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문화의 보존과 문화교육기관으로서의 박물관으로 키워 나가야…
대담자 :
최종호 / 용인 한국민속촌 박물관장
김홍남 / 이화여대 박물관장
최종호 선생님 안녕하셨습니까? 무척 찾아 뵙고 싶었지만 바빠서 그러지 못했습니다. 오늘에야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김홍남 저도 찾아 뵙고 싶었고 민속박물관도 한번 보고 싶었습니다.
최종호 제 소관으로 한국 민속촌 안에 있는 미술사박물관과 민속박물관이 있습니다. 제 자랑 같습니다만 저희 민속박물관은 국내 어떤 박물관보다도 새로운 전시 기법과 주제가 있는, 가족 이야기가 담겨 있는, 박물관으로 꾸몄기 때문에 많은 분들이 호평을 해주시고 있습니다. 한번 방문해 주시면 좋은 시간을 가지리라 믿습니다. 전에 저도 김선생님께서 이화여대 박물관을 맡으시면서 꾸몄던 '매화를 찾아서' 전시회를 아주 감명 깊게 보았고 그 전시회가 우리나라 기획 특별전에 있어서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최근에 '우리 옛 돌조각의 힘'이라는 기획특별전을 열어서 좋은 반향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김홍남 최관장님께서 좋게 보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주위에서 '좋은 반응을 보여주셔서 대단히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대학 박물관이라는 곳이 콜렉션도, 인력도, 재정에도 한계가 있기 때문에 그 한계 내에서 좋은 전시를 해 보려고 노력을 하죠. 그 두 전시가 뭔가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다행스럽게 생각하는데요, '돌조각의 힘'은 제목이 좋다고들 합니다. 제목이 아주 역동적이고 제목만 들어도 힘이 나는, 그래서 전시를 보고 싶은 마음을 일으킨다는 평이었습니다. 사실 모든 것에 있어 제목이 참 중요하지요. 제목으로 핵심을 찌르는 것 아니겠습니까? 책도 그렇고 사람의 이름도 말하자면 그 사람의 제목이 된다고 볼 수 있겠죠? 이름도 그렇고 영화의 제목도 그렇고. 우리가 지난번에 전시했던 '탐매, 매화를 찾아서'도 사실은 그 제목 속에 핵심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최종호 제가 이 두 특별전에서 감명깊게 보았던 것은 무엇보다도 이러한 전시를 함에 있어서 전시장을 방문하는 사람과 박물관에 근무하는 사람들 사이에 지식, 정보 이런 것들을 상호 교류할 수 있도록 소위 총체적인 접근방법을 통한 다양한 전시 기법과 전시 매체를 이용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학습과 교육, 위락 효과를 제공하였다는 점입니다.
김홍남 이 두 전시회의 의의는 그 주제가 가까우면서 사실은 멀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으로서 가까운데도 우리가 너무 멀리해 왔다는 것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돌조각의 힘' 전시회의 경우, 사실 어딜 가나 돌조각은 널려 있습니다. 우리가 소풍가는 서호능이나 동구능 그리고 경주 괘능 같은데 가면 석조각은 많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그 가치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돌조각의 힘' 전시회는 그렇게 생각없이 지나쳐 버리는 것의 문화적 의미를 끄집어 내주는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최종호 그렇습니다. 박물관은 우리 생활 속에 점차 가까이 다가오고 있고 또한 박물관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박물관을 과거의 골동품 창고처럼 취급하던 그런 시절을 벗어나 우리 생활 속에서 지혜와 흥미와 즐거움을 줄 수 있는 공간으로 점차 탈바꿈시키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에 박물관이라는 것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과 생각이 점차 바뀌고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박물관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갖고 계시는지 듣고 싶습니다.
