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Review - 대 중 문 화

창조적 상상력을 죽이는 제도의 폭력

임성래  연세대학교 교수

대중이 예술을 외면하게 만드는 제도들

얼마 전 일본 대중문화의 2차 개방이 이루어졌다. 그러자 일부에서는 일본의 대중문화가 우리의 대중문화에 끼칠 나쁜 영향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좋은 뜻으로 보면 그것은 우리 대중문화의 발전을 열망하는 목소리로 들릴 수 있다. 그런데 그 같은 목소리를 낸 사람들이 진심으로 일본 대중문화가 우리 나라 대중문화의 발전에 끼칠 악영향을 걱정했는지 아니면 걱정하는 척했는지에 대해서는 판단하기 어려운 면이 없지 않다.일반적으로 예술 작품의 창작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작용하는 요소가 인간의 자유로운 상상력임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나라에서 인간의 자유로운 상상력을 제약하는 각종 제도를 금지하거나 철폐하고 있다. 그것은 예술가의 창조적 상상력이 자유롭고 활발하게 발휘될 때 좋은 예술 작품의 창작 가능성이 크고, 그 나라 예술이 그만큼 발전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인간의 상상력의 자유가 예술의 발전이나 작품의 창작에 그렇게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일부 나라에서는 상상력의 자유를 제약하는 여러 제도를 마련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예술 작품의 사전 검열제도이다. 이 같은 검열제도 이외에도 재판이나 심의제도를 통해서 예술가의 자유로운 상상력의 표현을 제약하고 있다. 이러한 제도적 장치로 인해 인간은 예술 작품 창조의 자유나 향유의 자유를 박탈당하는 경우가 많다. 그에 따라 대중은 다양한 예술 작품에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또 그 같은 제도는 예술가들에게 판에 박은 작품들의 생산만을 강요함으로써 대중들의 다양한 예술 향유 욕구를 충족시켜주지 못하게 하고, 결과적으로 대중이 예술을 외면하게 만드는 데 공헌하고 있다.

 

고정관념과 창조적 상상력

이러한 예술 작품의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제도의 폭력은 소위 독재국가에서만 행사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나라만 하더라도 매우 오랫동안 음반의 사전 심의제가 시행되었다. 가수 정태춘이 바로 그 제도의 폭력에 맞섰던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문학 작품도 예외는 아니었다. 가깝게는 「태백산맥」의 작가 조정래가 국가보안법 위반 죄로 고발당했고, 장정일은 「내게 거짓말을 해봐」를 썼다가 음란문서 제조 죄로 불구속 기소되었으며, 마광수는 「즐거운 사라」를 썼다가 구속당하고 유죄판결을 받기까지 했다. 그런가 하면 장선우 감독의 영화 「거짓말」도 “미성년자와의 변태적 성관계와 가학행위를 여과 없이 묘사하고 있어 부정적 영향이 우려된다”는 이유로 영상물등급위원회의 ‘등급 보류’ 판정을 받아 현재 상영이 금지되어 있다. 이러한 사건들은 아직도 우리 사회의 여론 주도층이 예술 작품을 인간의 창조적 상상력의 자유로운 표현이라는 시각에서 접근하기보다는 도덕이나 윤리적 기준으로 접근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기본적으로 창조적 상상력이란 새로움의 탐구에서 시작한다. 그러므로 기존의 윤리나 도덕, 질서, 관념과는 다른 면이 많을 수밖에 없다. 모든 사람에게 예측이 가능하고 이해가 가능하다면, 그리고 그것이 당대 사회의 고정관념 수준에 머물러 있다면 그것은 이미 창조성과는 먼 거리에 있는 작품일 가능성이 크다. 좋은 작품이란 많은 사람에게 이해가 가능하거나 감동적인 작품일 수 있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소수의 사람에게 이해될 수도 있는 것이다. 앞서가는 상상력은 심할 경우 당대에는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작품을 창조해낼 수도 있다.

예술의 발전을 가로막는 제도적 억압

그런 점에서 특정 예술 작품을 당대 사회의 윤리와 도덕이라는 잣대만으로 평가하거나 상상력의 부재라는 이유를 들어 무시하거나 제도적으로 억압하려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태도가 아니다. 이런 태도 가운데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윤리와 도덕이라는 잣대로 예술 작품을 평가함으로써 당대의 사회에서 비규범적이라고 평가받는 작품들의 설 자리를 박탈하는 제도의 폭력이다. 그것은 인간의 자유로운 창조적 상상력을 획일화시킴으로써 한 나라의 예술을 한 방향으로 몰아간다. 이로 인해 하나의 틀에 갇힌 예술 작품에 염증을 느낀 대중들은 점점 그런 종류의 작품들을 외면하게 되고, 그 나라의 예술의 존재기반도 점차 붕괴되는 것이다. 이런 제도들은 대중을 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과적으로는 인간의 자유로운 상상력을 말살시키고 언제나 틀에 박힌 작품을 제작하도록 강요함으로써 그 나라 예술의 발전을 가로막는 결과를 초래한다.

 

상상력의 자유와 표현의  다양성을 보장해야 ...

기본적으로 건강한 사회라면 인간의 사고의 다양성을 간직하고 있으며, 그것이 인정되는 사회일 것이다. 그 사회에서는 어떤 종류의 상상력이 발휘된 작품이라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다. 그러므로 그 사회에서는 특정한 상상력으로 이루어진 작품이라고 해서 그것을 배척하지 않으며, 모두 수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에 따라 다양한 사고에서 다양한 예술작품이 등장하고, 자연스럽게 그 가운데 대중이 선호하는 작품의 경향이 생겨나기 마련이다. 그런 가운데 일부는 도태되기도 하고 생존하기도 하면서 그 나름의 예술세계가 형성되는 것이다. 따라서 한 나라 예술의 발전을 위해서는 상상력의 자유와 표현의 다양성을 보장해야 한다. 그것이 그 나라의 예술을 건강하게 발전시키는 길이기 때문이다. 일본 대중문화의 2차 개방을 맞이하여 진심으로 우리 나라 대중문화의 발전을 걱정하는 사람이라면 일본의 대중문화가 우리의 대중문화의 발전에 끼칠 악영향을 걱정하기에 앞서 우리 대중문화의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물, 곧 자유롭고 다양한 상상력의 표현을 억압하는 제도적 폭력을 제거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 그것이 우리의 대중문화를 튼튼하게 키우는 길이다. 그렇게 될 때 우리의 대중문화는 일본 대중문화의 개방 여부에 관계없이 우리 나름대로의 독창적 대중문화로 발전해 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