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 출판 
 
 

특정다수 독자를 위한 출판

 
 

김호운 소설가, 도서출판 ECP 대표

 
  대다수 출판인들은 ‘출판의 성공 여부는 기획에 달려 있다’라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또 ‘출판의 성공 여부는 도박이다’라고 정의 내리기도 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출판 경영의 중대한 모순을 발견하게 된다. 기획이란 철저한 시장 조사와 마케팅 전략을 세운 후 결정을 내리는 것이다. 반면 도박은 노력보다 운명에 맡기는 게임이다. 이 두 사안은 절대로 공통분모를 가질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출판인들은 입버릇처럼 이같이 말하고 있다.
왜 출판을 이런 두 개의 잣대로 바라보고 있는가. 필자의 견해로는 가장 큰 요인중의 하나가 바로 독자의 성향을 파악할 수 없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기획 출판된 도서를 구매해 줄 미래 독자의 성향 내지 구매 가능성을 파악할 길이 없다는 것은 바로 성공 여부를 운명에 맡기는 도박일 수밖에 없다. 출판을 하는 이상 편집 기획은 필요할 것이고, 그러면서도 도박과 같은 게임을 할 수밖에 없는 게 우리 출판 현실이다.

이벤트에 의존하는 출판기획
 
출판 기획에 필요한 시장 조사란 대개 서점에서 나타나는 유통 실태를 파악하거나, 사회 현상을 심도 있게 파악하여 미래 독자를 생산, 또는 선도하는 정도이다. 조금 더 발전한 것이라면, 출판 동향을 분석하여 미래 시장에 대한 변화를 예측하고, 그 시장을 독점하기도 한다. 어느 쪽이든 현재 우리 나라의 출판 시장에서는 그 정확도를 점치기가 매우 어렵다. 그것은 바로 우리 나라의 독서 실태가 매우 유동적이고 즉흥적으로 변하기 때문이라는 데 있다.
우리 나라 독자 분포를 보면 충동 구매의 경우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독서에 대한 목마름을 충족하려는 고급 독자가 많지 않다는 뜻도 될 것이다. 너무 극단적인 결론이라 거부 반응도 있을 줄 안다. 그러나 이것은 현실이다. 독자의 수준을 낮추어 보려는 의도가 아니라, 이런 독서 현실을 정확히 보아야만 변화를 모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 소수의 고급 독자를 기준으로 독서의 대중화를 이루어야만 출판 문화의 발전을 가져올 수가 있다.
이러한 우리의 출판 현실을 잘 알기 때문에 기획자는 기획 과정에서 독자의 충동을 자극하는 요소를 먼저 찾게 된다. 어떻게 이벤트를 하면 충동 구매에 불을 당기게 될까를 연구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곧 기획의 성공 여부를 판가름하는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실정이 이렇다 보니, 이벤트의 성공 여부에 출판 기획의 사활을 걸게 되고, 이것은 곧 도박이라는 말이 어울리게 유동적인 출판 기획이 될 수밖에 없다.

