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 무용

 
 
 기획 공연 만개, 무용 대중화 주도

 

김 미혜(한양대교수, 연극평론가)

 

1999년 3월의 무용계는 한국무용사에 기록될 만큼 춤 공연이 그 어느 때보다 풍성했다. 신인들과 중견 무용가들의 개인 발표 무대 외에도 크고 작은 다양한 기획공연, 직업무용단들의 정기공연 무대, 그리고 해외 유명 무용단의 내한공연까지 서울 시내의 주요 공연장은 온통 춤 공연으로 가득 메워졌다.

 

 

 무용 작품에서 안무가의 비중을 읽게 한 네덜란드 댄스 시어터 내한공연 

 

 이 많은 공연 중에서 가장 관심을 끈 것은 안무가 지리 킬리안이 이끄는 네덜란드 댄스 시어터의 내한공연과 지난해에 이어 개최된 제2회 코리아 발레 스타 페스티벌이었다. 32명의 무용수들로 이루어진 네덜란드 댄스 시어터 1의 첫 내한공연(3월 11-14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은 한마디로 무용예술이 갖는 무한한 가능성을 확연히 보여주었다는 데서 한국 무용계에 시사하는 바가 컸다.지리 킬리안이 안무한 두 편의 작품 `행방불명'과 `이카루스의 날개'는 무용예술이 이 시대의 다른 어떤 예술 장르보다도 예술성이 뛰어나고 심미적인 아름다움을 가득 담고 있는, 무한한 상상력의 예술인가를 분명히 드러내 보였다.이들은 또 무용 작품에서 안무가가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입증해 보였다. 뛰어난 체형과 어떤 테크닉도 소화해 낼 수 있는 철저하게 훈련된 무용수들, 그 자체만으로도 뛰어난 예술작품인 단순한 무대미술, 결코 번잡스럽지 않은 그러면서도 핵심을 관통하는 조명, 여기에 철저하게 계산된 무용수들의 움직임까지 그들의 작업은 지리 킬리안이란 안무가의 명성이, 그리고 네덜란드 댄스 시어터라는 단체의 명성이 결코 거짓이 아님을 확연히 보여주었다. 네덜란드 댄스 시어터의 내한공연이 있기 불과 한달 전에 나는 헤이그에서 네덜란드 댄스 시어터의 99년 시즌 첫 공연무대를 지켜보았다. 오하드 나하린, 한스 반 마넨의 안무 작품에다 지리 킬리안의 신작도 만날 수 있었다. `반과거'(Half Past)란 제목의 작품에서 킬리안은 그의 안무작업에서는 드물게 비디오 영상을 작품에 도입했다. 이 작품은 뛰어난 무용수 두 사람이 작품 전체를 이끌어갔다. 편지를 쓰는 소녀의 영상이 펜 끝의 선명한 소리음까지 곁들여 스크린에 비치고 중세 수도원의 음악을 연상시키는 듯한 음악이 전편에 흐르면서 두 명의 무용수들이 등장한다. 이 두 사람의 움직임은 관객들을 긴장시키기에 충분했다. 손끝과 발끝까지도 살아숨쉬는 듯한 이들의 스트레칭은 관객들을 전율시킬 만큼 흡인력이 강했던 것이다. 이들의 2인무는 테크닉이 배제된 채 마치 내면의 감정이 그대로 몸으로 표출된 듯했다. 이번 내한공연에서 보여준 두 개의 작품에서도 킬리안은 무대장치나 조명 등을 통해 상징적인 메시지를 전하는 대신 무용수들을 통해서는 몸의 아름다움을 철저하게 부각시키고 있다. 그것은 관객들로 하여금 조형적인 아름다움 외에도 심미적인 아름다움까지도 체득하게 만든다. 몸을 매개로 하는 예술 장르의 특성을 마음껏 살리는 안무, 그것이 바로 킬리안의 마력이었다.여기에 기존의 고정된 정형을 깨트리는 (예를 들면 뿌리를 드러낸 채 나무를 거꾸로 극장 천장에 메단다든가, 고정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조명 기기를 무대 아래로 내려 공중에서 회전하도록 하는 시도 등은 고정된 관념을 깨트리는 파격적인 시도였다) 기발함이 컨템포러리 예술로서의 춤의 다양성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었다.

