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기획 / 1998년 사진영상의 해. 영상시대 사진의 역사와 역할
사진예술이 사실성의 신화를 벗고 예술로 생존하고 발전할 수 있어야…
박주석 / 광주대 교수
'미디어 즉 메시지란 것은 전기 시대의 표현으로는 아주 새로운 환경이 미디어에 의해 만들어 내어진다는 것을 뜻한다. 그렇지만 보통의 인간은 이 새로운 환경을 눈치채지는 못하고, 그 내용에만 정신차린다. 왜냐하면 새로운 환경의 내용은 낡은 미디어이기 때문이다. 즉 TV의 내용은 영화인 것이다. TV는 환경적environmental으로 되어서 지각할 수 없지만, 영화는 과거의 환경이기 때문에 보통 사람도 지각할 수가 있다. …(중략)…
새로운 환경이 등장해서 비로소 사람들은 낡은 환경을 깨닫지만 그때 낡은 환경은 예술로서 생각하게 된다. 농경시대에 있어서는 사람들은 자연을 예술의 대상으로는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기계시대에 들어와서 비로소 자연을 미적, 정신적 가치의 근원으로서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전기시대에 들어와서, 우리들은 낡은 환경-기계시대-을 예술형식으로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마샬 맥루한, 「인간의 확장」중에서-
■예술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요구하는 새로운 환경들
많은 사람들은 오늘날의 세계를 끝없이 보이는 거울방에 비유한다. 사진영상 Photographic Image를 통해 자신과 주변의 삶 그리고 환경을 반영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를 둘러싼 이미지들 때문에, 우리의 삶의 환경이란 과거와 같이 자연이나 도시가 아니고, 미디어를 통한 이미지가 된 것이다. 현재는 사진과 TV 등의 영상매체 때문에 세계를 우리가 원하기만 한다면, 가보지 않고도 영상을 통해 다 볼 수 있고, 실제 사진으로 찍혀지지 않은 세계란 존재할 수 없게 되었다.
사진은 발명 이래로 기술적 진보를 거듭해 새로운 영화나 TV 같은 영상매체를 탄생시켰고, 인간의 시각적 확장을 가능하게 해왔다. 그러면서 사진은 인간의 세상을 보는 눈의 표준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오늘의 현실에서 인간들의 가치판단의 근거가 되는 정보와 경험, 지식은 우리 실제 삶에서 나온 것이라기보다는 사진영상에 의한 것이 더 많다. 그래서 많은 학자들은 우리의 환경이란 미디어이거나 또는 사진영상이라고 단정한다.
우리가 사는 현대사회의 특징은 마샬 맥루한 식으로 얘기하자면, 전자시대이며 영상시대라고 규정될 수 있을 것이다. 일찍이 1930년대 발터 벤야민은 그의 유명한 논문 '기계복제시대의 예술작품'에서 사진이라는 사상 유래가 없이 정밀하고 간편한 기계복제 방식의 도래와 더불어 생겨난 새로운 예술의 개념과 그에 대한 인식의 필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는 벤야민이 말한 기계시대와 맥루한이 말한 전기시대를 넘어서 전자시대의 한복판에 서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로 하여금 예술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가질 것을 강요하고 있다. 우리에게 낡은 환경은 무엇이며, 이것은 과연 인식 가능한 것인가. 가능하다면 그것은 현재 예술로 어떻게 기능하고 있으며 그런 새로운 예술개념을 우리는 우리의 사고와 작업에 반영하고 있는가 등의 질문에 답해야만 하는 시대에 있는 것이다. 예술이란 자아와 자아를 둘러싼 세계에 반응하고 이를 해석하는 인간행위이다. 즉 자아에 대한 성찰이며, 세계에 대한 발언인 것이다. 적어도 현대예술의 정의는 그렇다. 개구리의 리얼리티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자. 과거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개구리는 실제 살아있는 개구리가 전부였고, 그들에게 개구리의 리얼리티는 논에서 뛰는 실제의 모습이 전부였다. 그러나 지금 시대의 사람들에게 개구리는 TV의 동물의 왕국에 나온 개구리, 심지어는 컴퓨터 게임에 나오는 개구리가 개구리의 리얼리티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인간을 둘러싼 삶의 조건이 첨단매체의 산물이라 할 수 있는 영상(주로 사진영상을 가리킨다)인 시대에 그 영상 즉 이미지들 그리고 새로운 삶의 환경을 다루는 그것을 대상, 주제로 하는 예술가들이 등장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것이 바로 새로운 예술개념과 조건의 탄생이며 우리가 인식해야 할 환경 즉 매체환경의 변화이다. 이러한 현대의 문화적 상황에서 인간들의 가치관, 세계관이 사진과 사진이미지를 기초로 해서 형성된다는 자의식은 오늘날의 사진과 영상작업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된다. 실제 현대인들의 행동은 그들이 직접 경험했던 사실보다는 사진이나 TV를 통해 보았던 가공된 현실에 더 깊은 영향을 받는다. 조금 극단적으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그들은 도시의 실질적 삶이나 전원 풍경을 마치 옛날 이야기나 픽션으로 생각하며, 오히려 TV나 사진에 나온 상황을 현실의 환경으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그들은 사진을 그리고 사진영상을 비평하려 든다. 그것이 그들에게 현실이기에 당연하게 여겨진다. 오늘날 사진영상의 문화적, 예술적 중요성이 강조되는 가장 핵심적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달라진 매체의 환경에서 예술은 어떤 모습을 가질 것인가?