김홍남 박물관은 수집도 해야 되고 보존도 해야 되고 그러한 일을 우선 해야 되겠지요. 그런데 요즘은 다른 것들이 너무 앞서가다 보니까 사회와의 연결고리를 찾지 못하는 상황에 처해 있지 않나 생각을 해요. 박물관이 너무 보수적인 역할에 안주하지 말고 지금 말씀하신대로 박물관이 제 구실을 하려면 현대인들하고 보다 가까운 관계를 맺어야겠죠. 그래서 이번의 돌조각전도 사실 고미술과 현대인과의 거리를 좁히는 데에 그 의의를 찾고 있습니다. 물론 이화여대가 중요한 콜렉션을 가지고 있고 열심히 발굴도 하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이런 훌륭한 콜렉션과 발굴의 결과를 국민 교육의 수단으로서, 또 감상의 대상으로서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는 것은 또 다른 문제거든요. 우리에게 옛 돌조각은 꽤 있었는데 그 동안 사장한 셈이죠. 지금까지 한번도 보여줄 기회가 없었어요.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돌조각만을 가지고 한 전시는 아마 없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 이유는 석물이라는 것이 좀 미신적이라거나 무덤과 관련된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에 은폐시켜 버리는 경향이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조각 역사, 조각 전통의 역사에서는 중요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사람들이 거리감을 안 느끼도록 기술적으로 설치의 묘를 살려서 조각공원의 조각처럼 전시를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우리 전통 석물의 조형성, 예술성을 밝히고 현대인의 생활속에 석물이 자리를 잡을 수 있게 되도록 시도를 해 봤습니다. 이 전시회에서 관람객이 무척 긍적적으로 반응하는 것 같아 기쁩니다.
최종호 요즘에는 특히 지역주민들을 위한 다양한 행사가 박물관 안에서 많이 개최되고 있습니다.
이번에 개최하신 '우리 옛 돌조각의 힘'은 많은 사람들에게 미학을 통한 예술적 감각을 충분하게 살릴 기회를 주었을 것이고 보다 많은 관심을 끌고, 많은 사람들이 박물관이 마련한 기획전을 보고 앞으로 스스로 즐길 수 있는 방법을 배웠을 것이고 돌이 어떤 즐거움을 줄 수 있는가 하는 이러한 것을 미학을 통한 조화로운 균형감을 가지고 배울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저는 과거의 박물관들이 물질 위주의 전시에서 이제는 외향적인 그런 자료조차도 전시를 하고 더 나아가서는 공연에 이르는 일련의 그러한 자료에 대한 이미지와 그 자체가 담고 있는 메세지를 박물관에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온전하게 전달하고, 박물관을 조화롭게 이끌어갈 때 박물관과 그 지역사회는 발전이 이루어지리라 생각합니다.
김홍남 네, 정말 굉장히 중요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박물관과 지역사회 발전과의 관계는 매우 중요합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인력이라는 게 참 중요하죠. 그런 역할을 할만한 인물을 기르는 것이 문제입니다. 아까 말씀하신 이상은 있지만은 진짜 실제로 그러한 것들을 최고로 만들어 올려 줄 인력들이 부족한 상태죠. 특히 미술관과 박물관에 대한 교육을 담당할 사람들이 사실은 지금까지도 부족한 실정이죠. 저도 여기 박물관 맡은지 3년인데 미술사학과 교수가 본직이고 박물관 일은 실제로 보직으로 맡고 있습니다. 저는 미술사를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미술관 인력에는 큐레이터만 아니라 미술관 교육이나 과학 방면 등 다양한 역할을 할 사람이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그래서 화학과 학생들도 스카웃해서 미술사로 일단 석사 과정을 거쳐서 보존과학 쪽으로 나가도록 하기도 하는데요. 미술관에서의 미술교육, 감성교육 트레이닝을 받을 수 있도록 외국에 내보내기도 합니다. 말씀하셨던 대로 그런 이상을 정말 적극적으로 실현해 나갈 수 있는 인력을 많이 키워야 한다는 것에 대해 많이 생각해 왔습니다.
