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현장

베니스비엔날레 미술전

한국관, 개관 이후 연속특별상 수상, 새로운 인식 받아

 

이용우 본지편집자문위원, 미술평론가


새로운 혼성과 혼합의 출현

  

 베니스의 식당에서 파는 스파게티는 이태리 오리지널이 아니다. 관광객을 위하여 맛을 다듬었기 때문에 타 지역에서 온 이태리 인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한 두 번 먹어보고는 더 이상 미련을 갖지 않는다. 그러나 베니스 스파게티는 짜릿한 원산지 맛은 떨어져도 인스턴트 식품처럼 디자인과 색체 효과가 뛰어난 편이다. 이 가운데서도 작은 조개를 넣어 만든 봉골레 스파게티는 베니스와 시실리의 것이 일품으로 알려져 있는데 요즘 베니스 봉골레가 외지에서 조개를 수입하여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베니스의 독특한 문화 상품인 베니스 비엔날레는 베니스 스파게티의 문제와 같은 핸디캡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이를 극복하기 위하여, 또 인스턴트 식품과 같은 즉흥성을 떠나 예술의 본질적 냄새를 진하게 피우기 위하여 혼성의 의미를 축소하기 위한 온갖 방법을 동원해왔다. 음식점이 역사가 깊고 장사가 잘 되니까 서비스가 나빠지고 음식의 질이 떨어졌다는 소리를 듣기 싫었던 것이다. 지난 6월 12일부터 시작된 제 48회 베니스비엔나레는 역으로, 이러한 핸디캡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면서 새로운 혼성과 혼합하여 출현을 장려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어버렸다. 그래서 이 정직한 게임에 누구도 비판을 위한 비판을 자제하고 무거운 느낌으로 현상을 바라보고 있는 중이다. 전시주제가 암시하는 아페르트토, 즉 모두가 처음 개막하는 아페르트토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처럼. 비엔날레의 전시 총감독을 맡은 스위스의 하랄드 제만은 유럽에서 가장 잘 알려진 큐레이터이다. 이른바 미술 전시 상품을 만들어내는 큐레이터로서는 첫 슈퍼스타가 된 인물인 것이다. 그의 큐레이터로서의 인생을 조망하는 책까지 출판되었으며 또한 큐레이터의 전시 연출도 저작권 개념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그의 주장이 오늘날 전시문화를 규정하는 미적 바이블로 등장할 정도이다.

 

 

이불 작품 / 히드라2


이불 작품 / 히드라 2


 

 

 베니스 비엔날레의 전시구성

 

 베니스비엔날레는 원래 세 가지 각기 다른 전시로 구성된다. 하나는 각 국가의 커미셔너가 기획하는 국가관 전시가 있고, 두 번째는 총감독이 지휘하는 주제전이 있다. 그리고 세 번째는 35세 미만의 젊은 작가만을 전시하는 아페르토전시가 있어왔다. 그러나 제만은 국가관 전시를 제외하고는 모든 전시를 합쳐 아페르투토(apertutto)로 명명하였으며 이는 20세기말 예술의 총체적 검증을, 그리고 새 천년을 향한 제안을 개막하겠다는 야심을 펼쳐놓았다. 이러한 이론적 주제를 실현하는 방법으로 제만은 인종이나 국적 지명도 등을 무시하고 오로지 작품 그 자체에 선정기준을 두었다. 따라서 그 동안 이태리 작가 전시만을 주로 하던 이태리 중앙반을 여섯명의 이태리 작가만 초대한 채 전체를 아페르토 전시장으로 바꾸었다. 뿐만 아니라 그 동안 전혀 공개하지 않았던 고대시대의 무기고 등 군사영역이나 수도원, 태제(tese),가잔드레(gaggiandre)등의 시내전역이 전시장으로 탈바꿈하여 비엔날레가 가지는 공간환경과 문화적 해석의 폭을 넓혔다. 이러한 제만의 의도는 100년이상 역사를 지닌 베니스 비엔날레가 보수적인 인상을 주고 있다는 종례의 인식을 쇄신하려는 의미를 담고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미 97년 카셀도큐멘타가 전시영역을 미술관 전시벽면에서 탈피하여 공공영역으로 확장시킨 예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는 비판도 등장하였다 95년 베니스의 전시 디렉터였던 프랑스의 쟝 클레르와 97년의 제르만노 첼란트의 전시와 차별시키면서 젊고 현장성 넘치는 베니스 비엔날레를 목표로 내건 것이다.

