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프로그램 - 새천년을 위하여 |
지금은 상상력의 경제학 시대이다
-밀레니엄 이벤트의 발전방향
이중한
한국문화복지협의회장
새 천년사업이 여하간 마련되었다는 것은 다행이라고 해야겠다. 그러나 남은 시간은 단지 6개월뿐이다. 결국은 저명인사들이 모여 테이프 커팅을 우아하게 하는 행사 몇 가지를 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하지만 2000년은 원래 문화적 기념행사를 위해 요란한 사건이 되어 온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무엇인가.미국 특허청에는 그 동안 수백 개의 기업이 밀레니엄과 관련된 상표의 등록을 해 놓았다. 이에 대해 미국 밀레니엄 조직위원회 마크 머든회장은 말한다. "너나 할 것 없이 모든 사람들이 밀레니엄을 경제적 기회로 보고 있다" 이것이 실상이고 핵심이다.2000년을 기념하는 프로그램들은 무심히 보면 마치 돈이나 쓰는 행사처럼 느껴질 수 도 있다. 그러나 실은 매우 영리적 의도를 갖고 있는 것이다. 특히 국가 이미지 경쟁과 관광산업에서 그러하다. 그 동안 준비되고, 이미 마케팅에 나선 몇 가지 확정프로그램들을 살펴보자.
미국 보스턴에서는 지역단위로 "기억의 벽"이라는 것을 만들고 있다. 자기가 사는 동네에 하나씩의 벽을 설정하고 지역의 자연과 역사를 표현하는 타일.벽장식.공예품.메시지들을 붙이는 것이다. 땅에 묻는 것이 아니라 드러내는 「역타임캡슐」이다. 만드는 과정은 비밀이고 99년도 12월 공개한다. 이런 프로그램이 바로 보다 많은 사람들이 직접 참여하여 만들어 내는 새로운 창조품이고, 이어서 오래도록 관광상품화 할 수 있는 생산저거 제품이다. 영국 런던은 「밀레니엄 돔」, 「밀레니엄 수레바퀴」, 「밀레니엄 다리」, 「밀레니엄 마을」을 국가차원에서 만들어 왔다. 현재 40억파운드(8조4천억원)를 투입했다. 이것은 벌써 세계관광상품으로 시장형성을 끝낸 셈이다. 그래서 영국은 또 50개 호텔을 새로 짓는 사업도 병행했다. 자신만만하게 관광객이 그 만큼 더 오리라고 믿는 것이다. 캐나다는 아예 「이해를 위한 세계재단 Global Foundation for Understanding」을 창립하고 「아이 휴먼 2000 I Human 2000」이라는 프로젝트를 운영했다. 이 조직은 각계 지명인들에게 지난 1천년 동안에 일어났거나 앞으로 다가올 1백년동안에 일어날 중요한 사건 또는 중대한 영향을 줄 일들을 물은 뒤, 이 결과를 전세계 아이들 1백명을 모아 조각품을 만드는 계획이다.
독일은 운 좋게 하노버에서 엑스포 2000을 하게 됐다. 엑스포주제는 「인류·자연·과학기술」이다. 축구장 13배나 되는 공간에서 멀티미디어 시뮬레이션으로 「도시풍경」이라는 소재를 투영한다. 이 프로그램 값만도 2억9천마르크(2천1백50억원)다.이탈리아 로마는 벤허 스타일의 마차 경주를 검토해왔다. 2004년 올림픽 유치를 그리스 아테네에게 뺏긴 감정까지 포함해 올림픽 조직위원회 주관으로 「성년의 성스러운 게임 Holu Game of Holy Year」라는 이름으로 진행한다. 이스라엘도 모든 성지에 기념프로그램을 설정했다. 요한계시록에 묘사된 「아마겟돈 전쟁」부지와 메기도산발굴부지에 홀로그램과 컴퓨터 그래픽을 사용할 계획이다. 이는 허리우드가 성공시킨 디지털 테크놀로지 영화 아마겟돈의 시장개척 이미지와도 연결되어 상당한 흥미를 유발하는 프로그램으로 꼽히고 있다. 이를 기반으로 이스라엘은 14개 관광센터를 새로 설립했다. 이 모든 프로그램의 요체는 무엇인가. 보다 놀라운 이벤트를 만들고 세계차원관광수입을 올리자는 것이다. 이 목적을 가장 잘 표현하는 곳이 뉴욕이다. 뉴욕은 터놓고 뉴욕 컨벤션 및 관광사무국이 밀레니엄 위원회를 운영하고 있다. 관광상품속에는 2000년 0시를 한번이상 축하할 수 있는 가라는 넌센스퀴즈 같은 주제도 있다. 그러나 넌센스가 아니라 사실로 만들고 있다. 콩코드를 타고 런던에서 자정에 출발하면 공중에서 한번, 뉴욕에서 한번, 세 번의 0시를 맞을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이 촉박하므로 런던 히드로 공항 격납고에서 파티를 하고 뉴욕공항에 내리자마자 축배를 들어야 한다. 이를 알고 양쪽 공항에 파티장 대여를 요구하면서 전세 비행기를 주문하는 사태가 이미 끝났다. 몇 여행그룹은 이 행사를 즐길 것이다. 