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프로그램

 

5월 청소년의 달과청소년 문화

문화체험은 21세기가 요구하는 교육의 참모습

 

 이 광 호   한국청소년개발원 연구위원


지친 사회, 시름하는 청소년
  바쁜 우리 사회에서 길거리 모퉁이에 서서 묵묵히 다가오는 21세기가 문화의 시대임을 알리는 전광판은 어김없이 몇 일이 남았다고 표시해주고 있다.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는 도무지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체감할 수 없는 문화의 세기는 우리의 머리에서만 맴돌고 있는 것 같다. 분명 21세기는 문화적 감성에 바탕을 둔 살아있는 지식이 국가와 개인 발전과 사람다운 생활의 핵심으로 등장할 것이다. 정부에서도 지식기반 국가건설을 제2건국의 핵심적 정책과제로 추진하고 있으며, 1999년도 국정지표의 하나로 지식기반 확충을 위한 일환으로 전국민이 동참할 수 있는 신지식인 창출을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지금까지 우리는 서구사회에 비해서는 터무니없이 짧은 근대화 과정 속에서 산업화와 정보화를 동시에 압축적으로 경험하면서 다가오는 문화세기의 중심이 되고 주체가 되는 사람과 그들의 고향을 잃어 버렸다. 사람이 없고, 사람이 사람다움을 유지해줄 수 있는 기반이 되는 마음의 고향을 상실한 상태에서 문화의 세기는 의미를 가질 수 없다. 그저 머리에만 맴돌 뿐이다. 문화는 그저 풍족한 삶과 바쁜 일상의 뒤안길에 숨어버리거나, 미래를 위한 현재 생활 속의 처절한 인내와 포기 끝에 찾을 수 있는 신기루 정도로 멀리 있는 것 같다.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자’고 외치면서 빨리 빨리 만들고, 다니고, 생각하며, 자신의 주어진 과정에 충실해야 한다는 효율적 생활은 이미 우리의 체질로 변해 있다. 산업화 과정에서 우리가 익힌 경제 효율적 삶은 우리 일생의 시간배분에도 스며들어 있다. 청소년기에는 오로지 내일의 행복을 위해 주어진 ‘공부’에만 충실해야 하고, 30~40대 들어서는 공부를 접어두고 돈벌이를 위한 ‘일’에만 매달려야 하며, 신체적 한계와 함께 찾아오는 노인이 되면 가을 거리에 뒹구는 낙엽처럼 지나치게 ‘한가’한 생활을 누려야 하는 세대간의 효율적 분업형태의 일상을 보내야 한다. 공부하고 일하고 한가한 생활을 보내야 하는 사람은 온데 간데 없이, 세대별로 공부와 일과 여가를 나의 유일한 과업으로 삼고 바쁘게 열심히 보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세대별로 분업화된 일상생활의 시간배분이 얼마나 우리 삶의 질을 황폐화시키고 있는지를 인생의 종착지에 다가가서야 알아차린 우리의 선배 세대들이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늙어지면 못 노나니’라고 외쳐주는 충고마저도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해보지 못하고 있다.

