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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문화예술을
찾아서
조 은·시인, 르포라이터
모든 것을 쇠락하게 하는 세월의 마력과는 관계 없이 강한 생명력을 지니는 문화가 있다. 스스로 세월을 이기며 점점 더 가치를 높여가는 이러한 문화는 오늘날의 첨예한 사회 구조 속에서 황폐해질 수 있는 우리의 정신을 성숙함으로 이끌어간다. 뿐만 아니라 그 세계를 향유해 본 사람들에 의해 우리가 몸 담고 있는 사회라는 공간은 조금씩 진보한다. 각 민족 고유의 문화나 전통은 다양한 정신적 공간을 제공하기에 충분한 것은 물론, 더 한층 근원적이다. 우리의 보자기에는 몬드리안이 있고/폴 끌레도 있다/현대적 조형 감각을/유럽을 훨씬 앞질러 드러내고 있다/그러면서 그 표정은 그지없이 담담하다/마치 잘 갠 우리의/가을하늘처럼 신선하다/그것은 어느 개인의 폐쇄된 자의식에서/풀려나 있기 때문이다. 김춘수 시인은 우리의 보자기를 위와 같이 노래했다. 그는 또한 기하학적 구도와 꼴라쥬 기법이 있으며, 쉬르리얼리즘은 물론 가장 높은 미니멀 아트가 되고 있다고 우리의 보자기를 극찬했다.물건을 싸서 보관하거나 운반 수단으로서의 사용 한계를 뛰어넘어 전통 보자기는 한국인의 예절과 신앙까지도 감쌌다. 일찍이 보자기는 무엇을 덮는 보, 가리는 보, 물건 밑을 받치는 보, 장식하는 보, 상징적인 보, 불교 의식용 보, 기우제를 지낼 때 제단에 치거나 조상의 영정을 싸 두는 특수한 용도의 보, 밥상보, 이불보, 횃대보 등으로 널리 사용되어 왔다. 또한 보자기에는 기복 신앙적인 요인도 있었던 만큼 조상들은 정성껏 만든 보자기가 복을 부른다고 믿어왔는데, 각종 예물을 쌌던 혼례용 보자기가 그 대표적 예이다. 전통 보자기는 사용하는 계층과 문양의 유무 및 종류, 구조, 색상, 용도, 재료 등을 기준으로 분류되는데, 궁중에서 사용된 궁보와 민간에서 사용된 민보로 크게 나뉜다. 궁보를 통해서는 궁중의 특수한 생활 양식과 문화를 엿볼 수 있다. 민보는 단일한 목적으로 만들어졌다기보다는 여러 목적으로 사용될 수 있는 융통성있는 쓰임새를 갖는다. 민보도 특수한 목적으로만 사용하기 위해 제작된 것이 있는데 혼례 때 쓴 혼례용 보(기러기보, 금박보, 사주단자보, 예단보, 노리개보, 연길보, 폐백보), 불교 의식용 보(제기보, 마지보, 공양보, 경전보), 특수한 의식용 보(명정보, 영정 봉안보, 기우제보, 탈보) 등이 이에 속한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우리 전통 보자기 미학의 극치는 조각보이다. ‘조각’이라는 말이 의미하듯 쓰고 버리는 조각천을 재활용하여 만든, 이른바 서민층에서 주로 사용하던 보자기로써 조각보는 생활 지혜의 절정을 이룬다. 궁보에서는 지금까지 조각보가 발견되지 않았다.조각보들은 한결같이 그 자체가 하나의 조형 작품으로서 손색 없는 가치를 지니고 있다. 재료나 염색 기술의 한계 등의 취약점을 극복하고, 하나 하나의 조각들이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루며, 창조적·개성적 형식을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조각보의 가치가 두드러진다. 명주, 비단, 면직, 모시 등을 소재로 한 보자기는 1폭에서 9폭까지 그 크기도 다양하다.조각보에 사용된 직물은 주로 견직물과 모시 등으로서 대부분 같거나 비슷한 종류끼리 조합되었으며, 명주 같은 견직물은 겹보로 꾸며져 주로 겨울철에 많이 사용되었다. 특이한 것은 천조각을 이어 붙일 때 천과 동일한 색의 실을 사용하지 않고 천보다 두드러지는 색실을 써서 바느질땀을 선명하게 드러나게 했다는 점이다. 이것은 바느질이 단순히 천조각을 이어 붙이는 수단이라는 고정관념을 탈피하여 보자기를 장식하는 요소로 이용되었으며, 우리나라 여인들의 융통성있는 의식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 조각천이 결합되어 있는 양식은 매우 다양하지만 몇 가지 패턴으로 분류할 수 잇다. 