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프로그램 -문화예술 20세기 정리와 21세기 전망 ①연극 |
최근 25년간의 연극계 현황분석
지난
70년대와 80년대 그리고 90년대를 통해 우리 연극은 양적, 질적 변화와 성장을 해왔다
공동 글.구성 송애경, 박정영 공연기획가
이제 몇 달 후면 21세기라는 새로운 세기가 시작된다. 벌써부터 21세기를 문화의 세기라고 칭하면서 다가올 문화의 시대를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를 놓고 사회 전 분야가 떠들썩하다. 그런 가운데 우리가 걸어온 지난 시간을 돌이켜보고 과거의 모습을 정리하는 시간은 미래를 설계하는 것 못지 않게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역사가 곧 미래의 거울이 될 수 있다는 믿음 위에서 쓰여지는 것과 같은 것일 것이다. 20세기 우리연극이 근대기에 서양적 개념의 신극을 받아들인 후 100여년간 우리 연극은 어느 분야 못지 않은 변화와 성장을 거듭하였다. 특히 한국연극의 성장기라고 할 수 있는 지난 70년대와 80년대 그리고 90년대를 통해 우리연극은 양적 질적인 변화와 성장을 해왔다. 통계의 시작을 76년으로 잡은 것은 한국문화예술진흥원에서 발행되는 우리 나라 유일의 문화백서인 「문예연감」이 1976년부터 쓰여졌기 때문이다. 본 조사를 시작하면서 연극분야에 대한 객관적이고 정확한 통계가 부족하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된다. 이를 맡아하는 조사기관 하나 없고 연극단체나 연극인들조차 공연횟수나 관객수 등의 수치적 기록에 무신경 했었다. 유일하게 기록되어 있는 「문예연감」조차도 일관적인 기준이나 통계근거가 빈약하여 관객수라든가 공연장수 등 많은 부분을 놓치고 가야만 했다. 그러나 비록 숫자의 오차는 있을 수 있다해도 「문예연감」에 기록된 연극자료들은 25년간의 흐름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현재로서는 유일한 것이다. 본고의 통계 대상은 「문예연감」에 쓰여진 총론과 조사통계 그리고 평론 등에 거론된 연극만으로 한정되어있어 그 당시에 중요한 작품이나 중요한 흐름이 누락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밝히며 이해를 구한다.
1976년부터 1998년간의 공연통계 ●25년간 한해 동안 공연된 총 공연수 먼저 한해 동안 일정하게 정하여진 극장에서 직업극단이 공연한 횟수를 알아보았다. 여기서 연극 총 공연수라하면 초연과 재공연을 합한 것이다. 연극의 특성상 한 공연이 초연되어 기간이나 장소를 옮기며 재공연하는 경우가 많다. 본 조사에서는 재공연을 포함하여 총공연 통계를 낸 것과 재공연을 포함하지 않고 초연 혹은 작품 수로만 통계를 내는 것으로 구분하였다. [표1]은 재공연을 합친 총 공연수이다.
[표
1] 25년간 연극공연수(재공연포함)
●25년간 18배 증가 25년간 공연수를 비교하면서 가장 주목할 것은 1976년 한해 동안 서울에서 공연된 연극은 135편이었으나 25년이 지난 1998년 (12월 기준) 은 무려 18.8배가 많은 2천 537편이다. 숫자로 2천 402건이 늘었으며 1998년도 월 평균 공연 수인 108건을 약간 웃도는 수치이다. 단순하게 이 수치만을 보더라도 지난 25년간 우리연극이 얼마나 성장하였는가를 알 수 있다. 표를 보면 1976년부터 1984년까지는 변화의 폭이 크지 않다. 1976년부터 1982년까지 「문예연감」에 조사된 연극공연이 서울로만 한정되어 있는데 1983년부터 지역연극이 포함되었다 하더라도 그 숫적 변화는 거의 없었다. 이 말은 70년대와 80년대 초반까지 한국연극은 거의 서울에서만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80년대 초반까지 연극공연이 지지부진하다가 약간의 성장을 한 것은 1986년 부터라고 할 수 있다. 1981년 12월 공연법의 개정과 함께 연극을 공연하는 것이 과거보다 자유로워졌으며 경제적 성장기에 들어선 80년대 중반은 연극계에 활력을 주었다. 이어 88서울올림픽 개최에 따른 문화적인 열망이 연극계에도 힘이 되었다. 1988년 문화올림픽 개최로 일천단위를 넘어선 연극은 다시 1991년 '연극영화의 해에 '일천단위를 넘었고 약간의 부침이 있지만 1996년 이후 그 숫자가 급격히 증가하여 1998년에는 는 2천 500여편이 넘는 공연이 제작된 것이다.
