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프로그램 [국민의 정부]  문화정책변화와 향후 방안 / 문화산업
 

한국방송산업, 다양한 인식의 전환을

김 병 수 / 디지틀조선일보 전략기획팀장
 한국방송의 어제와 오늘  
한국이 최초로 텔레비전 방송을 시작한 것은 미국에 의한 식민 지배의 필요성 때문이었다. 1956년 HLKZ-TV의 개국이 그 대표적인 실례다. 지금처럼 “방송이 없다면 중세 암흑기와 마찬가지다”라는 등식은 적어도 한국이 방송을 시작한 시점에서는 전혀 찾아 볼 수 없었다. 오히려 방송은 우리의 필요보다는 미국의 필요로, 국민의 필요에 의해서 보다는 일부 정치권력자와 엘리트의 필요로 그 수용의 여건이나 발전조건, 사회적 영향력 등은 거의 무시된 채 졸속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한국의 방송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1961년의 KBS개국, 1970년대의 TBC개국과 통폐합, MBC개국 등등의 과정들이 ‘정치권력 구조의 변화’에 따른 새로운 매체의 도입, 관련제도ㆍ법령의 변화, 방송 유관 기구의 변화 등과 매우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KBS개국 이후 본격화된 가치중립적인 방송 이념(‘공공성’과 ‘공익성’)만 보더라도 방송은 출발부터가 정치권력과 불가분의 관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즉 ‘공공성’은 방송이 정부만이 소유할 수 있는 절대 권력으로, 그리고 ‘공익성’은 정부와 정치권력만이 운영할 수 있는 유일한 ‘공기’(公器)로 국민을 설득시키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물론 1990년 이후 실질적인 상업방송이라 할 수 있는 서울방송의 개국과 지역민방 설립, 케이블TV의 실시 등으로 민간 주도의 방송이 탄생했다. 하지만 이러한 민간 주도의 방송은 ‘공공성’과 ‘공익성’에 기초한 방송 제도하에서의 각종 규제 정책으로 인해 진정한 상업방송의 실현을 이루지 못하고 ‘과잉 시청률 경쟁’과 ‘방송 프로그램의 저질화’만 양산시켰다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심각한 재정 빈곤 상태에 처해있다. 이처럼 외형적으로는 ‘공민영 혼합 방송 체제’라는 안정적인 시스템을 형성하고 있지만 내용적으로는 여전히 강력한 ‘공영방송 체제’ 위주의 방송 이념과 정책으로 일관하고 있어 새로운 방송 정책과 제도의 필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혁명적 패러다임 변화, 방송의 ‘디지털화’ 
이런 와중에 통신에서부터 시작된 ‘디지털 기술’이 선진 각국의 방송 이념과 구조를 이미 오래 전부터 변화시켰고 21세기 매체 환경의 핵심적인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디지털화’를 통해 변화하고 있는 세계의 방송환경은 방송에 대한 새로운 용어상의 정의에서부터 전체적인 시스템 구성에 이르기까지 전면적인 변화를 요구하고 있어 일명 ‘혁명적인 패러다임 변화’라 할 수 있다. 대표적인 방송 환경의 패러다임 변화를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디지털 기술로 인해 아날로그 중심의 지상파 방송 논리가 퇴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지금까지 ‘전파의 희소성’내지는 ‘전파의 정부 통제와 허가’라는 패러다임을 일축시키고 디지털 기술에 의해 거의 무한대로 늘어나는, 그것도 방송과 통신의 융합이 가능한 ‘다채널 멀티미디어 방송’의 개념을 양산시키고 있다. 둘째는 다매체, 다채널 환경으로 시청자 주권이 중시되는 경향이다. 이전까지만 해도 방송은 ‘공급자 중심의 방송서비스’로서 국민의 다양한 사회문화적 복지 충족과 라이프 스타일 변화에 따른 욕구를 제대로 충족시키지 못했다. 그러나 다매체, 다채널이 가능해지면서 국민들은 스스로 채널을 선택할 수 있으며, 필요에 따라서는 유료 방송을 시청할 수 있게 되는 ‘시청자 중심의 방송서비스’로 변해가고 있다. 셋째는 방송의 개방화, 자유화, 탈국경화의 확산이다. WTO체제의 등장 이후 방송은 전세계에서 국제적으로 교역이 가능한 서비스 상품으로 인식되고 부가가치가 높은 상품으로 막대한 자본이 투자되기 시작했다. 특히 선진 각국의 위성방송은 세계를 ‘지구촌’Global Village 으로 묶을 수 있게 했고, 그 바탕 위에 방송프로그램을 전파에 실어 유통시키고 있다. 뿐만 아니라 디지털 위성방송에 의해 가능해진 다채널은 세계적으로 프로그램 부족 현상을 유발시켜 프로그램의 개방화와 세계화를 동시에 진행시키고 있다. 넷째는 세계 방송산업이 ‘글로벌 경쟁시대’로 급속하게 진전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방송컨텐츠가 세계 영상컨텐츠 시장의 90% 이상을 차지하기 시작하면서 지상파방송, 케이블TV, 위성방송 등 연관사업자간 인수ㆍ합병(M&A)이 본격화 되어 거대한 복합미디어 사업자가 출현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일국 차원의 한정된 M&A 수준을 넘어 전세계 컨텐츠 사업자를 대상으로 하는 ‘글로벌 비즈니스’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다. 다섯째는 방송 정책의 규제 완화다. 이미 선진 각국은 새로운 방송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관련법을 개정, 방송의 ‘공공성’과 ‘공익성’에 입각한 기존의 규제틀을 과감하게 완화하고 있는 추세다. 특히 방송에 ‘산업성’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수용해 투자와 고용 및 세수의 증대를 유발시키는 경제 원리를 도입한지 오래다. 또한 뉴미디어의 인프라는 사회간접자본(SOC)과 같은 개념으로 인식해 정보사회의 국가경쟁력을 위한 중요한 요소로 간주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연히 선진 각국은 새로운 패러다임을 위해 방송 산업에 대해 적절한 자국내의 투자 환경을 조성함과 동시에 해외자본을 적극적으로 유치해 자국의 영상산업을 보호하고 국제 경쟁력을 강화시키는 정책을 병행하고 있는 것이다.  