오늘날 우리 문화의 양상과 변화의 추세는 전반적인 사회의 가치체계와도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필연적으로 예술을 보는 관점이나 수용하는 태도의 변화를 수반하기 마련이다. 또 거기에 더해 예술의 개념과 종류까지도 새롭게 정의되고야 만다. 그런 의미에서 앞에 말한 맥루한의 말은 첨단산업 시대의 산물로 새롭게 등장한 다양한 매체들을 우리가 어떻게 수용해야 하며, 이렇게 달라진 매체의 환경에서 예술은 어떤 모습을 가질 것인가에 대한 대답에 많은 점을 시사한다.
팝아트의 작가들은 이런 새로운 인간의 조건과 새롭게 형성된 자아에 눈길을 돌려, 이를 주제로 작업을 한 예술적 시도로 잘 알려져 있다. 팝아트는 먼저 영국에서 시작되었으나 영상에 의한 대중문화를 먼저 발전시킨 미국에서 꽃을 피웠다. 1960년대 미국인들 삶의 중요한 부분이 된 대중문화의 이미지들이 예술의 소재로 주로 등장했다. 대표적인 작가가 그 유명한 앤디 워홀인데, 그는 코카콜라 병의 이미지, 음식 캔의 이미지, 마릴린 먼로나 엘비스 같은 대중스타의 이미지를 채용해서 사진인쇄적인 방법인 실크스크린 기법으로 자신과 미국인들을 둘러싼 환경을 주제로 한 예술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성공할 수 있었다. 이들 이후 사진이 삶의 중요한 조건이라는 사실이 인식되면서, 사진의 사실성에 도전하고 그 허구를 밝히려는 작업이 등장했는데, 그것이 바로 포토리얼리즘이다. 사진보다 더 사진답게 그림을 그려, 사진의 사실성의 신화에 도전하겠다는 그들은 사진을 본격적인 예술 논쟁의 중심으로 끌어들였다는 이유로 포스트 팝으로 불린다. 척 크로스 등이 대표적 작가로, 사진 이미지가 현대를 지배하는 힘이라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입증했다.
■대상의 객관적 재현이라는 멍에 벗고 예술매체로의 가능성 확대
우리 인류에게 있어서 사진의 한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사실의 정확한 증거, 역사의 충실한 목격자, 사건 전달의 정확성과 신속성, 추억과 기억의 거울, 예술적 표현의 매체 그리고 뛰어난 자연의 복제수단 등은 비교적 최근까지도 사진의 가장 중요한 가치이자 고유영역으로 확고하게 인식되고 있었다. 사진은 이러한 인간의 신뢰를 바탕으로 사회의 가장 권위 있는 의사소통 수단으로 자신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그 전성기는 시기적으로 보면 흑백사진이 기술적인 면에서 오늘날의 수준에 다다른 1920년대부터 컬러 텔레비전의 보급이 전 인구의 차원으로 확대된 1970년대까지 대략 60여 년에 이른다. 그러나 그러한 사진의 전성기는 앞에서 열거한 상황의 변화와 몇 장의 사진으로는 표현이 불가능해진 사회의 복잡한 질서로의 이행으로 인해 그 막을 내릴 수밖에 없게 되었다.
1940년∼50년대 전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던 매체의 하나였던 라이프Life가 1972년 폐간됐던 일(지금의 라이프는 그 뒤 성격을 바꾸어 재 창간한 것이다)과 코닥KODAK과 같은 거대한 사진산업체가 그간 사진기술의 핵심적 근간이었던 아날로그 방식의 화상재현을 포기하고 디지털 이미지 산업으로 눈을 돌린 것은 사실의 결정적 증거로서 사진의 권위 상실을 증명하는 대표적인 사실에 해당된다. 따라서 지금의 사진가들에게는 환경의 변화에 따른 새로운 사진의 가치체계가 요구되는 현실이다.
전통적 사진의 측면에서 보면, 새로운 환경 즉 컴퓨터 문화와 TV 등의 다양한 영상매체의 영향력 확대는 사진을 낡은 환경으로 만들었다. 사진은 사실성의 신화를 벗고 예술매체로 본격 기능하기 시작했다. 사진은 미래에 예술의 기능으로 생존하고 발전할 것이다. 지금부터 150여 년 전 사진이 발명되고, 쓰임새가 확대되자 한 화가 즉 폴 드랄로슈는 '오늘로 회화는 죽었다' 고 했다. 즉 회화의 일반적 사회적 기능을 사진이 대체하자 회화의 역할이 없어졌다고 했다. 그러나 회화는 그 이후 비약적 발전을 거듭했고, 예술의 중심역을 해왔다. 지금 이 순간 윌리엄 미첼 Willam Michell과 같은 학자는 엄숙히 사진의 죽음을 선포한다. 사실성에 근거를 둔 사진의 기능은 이미 다른 영상매체로 대체되거나 쓸모 없는 것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 순간 사진은 사실의 기록, 대상의 객관적 재현이라는 멍에를 벗고 자유로운 상태에서 예술매체로의 가능성을 확대시키고 있고 발전시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