   희생과 수단으로 공부를 강요
  부모, 학교와 사회는 경제 효율적인 분업적 생활과업에 찌들어 우리 청소년들에게 도무지 ‘공부’이외에 ‘문화적 여가’와 ‘일’을 함께 돌려줄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다. 다가오는 문화세기에는 산업사회의 세대별 분업적 생활과업에서 벗어나 세대 내에서 즉, 청소년기.성인기.노년기에 구분 없이 공부하는 일과 여가를 동시에 수행하고 즐겨야 하는 총체적 생활이 피할 수 없는 시대적 조류로 등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창조적 사고 능력과 삶의 질이 21세기의 국가 경쟁력을 좌우할 것이라는 예견은 머리에만 가두어 둔채, 온몸으로 청소년들에게 오로지 미래의 풍족한 생활을 위한 오늘의 희생과 수단으로서의 공부만을 강요하고 있다. 빨리 빨리 산업화하고 정보화하여 세계와 어깨를 겨루는 데에 지쳐버린 사회와 IMF 한파로 한풀 꺾인 기성세대는 청소년들에게 우리가 내일의 행복을 위해 다못한 숙제를 맡겨버리려는 듯, 오히려 한치의 틈이 없는 공부로 채워진 틀에 박힌 생활을 초조하게 다그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이런 환경 속에서 용기 있는 일부 청소년들은 자신들만의 울타리를 치고 사람다운 사람을 찾아 공부 이외에 여가와 일을 돌려 받기 위해 타는 목마름으로 외치거나, 용기를 발휘하기보다는 준비된 침묵으로 일관하는 대다수의 청소년은 축 쳐져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생리적 불쾌감에 하루 내내 시름시름 앓거나 안절부절못하고 있다. 생리적 불쾌감은 온갖 스트레스와 더해져 신체적 거부반응으로 발전하면서 시름은 매슥거림과 화가 치미는 상태가 되고 급기야는 폭력적 양상으로 비화되기도 한다. 우리는 청소년들의 타는 목마름의 외침이나 시름과 생리적 불쾌감, 폭력적 양상을 이 시대의 청소년문화로 간주하고, 범람하는 ‘왕따’, ‘학교폭력’, ‘도무지 상상할 수 없는 버르장머리’를 연일 부각시키며, 청소년의 도덕적 몰락과 사회의 도덕적 공황현상을 염려하고 있다.
    
  
일그러진 청소년의 일상생활, 청소년 문화의 상실과 왜곡
  신앙처럼 굳어버린 부모님과 학교 선생님들의 효율적이고 성공을 약속하는 공부만으로 채워져야 하는 청소년기의 일상에 대한 생활신념은 청소년들의 다양한 체험기회를 구속해 버리고 있다. 골목길에서 나이가 다른 아이들과 함께 놀면서 골목대장을 모셔보기도 하고, 어느새 자신이 골목대장이 되어 이끌어 보기도 하며 터득할 수 있는 생활 지혜와 사회생활 연습은 때때로 공휴일에 아버지에 의해 제공되는 관리된 화려한 야외 외출 기회로 대신되거나 아니면, 각종 전자미디어로 채워진 자신만의 방안으로 닫혀 버린지 오래다.
  자신만의 공간인 방안 깊숙이 침투한 선정주의적 시장이 만들어 내는 소비문화와 전자미디어에 포위되어 있는 생활은 청소년들에게 보고 듣고 느끼는 오감(五感)의 확대를 초래하여 과잉자극 상황으로 몰아넣고 있다. 실제 생활 속의 경험을 통해 처음 직면하는 여러 가지 다양한 모순과 갈등들을 극복해 가는 과정은 생략한 채,  마치 자신이 세상 경험을 다해버린 것처럼 착각하는 작은 어른이 되어간다. 많은 간접경험을 통해 지식을 축적한 청소년들은 ‘똑똑한 작은 어른’이 되어 성인사회의 표리를 단락적(短絡的)으로 이해하며, 허구로서의 감성을 쌓아가고 있는 것이다.
  사람이 우선하고 특색이 있는 학교문화나 교풍이라는 내적인 요인보다는 단순히 경쟁과 성적이라는 상대적 지표가 기준이 되어버린 학교는 청소년들에게 자신이 세상에 둘도 없는 존재라는 실감을 상실케 하는 제도적 피로현상을 드러내주고 있는 실정이다. 즉, 학교는 청소년의 생활세계에서 다양하게 형성되어야 할 관계성을 축소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이제 청소년 자신들이 사이버공간에서 토해내고 있는 학교생활을 중심으로 한 일상생활을 곰곰이 되씹어 보자.

