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현장 -프랑스 영화 쇼와 상영현장 |
「쇼와 Shoah」, 그 절망적인 경험 유익서 소설가 9월11일, 12일 이틀간 원주 교외에 있는 토지문화관에서 아주 특별한 영화감상회가 열렸다. 유태계 프랑스감독 끌로드 란쯔만의 장장 9시간 30분짜리 장편 다큐멘터리 영화 「쇼와 Shoah」감상이 그것. 계간 문예지 「문학과 의식」창간 11돌 기념행사로 열린 이번 행사에는, 박경리 선생님을 비롯하여 소설가 전상국, 오정희, 김채원, 박양호, 정소성, 이문열, 정종명, 정찬, 안혜숙, 이정길, 이명랑, 유익서, 시인 서지월, 김상미, 문학평론가 정현기, 김화영, 우찬제, 건축가 김억중, 화가 최석운 씨 등 30여명이 참석, 「쇼와」를 진지하게 감상하였다. 양재동 서초 구민회관을 출발한 대절버스에서 나눠 받은 「쇼와(대재앙)」에 대한 해설을 읽어나가는동안, 나는 또 유태인 학살 이야기인가! 하고 약간 뜨악하였다. 홀로코스트(유태인 학살) 소재라면, 「쉰들러 리스트」나 「인생은 아름다워」등 탁월한 영화를 통해 이미 익숙하게 봐 온 것이었다. 더구나 일본 제국주의의 침탈에 의한 민족적 상흔을 다 추스리지 못한 우리로서는 그 소재와 부딪칠 때마다 크게 혹은 작게나마 일종의 답답한 부채의식을 느껴온 터였다. 우리는 우리의 역사를 소재로 하여 세계적인 공감을 얻어낸 어떤 작품도 가지고 있지 못한 처지인데, 남의 역사에 필요이상으로 매달리는 것 같아 기분이 그다지 유쾌하지 않았다. 그러나, 영화 「쇼와」를 다 보기도 전에 그런 자성을 동반한 뜨악한 의구심 따위는 씻은 듯 가셔 버렸다.
우리 영화나 소설 기법에도 반성적으로 기여할 영화 「쇼와」 「현대」지의
편집장 겸 작가인 감독 클로드 란쯔만의 철저하게 주관적인 시각에 의해
선택되고 계산된 화면과 더불어 긴 여행에 들어간 나는 한 시간 정도도
달리지 않아 새로운 영화 문법의 만화경 속으로 자연스레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그 몰입은 과거의 매몰과 과거의 재생을 동시에 이루어냈다.
란쯔만의 화면은 과거를 보여주지 않았다. 자료 화면도 이용하지 않았다.
설명도 하지 않았다. 시간의 흔적만 남아 있는 과거를 체험한 인물의
얼굴, 그 얼굴의 증언만으로 과거를 현재 속에 재구성하고 있었다. 과거
유태인 학살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주제로 삼고 있으나 역사적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과거를 체험한 장본인들(생존자, 가해자,
목격자)의 입을 빌어 과거의 사실을 증언하게 함으로써 과거를 현재화시키고
나아가 미래 시간에 재현될지도 모를 ‘재앙’의 모습을 유추하며 전율케
하는 묘한 효과를 얻고 있었다. 학살의 현장도 자료 사진 따위를 사용하지
않았다. 잡초가 무성 헤움노 마을, 버들가지 휘늘어진 시내를 쪽배로 거슬러 올라가는 두 남자, 고물에 앉은 사내는 노를 젓고 이물에 앉아 있는 사내는 먼 곳에 눈을 두고 아픈 과거를 바라보고 있다. 배는 평화스런 들 가운데로 흐르는 강을 따라 올라가고 마침 아주 감미로운 노래가 흘러나온다. 작은 하얀 집은 지금도 밤이면 꿈속에 나타나지요, 감미로운 노래는 평화스러운 마을 풍경에 조화롭게 포개진다. 이물에 앉아 먼 과거를 돌이켜보는 사내 시몬 스레브니크! 역사적 사건 당시 13세 반이었던 그는 이제 47세의 중늙은이의 모습으로 고통스런 과거를 돌아보며, ‘저는 살아야 하고 그래서 잊었습니다. 잊을 수 있다는 것, 그것은 하느님의 가장 큰 은총입니다.’ 하고 나직이 말한다. 영화는 평화스럽게, 분노와 격정과 저주와 이런 극단적인 감정을 다 감추고 평화스럽게 시작되었다. 트레블린카, 40만 명의 유태인이 치클론 가스로 희생된 트레블린카 수용소, 그 역 이름이 새겨진 표지판을 크게 전면에 내세우고 화차를 몰고 들어가며 고개를 길게 빼 늘이고 목 자르는 시늉을 거듭거듭 보여주는 기관사의 그 끔찍한 상징적 손짓. 