25년간 공연의 창작극과 번역극의 비교
번역극과 창작극의 비율은 우리의 창작풍토와 희곡의 성장에 큰 기준이 된다. 70년대 중반에서 80년대 중반까지 우리 연극무대는 거의 번역극에 의존하는 풍토가 만연되어 있었다. 1976년의 비율만 봐도 3:7로 번역극이 압도하였다. 그러나 1987년에 그 비율은 거의 같아지고 90년대 와서는 그 판세가 뒤집어져 1998년에는 7:3으로 역전이 된다. 1987년도가 기점이 되는 것은 당시 국제적 무역협상법인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에 저작권법이 발효되어 외국저작물은 막대한 로열티를 지불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또한 사회적으로 한국적인 정서와 우리것에 대한 문화적인 가치가 커졌으며 신진 희곡작가가 많이 등장한 것도 그 이유가 된다. [표 2]에서의 공연수는 [표 1]의 총 공연수에서 재공연 건수를 뺀 것으로 1991년 이후 재공연의 수가 눈에 띄게 늘어난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전에도 재공연이 많이 있었지만 당시 기록에서는 재공연을 따로 기록하지 않았기에 1991년 이후부터 나누어 볼 수 있었다.
70년대 중반의 기록을 보면 아동극은 한해에 10여편을 넘지 않았다. 몇몇 극단에 의해 이루어지긴 하였어도 80년대 초반까지 아동극에 대한 극계의 관심은 전무하다고 할 수 있다. 몇몇 인형극인의 공연과 어린이날을 맞추어 올리는 공연 정도가 고작이었다. 그러다가 80년대 이후 공간사랑과 샘터파랑새극장, 바탕골극장 등 어린이 연극을 시도하는 공연장의 개관과 함께 아동극은 급속도로 성장한다. 80년대 중반 이후 아동극 전문극단과 공간이 늘어나면서 양적인 호황을 누리나 양적인 성장에 못미쳐 작품적 성장은 더디었다. 그런 와중 국제아동청소년 연극협회 한국본부가 마련한 어린이연극제가 1992년에 신설되어 작품의 질적인 면에서도 눈에 띄는 결과를 가져오기 시작했다. 연극의 국제교류는 1991년 제3 세계연극제와 1996년 아시안게임의 문화예술축전, 1988년 서울올림픽 문화예술축전을 통해 활발해진다. 1988년까지 한해 한국에 들어오는 외국단체는 약 20여개였으나 춘천과 몇몇 도시의 인형극제와 연극제가 활발해지면서 연극의 국제교류는 상향곡선을 나타낸다. 1997년에 ITI 총회 및 세계연극제가 서울에서 열리면서 무려 29개의 외국단체가 한국을 찾게되었다.