수확을 위해서는 땀을 흘려야 한다
 
출판 시장도 곧 개방을 하게 된다. 좁고 열악하다고 여겨 온 우리의 출판 시장에 외국 출판사들이 밀려들어오면 그야말로 춘추전국 시대가 된다. 그러나 이것은 어차피 겪어야 할 과정이다. 피할 수 없다면 정면 대결을 위해 대비해야 하는 게 더 현명하다.
옛말에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좋은 방법이라도 실천하지 않으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지난 호에서도 출판 유통에 대해 언급하면서 ‘독자 관리’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지금도 늦지 않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하는 문제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좋은 기획이 있어야 좋은 독자가 있고, 좋은 독자가 있어야 좋은 기획이 만들어진다. 어느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이 두 가지 요소는 출판 시장의 발전에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출판 기획을 도박에 비유하는 것도 이 독서의 성향을 파악하지 못해서 기인된 것이다. 출판 기획의 성공 확률은 얼마나 독자 성향에 접근하느냐에 달려 있다.
출판 경영인과 기획자는 먼저 독자를 생산할 자세부터 갖추어야 한다. 있는 독자를 나눠먹기식으로 차지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새로운 독자를 생산하지 않고는 기획을 성공시킬 수가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책을 가까이 하는 사람을 많이 만들어야 한다. ‘국제 도서전시회’와 같은 큰 행사를 치르기도 하지만, 사실 기대만큼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야말로 행사를 위한 행사로 치뤄지는 듯한 인상도 있다. 우리 나라의 출판 역사를 보면 ‘큰 출판사’ ‘좋은 출판사’라고 하면 대개 전집류나 학습지를 발행하는 출판사들이다. 대형 행사장에서도 이들 출판사들이 단연 파워를 자랑한다.
우리가 한 해에 생산하는 도서의 수량은 다른 어느 나라에 뒤지지 않는다. 그러나 이는 학습 참고서를 포함한 통계 숫자이다. 이를 부정적 시각에서만 보지 말고 긍정적으로 이용하는 계획을 세워보자. 만약 이들 독자들을 일반 독서 시장으로 연결되게만 할 수 있다면 우리 출판 문화는 괄목할 만한 발전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학습지이든, 전집류이든 독서 시장에 독자를 불러들였다면, 이들을 장래 우수한 독자로 계속 잔류하도록 해야 함이 옳다. 학습에 필요한 참고서만 보고, 진학한 뒤 책하고 담을 쌓는다면 이는 출판 문화의 장래를 보더라도 매우 불행한 일이다. 출판사도 이들을 단순히 자사 제품을 구매하여 매출을 올려 주는 고객 정도로만 인식한다면 우리 출판 문화 발전은 요원하다.
얼마 전에 단행본 출판사 경영인들이 모여 협의 단체를 결성했다고 한다. 결성 이유 중 하나가 출판사의 권익과 출판 문화 발전을 위해 존재하고 있는 ‘출협’이 전집류 및 학습지 발행 출판사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는 것에 대한 자구책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들은 출판 협회를 2원화하는 것이 아님을 강조하고 있지만, 내심 그러한 문제가 가장 큰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구성 회원을 단행본 출판사로 하고 있는 점도 바로 이러한 우리 출판 문화의 현실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출판문화 발전을 위한 몇가지 제안
 
첫째 연결 고객을 만드는 안목이 필요하다.
앞서 언급했듯이, 학습지나 전집류를 보급한 출판사에서는 이들 독자에게 계속 독서 인구로 잔류시키는 노력을 해야 한다. 한편 단행본 출판사들도 자사 제품을 구입한 독자에게 계속 우량 독자로 잔류하게 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유아기 독자를 청소년기로, 청소년 독자를 성인 독자로 계속 연결시키는 기획을 하여 독서의 갈증을 해결해 주어야 한다. 이는 바로 우리 출판 문화 발전을 위한 밑거름이고, 나아가서 앞으로 출판 기획을 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이는 독자층이 얕은 우리 출판 문화의 현실에서는 무엇보다 시급히 시행되어야 할 과제이다.
둘째, 편식 기획을 지양해야 한다.
우리는 어느 한 상품이 성공했다고 하면 너도나도 비슷한 기획을 하게 된다. 타사 제품뿐만 아니라, 자사 제품의 경우에도 그러한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계속 비슷한 기획을 하다가 실패의 전철을 밟게 되는 경우를 허다하게 본다. 출판사가 다르더라도 독자는 한 밥상에 앉게 된다. 이들 독자가 같은 음식을 대하게 되면 식상하게 되는 건 뻔하다. 이들은 다시 밥상 앞에 오지 않을 것이다.
하나의 기획에 전심전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월간, 연간 계획을 세워 정리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연령별로, 주제별로 다양한 기획을 하여 독자들에게 선택의 폭을 좁혀 주어야 한다. 백화점에 고객이 더 많이 몰리는 것은 무엇이든 필요한 것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전문점이 필요 없다는 뜻은 아니다. 전문점도 백화점도 아닌 것이 문제이다.
셋째, 불특정 다수보다는 특정 다수를 확보해야 한다.
독자는 얼굴이 없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크게 잘못된 생각이다. 출판사는 독자의 얼굴을 만들고, 또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 개개인의 신상 정보는 알 수 없다 하더라도, 현재 판매된 숫자와 성향만으로 어떤 층의 독자들이 어떤 책의 독자라는 것 쯤은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어렵게 만든 이 독자를 철저히 관리만 한다면 앞으로의 기획 성공률은 더욱 높아질 것이다. 이것이 궁극적으로 우리 출판 문화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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