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현장

국립극단 제182회 정기공연 '99 세계 명작무대
「한.중.일 동양 3국 연극 재조명 시리즈 1」

고전의 향기, 연극으로 보는 노신(魯迅)의 “아큐정전(阿Q正傳)”

 

이 혜 경 /  본지 담당


1986년부터 수준높은 세계명작, 특히 일반 극단이 제작하기 어려운 대작위주의 작품을 선정해 최고의 스탭진과 국립극단의 앙상블로 "좋은 연극 보기"의 갈증을 채워준 국립중앙극장이 '99 세계 명작무대「한.중.일 동양 3국 연극 재조명 시리즈」를 기획했다. 이번 한.중.일 동양 3국의 연극 재조명 시리즈의 동기를 국립중앙극장 남인기 극장장은 한마디로 동양 3국의 문화교류에 있다고 한다. "특히 일본문화 개방에 있어 순수문화예술교류는 적극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문화교류하면 우선 대중문화를 생각하게 되는데 순수문화예술교류는 상업성을 배제해야 하기 때문에 이렇게 국립극장에서 나서지 않으면 쉽지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즉, 20세기를 마감하는 1999년을 정리한다는 의미와 2000년, 문화의 세기를 준비하며 세계문화의 중심지가 될 동양 3국 한.중.일의 연극을 재조명한다는데 그 의의가 있다. 그 첫 번째 작품으로 중국의 작품, 노신을 세계적 작가로 만든 대표소설 「아Q정전(阿Q正傳)」이 4월 13일부터 18일까지 국립극장 대극장 무대에서 국내 처음 연극으로 공연되었다.

중국근대문학의 확립자, 노신(魯迅)
노신은 중국의 문학자이며 사상가로서 글 좋아하는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조부의 하옥, 아버지의 병 등 잇달은 불행으로 어려서부터 고생스럽게 자랐다. 커서는 일본에 유학, 센다이 의학전문학교에 입학하였으나 문학의 중요성을 통감하고 의학을 단념, 국민성 개조를 위한 문학을 지향하였다.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여서는 교편을 잡다가 1911년 신해혁명이 일어나자, 신정부의 교육부원이 되어 일하며 틈틈히 금석탁본의 수집, 고서 연구 등에 심취하였다. 1918년 문화혁명을 계기로 「광인일기」를 발표하여 가족제도와 예교의 폐해를 폭로하였다. 이어 「공을기」, 「고향」, 「축복」 등의 단편과 산문시집 「야초」를 발표하여 중국 근대문학을 확립하였는데 특히 대표작 「아Q정전」은 세계 문학작품의 영역에 이르렀다. 그의 문학과 사상에는 모든 허위를 거부하는 정신과 언어의 공전(空轉)이 없는 어디까지나 현실에 뿌리를 박은 강인한 사고가 뚜렷이 부각되어 나타난다.