최종호 오늘날 박물관에는 다양한 전문 직종이 있습니다.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는 박물관의 종사자라고 하면 흔히 큐레이터로만 알고 있는데 외국의 경우는 선생님께서 공부하셨던 미국만해도 미국 박물관협회에서 규정한 박물관 전문 직종이 13개 분야가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다 언급할 수 없겠습니다만 우선 크게 전 세계적인 경향으로 박물관은 학예연구원, 보존과학자, 교육담당자, 정보관리사 등 크게 네 가지 방향으로 나눠집니다. 예를 들어서 프랑스 같은 경우 박물관학예직 인증시험에 합격했을지라도 국립문화재 관리학교에서 18개월간 연수교육을 시킨 후 국가자격인증을 부여합니다. 소위 '꽁세르봐뙤르 conservateur'라고 하는 학예연구원과 '꽁페항스 conferences'라고 하는 박물관 교사 등을 양성하기 위한 연수기관을 설치하였습니다. 그리고 1990년대 이후로는 그것이 여섯가지 분야로 나뉘어져서 박물관 담당, 문화재 목록작성 담당, 역사적 건축물 담당, 고고학 담당, 고문서담당, 문화재도서관 담당으로 직능이 점차 세분화되어 국가자격인증시험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새로 박물관법이 개정이 된다면 박물관 전문직종에 대한 양성과 채용에 대한 의견을 수렴하고 대학교육 자체에도 그런 것을 반영해야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김홍남 그 점에 대해서 저도 동감이고 그동안 그런 의견을 글로 발표해왔습니다. 지금 말씀하셨듯이 미술관 내에 여러 가지 세분된 직종들이 있는데 제가 항상 주장해 오는 것은 세분된 역할에 대한 필요한 트레이닝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박물관 인력 양성 문제가 교육으로서 인증을 받는다고 모두 해결이 될까 하는 우려도 해 왔습니다. 물론 어떤 종류의 박물관이냐에 따라 트레이닝의 종류도 달라져야 하겠지만요. 예를 들면 자연사박물관이나 민속박물관이라면 고고학, 인류학, 민속학 공부를 하고 나서 박물관학을 이수하며 좋겠지요. 보존과학인 경우 보존과학을 하는 사람이 어떻게 인증서를 하나 가졌다고 보존과학을 할 수 있겠습니까? 보존과학을 하려면 화학과 물리학의 트레이닝을 받은 사람이 박물관학을 통해 박물관에 대한 지식을 습득할 수 있다면 이상적이겠지요. 그리고 미술관 큐레이터는 미술사를 공부한 사람이라야겠지요. 최근 한국에서의 미술관 인력양성의 방법으로 인증제도가 가장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시행하고 있는데, 제가 걱정하는 것은 그것이 대량생산은 할 수 있지만 얼마만큼 실질적으로 질적인 인력을 양성해 낼까 하는 점입니다. 제가 활동했던 미국의 경우에는 적어도 중류급 이상의 미술관 박물관에서는 각 해당분야에서의 박사학위와 박물관 경험을 요구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도 보다 전문적인 력 양성을 위한 방침을 세워야 되지 않나 생각합니다.
최종호 저도 거기에 대해서 전적으로 동감입니다. 놀랍게도 실습 과정도 제대로 거치지 않은 상태에서 자격증을 발급하겠다는데 대해서는 전적으로 동의할 수 없었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선생님도 말씀하셨듯이 대학, 대학원 과정을 이수한 인문사회, 예술 계통의 사람이 학예연구원에 대한 시험을 치르려고 했을 때 시험 응시 자격에 합당한 기본 교과목에 대한 36학점을 취득하면 됩니다. 그런데 실질적으로 인문사회 예술계 학생이 대학원 2년과 대학 4년 과정에서 박물관에 대한 기본 학과목을 이수했다고 해서 전문직종에 대한 인증서를 수여하면 박물관에 대한 기본적 지식도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고, 박물관 전문직에게 기본적으로 요구되는 경험도 갖추어져 있지 않는 상태이기 때문에 어설픈 의사에게 죽어가는 생명을 맡기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김홍남 정말 좋은 비유입니다. 마치 의과대학을 안 나온 사람에게 병원에 가서 의사를 하라는 것과 같습니다.