[표
3] 관객대상과 국제교류비교
장르별 비교 연극에서 장르별 구분은 기준에 따라 약간씩 다르지만 거의 순수연극, 뮤지컬을 포함한 음악극·마당놀이를 포함한 마당극·국극과 창극, 그리고 마임을 포함한 퍼포먼스로 나뉜다. 1976년도 기록을 보면 거의 이런 장르의 구분은 세분화되지 않고 정극과 마임 정도로 나뉘어있다. 마당극도 용어는 정립되어 있으나 뚜렷하게 구분하여 기록하지 않았다. 이후 80년대에 들어서 뮤지컬·마당극 혹은 마당놀이가 장르적 개념으로 구분되고, 80년대 중반에는 뮤지컬 장르가 들어선다. 90년대 들어 더욱 그 구분은 세분되어 악극, 국극, 창극 등을 뚜렷하게 구별하여 기록하고 있다. 특기할 것은 순수연극 혹은 정극의 수가 거의 변동이 없는 반면 뮤지컬과 국극 악극 마임 등의 장르는 계속적으로 증가추세이다. 뮤지컬의 경우 [표 4]에서는 작품 수만 거론하였지만 공연 수는 1998년만하여도 130여건에 이르러 그 양적 증가는 25년의 시간으로 볼 때 그리고 뮤지컬의 역사로 볼 때 놀랍지 않을 수 없다.
[표
4] 장르별구분
서울과 지역별 비교 성인극만을 대상으로 서울과 전국 시도별로 살펴본 공연통계는 그동안 서울 중심의 연극이 어떻게 전국적으로 분산되어 왔는지 또 지역적으로 연도별로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를 알아볼 수 있었다. [표 5]를 볼 때, 1986년 서울 대 지방의 편차는 거의 6:4이다. 이후 90년대 5:5 로 거의 비슷해지더니 1996년에는 서울 대 지방이 4:6으로 반전이 된다. 이는 90년대 이후 지방연극의 여건이 좋아지면서 연극인의 수가 늘어나고 공연환경이 개선되기 시작하였다는 증거이며, 1996년 이후 지방자치제의 바람에 힘입어 오히려 서울보다 지역연극이 더 활성되고 있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시켜 주고 있다. 주목할만한 지역으로는 강원도와 경상남도를 들 수 있다. 80년대 중반 8~10여편에 불과했던 강원도가 1998년에 101편을 기록하여 전국적으로 경상남도 다음으로 연극활동이 활발한 곳으로 나타났다. 또 이곳은 해마다 춘천시에서 '춘천국제인형극제'와 '국제마임축제'가 열려 세계적인 문화의 도시로 알려져 오고 있다. 그리고 경상남도 지역은 다른 지역에 비해 자치적으로 연극활동이 매우 활발한 곳이다. 거창과 마산, 창원 등을 중심으로 연극제와 공연 등이 활발히 이루어져 1986년도에 12편이던 이곳에서 1998년 한해에만 126편이 올라가 전국에서 서울 다음으로 가장 많은 연극이 공연되었다.
[표
5] 지역별 공연건수 비교
극장의 변화 1976년 극장이 28개 있었으나 1996년에는 300개로 늘어나 약 10.7배가 늘어났다. 1976년 지방은 부산, 인천, 수원, 춘천, 포항 등 대도시에 시민회관 수준의 공연장이 13개가 있었으나, 1996년에는 214개로 늘어난 현상을 보여준다. 「중앙문화프로그램센터자료집」
1) 70년대 극장 : 명동시절과 국립극장, 드라마센터 시절 70년대 우리 나라 극장은 명동의 국립극장의 폐쇄와 함께 명동시대를 마감하고 1974년 새롭게 지어진 장충동 국립극장과 의회건물인 세종문화회관 별관, 그리고 남산의 드라마센터가 주요 연극중심지였다. 명동시대의 복병인 삼일로 소극장이 폐쇄일로에 있으면서 연극은 명동시대를 마감하고 서서히 대학로와 신촌 등지로 분산되기 시작한 것이다. 국립극장과 세종문화회관 별관을 제외하고는 영세성을 면치 못하는 사립극장이 대부분이어서 70년대와 80년대 중반까지 소극장의 개관과 폐관은 마치 연극계의 일상처럼 되풀이되었었다. 그나마 1978년 세종문화회관이 완공되었으나 연극공연으로는 적합하지 않았다. 그나마 활발한 곳으로는 공간사랑과 에저또 정동세실극장이 있었다. 이 시기의 극장들은 대부분 교통편의나 유동인구 밀집지역인 광화문이나 명동 등 시내 중심가에 몰려있는 것도 특징이다.