노신의 대표작 「아Q정전」 공연
청나라 말기 어수선한 신해혁명기의 한 조그만 농촌마을을 배경으로 한 노신의 명작 「아Q정전」은 당시 중국 농촌생활을 심각하게 파헤쳐 '아Q'라는 품팔이꾼의 운명을 비극적으로 묘사함과 동시에 가진것도 없고 잘나지도 못한 그 당시 중국민중의 일그러진 한 모습을 대변하고 있다. 피붙이도 거의 없는 '아Q'는 가진 재산은 고사하고 잠자리도 변변치 못해 동네 사당에서 기숙하고 있다. 게다가 가끔씩 생기는 수입으론 술타령에 싸움질과 노름질로 세월을 보내며 세상에 대한 푸념만 늘어놓기 일쑤다. 자신의 꼴은 돌아 볼 생각도 않고 오로지 자신만이 잘났다는 막연한 자만심과 자부심으로 가득 차서 자기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 뿐 아니라 그 지역의 토호인 조영감댁, 전영감댁도 무식한 족속으로 폄하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또한 야비하고 기회주의적이기도 해서 조영감댁 족보를 팔아먹다 흠씬 두들겨 맞는가 하면 동네 건달들이 그를 무시하여 그에게 해꼬지를 해도 이렇다 할 대항 한 번 못한채 돼먹지 못한 세상 탓을 한다. 혹 그가 경멸하는 거렁뱅이에게 얻어맞기나 하면 굴욕스러워 어쩔 줄을 몰라한다. 이처럼 강한 자에게는 철저히 약하고 약한 자에게는 한없이 강해서 자기보다 힘없는 여자들에게는 마구 쌍욕을 해대며 화풀이를 하기도 한다.
이러한 '아Q'는 신해혁명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가지 못하는 타성의 사회에서 아무런 비전도 목표도 없이 혁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혼돈스런 시대에 대응하려 했으나 결국 비겁한 노예근성속에 공허한 최후를 마치는 '아Q'는 당시 중국인의 아픈 자화상인 것이다.
이처럼 「아Q정전」은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하고 낡은 습관에 젖어 있는 당대 중국사회를 통렬하게 풍자하고 있다. 또한  '아Q'의 비극적 운명을 묘사함으로써 중국민족의 좋지 않은 근성을 지적하고, '중화사상'에 빠져 나라를 서구 열강들에게 빼앗기게 되는 당시 중국민족의 절망을 그리고 있다. 발표 당시 보수파로부터는 '중국인의 나쁜 면만 부각했다' 급진세력으로부터는 '룸펜같은 농민을 주인공 삼았다'고 모두 공격을 받았던 작품이기도 하다.
이번 국립극장에 한국 초연으로 소개된 「아Q정전」은 중국 현대연극의 선봉장이라 불리는 진백진의 각색으로 공연되어졌다. 북경 연극대학출신의 강춘애씨가 본고장의 의미를 최대한 살리는 충실한 번역으로 국내에 첫선을 보였으며, 고려대학교 중문과 백영길 교수로부터 당시 시대상의 학술적 고증과 작품배경에 관한 자문을 받아 작품의 완성도를 더욱 높여 주었다. 연출에는 「거북선아, 돌아라」, 뮤지컬 「캣츠」, 「바리」 등으로 화려한 무대 메커니즘의 활용과 역동적인 연출로 정평이 나있는 김효경씨가 맡았다. 특히 1995년 「리챠드 3세」에 이어 두 번째로 국립극장 대극장 무대디자인을 맡은 김준섭의 무대미술은 아름다운 무대의 세계를 선보이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이밖에 주인공  '아Q'역을 전국환이 맡아 그의 탁월한 연기를 볼 수 있었으며, 장민호, 서희승, 정상철, 문영수 등 국립극단의 탄탄한 중견연기자들의 절묘한 연기앙상블을 볼 수 있는 자리였다.

양질의 공연으로 문화 향수층 확대
계속해서 이어지는 시리즈로 6월에는 한국작품인 함세덕의 「무의도 기행」을, 9월에는 국립극단이 최초로 마련할 일본작품이 선정중에 있다. 계속해서 11월에는 현존하는 한국의 대표적 극작가 중의 한사람인 오태석의 「운상각」이 준비중에 있다. 이번 한.중.일 동양 3국 연극 재조명 시리즈 공연작품은 "인간의 본성과 애틋한 정서, 좌절과 고난에도 굴하지 않는 미래에 대한 희망들이 작품 전편에 녹아들어 국경을 초월하여 연극이 지니고 있는 고유의 아름다움이 고스란히 살아있는 무대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자?작품선정에 역점을 두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국립극단의 향후 공연 방향과 국립극장이 추구하는 극장운영 방향에 대한 국립극장장의 포부를 밝혀 달라는 질문에 남인기 극장장은 이렇게 말한다. "국립극장의 역할은 우선 양질의 공연을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감상토록 함으로서 국민 정서 함양에 기여하고, 그 양질의 공연을 수시 순회 공연함으로써 문화 향수층을 확대하는데 있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국립극장의 존재이유는 바로 이런 양질의 공연을 상업성을 배제한 가운데 공연할 수 있는데 있지않나 생각한다. 좋은 작품은 관객이 판단하는 것처럼 수준높은 작품이 인기도 있다는 사실을 몸소 체험하면서 앞으로도 수준높은 좋은 공연을 무대에 올리고 지방 곳곳을 순회공연함으로써 보다 많은 국민이 좋은 공연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