 

 

 기량 급성장, 발레 대중화의 기폭제 된 제2회 코리아 발레 스타 페스티벌

 

  국립발레단과 서울 발레 시어터, 유니버설 발레단, 광주시립무용단 등 국내 4대 직업발레단의 주역 무용수를 중심으로 한 13명의 무용수와 4명의 직업발레단 단장들을 중심으로, 국내 최고 기량의 무용수들이 함께 모여 펼친 제2회 코리아 발레 스타 페스티벌(3월 13-14일, 국립중앙극장 대극장)은 국내 스타급 무용수들이 한 무대에서 기량을 겨룬다는 점, 4명 직업발레단 단장들이 `파 드 카트르' 한 작품에서 나란히 공연한다는 점, 그리고 국립발레단과 유니버설 발레단의 주역 무용수들이 서로 파트너를 바꾸어 공연한다는 점, 한국 발레사의 과거, 현재, 미래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도록 기획된 피날레 공연 등으로 인해 공연전부터 화제를 모았었다.
제2회 코리아 발레 스타 페스티벌은 초청된 스타급 무용수들의 기량이 전년도 보다 높아졌고, 관객들의 숫자에서나 언론의 관심이 높아진 점 등 전체적으로 지난해보다 괄목할 만한 성장을 보여주어 이 페스티벌이 추구하고 있는 스타급 무용수들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키고 발레 대중화를 유도한다는 기획 의도를 만족시켜 주었다.
13일과 14일 이틀 동안 약간의 레퍼토리 차별화를 시도한 이번 공연에서 가장 두드러진 활약을 보인 무용수로는 김용걸과 김지영, 이원국, 김주원을 꼽을 수 있다. 13일 권혁구와 함께 `해적' 2인무를 춤춘 김주원은 14일에는 파트너를 이원국으로 바꾸어 `잠자는 숲속의 미녀'를 선보였다. `해적'에서 그녀는 32회전의 푸에테 기교를 무난히 소화해 냈고, `잠자는 숲속의 미녀'에서는 클래식 발레에서 요구되어지는 다양한 테크닉을 안정되게 보여줌으로써 국립발레단 주역 무용수로서의 가치를 한껏 드높였다.유니버설 발레단의 전은선과는 `백조의 호수' 중 흑조 2인무를, 국립발레단의 김주원과는 `잠자는 숲속의 미녀' 중 2인무를, 그리고 국립발레단의 김지영과는 `차이코프스키 파드되'를 춤춘 이원국은 초청된 스타 무용수 중 가장 연장자답게 노련한 리드와 여유있는 춤, 여기에 다양한 성격변신까지 곁들여 무용수로서 절정기의 모습을 보여주었다.김지영과 김용걸이 춤춘 `돈키호테' 그랑 파드되는 무용수 끼리의 호흡이나 두 무용수가 보여준 솔로춤에서의 기량까지 전체적으로 그랑 파드되의 춤 구성면 등에서 보면 가장 많은 점수를 받을 만했다. 1998년 파리 국제 무용 콩쿠르에서 최고 2인무상을 수상한 커플답게 그들의 춤은 앙상블 면에서 특히 뛰어났으며, 여기에 김지영의 캐릭터 연기와 김용걸의 체공 시간이 긴 그랑 주테 등은 기교적으로 세계 무대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기량을 보여주었다.김지영은 7명의 평론가들이 뽑은 다시 보고 싶은 작품으로 선정된, 이원국과 함께 춤춘 `차이코프스키 파드되'에서도 탁월한 쁘와송 기교를 선보여 월드 스타로 대성할 가능성을 보여주었다.이번에 처음 초청된 유니버설 발레단의 전은선은 비록 완벽한 것은 아니었지만, 어려운 `흑조' 2인무를 자신감과 함께 무난히 소화해 미래의 스타로서 성장할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중견 무용가 윤성주, 안은미의 신작 무대

 

