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 리뷰 - 미술
 

시대의 정신과 삶의 모습들을 시각언어로 정립하는 용기

김영호 미술사가, 중앙대 교수


 최근 국내의 미술관에서 좋은 전시회들이 잇달아 열리고 있다. 좋은 전시회란 대중들의 미술에 대한 소비 욕구를 충족시키면서도 화단에서 대두되는 문제의식을 날카롭게 드러내는 일이라 할 수 있다. 기획전의 주체가 기업 미술관의 경우, 좋은 전시회는 기업의 시녀 역할에서 벗어나 전문인들에 대한 ‘간섭 않는 지원’이 이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반영하기도 한다. 상업화랑들과는 달리 비영리적 사업을 실행하는 미술관은 그 기능상 지역과 국가의 문화현상에 결정적 영향을 끼친다. 새로운 경향의 미술을 전파하고 작가들을 발굴하고 지나온 발자취를 역사화하는 일들이 미술관 전시를 통해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일들은 시대의 정신이나 삶의 현상들을 시각언어로 정립하는 일이므로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된다. 필자가 방문한 미술관 기획전 중에 금호미술관의 ‘그림보다 액자가 더 좋다’와 성곡미술관의 ‘매체와 평면’은 기획의도와 전시기법이 돋보인 전시였다. 이 두 전시회의 특징은 모두가 젊은 작가들의 실험적 작업들을 중심으로 최근 한국 현대미술의 쟁점으로서 매체미술과 그 성과를 분석 검증하려는 의도를 강하게 지닌다는 점이다. 이러한 종류의 시도는 국내의 미술문화를 도식화시킨다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다원주의라는 명목으로 발생된 개체분자들의 난립이 오히려 예술의 본질을 손상시키고 있는 현실에 비추어 다양한 시각현상을 아우르는 공통분모의 도출 작업은 용기 있는 일로 평가될 만하다. 한편 국제미술의 흐름과 민감한 대응관계를 지닌 우리의 상황에서 이러한 시도는 자국의 문화적 정체성을 살펴보려는 노력이라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다양한 매체 이용한 작품과 그 성과

‘그림보다 액자가 더 좋다’전은 말 그대로 그림이라는 알맹이 보다 그를 담아내는 틀에 주목하자는 것이다. 좀더 넓게 해석하자면 화면의 조형원리나 그 이념을 중요시 해왔던 종래의 관습에서 벗어나 표현 방식과 매체 자체를 비평적 시각으로 다시 보려는 선언적 발언으로 해석될 수 있다. 여기서 기본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예술 외적인 요인 즉 액자, 패널, 족자, 병풍 등을 예술 표현의 주 요인으로 인식하려는 작가들의 태도이다. 서양의 경우 액자 또는 조각대에 대한 부정의 역사는 입체주의의 콜라쥬 기법이나 다다의 오브제 등과 함께 시작되었다. 회화와 조각의 경계가 모호해진 1960년대 후반에 이르러 액자에 대한 본격적인 관심이 프랑스의 쉬포르-쉬르파스 Support-Surface 운동의 작가들에게서 어렵지 않게 보게 된다. 회화에 있어 지지체인 캔버스 틀이나 액자, 그리고 표면으로서 캔버스 천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시도했던 그들은 그림 없는 빈 액자를 작품으로 제시하거나, 캔버스에 액자만을 그려 전시하기도 했고 아니면 액자를 제거하고 그림만을 보이는 방식들을 다양하게 사용했던 것이다. 국내의 젊은 작가들 70여 명의 작업을 종합적으로 선보인 이번 금호미술관의 전시회는 비단 그림과 액자 사이의 문제를 벗어나 회화, 사진, 판화, 비디오, 텔리비젼, 콜라쥬 작업 등 다양한 매체를 이용한 작품들을 망라하고 있다. 전시된 작품의 주변에 설치되는 작가명이나 작품명이 적힌 스티커를 제거함으로써 관객들에게 어떠한 정보도 제공하지 않고 있으며 관객들은 작품과 작품을 연결하는 문맥 속에서 기획자의 의도를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또한 많은 작가들이 전시도록의 텍스트에만 소개되고 실제 전시장에는 출품되지 않고 있어 ‘전시되지 않는 작가들의 작품전’이란 극단적인 처방도 사용한다. 작품 없는 작품전의 예는 프랑스나 스위스에서 1960년대부터 유행하던 개념미술가들이 즐겨하던 방식이기도 하지만 우리 나라에서는 이채로운 시도로 인정된다. 결국 ‘그림보다 액자가 더 좋다’전은 ’90년대 한국화단에서 주요 이슈가 되고 국제화단에서도 논의되어 오던 새로운 매체사용의 예들을 한국 현대미술사의 성과와 접목시켜 정리하기 위한 하나의 시도로 평가된다.

현대적 삶의 모습 드러내는 소통의 매체

‘매체와 평면’전은 한국미술의 흐름을 조형방식의 대립적 구조 안에서 파악하고 그것을 역사적으로 정립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림보다 액자가 더 좋다’전과 비슷한 기획의도를 지니고 있다. 억지를 좀 부린다면 여기서 평면은 그림이고 매체는 액자라는 등식이 성립된다. 기획자는 1990년대에 나타난 미술 현상을 ‘매체사용의 확산’과 ‘회화성의 회복’이라는 두 가지 대립적 담론으로 전개시키고 있다. 미술에 있어 매체란 표현을 위해 작가가 사용하는 재료 일체를 일컫는 말로 의미가 넓게 사용되는 용어이다. 그러나 현대미술의 영역 속에서 매체미술은 1960년대 이래 실험적 작가들의 작업을 통해 나타난 현상들을 지칭하는 용어로서, 작가와 작품 그리고 대중을 연결시키는 소통의 기능이 특별히 강조된 표현방식을 말한다. 예를 들면 위에 언급한 사진, 비디오, 텔레비전과 컴퓨터, 영화 등이 그것이며 방법적으로는 설치, 퍼포먼스, 테크놀로지를 포괄하기도 한다. 작가들은 이러한 소통의 매체를 통해 일상이나 사회 비판적 의미들을 나타내고 있다. 기획자에 따르면 1990년대 초 한국화단에 확산되었던 매체미술은 중반에 이르러 새로운 경향의 평면회화를 모색하는 계기로 작용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은 그리기의 손작업을 중요시하는 작가군이 형성되었음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성곡미술관의 전시는 매체와 평면이라는 대립적 구도를 변증법적 구조로 드러내는 것에 최종적 의미를 두고 있지 않고 있다. 오히려 이 두가지를 종합한 조형방식이 세기말에 파생되는 다양한 인류의 문제들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담아낼 수 있는가 하는 보다 근원적인 물음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매체와 평면전은 따라서 우리가 미술에 거는 기대가 표현방식의 과격한 실험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어떻게 예술적 고유성을 지키면서도 현대적 삶의 다중적 특성들을 드러내는가에 겨냥되어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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