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 영 선 제민일보 기자
새봄을 맞는 입춘날, 제주시 관덕정 마당에서는 함박눈이
폴폴 흩날리는 가운데 멋드러진 굿판이 벌어졌다.
‘신명남, 그 아름다운 하나됨을 위하여’를 주제로 내건
‘탐라국 입춘굿 놀이’가 입춘날인 2월 4일 하루동안 제주시 관덕정 마당에서
70여년만에 복원된 것이다.제주시 상징민속축제로 올해 부활된 이 입춘굿 놀이는
민관합동의 풍년기원굿이자 걸궁축제. 척박한 토양속에서도 새 철이 드는날
한해의 풍요를 기원하며 벌였던 이 축제는 선인들의 얼과 향기가 배어있다.
제주시가 주최하고 제주 민예총이 주관한 이번 행사는 입춘전야인 2월 3일 제주도문예회관
대극장무대에서 도내외 유명 예술인들이 모여 춤과 노래로 신명의 장을 여는
것으로 시작됐다. 이날 밤 10시에는 제주시청 현관앞에서 열림굿의 의미로 입춘놀이를
위해 특별히 탐미협 소속 송맹석씨가 나무로 제작한 소(낭쉐)를 금줄에 치고
풍농과 안녕을 기원하는 ‘낭쉐고사’를 지냈다.
탐라입춘국
입춘굿놀이는 4일 오전 9시 제주시청에서 시작된 거리굿
행렬로 막을 열었다. 낭쉐를 이끌고 만장이 펄럭이는 가운데 벌어진 이날 거리굿은
제주시 삼도일동 주민들로 이뤄진 풍물패, 도립예술단 대학풍물 연합, 제주남교
어린이, 영화 이재수란의 출연진등 5백여명이 참여해 거리를 달구었다.
이어 관덕정마당에 설치된 무대에서는 제주도립예술단의제주
판굿과 제주칠머리 당굿 보존회의 김윤수 심방의 집전으로 1만8천 제주의 신들을
초청해 올해의 풍등을 기원하는 한마당 큰 굿판이 펼쳐졌다. 초감제 농경신인
세경할망을 청하는 오리정 신청궤, 추물공연 본풀이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굿이 진행되는 동안 한해의 액과 살을 막아주십사는 의미로
인정을 거는 사람들에게는 주최측이 마련한 입춘부적이 증정되기도 했다.
또 제주신화 속의 세경신이자 사랑의신 ‘자청비’를 화가
강요배씨에 의해 어여쁜 여인으로 형상화한 그림이 탐미협 소속 화가들에의해
대형 걸개그림으로 첫 선을 보여 눈길을 끌었다.
이날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풍농굿 세경놀이. 아이의 출산과
농사를 짓는 전 과정을 보여주는 모의적인 풍농굿으로 백장동티를 당해 잉태한
팽돌이를 무사히 낳기를 기원하는 수룩춤을 비롯해 오방춤 사대소리 솔기소리등
이색적인 볼거리와 노래가 어우러졌다.
입춘굿 놀이 대미는 민관이 화합해 하나가 돼 놀았던 탈놀이
마당을 재현한 입춘탈굿놀이.한바탕 흐드러진 축제마당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이 탈놀이에는 시민들도 한데 어울려 즉석 춤판을 만들었다. 입춘탈은 고증을
거쳐 갈촌탈박물관장 이도열씨가 제작한 것들로 탈을 남녀의 성행위와 출산
등을 가면극의 형식으로 보여줘 관중들의 폭소를 이끌어 냈다.
이날 행사장에는 시사만화가 박재동화백이 입춘굿에 참가한
시민들의 얼굴을 직접 그려 선물하는 인물스케치전이 열려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관덕정 주변에서는 옛날 제주목사가 입춘굿을 구경나온 백성들에게 술과
음식을 나눠 주었던 유래를 되살려 입춘국수와 술과 고기를 무료로 접대, 인기를
끌었다.
제주도는 탐라국 시대 이래로 새봄을 맞이한 기쁨과 풍요로운
농사를 기원하는 입춘굿 놀이를 해왔다. 조선시대의 기록에도 입춘굿은 탐라왕이
소를 끌며 쟁기를 잡고 몸소 밭을 가는 풍습이 있다는 기록이 전해오고 있다.
백성들은 모두 관덕정마당에 나가 입춘 춘경을 구경하며 액땜을 했었다. 입춘굿의
마지막에는 재미있는 탈굿 놀이로 탈을 없앤다는 액막이를 하며 목사와 읍성의
사람들이 평등하게 나누는 대동놀이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조시대에 창건돼
5백50년 역사를 간직한 관덕정은 제주백성을 다스리는 관아지였다. 제주사람들이
모여 들어 시장판을 벌이고 온갖 놀이판이 벌어지는 굿놀이 마당이기도 했다.
해방공간에서는 집회가 이뤄지기도 했고 제주민란과 4·3의 피어린 역사현장의
현장이다.
이번 입춘굿 놀이 복원은 20세기를 마감하고 새 천년을 맞기위한
길목에서 관덕정 마당을 신명나는 문화의 광장으로 깨워냈다는데서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