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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 산책 - 1월의 문화인물 이 중 섭
민족미술 창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한 문화영웅 이중섭(1916~56)은 한국인 사이에서 가장 널리 이름이 알려진 화가의 한 사람이다. 그의 그림은 한 번 본 사람에게도 쉽게 잊혀지지 않을 정도로 강한 인상을 남긴다. 보는 사람을 향하여 울부짖는 듯한 소의 머리를 그린 그림들, 말 그대로 구천을 헤매던 두 마리의 긴 꼬리 닭이 드디어 짝을 만나 열렬한 입맞춤을 나누는 듯한 그림들 또는 담배 개비를 싸는 은박지에 긁어 그리고 유체로 메운 아이들의 모습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사랑할 수밖에 없을 정도다. 구성이 잘 되어서 시원스럽고, 붓질이 거침없으면서도 함축적인 데 그 이유가 있는 것 같다. 그만큼 보편적으로 사랑 받고 있는 존재인 것이다. 그러므로 여러 가지 여론조사와 갖가지 책자의 인물 선정에서도 늘 빠지지 않는다. 그를 다룬 평전은 꽤 많은 양이 팔려 나갔고, 이를 바탕으로 한 영화나 연극도 미술가를 소재로 한 것으로는 드물게 나왔는데, 연극의 경우 더욱 눈길을 끌어서 거듭 공연되기도 했다. 정부 수립 30주년을 맞았던 지난 1978년에는 훈장을 받기도 했고 거의 모든 교육단계의 미술 교과서에서도 늘 그의 그림을 찍은 도판이 빠지지 않고 실리고 있는데, 그만큼 중요하면서도 인기 높은 존재임을 말하는 것이라 여겨진다. 이중섭은 나라가 완전히 이민족의 식민지로 되어 경찰은 물론, 초등학교의 교사까지 칼을 차고 활동했던 1916년 4월 10일에 평안남도 평원군 조운면 송천리 742번지에서 태어났다. 북부의 서해안에 닿은 이곳은 평야로 농업이 성한 곳이다. 이중섭은 아버지 이희주와 안악 이씨로만 알려진 어머니 사이의 막내였다. 아버지쪽 조상들은 쓰시마섬을 정벌한 것으로 이름난 이종무 장군을 시작으로 가까이 와서는 농사를 지어 꽤 큰 부를 이룩했다. 농민 출신의 지주가 되었던 것이다. 어머니는 평원군에 맞닿은 평양에서 장사하는 일로 부자가 되었으며, 나라가 일본에게 먹히려 하기 직전에 구국운동의 하나로 의병전쟁과 같이 불같이 타올랐던 애국계몽운동단체로 이름난 서북학회의 회원으로 활동하기도 한 이진태의 딸이다. 그는 식민지시대에도 그러한 성향을 지녀서 일본인들이 지배하려고 드는 상권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한편, 오늘날 국산품 애용운동과 마찬가지인 물산장려운동에도 적극 나섰던 사람이었다. 이중섭의 아버지는 그가 불과 5세 때, 젊은 나이로 죽었으므로 커다란 영향이나 흔적을 남기지 못했지만 남을 동정하는 마음이 컸던 점이 두드러지는 사람이었다. 이중섭의 작품은 한국전쟁으로 인해 그가 월남하여 5년 남짓 활동하던 시기의 것을 제외하고는 거의 실물이 남아 있지 않다. 이렇게 짧은 시기에 남긴 것만도 상당량에 이르며, 누구보다도 높은 수준을 나타내므로 대표적인 미술가로 인식된 것이겠지만 그가 어떤 과정을 거쳐 이러한 경지에 이르렀는지를 짐작하기는 어렵다. 이중섭이 재평가된 것은 1970년대에 와서다. 마침 우리 경제는 호경기였고, 자신의 문화에 대해 높아지기 시작한 관심이 이를 가능하게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인간적인 면이 너무 내세워지거나 계승할만한 무엇이 없는 존재라고도 하는 등 이중섭의 진면모는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채 세월이 지났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은 어처구니없는 상태가 지속되는 속에서도 세월이 지날수록 그의 미술이 중요하다는 점에 대해서는 더욱더 인식이 증대되고 있다. 돌이켜 보면 이중섭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식민지에서 해방된 민족으로서 혼신의 힘을 다해 민족미술을 창조하려고 노력하였다고 여겨지며, 유화를 자기화한 데에서는 이쾌대, 박수근과 더불어 동아시아에서 유별나게 성공한 사례에 속한다고 여겨진다. 그런 점에서 그는 문화영웅이라고 평가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기리고 느낄 수 있는 매개는 터무니없을 정도로 없다시피 하게 적다. 그의 뜻을 새기고 살리기 위한 작업이 하루 빨리 이루어져 민족문화가 올바른 모습으로 세워지기를 바란다. 그런 점에서 최근 서귀포시에서 이중섭이 살던 집을 확인하고 매입하여 정리한 뒤 기념관으로 공개한 것은 상서러운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의 흔적이 지나간 곳을 정리하고, 그의 흔적의 정수인 작품들이 한자리에 모아져 공개되어서 그의 깊은 뜻을 더욱 널리 알게 되기를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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