(어느 초등학생의 일상)
“저번 주 토요일에요, 저는 친구랑 놀았거든요? 넘넘 잼있었는데 어떻게 놀았냐면 맥도날드에 가서 저는 치즈버거, 친구는 불고기버거 먹구 감자튀김에  케첩두 찍어 먹었구요, 근린공원 놀이터에 가서 벽돌 조각두 줍구 하면서 신나게 놀았어요. 그런데 불만이 하나 있는데 왜 어린이들에게는 토요일만이 즐거운 시간이 될 수가 있는 거에요? 다른 날이라두 학교에서 즐거운 시간 보내다가 신나는 마음으루 하교길을 걸어와야 될 수 있는 것 아니에요? ... 원 숨이 막혀서 견딜 수가 없어요. 어쨌든 선생님들 저희 좀 살려 주세요!!!”
[제목] 토요일은 즐거워!!! 고렇지만 선생님......
[이름] 은빛엔젤 [등록일] 1999년 04월 13일

(어느 고1의 힘든 생활)
“바뀐 입시 제도로 고1들 일찍 집에 가고 좋게 보이지만, 요즘 정말 짜증나요. 전 과목의 수행평가 과제가 한꺼번에....... 또 형편없는 특기 적성교육에다, 정말 혼란스러워. 엄청난 스트레스. 또 평상시 행동 하나 하나에 신경써야 하고. 보기 보단 힘들어요.”
[제목] 고1 보기보다 힘들다고요.
[이름] 김근영     [등록일] 1999년 04월 15일
     
(어느 고등학생의 일요일 하루)                                
“저는 경북의 어느 ..... ? 다니는 학생입니다. 저희는  매주 일요일 학교에 가방을 매고 등교를 합니다. 이유는 ....? 부르니까.... 저는 게다가 기숙사에 있습니다. 일주일에 한번 집에 오는데 ... 맨날 살던 집이 생소해 보이는 기분. ... 하지만 꾹 참고 있습니다. ... 이유는 무엇보다 저 자신을 위해서 입니다. 저는 선생님들께 들었습니다. 우리학교 말고도 일요일에 자습하는 학교가 있다고.... 학생들께 말씀 올리고 싶습니다. 참으세요. 그리고 하라는 데로 하세요. 그게 미래를 위하는 겁니다. ..... 하지만 참습니다. ....  여러분! 일요일날 부른다고  열받지 말고 참읍시다...”
[제목] 일요일에 자습을 흑흑흑...
[이름] 박예준      [등록일] 1999년 04월 10일

(어느 대학생의 이유)
“언제나 시험이라는 것은 필요악이다. 하지만 ... 공부 잘하는 참을성의 천재는 나와도 창의력을 가진 진정한 천재는 나오지 않는다. ... 신사고를 유발하는데 장애를 주는 것이고 ... 전국 평균을 깍아내리는 인간이하의 두뇌로... 학생이 괴로워하는 이유는 간단해.. 우리교육이 ... 참을성 게임이 돼서 그런 거야.... 그리고 고딩들이여 공부가 힘들다고 말하지 마라. 세상에서 정답이 있는 건 공부밖에 없고 그래서 공부가 가장 쉬운 것이니... 우리나라만큼 공부하기 쉬운 나라도 없을껄?
[주제] 학생이 힘든 이유?   [토론자] LDEPT02    
[토론일시] 1998년 08월 29일            

(어느 청소년의 메시지)                                            
“대체 당신은 학생 알기를 무엇으로 아는 겁니까. 학생은 다만 나이가 어려서 좀더 배우는 과정의 신분일 뿐, 당신과 똑같은 인격의 당신과 똑같은 사람입니다.... 그렇게 강력히 통제해야 하죠? ... 당신의 선도방법이란 선도란 명목하에 좀더 학생을 일률적이고 일관화하여 지배하는 ... 더 조르는 행위입니다. 지구가 감옥입니까? 죄수는 학생에 간수는 기성세대... 자신이 못다한 공부 자식보고 하라고. 그저 아이들을 ‘공부 공부’하며 볶아먹는 그런 부모일테지요... 놀 장소가 없다는 말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구요... 어디서 놀아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당신은 논다는 개념을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 복잡한 문화 속에서 구해 주신다구요... 우리를 정말로 구해주려면 ... 싹 바꿔 주십시오. 청소년의 맘은 청소년이 아는 겁니다.... 당신이 생각하는 교육은 무엇이지요? 그저 사회에 전혀 쓸모 없는 죽은 학문들을 좀더 아이들의 ○○○에 쑤셔넣어 ... 바로 그런 교육이 인성마비를 불러 온 거라는 것을...”
[제목] 글들을 읽고 나서...  [토론자] KHY631  
[토론일시] 1997 / 07 / 12