 


노상균작품/ 숭배자를 위하여


 

 

 이번 아페르투토에 참가한 작가는 모두 102명이다. 이 가운데 한국작가는 김수자와 이불등 2명이다. 이에 비하여 중국작가는 모두 22명이나 되어 중국판 이라는 이야기가 쏟아져 나왔으며 일본작가는 단 한 명도 선정되지 않았다. 이에 따라 아시아현대 미술을 중심으로 아시아를 서양의 상대개념, 또는 흥미로운 관심의 문화로 부각시키려던 제만의 의도에 의문이 제기되었다. 제만의 이러한 정치적 책략은 서구 비엔날레가 그 동안 유럽작가나 북미작가를 중심으로 편중되었다는 지적을 뛰어넘으려는 시각을 담고 있다. 특히 97년 키셀도큐멘타가 제3세계와 아시아를 거의 제외시킴으로써 등장하였던 고립의 문제를 능동적으로 제거시키는 발빠른 제스처를 보여줌으로써 시각의 확장을 가져왔다. 그러나 이러한 배경에는 서구 현대미술의 세기말적 침체로부터 파생된 또 다른 대안이기도하며, 예술이벤트의 흥미를 외곽문화, 또는 주변부에서 유입시키는 오늘날의 포스트모던, 해체주의 담론과도 무관하지 않다. 이러한 관점은 비엔날레가 90년대 들어 지난 30여년간의 미술사 정리와 같은 관점을 지속적으로 유지해 왔고 오늘날 현대미술의 유행인 탈 중심, 주변, 지역 등의 의미구현에 관심을 쏟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제만의 이러한 대처에 힘입어 전시개막과 함께 쏟아져 나온 비평들은 그 동안의 베니스비엔날레에서 크게 탈바꿈한 전시라거나 훨씬 생기가 넘치는 비엔날레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또 비엔날레가 추구해야할 '담론현장'이라는 기능에도 부응하였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그러나 내부적으로는 전시기능이나 문화책략에 관한 이견도 만만치 않게 터져나오고 있다. 즉 예술과 공간환경에 대한 확장개념은 카셀의 답습이라는 의견이 그것이다. 또 중국작가에 대한 대량선발은 중국의 특정 화상이 집중후원하는 작가를 무더기로 초대하여 시각의 개별성이 사라졌다는 지적이 있다.  한편 제만은 비엔날레의 문화정책에서 상당한 성과를 올림으로써 여러 가지 범례를 보여주고 있다. 즉 그 동안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한번도 시상된 적이 없는 유네스코상을 유치함으로써 비엔날레의 운신의 폭을 넓히는 한편 활력을 불어넣었다. 유네스코상은 젊은 작가를 선발하여 창작지원비를 제공하는 국제적인 상으로 이번 베니스비엔날레의 큰 관심과 화제를 낳았다.

