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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
리뷰 - 문학
김병언 소설집 『천치의
사랑』(현대문학사)
성석제 장편소설 『궁전의
새』(하늘연못)
박덕규·작가, 협성대교수
모처럼 컴퓨터를 작동시키며 소설을 쓰다가 갑자기, “내가 지금 왜 이런 바보 같은 짓을 하고 있나?” 하는 의문형의 문장을 하나 만든다. 뒤죽박죽이 된 세상에 그 누구를 감동시키기 위해 소설을 쓰려 하는가? 결국 컴퓨터를 꺼 버리고 돌아앉아, 학생들이 제출한 과제물 더미로 손을 뻗는다. 주어진 주제에 맞게 과제를 했는가, 내용은 얼마나 알찬가 등등을 기준 삼아 과제를 읽어가다가는 어느새, 터무니없는 맞춤법과 띄어쓰기에 교정을 봐주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 한숨을 쏟는다. 이런 바보 같은 짓을 내가 왜 하나? 그 누구에게 도움을 주려고 이러는가? 최근에 내가 하는 일이란 바로 이렇게, 맨땅에다 이마를 열심히 들이박고 있는 미련한 바보짓이 아닐까? 절망하던 나는 우연하게도 최근에 책에서 읽은 몇 사람의 바보들을 떠올리고 있다. 첫 번째 바보. 김병언이 두 번째로 낸 「천치의 사랑」을 읽으면서 나는 “바보 같은 소설!” 하고 여러 번 탄식한 바 있다. 그리고는 내가 왜, 남이 열심히 써놓은 소설을 읽으면서 이런 식으로 표현할까 하고 반문하곤 했다. 왜 그랬을까? 바보 같은 소설! 「천치의 사랑」이라는 제목에서 연상된 말인 것만은 아니었다. 어쨌거나 이 책의 표제작인 단편 「천치의 사랑」의 천치를 생각해 볼 수밖에 없는 일. 한 연예인에게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나게 해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보고 있는 어느 중년 부부가 있다. 짝사랑한 어릴 때의 대상이거나 친구, 선생, 고마운 분 등등이 주로 등장하는데, 그 내용이 웬만한 재미있는 드라마 이상이라 시청률이 꽤나 높은 프로그램이다. 옛사랑과의 재회를 가슴 떨며 기다리는 연예인들과의 심정과 일치되는 야릇한 긴장감을 느낀 아내가 묻는다. “당신 같으면 누굴 만나보고 싶으세요?” 하고 물은 여자는 남편의 입에서 결국 별 신통한 답을 듣지 못하자 이렇게 소리치고 만다. “에이, 관둬요! 원, 바보 천치 같은 사람하고선…” 남자는 그 말이 섭섭했지만, 어쩔 수는 없다. 그에게는 만나고 싶은 옛사랑 아니라 감추고 싶은 옛사랑도 없으니까. 그러다가 그는 간신히 한 여자를 생각해 낸다. ‘그 애의 혀, 그 조그맣고 빨간 혀가 가슴에 화인처럼 남아 남몰래 눈시울을 적시’게 한, 그 혀의 주인공인 어린 여자애를 떠올린다. 소설의 본격적인 내용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데모가 한창인 대학 시절, 그는 ‘강의를 받긴 데모 참가자들에게 어쩐지 미안하고 데모에 참가하기엔 행동력이 뒤따라주지 않’는 ‘고뇌하는 관망파’로 학교에 있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도둑질하다 얻어맞는 소녀를 구하러 나서게 된다. 그게 소녀와 한 패라는 누명을 쓰는 계기가 돼 마침내 파출소까지 취조를 당하는 신세로 만들고 만다. 소녀에게 도둑을 시킨 절도교사범으로 몰린 그가 부인하게 되고 마침내 소녀와 함께 대질신문을 당하게 되는데… 그가 소녀의 혀를 기억하게 되는 이유는 이렇다. 소녀는 뜻밖으로, 그가 시켜서 도둑질을 한 거라고 주장했고, 그는 죄를 부인한다는 이유로 뺨까지 얻어터지고는 고스란히 죄를 뒤집어쓰고 경찰서 유치장 신세를 지게 된다. 