울러 여러개의 모니터에 나타난 영상이미지는 또 하나의 무대미술의 기능을 수행, 작품과 연계되어 색다른 분위기를 연출한다.
특히 출연자들의 무표정한 얼굴 연기는 모든 상황을 읽을 수 있을만치 섹스를 포함한 가족구성원의 여러 갈등이 적나라하게 묘사됨으로서 극적 긴장감과 함께 위험성까지 표출된다.
독일 무용계는 부퍼탈의 피나 바우쉬와 존노이어 마이어, 이스마엘 이보, 호프만 등 개성 강한 안무자들이 활동하고 있는데 이제 이 쟈샤 발츠의 이름을 기억해도 좋을 법하다.
연극제 개막 직후 공연이 펼쳐진 관계로 관객들의 충분한 관심을 끌지는 못했으나 그동안 무용극을 표방하며 줄거리를 짜다보니 춤의 본질을 잊어버리고 있는 우리나라 안무자들에게는 한번쯤 곱씹어 봐야 할 작품이 아닌가 싶다.
춤으로 풀어놓은 남과 북의 이야기 - 서울시립무용단의 「하얀 강」
세계연극제에 공식초청된 국내무용단체들 중 대부분은 이미 몇 년전 발표된 작품을 공연한 것과는 달리 서울시립무용단은 정기공연을 겸해 신작 「하얀 강」(9.11∼12,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을 무대에 올렸다.
'무용의 건축가'라는 명성을 얻고 있는 서울시립무용단 배정혜 단장이 스스로 오랫동안 생각해 온, 그리고 무용장르에서 좀처럼 다루지 않은 분단 한국의 현실을 소재로 한 무용을 한편 남기고 싶다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D.M.Z라는 부제를 단 이 작품은 지구촌에서 유일한 분단 국가인 한국의 지리적 상황의 아이러니와 아픔, 통일에 대한 염원, 그리고 우리 민족이 나아가야 할 이상향을 연계시켜 춤으로 풀어낸 무용 서사시로서 지난 1995년 서울 정도 600주년을 기념해 선보인 「서울까치」의 연작이다. 실제로 상당부분 구성과 안무의 변형이 눈에 들어옴을 느낄 수 있었다.
막이 오르면 소나무와 까치가 한 폭의 한국화를 그리는 가운데 서서히 조명의 강한 빛을 받으며 무용수들의 미니멀적인 움직임을 통해 한반도를 둘러싼 여러 상황들을 얘기해 주고 있다. 또한 순수한 자연과 인간 그리고 다가올 긴장감을 예고하는 듯 김삿갓이 연을 날리며 이 작품의 화자로 등장한다.
무대를 잇고 있던 연줄이 끊어지고 방패연으로 상징화된 우리 민족의 한과 고통의 역사가 여자 군무의 빠른 움직임으로 처리된다. 이어서 외세로 설정된 검은 가죽옷을 입은 남자들의 난폭한 폭력과 강한 발움직임이 주류를 이루는 제2장 분단의 장이 펼쳐진다. 그리고 6.25 전쟁·암전 속에서 강한 조명을 받으며 드러내는 철조망과 제복을 입은 군인들의 모습, 비장한 D.M.Z의 싸늘한 분위기, 여러 형태의 춤동작과 춤의 대형이 다양하게 변주되는 가운데 무대 전체를 뒤덮는 삐라와 신문 등이 떨어진다.
이같은 도발적인 상황이 작품 곳곳에 너무 자주 연출됨으로서 다소 식상한 느낌을 받게 됨은 어쩔 수가 없었다. 또한 계속 전개되는 혼란스러운 군무는 긴장과 격정의 연속이고 군무들의 춤 또한 상징성도 드러나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원형 철조망으로 설정된 D.M.Z의 황량함과 기다림 속에 내리는 하얀 강물이 흘러내리는 마지막 장면은 무척 서정적이기까지 하였다.
특히 장사익의 「하는 가는 길」이 배경음악으로 녹아들며 긴장되었던 분위기는 어느새 한스러움으로 대치되고 모두의 열망처럼 쉬지 않고 하얀강은 쏟아내리고 있었다.
세종문화회관 대강당 공간을 채우려는 안무자의 고심한 흔적에 비해 「하얀 강」의 실제 무대에서의 감동은 그렇게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
그러나 한국 춤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다양한 시도와 동작개발, 자칫 비탄조로 흐르기 쉬운 내용을 건져내어 메시지를 강하게 부각시킨 역사의식과 작품 구성력은 한껏 돋보였다. 또한 소나무와 까치의 춤은 소담스런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 관객들의 뇌리에 강한 인상을 심어 주었다.
이 작품은 앞으로 계속 손질되어 서울시립무용단의 고정 레퍼토리가 될 것으로 믿는다.
제주지역 방송사의 신선한 특별기획 - 서울발레시어터의 창작발레 「느영나영」
지난해부터 제주지역 관객과의 만남을 지속적으로 펼치고 있는 서울발레시어터(단장/김인희)가 KBS제주 방송총국 개국 47주년 특별기획으로 제주도 설화를 창작발레화한 「느영나영」을 초연(97.9.11∼12, 제주도문화예술회관)하여 제주지역 무용애호인들의 뜨거운 호응을 얻어냈다.
초연은 대부분 서울 무대에서 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불식시키거나 하듯 서울발레시어터는 지난해 「바람의 노래」, 「흑과 백」, 「백조와 플레이보이」를 서울공연에 앞서 제주에서 먼저 선보였음은 물론, 지난 9월 19일 개최된 제2회 광주 비엔날레 특별초청 행사 「옷을 위한 움직임」 공연을 통해서는 현대발레 「Now and Then(안무 제임스전)」을 초연하기도 했다.
창작발레 「느영나영」은 제주도 민요인 오돌또기와 칠선녀 이야기를 엮어 전 3막으로 꾸민 발레극이다.
특히 제주지역의 문화관광상품으로 개발, 1998년 제주도에서 개최되는 '세계 섬문화축제'를 위해 1년 전 이미 작품 제작을 의뢰한 KBS 제주 방송총국 관계자들의 열린의식과 준비로 공연이 이루어진 만큼 서울발레시어터 측에서도 작품에 여러 가지 애쓴 흔적이 녹아 있다.
비교적 짧은 준비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안무자 제임스 전은 발빠른 움직임으로 음악을 선곡하고 대본의 뼈대를 만들었다.
스스로 “이 작품은 미완성이며 내년에는 더욱 완성도를 높여 명실상부하게 제주도를 대표하는 문화상품이 되도록 하겠다”고 얘기한다.
창작발레로서 골격을 갖추기에는 음악과 무대장치 그리고 군무진의 확보와 함께 제주 민속춤을 변형한 캐릭터 춤 개발 등이 안무자에게 숙제로 남겨졌다.
예술가가 작품을 양산해 내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그러나 1995년 2월 창단된 신생 민간 발레단체가 3년도 채 못되어 20여 편 넘는 공연 레퍼토리를 확보, 국내는 물론 해외진출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서울발레시어터의 발레 대중화와 한국발레의 토착화를 위한 노력은 일단 지켜보는 입장에서 보노라면 다소 숨가쁘기는 하지만 이 발레단이 우리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발레 애호인들에게는 큰 기쁨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