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Review  - 국 악

부산의 음악축제로
성장하고 있는 효산국악제

최종민  음악평론가

20세기는 문화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한다. 문화가 문화인 일부의 전유물이 아니라 모든 사람과 관련을 갖게 되고 또 문화가 부를 창출하기도 하고 문화가 한 사회의 구심점이 되기도 할 전망이다. 그렇게 문화를 모든 사람의 것으로 가꾸기 위해서는 문화를 하나의 축제로 만들어서 보다 많은 사람들이 참가하고 함께 가꿀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지방화시대를 열어가고 있는 각 지방은 그 지방의 정신적 구심점이 될 문화축제를 개발하고 발전시킬 필요가 절실한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내가 참가해 본 부산의 효산국악제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부산의 지방축제가 될 수 있는 많은 요건을 갖추고 있기에 더욱 발전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 글을 쓴다.

 

격조있는 음악축제, 효산국악제

서양에 모차르트 음악축제나 바그너 음악제가 있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 그런데 우리 나라에는 음악가의 이름을 딴 음악제가 몇 개나 있을까? 그리 많지 않다. 충북 영동에서 오래 전부터 난계(蘭溪:박연의 호)예술제를 해 오고 있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국악공연을 하고 학술대회를 하고 또 국악경연대회를 한다. 영동군민과 영동군이 함께 가꾸어 온 음악축제다. 영동군민들은 음악축제만 하는 것이 아니라 1960년대부터 영동의 학생들에게 국악을 가르쳐서 많은 국악계의 인사를 배출하기도 했다. 그래서 이제 영동은 문화의 고장이 되었고 전국적으로 알려진 국악의 고장이 되었다. 음악가를 기리는 사업이 발전하면서 다양한 결실을 맺고 있는 좋은 예라 하겠다. 효산은 강태홍 선생의 호이다. 그러니까 효산국악제는 강태홍 선생의 음악을 기리는 음악축제인 것이다. 그런데 왜 효산국악제를 부산에서 하게 되었을까? 아마 많은 분들이 궁금해 할 것이다. 강태홍 선생은 1893년 전라남도 무안에서 판소리 명창 강용환의 아들로 태어났고 서울에서 살다가 대구와 부산으로 옮겨 살면서 가야금산조를 연마하고 제자를 가르치며 활동하다가 1957년에 작고 하셨다. 강태홍 선생은 김춘지, 원옥화, 구연우, 신명숙 등을 가르쳐서 훌륭한 음악가로 키웠는데 김춘지씨는 인간문화재까지 되었었지만 크게 활동하지 못하고 작고하였고 구연우, 원옥화도 모두 작고하였다. 그래서 지금 강태홍 선생의 직계 제자로는 신명숙이 그 맥을 잇고 부산의 지방문화재로 인정받아 많은 제자를 양성하고 있다. 어쩌면 신명숙이 가장 크게 강태홍제의 가야금산조를 보급하여 스승의 음악이 활짝 꽃피게 하는 역할을 하는지도 모른다. 신명숙은 그동안 백혜숙을 비롯한 많은 제자를 길러 부산을 강태홍제 가야금산조의 영토로 만들었다. 효산국악제도 바로 그 신명숙 명인의 앞을 내다보는 혜안과 백혜숙등 제자들의 추진력이 합세하여 만들어진 음악축제라고 할 수 있다. 기금을 모으고 행사를 계획하고 추진하는 모든 일을 강태홍류 가야금산조 보존회가 하고 있었다. 정말 자생적이고 자립적인 음악축제인데 그 동안 학술대회의 결과는 논문집 두 권으로 나와 있고 금년도의 학술대회 결과도 논문집으로 나올 예정이라니 그들은 참 알차고 격조있는 음악축제를 멋지게 가꾸어 가고 있다 하겠다.