다시 말해서 2000년은 천년왕국설 같은 다소간 공포적 의식이나 관념의 문제도 아니고, 서력기원에 연관된 수리적 논리의 접근도 아니다. 단지 어떤 계기든 그것을 잡아 경제적 이벤트사업을 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이 사업은 디지털 네트워크로 세계가 동시화된 시대에 맞게 세계차원의 게임을 할 수밖에 없다는 필요조건을 갖고 있다. 지역별로 그저 다소곳하게 프로그래밍을 한다는 것은 이 변화의 시대에 그 의도부터 실패한 것과도 같다. 이 점에서 우리의 새천년사업을 매우 국내적이며, 제한된 사람들만이 참여하는 1회성 행사라는 문제를 갖고 있다. 물론 인터넷을 통해 뉴 밀레니엄 카드 전시회를 한다는 아이디어도 들어 있지만, 벌써 90만개 수준에 이른 각종 인터넷 사이트에서 이 카드가 얼마나 세계적 프로그램이 될 것인가에는 의문이 있다. 상당한 경비를 쓰게 되겠지만 그 어느 프로그램에서도 경비회수라는 경제성이 없다는 것도 특징이다.
밀레니엄 게이트라는 주프로그램이 있지 않느냐 할 수는 있다. 평화의 열두대문중 첫 대문의 기공식을 2000년 1월 1일에 하고 2002년 6월에 1차준공, 2009년까지 계속 시공한다는 계획이다. 시공의 의미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처럼 무엇인가를 너무 자주 잊어버리는 사회관습에서는 2009년까지 사업을 잊지 않고 계속하리라는 믿음을 갖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 다음은 더욱 기억하기 힘들지도 모른다. 그리고 문은 우리에게서 그다지 탁월한 상징이 아니다. 서울의 4대문이 지금 어떻게 관리되고 있는지가 그것을 명증한다. 올림픽공원에 마련한 평화의 문도 그것을 보러 가는 사람의 수는 별로 많지 않다. 관광상품으로도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새천년사업과 문화예술의 발전, 더하여 문화산업 - 관광 산업적 전개를 함께 염두에 둔다면 비록 늦었지만 2001년 사업계획을 하나 더 세우면서 보다 근본적 지향을 심화시키고 세련화해야 할 것이다. 이 지향에서 가장 중요해 보이는 것은 상상력의 증진게임을 해야겠다는 것이다. 상상력이라는 말은 이제 우리게도 별로 저항 없이 쓰인다. 저항 없이 라고 하는 것은 80년대만 해도 이 말은 전문예술영역의 용어였고, 보편적으로 쓰기는 어려웠다는 뜻이다. 실제로 80년대 문화정책페이퍼에 이 용어를 적어보았다가 그게 무슨말이냐라는 지적만 받고 지웠던 기억이 나에게는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지금은 누구에게서도 낯설다는 반응을 받지는 않는다. 가장 쉬워야한다는 TV오락프로에서도 이 말은 쓰인다. 우리도 조금은 변했다는 느낌도 들고 상당한 진전이라는 생각도 한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이 누구의 상상력이냐라는데 있다. 루카스의, 스필버그의, 빌게이츠의 상상력을 추앙하고 인정하고 즐기는 일도 물론 도움이 도기는 하지만, 그 일만 하고 있다면 늘 그들의 하부구조에서 소비자 역할만 하는 것에 불과해 진다. 우리의 상상력은 이들의 거대 게임에서만이 아니라 아주 낮은 차원에서도 단순 소비시장 지점에서 맴돌고 있다. 그 대표적 사례가 그 알량한 TV오락프로그램의 대부분을 일본TV에서 표절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TV프로그램 상당수가 일본 프로그램을 표절하고 있다는 것은 상식으로 알려져 있다. 프로그램 개편시기가 가까워 오면 제작담당자는 일본 혹은 일본TV가 보이는 부산에 머물면서 일본TV프로그램을 철저하게 연구한다고 한다" 이것은 하세가와 스미오(長 ? 川 澄 ? )후지TV 서울지국장이 최근 일본민간방송연명회지에 쓴 글이다. 동연맹은 아시아 지역에서의 일본방송저작권 칭해 사례를 철저하게 조사하는 기구를 발족시켰다. 조만간 손해배상청구가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와 있다. TV프로 정도는 현재 상상력 게임의 대상도 아니라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이만한 창피함도 없을 것이다. 문학도 이제는 정서적 아름다움이나 감성적 유려함만으로는 시장 유지에 어려움을 겪는다.
