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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 리뷰 - 국악
199년 기대되는 젊은 음악가들
창작을 위한 못자리로 전통을 인식하는 젊은이들의 음악
윤중강 음악평론가
새해가 밝았다. 대망의 2000년대를 눈앞에 두고 있다. 1999년, 이 한 해 동안 우리
음악계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분명 지나온 1900년대를 차분히 정리해야 할
것이며,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기 위해 값있게 쓰여져야 할 것이다.
한국음악에 있어서 지난 해는 ‘세대교체’를 위한 한 해였다. 한마디로 30대의
약진이 돋보였다. 이러한 사실을 극명하게 드러내주는 한 예가 있다. 바로
KBS국악대상이다. 연말마다 한 해의 우리 음악계를 돌아보는 이 행사는 지난
’80년대초부터 시작됐었다. 그런데 지난해에 하나의 이변이 일어났다. 각 부문별
수상자가 현악부문의 수상자인 문재숙(가야금)을 제외하고, 모든 30대라는
점이다. 강권순(정가) 유지숙(서도소리) 김명자(판소리) 정수년(해금)
백성기(작곡)가 그 주인공이다. 이것은 1998년도 만의 특이한 현상만으로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이들이 앞으로 2000년대 우리 음악을 이끌어 갈 주역임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연주계와 창작계에서 돋보이는 신진세력들
이런 수상자외에도 연주계와 창작계에서 돋보이는 신진세력이 있다. 그 가운데서
연주계에서 가장 두드러진 인물은 이태백과 이지영을 우선 꼽을 수 있다.
이태백(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 단원, 목원대 강사)은 지난해 해남에서 개최된 전국
규모의 고수대회에서 대상(국무총리상)을 받았다. 그는 이미 전주대사습의 장원을
통해서 아쟁의 실력을 인정 받은 바 있다. 많은 인물 가운데서 그가 돋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에게는 전통을 재창조하는 힘이 있다. 그는 지난해
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에서 아쟁을 협연해서 호평을 받는 등 국내외의
여러무대에서 좋은 기량을 발휘했다.
그의 많은 연주회 가운데서 특별히 거론해야 할 연주회는, 지난해 12월 20일
국립극장 소극장에서 열린 ‘삼인의 산조음악회’. 이 무대에는 역시 쟁쟁한
실력을 갖추고 있는 가야금의 이영신(목원대교수), 대금의
박환영(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원, 목원대 강사)과 이태백이 함께 꾸민 무대였다.
바로 이 무대에서 30대만의 패기와 열정이 느껴지는 새로운 시나위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 시나위는 바로 이전의 시나위와는 다르게 본청이 변화하는 시나위다.
서양음악적인 용어를 빌려서 쉽게 설명한다면, 한마디로 ‘조옮김’이 있는
시나위라고 할 수 있다. 우리 민속악에서 쓰이는 본청이란 말은 기본음 또는
중심음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의 시나위는 장단은 변화했으나, 조성(調性)은
바뀌지 않았다. 곧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본청으로만 연주하는 것이
보통이었는데, 이 연주회에서는 본청에서 변청으로 오고가는 시도를 해보았던
것이다. 대체로 시나위의 본청은 서양음악으로 따질 때 C음으로 잡는다(요즘에는
그 음이 올라가서 C#정도가 된다). 그런데 이것을 G나 F로 이조(移調)를 해가며
연주를 한 것이다.
이렇게 본청에서 변청으로 바뀔 경우, 아쟁과 가야금은 그 제대로된 성음을
내기가 수월치 않다. 본래 있는 음을 그대로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줄을 눌러가며 소리를 만들어서 연주를 해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 연주회에서 이태백과 이영신은, 본청에서 변청으로 옮겨가는 시나위 연주를 썩
잘 소화했다. 본청이 자꾸 바뀌는 시나위, 이것은 분명 시나위 합주의 발달된
형태라 하겠다. 이들에 의해 시작된 연주는 시나위의 새 장을 열었고, 이것은 이제
그들과 후배들에 의해서 더욱 발전되리라 기대된다.