첫째는, 정사각형이나 이등변삼각형의 천조각이 두 개나 네 개씩 결합되어 질서정연하게 정사각형의 결합을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 보자기 중앙의 네모꼴을 중심으로 조각천이 점점 확대되어 나가는 구조가 있다. 셋째, 극히 작위적인 디자인이 있다. 특히 구성미가 빼어난 조각보는 천조각들이 위와 같이 한 눈에 띄는 일정한 패턴을 벗어나 자유롭게 결합된 것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들 조각보에서는 크기와 모양이 제각각인 천조각이 규칙성을 배제하면서도 계산된 질서의 미보다 월등한 아름다움을 표현한다. 조각보와 함께 많은 유품이 전해지고 있는 것은 수보이다. 수보에는 특히 민간신앙적인 요소가 많이 담겨 있는데, 수보의 제작 시기는 구한말 무렵으로 추정된다. 탁의라는 명칭으로 전해지고 있는 선암사의 탁자보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보자기로서 고려 중기의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아청운문단궁보(鴉靑雲紋緞宮褓)는 가장 오래된 궁보로서 현종의 딸 명안공주가 오태수에게 출가하던 1681년에 혼례물을 쌌던 것이다.현존하는 대부분의 조각보는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에 만들어졌다. 그러나 온돌방에 이불을 깔고 생활해온 우리의 과거 주거 공간을 떠올려보면 그보다 훨씬 일찍 만들어졌을 보자기의 은은함이나 소박함, 단아함 등도 충분히 유추해낼 수 있다. 전해져오는 우리나라 보자기의 특색은 한마디로 ‘조화’로 요약된다. 보자기의 색채와 구성은 언제나 ‘조화 속의 일치’를 추구하는 우리의 민족성과 맥이 닿아 있다. 특히 조각보는 화사하고 절묘한 구성의 묘미를 한껏 살려냄으로써 우리 여인들의 감각이 순수 예술의 경지에 이르렀음을 가시화하고 있다. 실제로 독일의 린덴 국립민속학 박물관 관장인 피터 틸레는 20세기 미술을 본질적으로 발전시키는 역할을 한 몬드리안이 한국의 색채 구성을 본 적이 있었을까 하는 의문을 가졌다고 한다. 몬드리안의 몇몇 작품(「콤포지션 1922, 암스텔담」,「청색 콤포지션 1917, 에텔로」)이 그의 작품보다 1백년이라는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는 한국의 보자기를 연상시켰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문은 폴 끌레(1897-1940)나 칸딘스키(1866-1944)로까지 이어진다. 끌레의 선만 이용하여 그려진 몽한적 풍경이나 색채에 의해 구성된 화면, 즉 ‘매직 스퀘어’(가로와 세로 어느 방향으로 가산하여도 동일한 수치가 되는 격자적 배열을 뜻한다)는 자연스럽게 우리의 조각보를 연상시킨다. 직선을 사용한 힘차고 간결한 구성적 표현을 통해 여러 대상들을 평면 위에 다양한 색상의 어울림으로 완성하며 조형에의 강한 의지를 보였던 칸딘스키의 작품 역시 마찬가지이다.“ 한국의 보자기가 몬드리안이나 끌레, 칸딘스키의 그림과 닮았다는 말에 감격할 것이 아니라 그들의 그림이 한국 보자기와 닮았음을 유도할 수 있도록 우리의 주체성이 확립되어야 합니다. 또한 해외를 무대로 창작 활동을 하는 예술가들도 자신의 작품 세계에 대한 평가를 개인의 독창성에만 국한시켜 연연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작품 세계가 전통문화에 맥이 닿아 있음을 떳떳하고 정직하게 밝힐 수 있어야 합니다. 과거를 자양분으로 하지 않은 창작이란 있을 수 없는 만큼 그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며, 우리의 문화를 현대적 의미와 결부시켜 세계화하는 데 큰 힘이 됩니다.”사전자수박물관을 운영하면서 30여 차례 해외 전시를 가진 바 있는 허동화 관장의 말이다. 