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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지킴이
평생 무대만을 지키고 있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
이선실 르포라이터
심청이가 임당수에 빠진다, 피터팬이 날아다닌다…. 문자나 영상으로 표현하기는
쉬운 일이다. 그러나 이것이 무대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면? 멀쩡한 무대에서
심청이가 임당수에 빠지거나 피터팬이 날아다니는 장면을 연출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배우의 연기력으로 해결될 문제도 아니다. 이러한 기술적인 면은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뒤에서 묵묵히 일하는 무대감독의 몫이다.
무대감독 유경환, 내노라 하는 연극 팬에게도 낯익은 이름은 아니다. 아직까지
무대감독에 대한 인식이 낮기 때문이며, 유경환 씨가 남 앞에 나서기를 꺼리는
까닭이다. 그래서 그의 이름 석자보다는, 지난 ’88올림픽 폐막식 때 갑작스러운
암전과 함께 둥실 떠올랐던 보름달을 연출한 사람이라는 것이 더욱 유명하다.
유경환 씨가 무대감독을 시작한 것은 ’60년대 초반의 일로, 아직 우리나라에
무대감독이라는 직업에 대한 인식조차 정립되지 않았을 때다. 그때만 해도 무대에
대한 예산이 거의 없었고, 스탭들의 장르에 대한 구분도 불분명했다. 그런 시대에
그가 무대감독을 지망한 것은 연극을 하던 작은 형님 유영환 씨의 영향에
의해서다. 그는 형님을 따라다니다가 무대감독에 매력을 느꼈고, 그것이 연극과
평생 인연을 맺는 계기가 됐다.
실험극장 개관 무렵, 정식으로 연극에 입문한 그는, 무대감독으로써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국립극장, 세종문화회관, 호암아트홀, KBS 홀 등 국내의
유명 무대의 개관이 그의 손을 거쳤다.
연출가가 연극 전체를 지휘하는 총사령관이라면, 무대감독은 진행을 끌고 가는
야전사령관이라고 할 수 있다. 기획단계에서부터 무대장치, 음향, 조명, 기계 등
각 담당을 총괄하고 대관공연 때 무대의 기능을 알려주며, 공연이 시작된 뒤에는
안전관리까지 도맡아야 한다. 그야말로 무대의 모든 잡다한 일을 챙겨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우나 작가나 연출가처럼 화려한 주목을 받지도 못한다.
무대감독이란 연출가가 요구하는 것을 가장 비슷하게 만들어내는 무대 뒤의
사람이다.
유경환 씨는 그런 무대 뒤를 30여 년이 넘도록 지켜오고 있다. 그냥 지키고 있는
것이 아니라, 훌륭한 무대감독이 되기 위해 세트, 조명, 음향, 소품 등 제반 스탭에
관한 일을 모두 배웠다. 무대감독의 어떤 매력이 유경환 씨를 사로잡은 것일까?
그는 무대감독이란, 한마디로 관객을 속이는 작업이라고 말한다.
무대에서는 실물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가장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는 모조품이
필요할 뿐이다. 이런 효과를 만드는 사람이 바로, 무대감독이라는 것이다.
’88올림픽 때, 세계인의 탄성을 자아낸 보름달 역시, 사실은 속임수일 뿐이다.
당시 진행감독을 맡은 유경환 씨는 무대의 변환을 위해 무대 밖으로 관객의
시선을 뺏을 방법을 연구하다가, 개막식 때 쓰고 남은 애드벌룬에 은박을 두르고
핀 조명을 사용해 하늘로 날려보냈다. 그것 역시 임시 방편이라 시간이 부족해,
애드벌룬의 위쪽에는 은박지를 미쳐 부치지 못한 상태였다고 한다. 그러나
보름달의 연출 효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마치 폐막식의 하이라이트처럼 주목을
받았던 것이다.
서울예술단의 「심청」 공연은 유경환 씨의 연출작품. 그 작품에서도 무대감독
출신의 진면목이 유감없이 발휘됐다. 대개 심청이 임당수에 빠지는 장면은
암전으로 처리되던 것이 종래의 관행이었다. 그러나 유경환 씨는 좀 더 실감나는
연출을 위해 이동 시이소를 동원, 갑자기 무대에서 심청이가 사라지는 명장면이
탄생한 것이다.