 

 

제 48회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작가 특별상 수상

 

 48회 베니스 비엔날레는 비엔날레의 정책상 최전방에 등장한 과제가 있다. 그것은 바로 관객의 숫자이다. 이태리의 언론들은 지난 47회의 유료입장객수가 7만명이 채 안 된다는 사실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97년 전시 총감독 제르마노 첼란트가 비엔날레본부와 4년 계약을 했다가 한 회를 마치고 해임된 것은 국제 이벤트의 양적 부피와 행사의 함수관계를 읽게 한다. 이에 따라 비엔날레 본부는 역사상 최초로 5개월 전시라는 비상수단을 동원하였다.  이번 비엔날레에서는 한국작가 이불이 특별상을 수상하여 한국관이 3회 연속 수상하는 개가를 올렸다. 한국은 독립관을 마련한 뒤 연속적으로 수상국가가 됨으로써 새로운 인식을 받게되었다. 한국이 받은상은 '멘지오레 도노레'로 95년 전수천, 97년 강익중, 99년 이불이 연속적으로 똑같은 상을 수상하였다. 이번 비엔날레의 심사위원 명단을 보면 그 동안 베니스의 심사위원과 크게 달라 체질개선을 한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우선 심사위원장에 종전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으리만큼 구 유고에서 독립한 돌로베니아의 류블라현대미술관장 즈뎅카 바도비나츠가 임명되었으며 베니스비엔날레 사상 최초로 유색인종이 2명이나 선정되었다. 2002년 카셀도큐멘타의 전시책임자로 임명된 나이지리아 출신의 오퀴 엔웨조와 일본 세타가야 미술관 관장인 유코하세가와가 그들이다. 그밖에 이탈리아 티볼리미술관의 이다 쟈넬리, 그리고 이스탄불 비엔날레의 전시책임자인 스페인의 로자 마르티에즈가 있다. 이번 심사위원 명단은 그 동안 베니스 비엔날레 심사위원과 비교하여 가히 혁명적임으로 해서 제만이 내건 철학과 유사하게 접근하였다. 가령 미술관장 등 제도권 미술관과 권력의 중심화 인사들이 맡았었다. 그리고 휘트니 미술관장이나 영국의 테이트 갤러리 관장 등이 자문위원에 임명되어 그야말로 주변부를 철저히 배제한 듯한 인상을 주기도 했었다. 수상작가 선정은 심사위원들의 입맛과 상당한 관계가 있다. 이번 경우는 심사위원 연령이 모두 40대로 구성되어 수상작가도 명예대상만 제외하고는 모두 3,40대가 차지하는 이변을 낳았다. 이는 베니스 비엔날레의 최대의 혁명이며 한편으로는 열매인 것처럼 보인다. 게다가 늘 수상작가의 단골에 오르던 미국이나 서유럽 작가가 드물고 동구권이나 중동, 아시아지역의 작가가 수상자에 대거 오르게 되었다.  실제로 필자가 심사를 맡았던 유네스코 상은 이집트 작가에게 돌아갔으며 이불이 받은 특별상도 폴란드 작가, 그리고 본 상인 국제 미술상에 중국작가와 아프리카 작가가 수상자로 올랐다. 시상제도가 있는 베니스 비엔날레의 수상작가는 늘 미술시장과 연결되어 숱한 화제를 몰고 온 것이 사실이다. 심지어 지난 75년에는 시상제도를 반대하는 학생데모로 비엔날레가 개막 직후 문을 닫은 적도 있다.   이번 베니스의 방향전환은 내년 리옹비엔날레를 비롯하여 슬로베니아에서 개최되는 제 3회 마니페스타, 그리고 광주 비엔날레에도 큰 영향을 비칠 전망이다. 우선 2000년 리용비엔날레의 전시 감독 쟝 위베르 마탱은 그 주제를 에포티시즘으로 정하고 주변부 문화와 중심 문화 사이의 초점을 맞추면서 벌써부터 주제의식을 달구고 있다. 이를 위해 베니스의 전략에 맞불을 지피는 담론의 고저를 저울질하는 것이다. 아울러 마니페스타도 이사회를 대폭 개편하고 전시에 관한 공개 토론회를 베니스에서 개최하여 홍보에 박차를 가하였다. 내부 갈등에서 불화가 잦은 광주비엔날레와는 크게 대조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