개인 발표 무대를 꾸민 무용가 중에서 윤성주의 춤 공연(3월 9-10일, 문예회관 대극장)은 국립무용단에서 오래 동안 활동한 경력이 있는 무용가의 창작작업이란 점에서 관심을 모았다.`휴면'`들꽃' `둘, 그리고 다섯' 등 모두 세 작품이 선보인 이번 무대는 춤 구성 면에서는 기대에 못미쳤다. 그러나 `들꽃'에서 보여준 윤성주의 춤 기량이나 `둘, 그리고 다섯'에서의 남성 무용수들의 춤 테크닉 구성은 주목할 만했다. 남성 무용수들의 춤을 배열할 경우 대부분의 안무가들이 역동적이고 점프가 가미된, 빠른 템포의 춤사위를 중심으로 구성하는 것이 다반사이나 윤성주에 의해 만들어진 춤사위는 아주 느린 템포의, 절제된 움직임이 않았다. 그는 남성 무용수들의 춤을 2인무와 5인무 등으로 변주시켜 가면서 다양한 형태로 구성했고, 남성 무용수들의 잠재적인 개성들을 춤으로 끌어내려는 적극적인 시도를 보여주었다.윤성주의 솔로춤이 돋보인 `들꽃'에서는 어떤 메시지를 담아내려 하기보다는 들꽃 자체의 형상을 그대로 춤으로 표현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그의 춤 기량으로 보아 춤 자체 만으로도 완숙함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뉴욕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무용가 안은미의 `무지개 다방' 공연(3월 11-14일,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역시 그의 기발한 아이디어가 어떤 형태로 표출될 것인지 관심이 모아진 공연이었다. 2명의 외국 남자 무용수와 2명의 외국 여자 무용수 그리고 세 명의 한국 여성 무용수가 참여한 이 작품은 무지개의 일곱 색깔을 의미하는 7개의 섹션으로 이루어져 있다. 안은미는 이 직품을 통해 우리가 삶에 대해 갖고 있는 환상이 얼마난 허무한 것인가를 보여주려 했다. 각 섹션에 따라 각기 다른 장면들이 펼쳐진 이 작업은 안은미 특유의 기발한 아이디어가 선보이긴 했지만 작품의 완성도 면에서 보면 지난해 그녀가 선보인 `무덤 시리즈'에는 못미쳤다. 각 섹션에서 유사한 장면들이 많았고, 이들 장면들의 설정 역시 서로 유기적으로 잘 연결되지 못했다. 무용수들이 너무 자주 옷을 벗은 채 등장한다든가 소품의 활용 등이 지나치게 작위적인 면이 강했다. 예를 들어 작품 종반부에 무용수들이 케익을 여러개 들고 나와 꽤 오래 동안 보여주는 동작이나 행위들은 관객들이 잔잔한 메시지를 느끼게 하는데 오히려 방해요소로 작용했다. 이런 류의 작품은 여러개의 아이디어를 적용시키는 과정에서 보다 치밀한 계산을 필요로 한다. 더군다나 공연장소가 소극장 공간이라면 이 문제는 더욱 중요해진다. 유사한 패턴의 공연을 반복할 경우는 더더욱 그렇다. 안은미는 기발한 아이디어와 예상치 못하는 장면 설정 등으로 기존의 춤 공연 패턴에 익숙한 관객들에게 신선함을 전해주는 유별난 재주가 있다. 그러나 그런 재주들이 조합되어 나타난 결과물은 여전히 허점이 노출된다. 탄탄한 대본이 밑받침된 작업이 병행된다면 완성도 높은 예술 작품이 탄생될 가능성이 훨씬 높아질 것이다.

 

 

철저한 프로페셔널리즘 필요

 

  3월의 무용계에는 많은 신작들이 쏟아졌다. 특히 이제 처음 무대를 준비하는 신인들의 데뷔무대도 많았다. 공연이 많아지면서 상대적으로 수준높은 작품을 만날 기회도 그만큼 늘어나야 할 것이다. 그러나 중견 무용가들의 공연에서는 완성도 높은 작품을 좀처럼 만날 수가 없었다. 남이 하니까 나도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제대로된 작품을 선보이려는 철저한 프로페셔널리즘이 요구되는 시점이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