우리 무대사에 기록될 또 하나의 명장면은 ’80년대의 뮤지컬 「피터팬」.
피터팬이 날아다니기 위한 날틀은 순수한 유경환 씨의 창작품이다. 기존 외국의
날틀은 활동 반경에 제약이 있었던 것에 비해, 그가 만든 날틀은 아무 장소에나
묶어두면 공간의 제약 없이 날아다닐 수 있었다. 이후, 우리 연극계에서 10여 년
동안 그가 만든 날틀이 사용되고 있다.
그밖에도 ’86 아시안 게임 개·폐회식, 서울 올림픽 개·폐회식, 대전 엑스포
개·폐회식 등 국제적으로 주목받는 행사는 모두 그의 작품이다.
그의 이런 업적들은 하루아침에 나오는 것은 아니다. 작가는 상상력을 동원해
집필을 하지만, 실감나는 무대를 만드는 것은 무대감독의 몫이다. 그는 작업에
임하면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고 심지어는 잠잘 때 꿈에서조차 작업을 한다고
한다. 어떻게 보면 무대감독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작업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무대감독의 위상은 아직도 초라하기 그지없다. 무대감독이
하나의 전문직종으로 인식된 것도 최근 몇 년 사이의 일. 그나마 유경환 씨는
생활에는 큰 불편이 없었다. 물론 연극무대만 지켰으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는 생활의 방편으로 국가 행사의 연출을 다수 맡았다. 역대 대통령의
취임식이 모두 그의 작품. 그런 생계 수단이 없었다면, 아직까지 무대를 지키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그는 무대감독으로 평생을 살고 있는,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몇 년 전부터 그는 그동안 무대에서 닦은 연출 솜씨를 발휘, 직접 사령관으로 뛰고
있다. 서울예술단의 「애랑과 베비장」, 「심청」, 「애니깽」들이 그의 연출
작품. 요즘은 동계올림픽의 무대감독을 맡아 준비하고 있다.
그가 무대감독을 하면서 가장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은, 우리나라 극장 현실이다.
대형 극장들이 늘어나고 컴퓨터 시스템을 활용한 최신 기자재들이 도입되고
있지만, 그러한 극장 시설이 작품의 질로 이어지는지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대극장 시스템은 오히려 세트 등 제작의 부담만 커지고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보다 실감나는 장면을 위해, 세트를 완벽하게 세우거나 극장을 개조하는 것이
필요하지만, 극장이 대형화되고 대관일이 짧다보니 한번 쓰고 폐기처분될 세트에
돈을 쓰거나 극장을 개조하는 것이 불가능한 실정이다.
그는 우리 연극계의 발전을 위해 전용극장제의 도입이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장기공연이 가능하다면, 작품에 맞춰 훨씬 뛰어난 무대를 만들 수 있다는 것.
물론 무대 효과만 뛰어나다고 해서 좋은 작품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무대의
꽃은 역시 배우로, 유경환 씨는 무대감독이 가장 중점을 두어야 할 것은, 배우가
가장 편하게 연기할 수 있는 무대를 꾸미는 것이라고 한다. 아무리 무대가
훌륭하고 소품이나 의상이 뛰어나도 배우가 연기하기에 불편하다면, 그것은
실패한 작품이 될 수밖에 없다.
그는 평생을 프리랜서로 살아왔다. 단 한번도 월급을 받은 적이 없다. 지금까지
1500여 작품에 참여했지만 변변한 상 한번 받아본 적이 없다. 그러나 유경환 씨는
그런 것들에 미련을 두지 않는다. 일을 하는 동안은 혼신의 힘을 다 하지만, 그
일이 끝나는 순간 미련없이 돌아서는 것이 진정한 프로의 자세이기 때문이다.
단지 뛰어난 무대 효과에 감탄하고 박수를 보내는 관객이 있다면, 그는
그것만으로도 자신이 무대감독을 선택한 것에 만족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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