수용소에서 여자들의 머리카락을 자르는 노역에 차출되어 종사했던 이발사의 과거로의 여행 거부. 너무 하시네요. 너무 하시네요. 아무래도 안되겠어요. 그러나 란쯔만의 재촉에 마지못해 입을 연 이발사, 그러나 그는 알몸의 자기 아내와 자기 딸의 머리를 자르게 된 동료 이발사 대목에서 그만 울음 속에 말을 묻고 만다.여인들을 가스실로 몰아넣고 난 자리에는 으레 대여섯 줄의 배설물이 쌓여 있었다고 증언하는 전 SS대원 주호멜 하사. 죽음의 공포 앞에서는 모든 자율기관이 이완되어 실금을 하게 된다는 사실을 증언하는 그 태연한 얼굴.파란 완장을 찬 노역꾼들을 앞세우고 가스실 문을 열면 시체들이 바위처럼 무너져 내린다. 가스를 주입하면 일제히 문으로 달려가 층층이 쌓여 죽음을 맞기 때문이다. 시체 더미 아래에는 으깨진 어린애 두개골도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짓밟힌 시체도 있었다는 것이다. 자기들이 곧 가스실에서 죽게되어 있는 사실을 지득한 한 여인. 옆 사람들에게 그 사실을 귀띔하지만 아무도 믿지 않는다. 이 사람 저 사람 닥치는 대로 붙들고 그 사실을 전하나 도리어 그 여인이 미쳤다며 외면하는 사람들.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 ‘진실’ 때문에 스스로 미쳐 버린 그 여인. 이미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 있는 사실을 감지하고서도 마지막 순간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그들의 전율스런 막무가내의 믿음.사람이란 그토록 절망적인 존재인가? 사람이란 그토록 극단적으로 잔인해질 수 있고 또 그토록 극단적인 치욕과 절망적인 고통을 견딜 수 있는 존재인가? 영화 「쇼와」를 보고 있는 동안 몇 번이나 그런 의문이 마치 벼락처럼 내 정수리를 내려쳤다. 잔인함의 극대화와 견딤의 극대화가 교직된 그 끔찍한 증언을 보고 듣고 있는 동안 그 의문은 내내 무의식의 회로를 통해 나에게 정신적 세례를 퍼붓고 있었다. 둘째 날, 이틀에 걸친 길고 긴 영화 상영을 마치고 「쇼와」에 대한 감상들을 펼쳐놓는 토론 시간. 국내 최초로 문화인들에게 이 영화를 보여준 이상빈(외국어대 외국문학연구소 초빙연구원)씨는 “1985년도에 제작되어 전세계에 충격을 던지고 화제를 불러일으킨 이 문제작이 우리 나라에서는 상영되지 않은 현실이 안타까운 데다 우리도 민족적 상처가 많은데도 미처 다 정리하기 전에 서둘러 다음 세기로 넘어가려는 것이 안타까워 여러 문인들에게 이 작품을 소개하게 되었다.”고 동기를 밝혔다. 박경리 선생님은 “이 영화를 보고 유태민족의 역사적 사실의 접근 방법을 배울 필요가 있다는 걸 다시 느꼈다. 정신대 문제나 광주 문제도 돈을 받고 잊어버리지 말고 돈을 받지 않고 영원히 잊어버리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처음에 밋밋하게 전개되어 다소 싱겁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반복된 증언과 과거를 지워버린 역사적 현장을 거듭 보는 사이 긴장감을 느끼게 되었다. 란쯔 만의 영화문법에 공감이 간다.” - 김화영 교수 “철저하게 다큐식으로 전개해 나가는데, 다큐를 뛰어넘는 예술적 긴장과 탄력을 유지하는 란쯔만의 영화 기법은 소설에서도 통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 오정희 작가 “작가로서 나 자신이 부끄럽다. 한없이 가벼워지는 우리 문학계는 반성해야 한다. 아직 우리에게는 문학의 진지성으로 접근해가야 할 아픈 기억이 너무 많지 않은가?” - 전상국 작가 영화 「쇼와」는 홀로코스트의 문제를 뛰어넘어 우리의 역사 인식은 물론 우리 영화나 소설 기법에도 반성적 기여를 할 것으로 보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