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칼럼

 문화는 직접상품으로 취급하면 죽는다

 정 현 기


 

 

 문화의 나라임을 세계가 인정하는 프랑스 파리를 오래 그리던 끝에 다녀온 나의 소감은 한마디로 '웃긴다'였다. 나의 눈에 비친 파리 시내에 화려하게 버티고 있는 '오벨리스크'나 루브르나 오르세 박물관에 전시된 문화재들은 너무나 이물스러운 것이었다. 왜 그랬을까? 솔직히 말해 그것들을 보고 나는 그야말로 기절초풍을 하도록 놀랐었다. 이집트 신전 앞에나 있었던 오벨리스크가 파리 시내 한복판에 있는 것도 우스웠고, 박물관에 가득히 전시된 눈부신 그리스 신화의 신상들이 거기 그리스나 이집트가 아닌 곳에 설치되어 있는 것도 내게는 우습게만 보였던 것이다. 어떤 경로를 통해 세계적인 문화재들이 그곳 파리에 집결되어 있게 되었는지, 약탈과 속임수로 점철된 유럽의 제국주의 역사를 잊고 있던 나의, 첫 눈에 프랑스의 수도 파리는 그리스 신 헤르메스의 도시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이런 느낌을 나는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내는 신문에 발표하여 비난과 격려를 들은 바가 있다.

 

 경주 박물관을 여러 번 가 보았던 나의 눈에 그리스 신상들은 마땅히 그리스 박물관에 있어야 하는 데 그렇지가 않다는 것 때문에 그런 느낌을 가졌던 것이다. 경주 박물관에 전시된 유물들은 오직 한국의 것들로만 채워져 있었다. 그런데 프랑스의 세계적인 박물관 전시물들은 달랐던 것이다. 왜 그런 것일까? 이 이야기를 한국의 지식인들에게 하니까 영국의 대영 박물관도 엄청나게 그리스 유물들과 세계 여러 나라의 유물들이 보관되어 있다는 귀띔이었다. 대강 이쯤 거론하고 나면 내 이야기의 속뜻이 무엇인지를 대강 들어낸 셈이다. 문화와 지성은 보편적인 것이어서 국가나 민족, 시대를 초월하는 정신이다. 이 진실은, 그렇다고 해서, 문화를 볼 줄 아는 사람들이 남의 나라에 묻혀 있는 문화재들을 재빨리 가져다가 보존하면서 관광상품으로써 널리 상품적 책략에 써도 된다는 문화환상주의를 합리화하는 말은 아니다. 우리는 우리가 지닌 독자적인 문화가 있음을 국내는 물론 세계에도 알려야 한다.  이야기의 가락을 한국 쪽에 맞추어 보기로 한다. 나는 지금도 한국 정부의 문화 관련 부처가 체육이나 공보, 관광 앞에 따라 붙여 '문화공보부', '문화체육부', '문화관광부'로 운용되고 있는 것에 심한 부끄러움을 품고 있다. 문화라는 말이 품고 있는 뜻이 그처럼 경제 제일주의의 이론적 용병인 시장논리 책략들 속에 포함되고 있는 것은 문화와 관련된 직업을 지닌 사람들에게는 곤혹스러운 치욕이 아닐 수 없다. 연세대학교의 최정호 교수와 모 대학교가 출간하는 계간지 10주년 창간 기념 대담을 나눈 자리에서 그가 한 말 한 구절을 인용하면 이렇다.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은 백악관에 밀레니엄 위원회라는 것을 만들어서 운영하고 있습니다. 힐러리 클린턴이 책임자로 있고요. 미국의 밀레니엄 보고서는 참 기가 막히게 잘된 보고서인데 거기서는 막연히 문화라는 말을 안 써요. 문화라면 안 걸리는 게 없거든요. 분명히 한정해 놨어요. 특히 국가가 지원해야 할 2000년을 위한 분야로서 "인간과 예술(humanity and Art)"이라고……, 이거야말로 시장원리에 맡겨 놓으면 죽어버리는 거요. 그렇기 때문에 순수예술과 인문과학, 역사학이랄지 정치학이랄지, 공공 자원으로서나 개인자원으로서나 개인 혹은 공공기관의 보조금으로서 계속 적극 지원해야겠다. 거기 미국의 경쟁력이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이 말 다음에도 미국이 쌓아가고 있는 민주주의 원리를 최 교수는 길게 이야기하고 있다. 이야기의 핵심은 문화라는 말에 담긴 진정한 것들을 시장원리나 상품이론, 정치 책략으로 이용할 때 나라의 힘은 필연적으로 쇠잔해 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그의 저술 도처에서 진행해 온 이와 같은 많은 고언들이 품고 있는 깊은 속뜻을 아직도 우리 나라 정부는 깊이 깨우치지 못하고 있다고 나는 판단한다.