방송개혁위원회의 방송개혁방향  
이상의 방송 환경 변화에 맞춰 한국 내에서도 ’98년말부터 <방송개혁위원회>(이하 방개위)가 ’99년 2월말까지라는 한시적인 기간을 설정하고 방송에 대한 새틀을 짜기 위해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최근 1차 공청회를 통해 방개위는 지금까지의 방송 정책을 ‘방송에 대한 철학과 이념의 부재’, ‘방송의 독립성과 자율성의 부재’, ‘방송정책의 종합성ㆍ일관성ㆍ투명성의 부재’, ‘프로그램의 질과 공공성의 확보 실패’, ‘시장정책의 실패’라고 평가하고 이에 대한 반성이 필요하다고 발표했다. 뿐만 아니라 앞으로의 방송 개혁 방향을 ‘방송의 독립성 강화’, ‘방송의 공익성 강화’, ‘방송의 품격과 정체성 확보’, ‘방송ㆍ통신 융합추세에 대한 능동적 대처’, ‘수용자 권리와 복지의 향상’, ‘방송매체간·채널간 다양성 확보’, ‘방송시장의 정상화와 조직의 효율화, ‘독과점 방지 및 공정경쟁 원칙에 입각한 방송 산업의 활성화’, ‘방송 제작체계의 합리화와 전문성 제고’, ‘디지털 방송 등 신규 서비스의 개발’이라고 공표했다. 방개위의 방송 개혁방향은 누가 보더라도 완벽한 것 같다. 그리고 더 이상의 개혁방향이 당분간은 존재할 수 없을 정도로 방대한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있고 이번만은 제대로 된 방송개혁 방향이 나오기를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몇 가지 기본 방향 설정에 대해 아직까지도 부족한 부분이 없지는 않은 것 같다. 이러한 취지에서 한국의 방송 산업에 대한 정책은 총론적인 기본 전제와 강론적인 다양한 인식 전환에서 다시금 고심할 필요가 있다.  