최종호 그렇습니다. 소위 이공자연학계 박물관 전문직에 관한 방침을 갖고 있지 못한 것 같습니다. 교수님께서도 말씀하셨듯이 박물관은 수집을 하면 보존을 해야 합니다. 보존처리를 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이공자연공학부의 교육을 받은 사람이 보존처리에 대한 충분한 교육을 받은 후 영원히 보존 처리해야 할 자료를 보존처리할 수 있는 기술을 습득한 상태에서 자격시험을 치를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만약에 오늘날 한국에서 만연되어 있듯이 단지 박물관 학예연구직만을 위해서 자격을 부여한다면 그 나머지 박물관의 많은 소위 기술자들에 대한 양성은 어떻게 할 것이며 그들을 어떻게 채용할 것인가는 참으로 막연해집니다. 어느 한 부분만 발전했을 때 다른 부분은 상대적으로 발전을 가져올 수 없습니다. 이 점에 대한 보완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김홍남 1960년대, 1970년대에는 사학과, 고고학과, 또 미술대학이 큐레이터 양성을 주로 맡아 왔습니다. 1980년대 초반부터 미술사학과가 많은 대학에 생기면서 인력양성을 맡아왔기 때문에 이제 큐레이터 교육, 양성에는 별 문제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직도 우리나라에서 약한 쪽이 보존과학과 전시설치 쪽인데 그것에 대해서 각 박물관들이 더 고민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에서 국립박물관과 호암미술관 등이 보존과학실을 가지고 있는 정도입니다. 화학과 교수들과 대화를 해보면 이쪽 분야와 관련을 짓는다는 것은 상상도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러니까 박물관, 미술관계에서 그쪽과 연결을 해나가면서 그쪽 교수들께 이 분야의 직업에 대한 정보를 주었으면 합니다.
화학도들을 포함한 이공계 학생들이 이런 분야에서 자기들의 미래를 개척해 나갈 수 있다는 것을 거의 모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전산정보학과 문헌정보학과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우리 분야에서 얼마나 많은 자료를 수집해야 하고 정리해야 합니까? 그렇기 때문에 문헌정보학과와 전산학과 교수들께 이러한 직업에 대한 가능성을 학생들에게 이야기해 달라고 하든가 아니면 우리가 직접 찾아가서 조언을 하든지 한다면 다양한 인력을 확보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 다음에 중요한 학과가 설치디자인 쪽인데 실질적으로 산업디자인과 학생들에게도 이런 기회를 얘기해 주고 그쪽 교수들하고 자주 접촉을 하면서 추천을 받을 수 있으면 좋겠지요. 현재 이화여대에서는 그렇게 노력하고 있는데 산업디자인 대학원에 있는 학생을 채용하기도 하고, 또 포항공대 화학과 출신의 학생을 스카웃도 하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현재 우리가 각자 박물관에서 필요한 인력을 키우려는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이러한 일들은 우리들 박물관장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최종호 현재 박물관들은 재정난에 부딪치고 있습니다. 경제적인 박물관 경영을 위해서 경영학을 전공한 사람이 다시 박물관학을 전공해서 박물관을 운영한다면 박물관이 경제적으로 자생할 수 있고 또 지역사회와 우리 생활속에 보다 밀접한 관계가 맺어질 수 있도록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김홍남 자생력에 대해서 말씀드리면 박물관들이 영리단체가 아니고 사회봉사단체 또는 공익단체이기 때문에 자생력을 가지려면 두 가지 방법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첫째는 안에서 돈을 버는 방법이 있고 둘째는 안에서 돈을 벌지 못한다면 누군가 밖에서부터 돈을 대야 되는데 지금 현재 우리의 경우 안에는 돈을 번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물론 민속박물관 같은 경우에는 관람객이 워낙 많아서 입장료를 가지고 운영할 수도 있고 아니면 그 속에서 많은 여러 가지 비지니스를 할 수도 있겠고, 상품개발이라든가 공연활동도 하는 등등 다양한 방법이 있겠지만 그런 입체적인 곳하고 우리 일반 박물관들과는 사정이 다릅니다. 대학 박물관의 경우 한국에선 완전히 학교의 재정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사립 박물관인 서울과 용인의 호암미술관도 마찬가지 입니다. 미국 같은 경우는 제가 세군데의 박물관에서 일을 해 보았는데 모두 기금을 모금해서 운영하고 있습니다. 기금 모금을 한다는 것 자체는 일반인의 문화적 수준이 높아야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한국에서 지금 대기업들 빼고는 기금을 조달하거나 기금을 내놓을 곳이 없습니다. 학교는 그러한 기금 모집이 더욱더 어려운 실정입니다. 결국 박물관이라는 것이 아름다운 것을 전달하고 일을 해내는 곳인데 사실 이 돈이라는 괴물이 문제가 되지요.