 

 문화란 직접 상품일 수 없는 정신적인 어떤 것이다. 예를 들어 한 작가가 필생을 두고 작품을 써서 거기 씌어진 말을 쓰는 공동체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위대한 작가가 있었다고 하자. 이런 작가일수록 자기 작품을 남기는 동안 간고와 피나는 고통을 겪었기가 쉽다. 가난이나 질병, 투옥 등 무수한 가난을 치열한 정신으로 극복하면서 이렇게 사람들의 영혼을 울리는 작품들을 남겼다. 그런데 그의 위대한 정신을 기린다는 사람들이 그가 살던 집에다가 몇 십억씩 들여 밤낮으로 그 집을 방문하여 그를 알린다는 핑계로 갖가지 장식품들을 쳐 발라 놓았다고 치자. 이게 문화인다운 행적일 수 있을까? 이런 것을 행여 문화산업이라 부르면서 문화의 관광상품화 라는 착각들을 정부나 그 근처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것이나 아닐까? 있었던 그대로 존속시키면서 그가 쌓아 올린 정신적 탑의 높이가 어떤 것인지를 알리는 일들이 우선 문화 관련 정책에서는 이루어져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문화정책에 관한 한 남의 나라를 흉내내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다. 우선 자신의 조상들이 쌓아 올렸던 문화의 내용들이 어떤 것인지를 구체적이게, 실질적이게, 또 적극적으로 정리하여 그것들을 현대정신으로 옮기는 일부터 정부는 추진해야 한다. 그래서 세계의 어떤 나라이든 우리가 정리하여 내보인 것들을 통해 그것 하나만 보여도 '아하 한국(코리아), 그들의 정체성 속에 그 문화의 그 정신이 살아 있지?' 그렇게 인식되도록 해야 한다. 문화란 직접 상품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보증하면서 남들의 신뢰를 갖게 하는 정신적인 어떤 것이다. 석굴암은 그냥 석굴 속에 들어 있는 불상이 아니다. 그것이 발원하던 한민족의 간절한 꿈과 소망을 확장하는 거대한 정신의 집적물이다. 전화에 휩쓸린 고려시대에 그처럼 공력을 들여 만든 [팔만대장경판]의 6십 몇 만자를 새기면서 판각자가 글자 한 자 팔 때마다 절을 백번씩 올렸다는 사실은 그 사실만으로 끝날 어떤 것인가? 그것은 절대 그렇지가 않다. 문화란 정신영역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것은 관광이나 체육, 공보에 언제나 우위에 놓이는 정신이다.

 

 문화의 깊이가 없는 나라일수록 문화충격 요법을 쓰는 법이다. 프랑스 사람들을 기절초풍케 하였다는 일본의 섹스 관련 영화 작품을 나는 프랑스에서 보았다. '아하 일본의 섹스 감각은 참 대단하구나?' 이런 놀람을 지닌 사람들에게 말끔한 일본 상품들이 세계를 누빌 때 세계의 여러 나라에서는 일종의 상품 구매의욕을 가졌을 것이다. 섹스와 상품, 황금과 섹스는, 어쩌면 바른 살길을 잃는 우리 시대에, 동의어일 수도 있으니까. 폭력이 상품과 동의어일 수 있다는 점도 밝혀 둘 필요가 있다.  '용가리'영화를 만들어 세계에다 판매하였다는 한 코미디언을 신지식인의 대표적인 인물로 내세우는 정책도 아주 틀렸다고 볼 수는 없다. 그의 주장의 상당 부분을 옳다고 나는 생각하는 사람이다. 이순신을 무조건 한국의 성웅으로만 떠받칠 것이 아니라, 그를 첨단 장비를 동원하여 수퍼맨으로 만들어 널리 그를 흠모하게 한 다음 그가 조선을 일본으로부터 구출한 영웅이라고 해도 된다는 생각에 나는 동의한다. 그런 점에서 [홍길동전]을 한국의 슈퍼맨으로 만드는 일을 해야 한다고도 나는 말한다. 그러나 확언하건대, 자기 문화에 대한 철저한 이해와 애정 없이 문화를 직접 상품으로 전략시킨다면, 나라가 망한다고 나는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