한국방송산업의 경쟁력 강화  
먼저 총론적인 기본 전제는 한국내의 모든 산업과 기업의 현좌표에서부터 출발할 수 있다. 한국의 방송을 포함한 전반적인 여타 산업의 경쟁력은 선진 각국과 비교할 때 매우 빈약한 것이 사실이다. 물론 최근 몇 년 사이 비약적으로 성장한 것은 사실이나 이는 국내만을 한정시킨 절대적인 평가이며, 오히려 주변 국가와의 상대적인 평가에서는 아직까지도 취약한 것이 사실이다. 우리가 세계적인 규모라고 자랑하는 산업분야가 이미 전세계적으로 사양길에 접어들고 있고, 삼척동자도 알고 있는 유수의 기업은 이미 오래 전부터 외국 자본이 경영권을 장악한 상태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이 핵심적으로 육성할 수밖에 없는 분야는 ‘커뮤니케이션 서비스’Communication Service 분야라고 할 수 있다. ‘커뮤니케이션 서비스’ 분야는 방송과 통신, 신문, 잡지, 광고, 전자출판 등의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분야까지를 모두 포괄하는 영상컨텐츠 산업이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넓게는 지식산업까지도 포함할 수 있는 무궁무진한 분야라는 것이다. 그 중에서 방송 산업은 가장 핵심적인 분야라는 것을 제대로 인식할 필요가 있고 시급히 경쟁력을 갖춰 나가야 할 것이다.   

인식의 전환과 제도적 보완이 필요한 때  
다음으로 ‘커뮤니케이션 서비스’ 육성을 위한 강론에서는 기존의 사고틀을 전면적으로 바꿔 나갈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고 이에 대한 제도적인 보완이 요구된다. 첫번째는 방송서비스의 유형을 송신자와 수신자의 관계에 따라 분류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즉 지상파 중심의 매체를 ‘방송’Broadcasting 으로, 케이블TV와 유료방송 등을 ‘협송’Narrowcasting, 주문형 비디오(VOD)와 같은 서비스 유형을 ‘개인대상의 방송’Pointcasting으로 세분화시키고 이에 대한 정책을 그 특수성에 따라 차등적으로 수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방송과 통신이 융합되는 현시점에서 시급히 요구되는 부분이다. 두번째는 방송과 통신이 융합된 멀티미디어 서비스를 활성화시키기 위한 방안이다. 멀티미디어는 문자, 오디오, 영상 등이 복합된 컨텐츠의 다양한 유통이라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매체간의 윈도우 Window가 보장되지 않으면 활성화시킬 수 없다. 최근 이러한 멀티미디어화된 컨텐츠가 인터넷을 통해 엄청나게 제공되고 있다. 그래서 인터넷방송을 방송 Broadcasting 시각에서 규제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하지만 엄밀하게 이해하면 이것은 ‘방송’이 아닌 ‘인터넷 컨텐츠’다. 따라서 규제 자체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아직까지는 시기상조라는 것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세번째는 방송프로그램의 양적, 질적인 발전을 위한 방안이다. 현재 한국의 방송 산업은 다매체ㆍ다채널은 운영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태다. 그런데 이를 위해서는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고 외국 프로그램 사업자와의 교류가 필요하다. 따라서 국내 대기업과 언론사는 물론 외국 자본의 국내 방송 산업 참여를 적극적으로 유도해야 한다. 특히 외국 자본에 대한 참여폭을 크게 확대해 방송 시장 전체의 활성화를 우선적으로 촉발시켜야 할 것이다. 네번째는 방송에 대한 정부의 규제를 최소화하는 방안이다. 우리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방송 정책을 새롭게 재편해야 한다는 것을 수 없이 들어왔다. 하지만 그 내용을 보면 언제나 큰 틀은 변하지 않고 항상 ‘공공성’과 ‘공익성’을 위한 규제 일변도의 정책으로 일관해 왔다. 따라서 이제는 과감하게 ‘시장 경쟁 원리’를 도입해 유익하지 못한 프로그램을 양산하는 사업자는 자연스럽게 도산할 수 밖에 없는 체제로 전환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정책만이 방송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