가야금 연주가인 이지영(용인대교수)은 현재 국내 최초로 개설된, 이화여대의
실기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그가 국립국악원 연주단원으로 있던 ’9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그의 음악에서는 스승이었던 양연섭(산조), 김정자(정악)의 영향권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90년대말 그의 연주에는 이제 그만의
분위기가 있고 해석이 있다. 지난해 그는 두차례 연주회를 가졌다. 한 번은
보허사(步虛詞) 연주로 주목을 받았다. 현재 전하는 보허사는 현악기만의 합주
형태이다. 이 연주회에서 그는 가야금과 대금 이중주로 보허사 전곡을 편곡하여
연주했다. 이것은 과거 황병기(이화여대 교수)에 의해 시도된 바 있는데, 이지영은
이것을 전례로 삼아서, 가야금과 대금을 위한 보허사 전곡을 초연한 것이다.
이러한 작업은 전통음악의 재해석이자, 전통음악의 레퍼토리를 보다 확대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둘 수 있다.
전통을 새로운 출발점으로 연주한 연주가가 또 있다. 바로 김주남(국립국악원
해금수석)이다. 서울대 국악과를 졸업하자마자 국립국악원에 몸 담고 10여 년을
지냈던 그가, 지난해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내 건 첫번째 독주회를 가졌다.
여기서 그는 장구와 같은 반주의 도움도 없이, 또 다른 악기와의 병주형태도 아닌,
오로지 해금만으로 「천년만세」를 연주했다. 「천년만세」는 원래
세악(실내악)편성으로, 두세악기가 함께 연주하는 것은 보통이나, 이렇게
무대에서 해금만으로 연주하는 일은 우리 연주사상 처음있는 일이다. 그는
해금만으로 강유의
멋이 살아있는 「천년만세」를 만들어 냈다. 크게 박수를 보낼 일이다.
우리에게 대금정악, 피리정악이란 말은 귀에 익숙해도, 해금정악이라는 말은 귀에
설다. 곧 대금과 피리는 이미 그 악기만으로 정악독주를 해왔다. 대금정악의
명곡으로 「청성곡」이 있고, 피리정악의 백미 「자진한잎」이 있다. 그러나,
이에 부응하는 해금정악은 없는 실정이다. 이제 해금정악이 생겨나야 하는데,
김주남이 해금만으로 「천년만세」를 연주한 것은 앞으로 명실상부한 해금정악의
밑거름이 되리라 기대된다.
이들 외에도 뛰어난 연주가가 많다. 그들 가운데는 자신의 스승 이상으로
연주력이 뛰어난 연주가들도 있다. 그 많은 연주가 가운데서 내가 특별히 세
사람을 거론했던 것에는 이유가 있다. 이들은 바로 전통이 주는 의미를 바르게
알고 있다. 그들에게 있어서 전통은 과거형이 아니며, 답습도 아닌 것이다.
그들에게는 과거의 전통을 발판 삼아서 새로운 전통을 만들려 한다. 그들에게
있어서 전통은 ‘현재형’으로 존재하며, 전통은 새로운 ‘창작’을 위한
못자리가 된다. 1999년, 이 중차대한 시기에 다시금 ‘전통’의 의미를 정리해 볼
필요가 있다. 전통이란 변화지 않는 고정체가 아니다. 변화하는 유동체이다.
시대에 따라 전통의 겉모습은 바뀐다. 중요한 것은 전통의 속마음을 읽어내는
것이다.
이제 창작계로 눈을 돌려보자. 수년간 창작계는 부진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것이른바 ’70년대 학번들, 현재 40대 초·중반의 작곡가들의 음악적 한계를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다. 이런 몇 년간의 침체 속에서, 지난해에는 20대 후반과
30대 초반 작곡가들의 성큼 자란 모습을 만날 수 있어 더없이 기뻤다.
창작계의 세대교체의 단적인 예가 있다. 지난해 아홉번째를 맞는
‘서울국악대경연’에서 처음으로 ‘창작부문’에서 대상이 나왔다. 그 주인공은
서울대학교 대학원에 재학중인 안현정. 과거 선배작곡가들이 성악곡에 대해서는
관심이 적었거나
취약했던 점과는 달리, 그는 성악에 관심을 두고 있고, 또한 강점이 있다.
또한 지난해 서울국악대경연에서 창작부문에 입상하였던 계성원, 강예원,
지원석이 ‘3인의 젊은 작곡가’라는 음반을 출반했다. 이들 작품 속의 주인공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 음악속에 진솔한 자신의 모습을 적극적으로 반영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강예원의 「진달래 약속」, 계성원의 「1월 31일의 일기」는 그
제목부터 작곡가 자신의 체취가 느껴진다. 「수제천 연음 주제에 의한 변주곡」을
작곡한 지원석은 서양음악과 전통음악을 모두 전공으로 택했던 경력이
증명하듯이, 관현악법에 짜임새가 있다. 앞으로 같은 세대 작곡가 가운데서는
규모가 큰 작품을 잘 써낼 가능성이 가장 많은 작곡가임이 점쳐 진다.
