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유망문화직종 - 테마파크 디자이너

꿈을 파는 미래 산업
 

글  이선실  르포라이터

네덜란드의 역사학자 호이징하는 인간을 ‘놀이하는 동물’로 정의한 바 있다. 인류는 원시시대부터 축제를 통해 놀이를 즐겼고 문화는 놀이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물질적인 풍요를 바탕으로 한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놀이에 대한 관심은 더욱 높아졌다. 개인의 시간은 노동과 여가로 구분되며, 점차 여가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어서 70, 80년대 이룩한 눈부신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여가 문화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 경제한파로 여가생활에 대한 자숙의 분위기가 형성된 것도 사실이지만, 이제 노동과 근면이 미덕인 시대는 지났다. 여가는 노동만큼 중요하며, 노동은 여가를 통해 보다 창조적으로 재생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아무도 여가 없는 노동을 원치 않으며, 오히려 여가를 위해 노동이 존재하는 것이 시대적 흐름이다. 그리고 이러한 여가 문화의 중심에는 테마파크가 있다. 테마파크는 20세기 문화와 문명이 만들어낸 결정체다. 60년대 초 창립된 세계 최초, 최대의 테마파크 디즈니랜드는 ‘꿈을 파는 산업’으로 전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다. 모회사인 디즈니사의 만화 캐릭터들을 재현한 이 꿈의 동산에는 한해 2천 6백만 명의 관람객이 몰려든다. 세계적으로는, 도쿄와 캘리포니아의 디즈니랜드에 1천여 만 명, 플로리다의 시월드, 덴마크의 티볼리파크, 유니버설 스튜디오, 캘리포니아의 노츠 페리팜에 각각 5백만 명의 관람객이 몰려들면서 관광객 유치의 일등공신이 되고 있다.

 영화 세트를 재활용해 세운 미국의 유니버설 스튜디오 역시 세계적인 테마파크다. 「쥬라기 공원」, 「ET」, 「킹콩」, 「조스」, 「백투더 퓨처」 등 흥행 성공 영화의 세트를 이용해 어드벤처, 가상현실 체험, 각종 쇼관람을 즐길 수 있는 이 곳은, 20여 군데의 스튜디오가 선물가게와 식당 등 부대시설로 연결되어 있다. 이 테마파크의 하루 평균 관람객은 4만여 명으로 연간 3천억 원에 달하는 수익을 올리고 있다. 유니버설사는 아시아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제 2유니버설 스튜디오를 일본 오사카에 건립 중이다.중국의 신화를 주제로 한 싱가포르의 ‘허우파 빌리지’는 이미 아시아의 명소로 세계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놀이 문화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면서 여가 산업이 발전해 왔다. 70년대 어린이 대공원을 시작으로 놀이동산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면서 어린이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그러나 본격적인 테마파크의 개념이 도입된 것은 90년대 이후의 일이다. 89년 세계 최대의 실내 테마파크인 롯데월드가 개장되면서 주제(테마)가 있는 놀이공원이 처음 선보였다. 용인 자연농원은, 96년 세계적인 테마파크를 목표로 에버랜드로 명칭을 바꾸었으며 현재 세계 8위의 테마파크로 년간 50여만 명의 관광객을 유치하고 있다. 그러나 진정한 테마파크는 그 규모나 놀이기구에 의존하는 것은 아니다. 테마파크는 놀거리, 볼거리, 먹거리를 모두 갖춘 서비스산업이다. 관객은 테마파크에서 일상을 벗어난 다른 삶을 누리게 된다. 다른 삶은 꿈이나 환상일 수도 있고 유년의 기억일수도 있으며, 낯선 문화의 체험이 될 수도 있다.

  테마파크가 막대한 부가가치 산업으로 떠오른 것은 바로 이러한 감동전달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아이들 대상의 단순한 놀이동산에서 탈피하고 온 가족이 즐기는 여가의 공간… 놀이동산과 테마파크의 분기점에는 디자인이 있다.게임의 나라, 뉴비지니스의 나라라는 일본, 최근 일본 비즈니스의 화두는 테마파크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의 한 그래픽 디자이너는 신요코하마에 라면박물관을 건립했다. 박물관이라고는 하지만 지하 2층, 지상 1층의 협소한 공간이다. 그러나 이 소도시에 위치한 라면박물관은 개점과 동시에 신요코하마의 새로운 명물로 떠올랐다. 평일 4, 5천 명, 휴일 7천 명이 넘는 관람객들이 몰려들고 있다. 이 박물관은 라면이 유행하던 시절인 50년대의 거리풍경을 재현하고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라면집들을 입점시켰다. 일본인 대부분이 즐기는 라면과 50년대에 대한 향수라는 주제가 관람객들에게 감동을 일으킨 것. 일본의 예를 한 가지만 더 들어보자. 나가사키현의 ‘하우스 텐 보스’. 동경 디즈니랜드와 함께 일본 최대의 테마파크로 손꼽힌다. ‘하우스 텐 보스’는 일본 속의 네덜란드라고 할 수 있다. 17세기 네덜란드 궁전을 재현한 이 테마파크는, 놀이 시설보다는 보는 극장, 입체극장을 위주로 하고 있으며, 밤 9시가 되면 상점과 극장은 문을 내리고 사색과 고요함을 즐기는 공간으로 탈바꿈한다. 장황하게 일본의 예를 든 것은, 테마파크의 개념을 살펴보기 위해서였다. 테마파크를 찾는다는 것은 결국 ‘일상에서 벗어난 낯선 공간에서 감동을 느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테마파크는 현실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분명 존재하지만 마치 다른 차원의 세계처럼 가상의 공간이다. 이 가상의 공간이 그 공간 안에서만이라도 현실이 되기 위해서는 디자인이 필요하다. 따라서 테마파크 디자이너는 인간의 욕망을 디자인하는 것이다.그러나 테마파크 디자이너의 역할에 대해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테마파크 디자이너들은 롤러코스터같은 놀이기구부터 매표소까지, 공원 상점의 인형에서 화장실의 심볼까지 테마파크 내의 모든 것을 디자인한다.

