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연극

 

노인과 자아-정체성의 해체 : 「키 큰 세 여자」

심정순(연극 평론가 숭실대 교수)


 

1994년 퓰리처 상 수상작인 에드워드·올비의 연극 「키 큰 세 여자」가 강유정 연출, 여인극장 제작으로 무대에 올랐다. 실제로 이번 공연은 96년 초연에 이은 재공연으로 김금지, 손봉숙, 이용이의 다이나믹하나 배역진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공연은 그 주제나 극작면에서 흥미로운 점이 많다. 우선 이 공연의 주제는 92세의 임종을 눈앞에 둔, 여성 치매노인의 삶이다. 노인 인구가 증가일조에 있는 우리의 문화/사회 풍토에서 노인문제나 노인문화는 아직도 예술작품의 가치 있는 소재로 여겨지지 않는 것과 좋은 대조를 이룬다. 최근에 기억나는 노인주제 연극이라면, 작년에 공연했던 이호삼 작 / 권오일 연출의 「아카시아꽃은 바람에 날리고」정도이다. 면전에 여성 노인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영화 「드라이빙 미쓰 데이지」가, 본토에서는 아카데미상을 받았는데, 우리 문화풍토에서는 별관심을 끌지 못했던 사실과도 같은 맥락이다. 여성과 마찬가지로 노인 역시 우리 사회에서는 소외된 계층, 인간화에 이르지 못한 계층인 것이다.

 

작품 「키 큰 세 여자」는, 노인 이야기 중에서도, 여성, 그것도 치매증에 걸려 기억도 제대로 못하고, 몸도 가누지 못하는 한 철저히 소외된 인간의 모습을 우리 눈앞에 우리 모두가 맞닥뜨려야 하는 현실로 끌어내 보인다. 늙음, 치매증, 골다공증, 거동 불능, 이러한 삶의 마지막 순간에서 처절하게 소외되는 인간의 모습이 하나의 구체적인 현실로 무대화된다.주인공인 92세 할머니는, 아침마다 오줌을 싸고, 치매증세로 횡설수설하면서, 다른 두 여성 인물들과 횡설수설한 대화를 이끌어 간다. 대사 중심으로 진행되는 극 장면들은, 치매 노인의 말투, 일거수 일동작은 섬세하고, 치밀한 시각으로 묘사해 나간다. 치매증세 때문에 파편적으로 두서없이 이어지는 할머니의 대사는, 흔히 노인들이 하듯, 똑같은 이야기가 여기저기 반복되어 나온다. 남편 이야기, 어린 시절 여동생과 지내던 이야기등. 그러나 더욱 처절한 것은 이러하나 두서없는 파편적 연상 작용 속에서도 할머니가 질기게 계속하는 질문이, 자신의 유일한 아들이 병문안을 왔는가 하는 물음이다. 이와 같이 파편화된 치매노인의 의식세계는 26세와 52세의 두 여성인물을 통하여 해체적으로 재현된다. 2막으로 구성된 이 극에서, 이 두 다른 여성인물들은 1막에서는 '현재' 시간 속에서 할머니와 대화를 주고받는 인물들의 역할을 하며, 2막에서는 이 치매 할머니의 지난 삶의 각기 다른 시간대 속에서 할머니의 각기 다른 내면적 자아의 모습들을 재현한다.

 

2막에서의 이러한 인물구성 기법은, 변형사실주의 계열의 연극에서는, 현재 장면에서 과거 장면으로 시간전환의 방법이나 혹은 현재 장면 속으로 과거 장면이 끼여드는 동시 병치적 기법으로 흔히 처리되는 것과 좋은 대조를 이룬다. 이러한 복합적 내면적 자아의 구체화 기법은, 흔히 포스트모더니즘에서 라깡 같은 이론가들이 대변하는, 인간의 주체적 자아는 통일된 하나의 자아 개념이 아니라, 파편화된 복합적 자아라는 금시대를 풍미하는 해체된 자아 정체성의 개념과도 무관하지 않다.이 극에서 92세, 52세, 26세의 세 개의 시간대로 나누어, 인물화 되는 치매 할머니의 여러 자아는 각기 다른 삶의 비젼과 관심사를 가지고 있다. 26세의 여성자아는 삶에 대한 기대감과 이성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있다면, 52세의 여성 자아는, 중년 여성이 지니는 삶에 대한 일종의 관조의 자세에서, 결혼생활에서 남녀의 외도에 대한 불안, 자신의 혼외정사등 많은 경험들을 토로한다. 이 세 시간대를 관통하는 여성으로써의 중요한 경험은, 섹슈얼리티에 관한 흥미와 체험담이다. 이와 같이 죽음을 앞둔 한 치매 여성노인의 삶을 차분하게 관조하는 이 여성 심리극은, 별 대단한 액션이 없이 진행된다. 이 극의 묘미는, 나이가 다른 세 여성의 각기 다른 삶의 태도와 경험, 느낌, 관심사를 섬세하게 묘사하는 조용한 대사의 흐름을 숙지하면서 생겨난다.

 

이러한 연극은, 요즈음 우리 연극무대에 유행하는 많은 볼거리와 음악, 춤으로 어우러진 화려한 오락성과는 상당히 다른 종류의 관극 체험을 제공한다. 원래 2시간 50여분의 공연 시간(필자는 이 같은 공연을 브로드웨이에서도 관람했음)이 우리의 대중관객의 취향을 고려했음인지 1시간 30여분으로 대폭 축소되었다. 실제로 여성들의 일상적 삶을 묘사하는 잔잔한 이 대사극은 자칫하면 문화적 정서가 다른 우리 관객에게 지루할 수 있다는 점을 많이 고려한 듯 하다. 이와 동시에 원작이 제공하는 여성 삶에 대한 보편성의 비젼은 그 만큼 함께 소실된 점도 부인할 수 없다. 감탄스러운 점은, 올버라는 한 남성 극작가가 보여주는 여성적 삶의 보편성에 대한 섬세한 통찰력이다. 그는 이 작품에서  어머니로서 여성이 갖는 아들에 대한 부모성적 염원과 그리움, 딸로서 하나 여성이 그 어머니에게 느끼는 애증의 양면적 갈등, 아내로서 한 여성이 느끼는 남편에 대한 애정과 불만, 자매로써의 여성이 느끼는 여동생에 대한 경쟁심과 우정 등 실로 폭 넓은 여성 삶의 버전을 다양하게 펼쳐 놓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같이 사는 운전기사와 하녀 먼저도 부재한 상황에서 혼자서 죽음을 맞이하는 치매 노인의 고독한 삶을 통해, 작가는 모든 여성의 삶이 지니는 실존성의 의미로 작품을 승화시킨다. 그래서 할머니는 극의 마지막 순간에 자신이 침대 위에 죽어있는 모습을 가르키며 이렇게 말한다. "저게 가장 행복한 순간이야. 우리가 멈춤 때" 상류계층의 소외된, 그러나 개성이 강한 치매 여성노인 역의 김금지는, 노년 여성의 삶에 대한 통찰력을 바탕으로 한 더욱 성숙해진 연기로 이 힘든 노인여성 주인공역에 생명을 불어넣었으며, 손봉숙은 26세 여성의 팽팽한 삶의 특징을, 이용이는 52세 여성역을 무리 없이 소화해냈다. 다만 때때로 지나치게 빠른 대사 전달은, 공연의 지루함은 피할 수 있을지 모르나, 대사의 의미를 음미하는 시간적 여유를 주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