문화사업에 대한 필연성이 제기되고 있는 요즘 반드시 천착해 보아야 할 점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만 외국에서는 단지 추상예술로 보고 있는 한국 보자기의 포괄적 의미와 우리의 값진 문화 의식, 민족적 미감 등에 대한 올바른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 과정을 통해야만 ‘이집트 문양’처럼 세계 사람들이 보기만 해도 '‘한국의 조형미’와 ‘한국의 문양’을 한 눈에 식별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해야 할 일은 우리의 문화를 주체자인 우리가 먼저 철저히 알고자 하는 노력이다.전통 보자기는 실생활의 필요성에 따라 전문 공예가가 아닌 사람에 의해 만들어졌는데, 바로 그 점 때문에 우리의 보자기는 개개인의 신선한 감각이 섣불리 양식화되지 않음으로써 독창적인 이미지를 창출해 낼 수 있었다. 또한 오늘날 우리에게 보자기 미학의 극치를 보이는 전통 보자기들은 대부분 버려지는 폐물을 이용해 만들어졌다.각양각색 자투리 천의 질감을 나름대로 살려 조합함으로써 아름다운 추상의 세계를 실현하였으며, 한정된 조건을 잘 이용하여 배치함으로써 은은함이나 강렬함, 단아함 등의 민족적 정서를 잘 담아냈다. 보자기야말로 예의와 실용성을 중시한 우리의 민족성을 무엇보다도 잘 표현한다. 보자기가 의례용으로 널리 사용되어온 점, 협소한 주거공간 안에서 신축성 있고 지혜롭게 물건을 보관하고 운반할 수 있도록 다양한 용도와 크기로 사용되어온 점 등은 우리의 민족적 특징과 슬기로움이 빚은 가장 개성적인 문화의 극치라고 할 수 있다.그러나 지금 우리의 주거 환경은 조상들이 보자기를 쓰던 때와는 많이 달라졌다. 모든것이 그러하듯 보자기 역시 자꾸 사용함으로써 더욱 아름답게 발전할 수 있다. 때문에 보자기를 생활 속으로 끌어들이려는 노력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우리나라에 비하면 보자기 문화가 미미했던 일본의 경우, 국민들이 1년에 1인당 보자기 한 장씩을 소비한다고 한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보자기 문화를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의 경우는 어떠할까 궁금해진다.일회용 포장이 난무하는 요즘 예쁜 보자기로 선물을 포장하는 등등으로 우리 보자기를 실용화시키는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는 일부의 목소리가 들린다. 이 경우 포장 자체가 생활용품으로 재활용될 수 있도록 보자기를 실용화시킬 수 있어야겠지만, 가격을 낮추는 문제가 필수적으로 제기된다. 아울러 나일론 같은 화학 섬유가 아닌 천연 섬유인 광목 같은 소재를 이용하여 자연으로 환원될 수 있도록 하는 점도 생각해봐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또다른 공해 문제를 야기시킬 수도 있다. 필요성이 결여된 보자기를 상업화에 의해 무리하게 만든다는 것은 자투리 천을 이용하여 독특한 조형 세계를 형성해온 전통 보자기 문화를 훼손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전통 보자기가 공해로부터 무관했다는 장점을 잘 살려내면서 문화재화시키고, 생활 속으로 끌어들이 수 있는 방법은 요원한 것일까? 그러나 명심해야 할 것이있다. 보자기를 통하거나, 아니면 다른 무엇을 통하거나, 어떤 대상을 통하여 우리의 민족 문화를 고양시키고 그로 인한 세계화를 원한다면 반드시 먼저 우리 안에서 그 대상이 철저하게 자리를 잡아야 한다는 점이다. 그것이 바로 문화가 생명력과 자생력을 갖게 하는 정석이다. 다른 많은 우리의 문화 유산들처럼 외국에서 먼저 가치를 인정받을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우리 문화를 제대로 알고자하는 노력을 해야 할 때다. 철저하게 자기화시키는 과정을 통해 스스로 주체성과 철학을 정리하지 않으면, 우리의 전통 문화가 ‘문화의 먹이사슬’에 걸려 가치를 잃어버릴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하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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