 그런가 하면 행사를 위한 지원업무, 공원을 꾸미고 설치하는 데코레이션 업무, 조형물의 설치, 건물 도색, 유지보수까지 그야말로 공원 내에 디자이너들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다.파크 디자이너들은 어떻게 보면 하나의 세계를 창조하는 사람들이라 할 수 있다. 일단 공원 안에 들어서면, 그 곳은 일상과는 완전히 단절된 별천지다. 만일 그 곳이 일상과 같다면, 관람객들은 굳이 테마파크를 찾을 필요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가짜라고 회의를 느낄 필요는 없다. 현실이 아닌 가짜이기 때문에 테마파크는 존재 가치가 있는 것이다. 여가산업은 프로 스포츠·골프·볼링 등의 스포츠 부문과 TV·비디오·영화·신문·잡지·서적 등의 컬처 부문, 게임·경마·외식·가라오케 등의 어뮤즈먼트 부문, 그리고 관광 부문으로 나뉘어진다. 테마파크는 어뮤즈먼트와 관광 부문의 접점에 있다.우리나라 테마파크는 아직 놀이동산의 수준에 머물러 있는 느낌이다. 각기 테마를 내세우고는 있지만, ‘꿈, 환상, 모험’이라는 비슷한 주제로 각 테마파크의 개성을 살리지 못한 채 국적불명의 공간들이 확산되고 있다.

 다행히 우리나라도 최근 테마파크의 중요성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지난해 문화관광부는 「관광비전 21」을 발표하면서 세계적인 테마파크의 유치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우리나라 대표적인 놀이공원인 어린이대공원은 환경테마파크로 재구성될 계획이며, 문화엑스포를 계기로 경주에 세계민속촌이, 세계 최대의 공룡 발자국 밀집 지역인 전남 해남 우항리에도 공룡 테마파크 건립이 예정되어 있다. 그런가 하면 제주도에는 이미 지난 92년 분재예술원이 탄생해 세계적인 테마파크를 꿈 꾸고 있다. 1만여 평 규모의 정원에 관람로를 따라 배치된 50여 종 2천여 그루의 나무와 돌들이 세계 분재 전문가들의 방문을 끌어들이고 있다. 테마파크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일상에 지친 사람들에게 휴식과 감동을 줄 수 있는 주제라면, 어느 곳이나 테마파크는 들어설 수 있다. 현대문명에서 소외를 겪고 있는 현대인들은 꿈과 환상에 더욱 목마를 테고, 고단한 삶의 위안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은 테마파크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또한 테마파크는 볼거리, 놀거리로써의 관광 인프라로도 중요한 기능을 담당한다. 그래서 관광의 세기, 21세기를 맞는 한국은, 우리 문화를 주제로 한 테마파크를 정립하는 것이 중요해지고 있다.불행히도 테마파크의 수요에 비해 테마파크 디자이너들은 턱도 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아직 테마파크 디자인을 체계적으로 가르키는 교육기관도 없으며, 파크 디자인에 대한 인식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100여 명의 파크 디자이너가 활동하고 있으며, 이들은 각 분야의 디자이너 중 테마파크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실무를 통해 테마파크 디자인을 정립하고 있는 중이다. 현대 사회에 가장 필수적인 산업으로 자리잡아 가는 여가 산업으로써, 그리고 관광 인프라로써 테마파크는 눈부시게 성장하고 있다. 그리고 디자이너는 테마파크의 창조자로써 새로운 문화직종으로 떠오르고 있다. ‘관광 한국’의 입지를 굳히기 위해서라도 테마파크 디자이너의 양성은 시급한 실정이다.

*****에버랜드 디자인실**************
경기도 용인의 에버랜드, 50만평의 대지 위에 펼쳐진 이 꿈의 나라에는 관광객 50여만 명을 비롯해 년간 1000만 명의 입장객이 다녀간다. 이 꿈의 나라를 만드는 사람들은 8명의 에버랜드 디자인팀. 정식 부서는 전략기획팀 내에 속하지만, 에버랜드에서는 디자인실로 불려진다. 학창시절 제품디자인, 시각디자인, 산업디자인 등 디자인을 전공한 사람들이 모여 하나의 나라를 만들고 있다. 공원 매표소부터 표지판에 이르기까지 이들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은 없다. 테마파크 디자인에서 가장 어려운 점은 실제 생활의 디자인과 달리 꿈과 환상을 만드는 것이라고… 그런가 하면 아직까지 파크 디자이너에 대한 인식의 부족도 어려운 점으로 꼽고 있다. 이들의 화두는 일단 ‘테마파크 안에 들어오면 생활이 아닌 즐거움이 있는 공간’이라는 것. 즐거움을 줄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늘 자유로운 정신을 추구한다. 테마파크는 하나의 무대고, 디자이너들은 창조자이며 동시에 무대 위의 배우라고 생각하는 그들은 가끔 엉뚱하기도 하지만, 아직도 순수한 동화의 세계에 살고 있다. 아직 초창기에 불과한 파크 디자이너의 세계, 그러나 이들의 노력이 있기에 머지않아 세계적 수준의 우리 테마파크가 탄생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