더 치열한 상상력. 그래서 자연히 추리 소설적인 접근이 확대되고 있다. 움베르토 에코는 아예 21세기는 추리 소설의 시대가 되리라고 말한다. 고전적 문학가치에서는 외곽에 밀려 있던 추리소설기법이 이제는 철학소설에서까지 쓰이고 있다. 상상력이 예술적 감성의 것이 아니라 실재의 해석하고 감각을 창조하며 이를 통해 마케팅의 도구가 되고 있는 것이다. 보다 놀라운 것. 그 동안 있었고, 알았던 모든 것을 뛰어 넘을 수 있는 것.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 그러나 모든 보통사람들도 그것을 내놓았을 때 곧 알아보고 동감할 수 있는 것. 이것이 있어야 이 시대 상상력 시장에 나설 수 있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상상력을 더 낮은 차원으로 억압하고 있다는 생각만든다. 매체는 표절에 매달려 있고, 산업은 남들이 다해 본 장사의 뒷부분만을 쫓고 있다. 교육은 상상력에 점수를 주지 않고, 행정은 가시적인 것만을 인정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상상력을 느끼게 하는 정책이 없다. 이것은 다른 말로 비전이 없는 것이기도 하다. 상상력이 느껴지지 않고 비전이 보이지 않는 사회는 꼭 이 변화의 시대여서가 아니라 전에도 답답하고 막연한 사회였다. 그러므로 상상력이 일상어가 된 사회에서는 더 빈약하고 공허할 수밖에 없다.이 시대에 공기 속에 떠도는 우리의 직감들이 무엇인가를 아는 동물적 후각만이라고 가져야 한다. 그리고 그 후각을 말할 수 있는 작가들, 프로듀서들, 프로그램기획자들이 늘어나야 한다. 변화를 거부하는 제도 유지자들, 이론이나 쥐고 있는 학자들, 그리고 눈앞의 잔돈이나 줍는 기업가들 속에서 우리의 상상력은 발붙일 곳이 없는 것이다. 이 덤에서 보다 포괄적인 상상력의 증대 프로그램이 마련되어야 한다. 정책에서도 그러하지만, 이보다는 교육에서 더 크게 상상력 텍스트를 찾아내고 조립하고 수혈하는 계획을 세우는 것이 중요해 보인다. 그리고 이 계획을 밀레니엄 이벤트로 발표할 수도 있는 것이다. 문화예술진흥계획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므로 굳이 언급할 일도 아니지만, 이 영역에서도 실은 상상력 증진이나 지원책을 새로 수립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늦었고, 구체적 사물을 만들어 낼 시간이 없으므로, 정책 페이퍼만이라도 세계차원의 것을 만드는 것을 하나의 의견으로 제시한다.
안소니 기든스의 「제3의 길」이 베스트셀러화되면서 영국의 지향이 제3의길로 굳어져 있는 듯 알고 있지만 영국의 실제지향은 현재 「창의적 인간」이다. 「창의적 인간」이라는 어구하나가 영국 이미지를 얼마나 미래지향적으로 만들어 주고 있는지를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미국의 저명한 석좌교수였으며 사회문화비평가인 크리스토퍼 래시의 글에 이런 것이 있다. "각 사회계층들은 외부자가 끼여들 수 없는 각자의 방언으로 그들끼리만 이야기한다. 그들은 오로지 기념행상화 공휴일에만 서로 어울린다. … 일견 정치나 시민문화와 무관한 것으로 보이는 동네술집과 커피숍들도 심지어 광범하고 자유로운 그런 대화의 무대를 제공함으로써 민주주의가 번성하는 환경에 기여하는데, 이제 이러하나 단골집들이 쇼핑몰과 패스트푸드 체인, 그리고 테이크 아웃에 밀려나면서 소멸될 위험에 처해 있다." 이를 인용하는 이유는, 또 하나의 측면, 즉 시민의 참여가 실제로 이루어지는 프로그램이 있어야 겠다는 것을 지적하기 위해서이다. 새천년사업을 발표하면서도 국민적 참여는 강조되었다. 그러나 참여란 멀리 서서 잘 보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실질적으로 내 손이나 내 마음이 무엇인가를 하는 것이 참여이다. 그러므로 참여를 위한 이벤트가 별도로 구성되어야 마땅하다. 그것이 어떤 것인가는 앞에 예시한 보스턴 프로그램에서 암시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지금 상상력의 경제학 시대를 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상상력은 국민 개개인 모두의 상상력을 의미한다. 개개인의 상상력 키우기가 또 하나의 주제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