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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프로그램 / 21세기를 향한 우리의 건축문화
도시발전의 미명 아래 사라지는 우리역사의
도정(道程)들
김정동 목원대 건축도시공학부 교수
잘못된 의식의 악순환
‘주민참여의 도시·건축 만들기’. 얼마 전까지만 해도 외국의 교과서 같은
잡지들에서 흔히 보아 온 구호였다. 우리는 그것이 부러워서 줄줄이 인용하곤
했었다. ‘도시의 인상은 주민이 만드는 것이다. 오늘날 선진형 도시개발도
대부분 주민참여 하에 이뤄지고 있다. 그러니 우리도 주민참여의 길을 트자.’
그때는 우리가 지방 자치제도를 받아들이기에 요원했었기에 더욱더 그랬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그때보다 더 민주화되었고 우리 자신도 책임을 질 때가
왔다고 생각된다. 우리 나라도 공청회를 도입, 주민참여의 기회(도시계획법
제16조의 2, ‘주민 등의 의견청취’)를 열어 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의 주민 참여의 목소리는 우리의 생각과는 너무나 동떨어져 있다.
“큰소리치는 놈이 이기는 거여”라는 거친 소리가 구석구석에서 들린다. 주민
이기주의라나, 즉 “내 땅 내 맘대로 하는데 웬 잔소리냐”는 목소리가 당당히
무대 위로 올라선다.
경주에서, 팔당에서, 동강 댐에서 그리고 이제는 그린벨트 지역에까지 그야말로
온통 ‘아우성’들이다. 땅값 바람에 온 도시가 온통 ‘횡횡소리’로 가득하다.
공청회에서 멱살을 잡는 그 억지 속에 무슨 아름다운 환경이고 건축이 있겠는가.
그러면 그런 작태는 누가 만들었고 누가 이끌었는가. 과거를 돌아보면 그것은
정부의 과거 작태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밖에 없다. 국회의사당에서 배운
멱살잡기가 그대로 ‘인용’되고 있는 것이다. 환경전문가, 보존전문가는 다 어디
갔는가. 지식인 그룹도 ‘나약방관자(懦弱傍觀者)’가 되어 버린 지 오래다. 땅을
잘 보존하자고 받아들인 주민참여 제도가 오히려 나라 땅만 거덜내고 있는
것이다. 부의 축적, 삼대(三代)를 채우기 힘들다는데 왜 그러나.
임자없는 도시, 주인없는 도시로 만들어버린 고속경제성장
도시는 그 속에서 태어나고 살아온 사람들의 것이다. 도시는 사람들의 삶을 담는
큰그릇이다. 작은 그릇이 건축이다. 작은 그릇이 모여 큰그릇을 이뤄낸다. 크고
작은 그릇의 주인이 마을 사람 즉, 우리 이웃인 것이다.
사람마다 자신만이 갖고 있는 도정(道程)이 있듯이 도시도 자신만이 갖고 있는
특성이 있다. 그 속에 아름다운 것, 추악한 것이 공존하며 도시를 이뤄낸다.
그러나 도시발전의 미명(美名)아래 우리의 도시는 급격히 망가지고 있다. 이것은
정신적 파괴로 이어지고 있다. 도시의 광장은 도시의 숨통이다. 옛날의 선인들이
거닐던 마당이었던 곳이다. 이 숨통이 온통 막혀버리고 있다.
경제성장의 간판은 남루한 건물을 털어 내고 그 자리에 고층건물, 화려한 건물을
짓는 것으로 대신했다. 1970~80년대 이른바 고속성장의 터널을 지나왔다. 그
결과는 우리 도시를 점점 임자 없는 도시, 주인 없는 도시로 만들어 버리고
말았다. 노인들이 세상을 떠나듯 건물도 늙어 고려장(高麗葬)에 처해지고 있는
것이다.
시내 한복판에 있던 학교들은 엄청난 땅값에 매료된 사람의 손에 의하여 빌딩으로
변한 지 오래됐다. 따라서 우리는 어렸을 때 꿈의 과거를 잃었다. 꿈을 키우고
씩씩한 기상으로 자라나라고 말씀하시던 선생님의 목소리는 이제 들리지 않는다.