미국 같은 경우에는 박물관 관장이 되면 혈안이 되어서 기금을 모집하려고 합니다. 대학 박물관이나 미술관까지도 미국에서는 자생력을 키우려고 이사회를 조직하고, 이사 자격을 얻으려면 콜렉션이나 기금을 내야 되고 그렇습니다. 미국의 작은 대학 박물관이나 미술관만 하더라도 기금이 있고, 그리고 특별 전시도 스폰서를 찾아서 해야 됩니다. 이러한 제반 경제적 문제를 관장이 대부분 맡아서 해야 하는데 관장이 학자이고 전혀 그쪽에 관심이 없으면 문제가 되겠지요.
그렇기 때문에 아까 말씀하신대로 경영능력이 있는 그런 사람이 필요하고 행정력이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얘기가 성립되는 겁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는 아직 박물관의 재정적인 규모가 작고 인력도 소규모이기 때문에 대부분 그럴 필요가 없겠지만 국립중앙박물관이나 국립현대미술관 정도는 전문경영인이 필요할 겁니다. 미국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같은 아주 큰 규모의 경우에는 행정력 있는 사장이 있고 학자 출신의 관장이 있는데 우리나라는 아직은 여기까지 오지는 않았습니다.
최종호 박물관이 최소한의 영리를 추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박물관이 재정난으로 문을 닫기보다는 최소한의 영리를 추구할 수 있는 권리를 제공하자는 것이죠. 그러기 위해서는 박물관의 소장자료를 엽서, 슬라이드 자료 등으로 제공하거나 박물관에서 조사 연구된 자료를 인터넷 등을 통해 정보를 제공한다든가 하는 지적소유권을 이용한 영리를 추구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러한 활동과 더불어 박물관이 대사회교육기관으로서 문화유산에 관해 실질적인 수집, 보존, 교류, 전시하는 것으로 나아갈 때 박물관은 적극적으로 발전할 수 있고 지탱해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나라 같은 상황에서 박물관이 존재할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입니다. 거의 대부분의 한국인이 소유욕이 대단히 강하고 재산을 저승에까지 가지고 갈 수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기 때문에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는 것을 꺼리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 실질적으로 박물관이 자생하려면 적극적인 형태의 박물관이 제시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입니다.
김홍남 민속박물관의 경우 지금 하고 있는 사업이 있으시죠? 그 수입이 민속 박물관의 전체 1년 예산의 몇 퍼센트나 공헌을 하고 있습니까?