창작분야에서 가장 기대되는 신진 세력은 역시 원 일(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강사)이라 할 것이다. 지난해 서울청소년국악관현악단 10주년 기념
음악회에서 「달빛향해 2」를 초연하여 큰 화제를 낳았다. 국악기를 다루는
솜씨가 감각적이고 세련되며, 무엇보다도 리듬의 상투성에서 벗어나 있다. 그의
곡에서 리듬은 전류(에너지)처럼 흘러가면서 곡에 생동감을 부여한다.
그의 시각은 국악계 내부에 고정되어 있지 않아 보인다. 세계적이거나 현대적인
음악적 흐름을 알고, 이러한 경향들을 우리 악기에 적용시켜 보려는 의도를 읽을
수 있다. 「불」 같은 곡이 지금으로서는 그런 경향을 대표하는 곡이라 할 것이다.
또한 국악기를 통해서 진정한 월드뮤직을 지향하고 있는 모습을 느끼게 한다. 곧
자신의 음악이 한국에서 국악이라는 특정 장르에 익숙한 사람뿐만 아니라, 국악을
알지 못하는 세계인들에게도 설득력을 가질 수 있는 음악으로 평가 받을 만한
음악들을 발표하고 있다. 최근 그는 또하나의 영화음악을 발표해서 화제를
낳았다. 과거 「꽃잎」이 해금으로 영화음악을 풀어갔다면, 이번 「아름다운
시절」에서는 대금이 인상적이다.
하
지만, 나는 그의 음악의 가장 기본적인 것은, 피리와 꽹과리라 생각한다. 그는
고등학교 때 피리를 전공했으며, 사물놀이의 창단멤버인 고 김용배에게 꽹과리를
배웠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의 음악 속의 밑바탕에는 피리와 꽹과리가 좋은
역학관계를 이루고 있다고 생각된다.
우리 음악의 창작계를 얘기할 때, 또한 주목할 필요가 있는 두 명의 30대가
있는데, 김승근(서울대 강사)과 김미림(서울대 강사)이다. 이들은 창작음악이
대중화되는 것에 별반 찬동하지 않아 보인다. 이들의 작품은 국악작곡에 있어서
아카데미즘의 하나의 전형으로 볼 수 있다. 분명한 것은 두 작곡가 모두 자신만의
고유한 색깔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고, 또한 전통음악을 자기 나름대로 구조적으로
분석해 보고자 하는 시각이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일찍이 국악을 전공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른바 양악작곡가가 국악기를 대하는 태도나 방법에 더 접근해 있다.
곧 기존 악기수법에 대한 존중보다는, 국악기를 음향소재로서 대하는 점에서
그러하다. 하지만, 이들도 분명 기성작곡가들의 답습에서 벗어나서 국악기만의
새로운 어법을 찾아내려 하고, 또한 국악기들의 현대적인 음향적 어울림에
고심하고 있는 점에서는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경쟁력 지닌 한국음악의 내일을 기대하며
이상과 같이 지난해 나름대로의 활동을 했고, 올해에 기대가 되는 젊은 음악가
열명에 대해 살펴 보았다. 이태백, 이지영, 김주남, 원 일, 김승근, 김미림, 지원석,
계성원, 강예원, 안현정. 이들이 지향하는 음악 세계는 저마다 다르다. 그러나,
각자 나름대로 전통에 대한 진지한 탐구를 하고 있고, 이를 통해서 자신만의
새로운 음악을 창조해 내고자 하는데 공통점이 발견된다.
이들은 앞으로 21세기 우리음악을 다양한 방향으로 이끌 주역이다. 국악계는 이제
이들과 또한 이들과 동세대의 음악인들에게 보다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어
보인다. 왜냐하면, 이들이 곧 21세기의 새로운 한국음악을 만들어 낼 주역이기
때문이다. 21세기를 앞두고 가장 선결해야 할 일은 한국음악이 문화적 경쟁력을
획득하는 일이라 할 것인데, 이들에게서 한국음악의 내일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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