어쩌다 어릴 적 살던 곳을 찾게되면 너무나 변해버린 모습에 당혹하고 만다. 거리,
학교, 다리, 교회, 상점과 간판 낯선 얼굴들…. 심지어 추억 어린 뒷동산마저
불도저에 깎여 없어져 버렸고, 그 자리엔 고층 아파트가 괴물처럼 버티고 서있는
것이다. 어릴 때 고무신짝에 송사리와 미꾸라지를 잡아놓고 신나하던 개여울은
공장폐수가 흘러 정신마저 황폐화시켰다. 우리는 시간만 잃어버린 것이 아니다.
사라져버린 근대사의 현장들
좀 다른 예를 하나 들어보자. 얼마 전 TV에 우리 근대사와 관련된 북한 영화가
방영되었다. ‘백두산 창작단’의 「안중근 이등박문을 쏘다」이다. 사실 나는 몇
년 전 그 프로를 비디오로 본 적이 있었다. 왜 그 비디오를 보았는가 하면 독립의
무대, 하얼빈 역의 처리, 그리고 덕수궁 등을 어떻게 처리했을까 하는
궁금증에서였다. 결론적으로 그 프로는 모두 세트 처리된 것이었고 그나마 고증은
엉망이었다.
우리 나라 프로라고 별다르지 않다. 그것은 ‘손탁호텔’의 세트 처리였는데
엉뚱한 곳에서 그것도 어설픈 세트에서 촬영하고 있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그것은 대중들이 건축물을 몰라도 한참 모르는 이유에서부터 연유된
것이다.
그 호텔은 한국근대사의 첫 사교무대로 등장했던 건물이었다. 이 호텔은 1903년에
세워졌는데 미스 손탁(孫鐸,Sontag)이 그 주인이었다. 손탁은 당시 주한 러시아
공사 웨베르(韋具,Karl Waber)의 처제로 1885년 형부가 부임해 올 때 그를 따라
우리 나라에 왔다.
그녀는 고종으로부터 경운궁(慶運宮, 오늘의 덕수궁) 건너편 정동에 땅과 집을
하사 받아 그 집을 고급사교장으로 만들었다. 그 후 손탁은 그 집을 헐고 그
자리에 ‘정동 러시안 스타일’의 벽돌 2층 이양관(異樣館)을 짓고
손탁호텔이라는 간판을 내걸었다. 1층은 일반 객실과 식당으로, 2층은 귀빈용
객실로 꾸몄다. 세워지자마자 이토 히로부미, 처칠 등이 그 집에 묵어 성가를
드높였다고 한다. 이 호텔은 1917년 이화학당이 사들여 교실과 기숙사로
사용하다가 1922년에 헐고 그 자리에 프라이 홀 Frey Hall 을 지었으나 1975년
그나마 화재로 불타 버렸다.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한국근대사의 큰 무대였던 그 건물이 사라져 버렸으므로 이제 TV는 실감나게
찍을 수 없게 된 것이다. 그 건물이 아직 남아 있다면 근대사의 현장으로,
외교관을 꿈꾸는 젊은이의 자극제로, 그리고 TV 드라마의 실감나는 세트로
사용될 수 있었을 것이다. 클래식하게 차 한잔 마셔 보기도 하고….
몇 년 전 어떤 TV 방송국에서 야외 오픈 세트를 만든다고 해서 신나게 자료를
챙겨 준 적이 있다. 그러나 그 역시 오리무중이 되고 말았다. 이제 그 PD들도,
영화감독도 ‘장군의 손자’를 찍을 수가 없다고 역시 ‘아우성’이다.
혼탁해진 도시와 함께 상실해가는
지난날의 꿈
로마 사람은 아직도 로마 사람들이라고 한다. 그들은 역사를 아끼지 않는 민족을
미개인으로 본다고 했다. 5천년의 역사를 갖고 있으면서 남기지를 않고 있다면
우리가 그들에게 미개한 민족으로 보이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니겠는가.
영국이 그들 의사당의 장관을 위해 템즈 강 대안(對岸)의 고층 건물을 규제하는
사례나 프랑스가 파리의 정경(情景)을 위해 건축의 신·개축을 엄격히 규제하고
또 문화재와 환경보호를 우선하여 도시개발을 하도록 조치한 것도 타산지석이
아닌 것이다.