최종호 박물관의 재정문제는 실제로 제가 공개하기 어렵습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계속적으로 수익사업을 하고 박물관을 과학적이고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데 초점을 맞추면 자생력을 기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홍남 박물관에서 특별기획전을 하게 되면 전시 도록이니, 라벨이니 하는 제작비를 다 합하면 적어도 5천여만 원 가량의 예산이 필요합니다. 우리 이화여대 박물관 같은 경우에는 물론 학교에서 비용을 다 대고 있기는 하지만 예산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미국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 지금 가장 자체 사업으로서 수익을 올리려고 노력하고 있는 곳입니다. 루브르 박물관도 엄청나게 노력하고 있는 곳입니다. 루브르박물관도 엄청나게 노력하고 있지만 메트로폴리탄의 수준에는 못 미치고 있는데 메트로폴리탄조차도 연간 쓰는 비용이 한 10억 달러 된다면 자생력이 10퍼센트도 안됩니다. 최대한 노력해서 예산의 10분의 1 정도 확보하면 잘한다는 그런 얘기가 됩니다. 한국에서 박물관이 전시를 적극적으로 하고 보존 쪽도 열심히 하려면 돈이 많이 필요합니다. 문제는 한 개인의 이름으로 설립한 박물관에는 다른 사람이 투자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그러나 학교 같은 경우는 앞으로 어느 정도의 기금 모집으로 자생력을 키워 나가야 하리라 봅니다. 물론 현재도 그 필요성을 생각하지 않는 것은 아닌데, 문제는 박물관이 돈과 무관한 곳이라고 인식이 되어 있어서 관장이 나서서 돈을 구하러 다닌다고 하면 인상을 안좋게 보는 면도 있기 때문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앞으로도 이 문제에 있어서는 다양하고 문화적으로 넘기 어려운 장벽들이 남아있겠지요.
최종호 우리나라 박물관 경영에 있어서 사회적인 경영체제를 이수한 전문가들의 경영 기법을 참고할 필요가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1991년에 우리나라에서 중국의 진시왕릉에서 나왔던 진시왕 병마용에 대한 특별전이 있었습니다. 박물관의 총체적인 활동이 아니었고 단지 이벤트 행사로서 전시 위주였기는 하지만 엄청난 수입을 올렸습니다. 그리고 가장 근래의 예로서 예술의 전당에서 '폼페이 최후의 날'전을 개최했습니다. 아주 성황리에 끝났고 엄청난 수입을 올렸습니다. 물론 특별전인 경우에 이벤트 회사에서 관람객들에게 박물관보다는 엄청난 금액의 입장요금을 받습니다. 이는 박물관도 최소한 자생하기 위해서 적절한 수준의 입장 요금을 받고 관람객들에게 그만한 보람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면 그런 이벤트 회사에서 행하는 전시와 비견될 수 있는 그런 전시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가장 대표적인 예가 호암갤러리라고 생각하는데 물론 호암재단에서 많은 지원을 하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국공립박물관과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높은 입장료를 받고 있으면서도 사회적인 지탄의 대상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만큼 격조높은 전시를 개최함으로써 관람객들에게 그만한 가치를 부여했기 때문입니다. 박물관도 어느 전시 못지않게 훌륭한 전시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그것이 얼마나 박물관 이용자들에게 위락을 충실하게 줄 수 있느냐에 따라 그들에게 입장료가 비싸게 느껴질 수도 있고, 비싸지 않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저희 민속촌의 민속박물관은 자랑은 아닙니다만은 관람 후에 돈이 아깝다는 사람은 한 사람도 못 봤고, 재미없다는 사람도 만나보지 못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가 기대하고 요구하는 것은 박물관 활동의 수준을 그 박물관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보다 만족할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김홍남 좋은 생각입니다. 