하루만에 풀려나기는 하지만 그는 집에 돌아와 이틀을 앓는다. 처음엔 몸살로, 그 다음에는 ‘그 애를 오롯이 떠올리고 싶은’ 가슴앓이로. 풀려나오던 날 경찰서 복도 철문 쇠창살을 통해 그 여자애를 보게 된다. 그 여자애가 그를 ‘골탕먹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조그맣고 빨간 혀’를 쏙 내밀어 보였던 것이다. 자신을 고생시킨 여자애의 빨간 혀를, 자신이 다시 보고픈 유일한 대상으로 생각하고 있는 사내. 그게 왜 사랑인 줄 말로는 설명이 안되지만 그런 것에만 사랑을 느끼는 사내의 사랑에는 동물적인 욕욕이나 세속적인 욕망 따위가 개입될 틈이 없다. 그렇다고 그것이 흔히들 절대순수적인 사랑이라 일컫는 것이라고 못박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 사랑은 아무런 수식도 설명도 필요없는 그저 사랑인, 그래서 아무도 결코 사랑이 아니라고 부정할 수 없는 그런 사랑이다. 그런 사랑만이 유일한 사랑인 사내. 그의 사랑을 굳이 이름한다면 누구라도 ‘천치의 사랑’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 바보. 성석제의 장편소설 「궁전의 새」 속에 사는 바보다. 연작의 전편 격인 「어린 도둑과 40 마리 염소」에서는 살지 않았던 바보. 그 바보는 어느 정도인가 하면, “옛날에 옛날에 진용이라는 바보가 살았습니다. 진용이가 사는 동네에는 장원두라는 착한 소년도 살았습니다.”로 시작되는 이 소설의 맨 첫머리를 장식하는 이름이면서도 주인공이 되지 못한 진용이라는 바보다. ‘착한 소년’이기는 커녕 남을 잘 속이고 마음약한 애들을 잘 괴롭히는 주인공 장원두라는 아이 때문에 수많은 고초를 겪으면서도 꿋꿋하게 말을 더듬으면서 자기 아버지한테도 자기 선생님한테도 성당의 수녀님한테도 두들겨맞거나 쫓겨나고 있는 인물이다. 학교 점심 시간에 한번도 밥을 먹지 못하는 그 아이. 자기 생일에 단 한번 엄마가 도시락을 싸주었는데 선생님이 혼분식 도시락이 아니라고 압수해 버린다. 도시락 표면에만 흰쌀밥알을 놓았을 뿐 실은 꽁보리밥에 커다란 멸치 두 개가 놓인 거라는 사실이 밝혀진 건, 선생님이 그에게 도시락을 되돌려주는 과정에서 바닥에 도시락을 엎지르고 만 뒤였다. 바보같이! 이 장면에서는 울분마저 치솟지 않을 수 없다. 바보 진용은 주인공 원두가 죽인 염소를 자기가 죽인 것으로 오해한 아버지한테 무차별 난타를 당하고도 반항 한 번 못하고, 새로 생긴 성당에 나가지만 원두가 시킨 대로 했다가 성당 밖으로 쫓겨 다니는 신세가 된다. 성탄절 날 그 흔한 우유 국물 한 번 못 얻어 먹은 데다 신발 한 짝까지 잃어버린 바보가 그다. 그런데 이 바보는 너무나 바보였기 때문에 남들이 바보 같은 짓이라고 하지 않은 바보 짓을 참으로 많이 해서는 돈을 모으고 마침내 온 마을을 자기 대궐로 삼아 살게 된다. 원두가 짝사랑했던 여자를 아내로 얻고서. 물론 소설가는 끝끝내 이렇게 말한다. “옛날에 옛날에 진용이라는 바보가 살았습니다.” 복 받은 바보가 있기는 있었는데, 그게 다 옛날 일이라는 거다. 원망하지 않고 보복하려 하지 않고 추억 속의 여인 하나 만들지 못하고 기교도 없고 욕망에 허덕이지도 않는 바보들, 그리고 그런 바보들 이야기를 쓴 소설들… 나는 그들을 떠올리다가 어느새 안정을 되찾는다. 아내에게 구박받고 성당에서 쫓겨나도 어떠리. 나는 쓸 것이고 읽을 것이다.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데도 부지런히 쳐다보고 따라다니는 바보 같은 사랑을 당분간 더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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