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사 
 
 

새해, 새아침에

차범석 한국문화예술진흥원장

  어느 해 치고 어지럽지 않았던 해가 있었던가. 어느 해 치고 위기감이 없었던 해가 있었던가. 해방 이후 53년 동안 우리 역사는 불안과 긴장과 혼미의 반복이었고 질서와 자아의식과 개혁을 주창했던 절규의 역사였다. 그런 가운데서도 지난 1998년은 유사이래 일찍이 없었던 경제적 파탄과 실업으로 인한 사회불안은 국가적 위기감마저 실감케 했던 다사다난의 해였다. 그러기에 ‘제2건국’이라는 정책까지 내걸고 국난 극복에 안간힘을 쓰며 시련을 겪어왔다. 삼척동자에서 무지한 촌로에 이르기까지 IMF라는 말을 스스럼없이 내뱉곤 했던 지난 한해의 쓰라린 상처가 아직도 곳곳에 남아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시대적 조류 속에서 문화예술계 또한 상충된 가치관과 혼돈의 몸부림 속에서 민족 문화예술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하여 나름대로의 발돋움을 해나왔으니 문자 그대로 우리는 숨가쁜 한해를 보낸 셈이다. 그러면서 다가오는 21세기를 문화의 시대라고 지칭하면서 어느 해보다도 문화예술의 위상을 높게 떠올리며 새해를 맞았으니 이제 문화예술은 국민 전체가 향유하는 자산이자 지구가족이 공존하는 무한한 터밭이라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동과 서가 한띠로 이어지고, 남과 북이 하나로 어우러지기를 바랬던 우리의 열망이 이제는 가시화되는 조짐을 실감케 한다. 이 모든 일들이 우리로 하여금 나름대로의 의의와 책임을 통감케 하는 당위성 마저 안겨주는 1999년의 새아침이다. 그러므로 동녘에 떠오르는 해가 어제와 다를 바 없고, 산과 강과 들녘이 어제와 다를 바 없건만 우리가 맞는 이 해에는 무엇인가 변화가 있을 것 같고, 있어야 하고, 있게 해야 한다는 자각증상을 느낀다면 나의 독단이며 오만일까. 아니다. 지난날 우리 문예진흥원이 걸어나온 발자취를 되돌아 보건데 소중히 간직해야 할 보배로움도 있었지만 이제는 과감히 벽을 헐고 새집을 지어야 할 공간도 있다. 우리는 그 빈 자리에 보다 열성과 창의로 반죽된 흙담을 쌓아 올려야 할 필연적인 사명감을 직감하는 바이다. 문예진흥원의 설립목적은 한마디로 민족문화예술의 창조와 계승을 돕는데 있다. 모든 장르를 넘나들며 작가들에게 도움을 주고 희망을 주되 그것은 어떠한 간섭도 구속감도 주지 않는다는 자유로움을 향한 의지가 있을 뿐이다. 그래서 지원은 하되 간섭은 없어야 옳다는 김대중대통령의 의지는 곧바로 우리 진흥원의 지침이자 길잡이라고 할 수 있다. 작가에게 자유와 창작의 보람을 안겨주는 진흥원이 되어야 한다는 평소의 염원을 새해 새아침에 다짐하는 까닭은 거창한 꿈이나 심오한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지금까지 진흥원이 본의와는 다르게 입었던 그 오명의 누더기를 벗는 것도, 그리고 관련단체가 흔히 그러하듯 민(民) 위에 군림하려는 관료주의의 잠재를 씻어내자는 것도 따지고 보면 진정한 민주주의를 신봉하면서 살아가겠다는 우리들의 의지이자 소망이다. 그리고 국민의 혈세나 다름없는 진흥기금을 정직하게 관리하고, 투명하게 나누어 줌으로써 이 나라 예술가들의 진정한 동반자이자 후원자임을 자부하는 것도 새해 새아침에 얻어낸 다짐이라고 말하고 싶다. 1999년. 그것은 우리 조국이 그러하듯 문예진흥원 역시 거듭나는 해이다. 비록 문화관광부 산하에 있다 하더라도 종전과 같이 타성과 관성에 밀려나가서는 안될 것이다. 창의성과 동지적 결합으로 뭉쳐나가야 한다. 인화(人和)가 없는 조직은 하나의 잡거족(雜居族)에 불과하다. 지난 해에 우리가 맛보았던 그 구조조정이 가져다준 아픔의 여파를 이제는 인화로 녹이고 나눠가지는 가족으로 돌아가야 한다. 비록 식구는 줄었지만 끈끈한 우애심과 유대의식은 몇갑절 두텁게 뭉쳐져서 문예진흥원의 참된 위상을 다시 세우는 해가 되도록 발 맞춰 나가야 할 것이다. 한국문화예술진흥원. 그것은 앞자리에 나서지 않으면서도 튼튼하게 뒷받침을 해주는 문화예술계의 받침대가 되어야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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