그동안 국민소득도 올랐고 학력도 많이 높아졌고 그렇기 때문에 박물관 입장료정도는 요즈음 큰 부담이 되지 않으리라는 생각입니다. 가까운 예로 영화 한 편 관람하는데 입장료가 8천 원 가량이고 호암아트홀의 전시 입장료가 3천 원에서 4천 원 정도입니다. 호암아트홀의 입장료 수준이 적당하다는 생각입니다. 그런데 특정 전시장을 비난하면 안되겠지만 '폼페이 최후의 날'같은 전시회는 입장료에 비해서 너무 볼거리가 없었다는 생각입니다. 저는 이런 식으로 문제들을 안고 있는 전시가 돈을 버는 것에 대해서는 별로 달갑지 않게 생각합니다. 물론 좋은 소장품들을 보여주는 좋은 전시일 경우 전시관들은 적당한 수준으로 입장권을 판매해야겠죠. 대학 같은 경우에는 현재 아무데도 입장료를 받는 데가 없습니다. 우리 대학에서도 소장품 전시회 같은 것을 할 경우 입장료를 받으면 안되느냐는 여론도 있지만 저는 반대합니다. 학생들이 돈이 많은 것도 아니고 입장객의 수도 많지 않은데 입장료를 받아 봐야 얼마만큼의 도움이 될지도 의문이고 그래서 저는 반대하는 입장입니다. 물론 민속박물관은 관람객이 한달에 1만 명 가량 된다니 입장료를 받아야겠죠. 그렇지만 대학박물관의 경우 한달에 몇백 명, 연간 1천명 정도의 관람객을 상대로 수익사업을 하기에는 무리라는 생각입니다. 제 생각은 각 박물관이나 미술관들이 저마다 처해 있는 상황이 다를 것이고 그 속에서 어떻게 하느냐는 책임을 지고 있는 관장들의 입장에서 해결해 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적극적인 박물관 운영이 필요하다는 말이 되겠지요.
최종호 그리고 이제는 박물관들의 전시가 3차원 형태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관람객 모두가 체험할 수 있거나 참여할 수 있는 공연형태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즉 전통적인 박물관에 대한 관념의 인식전환이 필요한 시점에 와 있다는 것입니다. 화상을 통한 전자박물관 내지 가상현실을 이용하는 사이버 뮤지엄의 새로운 발전이 도래하고 있습니다. 일본이나 미국사회에서 일부 부정적인 견해가 나오기는 했지만 단지 공간에 전시만을 위한 그런 박물관 운영에서 벗어나 사이버 뮤지엄에서 누구나 컴퓨터를 통한 관련정보와 자료를 박물관에 실제 가지 않고도 관람 할 수 있고, 그리고 실물에서 보여주지 못하는 내부의 구체적인 모습이라든지 예를 들어서 수족관 같은 경우 물고기 외형만 보여주는 것에서 해부도 같은 것을 보여줄 수 있는 형태로 발전하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제 생각에는 박물관 운영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김홍남 요듬 많이 거론되는 얘기인데 깊이 토론할 기회가 없는 것 같습니다. 박물관에서 컴퓨터 이용이라든지 지금 말씀하신 사이버 뮤지엄, 사이버 갤러리에 대해서라면 저 나름대로는 착잡한 심정이 듭니다. 첫째 자연과학이나 민속 쪽에 있는 분들에게는 사이버 뮤지엄의 활용도가 굉장히 높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러나 사학이나 미술 분야 쪽에는 좀 다릅니다. 미술이라고 할 때는 실물을 보아야 하기 때문에 실제 작품과 관람자의 관계를 생각해야 하지요. 비유를 하자면 미술작품과 감상자와의 관계는 마치 장가가는 남자가 신부를 실물로 봐야 하는 것과 같다는 생각입니다. 물론 사이버 전시는 굉장히 중요한 정보제공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 그걸 통해서 공부를 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어린이들이 공룡을 공부하는데 그 스케일을 직접 느껴봐야지 사이버 뮤지엄을 통해서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질감, 양감, 공간감 등이 중요하기 때문이죠. 물론 사이버 뮤지엄, 사이버 미술관도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서 로마에 못 가는 사람들이 로마를 가공현실로 본다든지 하는 것은 얼마나 멋진 일입니까? 특히 건축 쪽에는 효용도가 매우 크다는 생각입니다. 우리 이화여대 박물관도 홈페이지를 만들어 인터넷에 내보내고 있는데 그것은 하나의 홍보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최관장님께서 말씀하신 사이버 뮤지엄 이슈는 앞으로 박물관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이것을 정착시켜야 하는가 하는 중요한 과제가 우리에게 주어진 셈이죠.