  이렇듯 청소년의 생활에는 윤기가 없다. 거칠어진 일상생활에서 ‘청소년이 누구인가’, ‘청소년 문화 현상은 어떠한가’ 하는 물음은 공허하다. 따사로운 5월의 햇살 속에서 우리 사회는 또다시 흐려진 렌즈의 초점에 비쳐진 여러 가지 모습으로 청소년의 문화를 파헤쳐 가능성과 위험성을 동시에 지닌 존재로, 성실성이 붕괴되거나 아니면 잠재력을 가진 존재로 갈래 지우며 그들을 바라보리라. 우리가 즐겨하는 청소년 문화에 대한 ‘사오정식’의 문답에 아랑곳없이  청소년들은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사회적 동반자이기를 온몸으로 외치면서, 자신의 감성과 신체를 상품화하고 즐기고  개성적 삶을 갈구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다른 사람과의  동일성 속에서 안도하며 이율배반적인 피난처를 구해간다.

  살내음 나는 삶의 윤기를 찾아주자   
  청소년들은 우리보다 어리지만, 항상 우리보다 새롭다.  우리는 그들에게 엄숙한 교육적 메시지를 건네주거나 교육자적 역할을 하고 싶은 어른으로서의 노릇을 잠시 중단해야 할 것 같다. 그들과 어려운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동반자로서 서로의 삶을 이해하고 읽어주는 작은 실천이 필요한 시점이다. 우리 모두가 ‘빨리 빨리 쌓아가기’, ‘성인과 청소년간의 바담풍 놀이적 관계’를 청산하고, 직접적인 체험을 통해 얻어지는 살아 숨쉬는 실천 가능한 ‘지식 느끼기’를 시작해보자.

 

  체험을 통한 지식 느끼기
 21세기 문화시대를 주도하는 신지식인에게 요구되는 신지식은 지식의 쌓기가 아니라 느끼기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이 작은 실천은 청소년들에게 공부와 일과 여가를 동시에 돌려주는 작업에서  비롯된다. 여가와 일이 결여된 공부만의 삶은 생활경험과 관계의 축소를 가져다 주었다. 생활경험과 관계의 축소는 지식의 양적 확대를 가져왔지만, 청소년의 발랄하고 산뜻한 문화감수성의  발달을 저해하고 있다. 직접적 체험을 통한 문화 감성이 결여된 허구적 감성은 자칫 청소년들에게 ‘생리가’ 우선하는 인간으로 변질시킬 위험성을 잉태하고 있다. 이때 생리는 소위 생리적 욕구가 아니라 신체와 강한 관련을 가진 다양한 감각이나 감정을 말한다. 사회적 도덕의 무력화 속에서 생리적 행위는 확산되고 있고, 생리 앞에서 논리적 설득도 무용지물이다. 청소년들이 표출하는 왕따나 폭력들은 이런 생리적 행위의 일종이다. 경제적 성장의 신화가 붕괴한 가운데, 청소년들은 살아가는 목표나 거처를 상실한 채 이런 생리를 자신의 일관성을 지키는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근거나 기준으로 삼고 있다. 이성이나 사회적 모럴이 아니라 스스로의 생리를 가치기준으로 삼는 생리문화가 청소년들에게 만연해 가고 있는 것이다.   
   작은 어른에서 현명한 우리 시대의 동반자로 문화적 감성이 살아있는 윤기 나는 삶은 사람 내음 나는 직접적인 문화체험을 통해 체득되는 스스로 살아가는 힘을 기반으로 한다. 스스로 살아가는 힘은 이성적 판단이나 합리적 정신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것이나 자연에 감동하는 마음, 생명을 중시하고 공감하며 상상력이 살아있는 감성적 능력을 유연하게 포함하는 것이다. 스스로 살아가는 힘을 배양하는 문화체험학습은  곧 21세기가 요구하는 교육의 참모습이다. 이 5월이 청소년들에게 작은 문화체험을 통해 똑똑한 작은 어른에서 현명한 우리 시대의 동반자로 일어나는 ‘문화나눔운동’의 출발 시점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