2) 80년대 소극장 운동 80년대
초반부터 명동의 싸롱테아트르 추, 운니동 실험소극장, 민중소극장,
민예소극장 등이 일제히 개관되면서 극단의 전용소극장시대가 열리기
시작했다. 이후 1981년 공연법과 공연장법의 개정으로 소극장 설립이
자유로워지면서 이른바 소극장전성시대로 도입했다. 또 1982년 문예회관이
대학로에 문을 열면서 대학로가 연극의 메카로 자리잡아 갈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었다. 문예회관을 중심으로 연극공연장이 속속 들어서기
시작하면서 현재 대학로에는 40여개의 대·소극장이 몰려있다. 서울시내
연극공연장 63개 중 63%가 대학로에 몰려있는 셈이다. 대학로가 전문극단의
상업주의적 연극의 브로드웨이라면 신촌 지역은 젊은 연극인이 몰려들어
소위 오프 브로드웨이 촌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1984년 산울림소극장과
신선, 시민, 연우 등이 그 활동의 중심지였으며, 이런 소극장 활기는
그해에만 13개의 극장이 개관된 호황을 가져왔다. 3) 90년대극장 : 대형극장시대 1992년 예술의 전당의 완공과 함께 대형공연장이 전국적으로 완공되면서 공연장은 양적증가 뿐 아니라 규모면에서 세계적으로 손색이 없는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인천 종합예술회관, 광주광역시 문화예술회관, 대전 엑스포아트홀 및 우송회관, 수원 경기문화예술회관, 춘천문화예술회관, 청주 예술의 전당, 문화예술회관, KBS 콘서트홀, 창원홀 등 대규모 복합극장이 들어섰다. 지역의 소극장 또한 전국적으로 80여개가 거의 90년대에 생겨났다.
극단 수 현재 전국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극단의 수는 극단등록법의 완화로 정확히 헤아리기가 불가능하다. 본 조사는 한국연극협회를 중심으로 극단의 수를 파악할 수밖에 없었으며 지방의 극단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극단을 중심으로 한국연극협회에 소속되어 있는 극단으로 한정하였다. 1976년 극단의 수는 전국적으로 40여 개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중 연극협회 정회원극단은 21개, 준회원극단까지 합하면 31개이다. 이외 군소 극단 9개가 있었다. 이후 극단의 수가 급증한 것은 1991년 공연법 개정으로 극단 등록이 자유로워지면서 전국적으로 약 300개의 극단이 생겨났다. 그러나 이 수치는 등록만 된 숫자일 뿐 실제 활동하고 있는 극단은 한국연극협회 회원극단 서울 101개(98년도)와 지방 16지회와 49지부의 회원극단 130개 정도라고 보면 된다. 따라서 1976년 이후 우리 극단은 약 5.7배가 늘었다. 연극인은 한국연극협회 회원이 1998년 현재 3천 500명이다.
서울연극제 수상작 1977년 대한민국연극제로 막을 열어 1987년 서울연극제로 이름을 바꾼 후 1998년 까지 22회째 개최해 온 서울연극제는 우리 나라 창작극진흥에 적지 않은 보탬이 되어왔다. 1988년 이후 국제연극제로 탈바꿈하였으며 1997년에는 서울세계연극제로 국제적 규모의 연극제로 치루어져 그 해 100여개의 외국극단이 참가하기도 하였다. [표 6]은 25년간의 서울연극제 작품상 수상작품과 희곡 연출 연기 분야만 정리한 것이다.
[표
6] 서울연극제 20년간 시상내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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