최종호 좋은 지적입니다. 박물관에서는 실물을 실제로 우리가 직감을 통해서 관찰을 통해서 관찰을 할 수 있고 거기서 예술체험을 할 수 있다는 그 자체로서 이미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박물관에 가면은 실제로 직접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고 오감을 통해서 즐길 수 있기 때문에 전통적인 형태의 박물관은 그 나름대로의 독창성과 특성을 살려서 우리가 개발하고 잘 활용하면 존재할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박물관은 전시물의 종류에 따라 다양한 형태가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이란 명칭으로 박물관법이 있습니다.
김홍남 뭐가 문제인지를 정확히 알아야 그에 따라서 해답이 나올 것 같은데요. 예를 들어 미술관, 박물관이 따로 있어서 문제가 되는 게 무엇이냐, 같이 있어서 문제가 되는 것이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박물관 진흥법과 미술관 진흥법의 다른 점이 있습니까?
최종호 다른 점은 박물관에 대한 개념정리와 미술관에 대한 개념 정리만을 별도로 하고 있는 것만이 크게 다릅니다.
김홍남 다시말하면 그 법의 이름이 박물관 및 미술관진흥법으로 되어 있는데 왜 거기다 미술관이라고 굳이 넣어야 되겠느냐 이런 얘기인 거죠? 개인적으로는 내용에 문제가 있으면은 모르겠는데 차이라는게 그것뿐이라면 굳이 박물관, 미술관 이렇게 나누어야 되느냐 이런 생각입니다만 그러나 미술관에 해당하는 법규 사항 중에 박물관하고 다른 사항이 있기 때문에 미술관이라는 것을 별도로 취급해 달라고 하면 문제가 다르겠죠. 만약 단지 박물관과 미술관의 정의에만 차이가 있고 다른 모든 법규적인 것이라든지 진흥법적인 사항이 똑같다면 굳이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이라고 부를 필요가 없겠죠.
최종호 저는 미술관은 넓은 의미의 박물관 속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굳이 별도의 명칭을 첨언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입니다.
김홍남 이것이 한국의 박물관 역사와 성격 때문에 이러한 얘기가 나오기 않나 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박물관들을 운영해 온 사람들이 고고학자라든지 사학자였다고 한다면, 미술관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예능계 분야의 사람들이 주이죠. 이분들이 모여서 진흥법이라는 것을 만들려고 하는데 상호 이해가 될 것인가 하는 게 문제의 핵심이 아닌가 생각을 하고, 특히 박물관, 미술관 양 그룹의 사람들이 다 본인들이 소속되는 그룹 차원에서 얘기를 하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최종호 그러한 문제점 때문에 결국은 과학관은 박물관법에서 제외가 됐고 과학기술처에서 자체 관리하고 있습니다. 세계적으로도 통합박물관법은 흔치 않습니다. 통합이 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어려울 것 같습니다.
김홍남 옳은 말씀입니다.
최종호 끝으로 이 분야에 오랫동안 연구 종사하시면서 느낀 21세기를 대비하여 한국의 박물관 발전을 위한 말씀을 한 마디 해 주십시오.
김홍남 박물관이 중요한 역할을 할 때가 왔습니다. 우리나라의 문화를 어떻게 끌고 갈 것인가? 더 많이 고민해야겠습니다. 요즈음 대중문화의 물결이 거세져서 고급문화를 보존하기가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물론 대중문화를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만 대중문화(서구문화)의 고급문화, 외래 문화와 우리 문화와의 균형을 찾으려고 애쓰는 문화 교육기관으로서 박물관은 더욱 열심히 키워나가야 하겠습니다.
최종호 장시간 동안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