외국의 한 도시계획가는 개성있는 도시를 만드는 7가지 기준을 이야기한 바 있다.
우리도 그 방안을 대체해 다음과 같이 설정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역사적 유산을 잘 보존하고
·형태적 질서를 소중히 여기고
·지역의 지형적 특징을 존중하며
·공원과 녹지대를 확보하며
·하천과 연못, 호수 등을 아름답게 연출하고
·사람들에게 만남의 장을 더 확보하고
·보행자가 안전하고 기분 좋게 걷도록 한다.
우리도 이를 하루속히 실천에 옮겨야 한다.
며칠 전 망년파티에서 만난 한 러시아 과학자, 한국인 2세 김용화 박사는 “도대체
한국의 도시·건축이 그게 무어냐”고 나에게 화를 냈다. 나는 변명하기에
급급했다. “전쟁과 가난으로 우리는 우리의 것을 가꿀 수가 없었다”고.
“그러면 한국의 서민들은 어디에서 어떻게 살았다는 거냐, 나는 그곳을 보고
싶다”라고 말했다. 그의 조상들이 살던 장소를 그는 보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와서 선대(先代)를 욕되게 할 수는 없다. 문제가 있다면 오늘 우리에게 있는
것이다.
지방 도시의 시세(市勢)도 급팽창하고 있다. 어제 오늘이 다르다. 지방민들의 마음
속엔 여전히 서울과 같은 대도시의 꿈이 도사리고 있다.
그러면 대도시는 어떤 곳인가. 외국에서는 1백만의 인구를 갖는 도시를 대도시라
한다. 비정상적인 도시 서울을 정상으로 보는 시민의 시각이 잘못된 것이다.
도시가 혼탁해지고 환경이 버려지는 것보다 더 큰 상실은 우리의 지난날의 꿈을
잃게 되는 것이다. 조그만 골목길, 이마가 깨지던 이웃집 낮은 지붕, 신작로에
있던 어제 그 은행, 관청 그리고 내가 다니던 학교들이 모두 헐려 콘크리트 숲으로
변한 도시는 누구를 위한 도시인가. 이제 우리는 후대(後代)에 부도덕한 그 행위로
지탄받게 될 것이다.
도시는 표정이 있고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 그것이 역사인 것이다. 짧은 역사의
도시는 오늘의 것이 역사이다. 미국의 짧은 역사는 오늘의 모든 것이 역사이듯이
근대화된 시점에 생성된 도시들의 짧은 역사도 지금부터가 모두 역사인 것이다.
좋은 건축, 살기좋은 도시 알리는 해가 되어야
‘건축문화의 해’라는 것도 그렇다. 아무리 신문기자들에게 건축과 도시에 대한
보도를 요구해도 관심 밖이고 기껏해야 1·2단 짜리 기사 정도이다. 그러니
아름다운 건축물이, 도시가 만들어 질 수 없는 것이다. 국민들이 관심이 없는데
건축가들에게 책임을 전가할 수만은 없는 것이다.
외신을 타고 들어오는 건축 뉴스는 수없이 많은데 외신기자는 건축을 뉴스로
데스크에 올리지 조차 않는다. 쉽게 얘기해서 자기가 아는 수준의 기사만 뉴스로
올리기 때문이다. 외국의 건축물 뉴스, 건축상 수상 뉴스 이런 것은 보도 자체가
없는 것이다. 3류 쇼만도 못한 것이 건축뉴스이다. 그 덕분(?)에 국민들은
건축가를 연속방송극 단역 이름만큼도 모른다. 그리고 부끄러워하지도 않는다.
영화배우 스캔들은 속속들이 알면서도 자기 동네를 버리고 있는 건축물은 알
가치조차 없어 한다. 이해심이 많은 건가. 얼굴 화장하고 좋은 옷 입어도 건축물이
나쁘고 도시가 치졸하면 그녀는 창녀의 모습과 달리 평가받지 못하는데도
불구하고….
금년 ‘건축문화의 해’는 건축가를 위해 하는 행사가 아니다. 국민들에게 관심을
갖게 하고 좋은 건축이 무엇인지, 살기 좋은 도시는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를
알려 주려고 하는 것이다. “우리는 건축을 모릅니다.” 이제 그런 말이 더 이상
자랑거리가 아닌 날이 오게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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