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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 리뷰 - 문학
조용했던 한해의 시적의미
조은 시인,르포라이터
1998년의 시단은 소란스럽지 않았다. 대형 베스트셀러 시집 같은 것도 나타나지
않았으며, 몇 년 전부터 문제가 되어온 여성주의 시나 생명 시를 둘러싼 단발적인
논의를 제외한다면 뚜렷한 이슈도 없었다. ‘세기말’을 빙자한 난폭한 시어들도
세기의 끝에 한걸음 더 다가선 금년에 들어서는 제풀에 지친 듯 오히려
다소곳해졌다. 따지고 보면 훌륭하고 알찬 시집들이 적잖게 출판되었지만, 시단이
전반적으로 가라앉아 있다는 인상을 얻게 된 데는 괄목할 만한 신인들의 등장이
없었다는 점도 또한 크게 한 몫을 했다. 두드러진 활약은 차라리 원로와 중견들의
편에 있었다. 고희를 넘긴 홍윤숙 시인이 새로운 시집을 출간하였고, 지난호에도
이야기하였지만 천양희, 노향림 두 시인이 어느 청춘에 지지 않는 생생한 언어로
그 시의 집에 또 한 층을 쌓아 올렸으며, 황동규 시인이 기왕에 발표한 시집들을
모아 전집을 출간하고 있다.
1998년의 좋은 시집들
이 원로 중견들의 활약과 신인들의 상대적인 침체가 의미하는 바는 우리의 시가
노화하거나 퇴조하였다는 것이 아니라 어떤 내성의 길에 접어 들었다는 것이다.
최하림의 시집 죴�렠셋幻すソ?【� 아이들이 온다』가 그점을 잘 보여준다. 그가
오랫동안 병고에 시달리면서 어떤 말로도 위로되지 않은 병상의 고독에서 짜내는
나직한 언어들은 가히 고통의 형이상학이라고 부를 만하다. 그것은 고통에 대한
어떤 처방의 말이 아니라 고통 그 자체이며, 존재에 대한 논란이 아니라 존재 그
자체이거나 또는 존재의 부재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의 내성의 언어들은 우리
시가 오랫동안 잃었던 시어의 위의(威儀)를 되찾게 하기에 충분하다.
시집 죴�렠陋痼� 멀지 않다』로 김수영 문학상을 탄 나희덕과 시집 죴�렶�은
눈』으로 현대문학상 수상자가 된 장석남도 이미 여러 권의 시집을 상재하고 이제
중견의 문턱에 올라선 시인들이다.
나희덕의 시들은 단정하다. 이 시들은 형식에 있어서도 내용에 있어서도 특이할
정도의 투명성을 유지하는데, 이것은 강인한 침묵이 그 시들을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이다. 감정을 토로하거나 고백하기보다는 그 정체를 질문에 부쳐두고, 고통과
상처를 말하더라도 그 뒤에 얼룩을 남기지 않으려는 태도가 이 침묵을 만든다.
나희덕의 시가 가끔 인생론의 면모를 지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장석남의 시에는 언제나처럼 아련한 애조가 있다. 우리 시대에 가장 예민하게
울리는 심금의 언어를 아마 그의 시에서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여백이 많은
풍경들, 하찮은 것이기에 더욱 생생한 기억들, 세상에 만연하게 깔려 있기에
오히려 비개성적으로 느껴지는 슬픔들을 배경으로 삼고 떠오르는 그의 언어들은
진정한 감정과 감상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지키면서 결코 무거워지거나
늘어지는 법이 없다. 대신 무거운 것이 들어설 틈도 없다.
그러나 이 한 해의 시단에서 스타를 뽑는다면 단연 최정례일 것이다. 그녀의 두
번째 시집 죴�렿頻� 속에 호랑이』는 특히 문학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 속에서
조용하지만 깊고 끈질긴 관심을 모았다. 김수영 문학상에서는 비록 최종심에서
탈락되었지만, 죴�렰청瑛邂科뺐� 죴�렻酬퓽邂科뼁【� 모두 ‘올해의 시집’으로
선정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그 감각과 감정의 깊이 때문이었다. 어떤
사물이건 그녀가 시선을 주면 그것은 아득한 시간을 타고 내려가 어떤 전생의
기억이 된다. 막막한 관능으로 충전된 이 기억의 공간에서는 아무리 사소한
일상사라도 낯선 신화의 면모를 띠고 때로는 몽롱하게 때로는 통절하게 감각과
감정을 사로잡는다. 아득한 감각은 항상 혼란을 동반하지만, 그러나 그것을
표현하는 언어는 깎은 밤처럼 단아하다.
이수명의 죴�렲斂「�는 왜가리놀이를 한다』는 최정례의 시집과 같은 출판사에서
같은 시기에 나란히 발간되었지만, 한쪽이 뜨는 바람에 상대적으로 주목을 받지
못했다. 이 시집에는 사물와 언어에 관한 새롭고도 끈질긴 성찰이 있다. 언어는
사물을 지시하지만 언어가 언어를 지시할 수도 있다. 사물로부터 독립된 언어들은
자기들끼리 사물의 놀이를 할 수도 있다. 이수명의 시에서 이 언어들의 사물
놀이는 짐작할 수도 없이 기이한 레퍼토리를 확보하는데, 그것들은 모두 역광처럼
아름답다.
지게꾼 시인으로 문단에 등단하여 한때 화제를 모았던 김신용 시인의 시 시집
죴�렪昰� 속을 걷다』도 좋은 시집이다. 이것은 새로운 종류의 민중시이다.
그것은 소외된 삶을 소외된지도 모르는 채 (또는 모르는 체하며) 그리고 있다. 이
시집을 읽는 독자들은 우리는 왜 사는가라는 물음과 왜 이렇게 사는가라는 물음을
동시에 갖게 되는데, 그것은 이 시집 속에 우리의 삶에 대한 존재론적 성찰과
사회학적 성찰이 열십자로 얽혀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종류의 민중시라는 말은 임동확의 시집 죴�렻냅� 사랑을 느꼈다』에도
붙일 수 있는 말이다. 이 역시 세상이 굳어지고 난폭해지기를 강요할 때 인간이
어떻게 자기를 유지하고 사랑할 수 있는가를 묻는 시집이기 때문이다.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만들어낸다는 것, 그것보다 더 치열한 싸움은 없다. 시인은 이
‘처음으로 느낀 사랑’ 속에서도 여전히 맹렬한 투지를 유지하고 있는데, 그것은
무엇보다도 그 필력으로 증명된다.
함성호의 시집 죴�렯� 타즈마할』은 혼란스러우면서도 단정하다. 혼란스러운
것은 어디에나 자기의 전체를 던져버리려는 시인의 자유의지이며, 단정한 것은 그
자유로 도달하려는 순결한 세계에의 그리움이다. 그는 습관적으로 문화적 코드를
앞세우고 있지만, 그의 상상력은 그 코드가 최초에 지시했던 순결한 내용을
체화하고 있기 때문에 그 코드에 붙잡히는 법이 없다. 이 세상에 여전히 순수한
열정이 남아 있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이 시집을 읽는 것이 좋다.
어쩌면 1998년은 우리 시의 새로운 원년으로 기억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무엇보다도 문화적이건 대중적이건 비겁한 추수주의에 대한 진정한 반성이 이
해에 싹텄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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