 

다양한 창작음악의 체험

제3회를 맞는 효산국악제의 첫날은 9월 8일(수) 7시 30분 부산문화회관 중강당에서 연주회로 막을 올렸다. 부산의 국악애호가들과 많은 학생들이 관람자로 왔고 전라남도 무안의 강태홍 선생 친척과 무안 국악협회 임원 여러분도 참석한 가운데 연주회는 시작되었다. 첫 무대는 신명숙 명인과 백혜숙 교수가 신태형씨의 장구에 맞추어 강태홍제 가야금산조를 한 바탕 연주했다. 산조란 혼자 마음 가는대로 음악을 만들어 가며 연주하는 것이 본래의 모습이지만 지금은 스승이 가르쳐 준대로 어김없이 연주하는 것이 미덕으로 되어있기 때문에 이날 두 분의 연주도 강태홍 선생의 음악이 그 전통을 잘 이어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하나의 데몬스트레이션이 되었다. 두 번째 순서는 북한에서 개발했다고 하는 옥류금 연주였는데 중국연변가무단에서 1년간 공부한 바 있는 김혜진이 계명훈 작곡의 ‘눈이 내린다’와 ‘꽃 피는 이 봄날에’를 연주하였다. 이번 연주회에는 부산의 음악가들 외에 전주 우석대학의 김철진 교수 일행과 대구 영남대학의 최문진 교수 일행도 있었다. 세 번째 순서가 바로 영남대학교의 최문진 교수 일행이었는데 황병기 작곡의 「달하 노피곰」을 네 명이 가야금 Ⅰ·Ⅱ로 나누어 연주했고 네 번째 순서는 전주 우석대학교의 김철진 교수가 박희전(가야금Ⅱ)·조용안(장구)과 함께 백성기 작곡의 '18현 가야금 2중주를 위한 「영상」'을  연주했다. 그리고 맨 마지막 무대는 부산대학교의 백혜숙 교수가 제자들과 함께 이성천 작곡의 '바다'를 연주했다. 순서마다 악기 편성이 다르고 작품의 성격이 달라서 청중들이 다양한 창작음악을 체험할 수 있었다. 연주회의 분위기는 아주 조용하고 차분하였다. ‘얼씨구’를 연발하는 그런 분위기는 전혀 없었다. 부산 사람들이고 창작음악 중심이었기 때문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 본다.

 

달아올랐던 학술발표회의 열기

효산국악제 둘째 날은 학술발표회를 했는데 9월 9일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6시 30분까지 부산대학교 본관 3층 대회의실에서 여러가지 주제를 가지고 열띤 발표와 토론을 벌였다. 석현주(부산대)가 ‘용재총화에 담긴 15세기 음악문화’를 발표했고 윤소희(부산대)가 ‘가야금산조의 구성음 중 下一과 上二에 관한 연구’를 발표했다. 정영진(부산대)은 ‘범어사 「어산집」해제’를 발표했고 김세종(부산대)은 ‘가야금의 名意’를 발표해 주었다. 석현주의 발표가 주목을 끌었고 윤소희의 발표에는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소장학자들의 발표가 다 끝난 다음에는 노장이라 할 수 있는 권오성, 이보형, 최종민이 초청강연 형식으로 얘기를 했다. 권오성은 ‘산조와 마캄의 비교 가능성에 대하여’라는 제목으로 얘기했고 이보형은 ‘산조의 음악형성과 강태홍 산조’라는 제목으로 논문의 일부를 발표해 주었다. 최종민은 문화의 시대를 대비한 문화인의 안목을 길러 주어야 겠다는 생각에서 ‘한국문화의 생성원리’에 대한 얘기를 했다. 학술발표회는 중간 점심시간을 제외하고는 거의 쉬지 않고 계속했는데 그래도 시간이 초과되어 오후 6시 30분에야 끝났다.

 

효산국악제를 부산의 축제로...

3회를 맞는 효산국악제는 앞으로도 격년제로 계속될 것이라 한다. 강태홍류 가야금산조 보존회는 이 축제를 의미 있고 알찬 국악제로 가꾸어 갈 수 있는 저력이 있다고 믿는다. 연주회를 하고 학술대회를 하고 논문집을 내고 또 뒷풀이를 통해서 국악인들의 유대를 돈독히 하는 등 잘 발전시켜 나가리라 생각한다. 그런데 이렇게 좋은 음악축제를 부산의 지도층 인사들이 모르고 있다는 점이 안타깝다. 문화의 시대를 이끌어갈 지도층 인사들의 문화에 대한 안목을 기르기 위해서라도 이런 축제는 부산의 축제로 승화시켜야 되고 부산의 문화이미지를 높이기 위해서도 효산국악제를 부산의 음악축제로 가꾸어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실천하는 사람들은 소수일지라도 관심을 갖는 사람들은 많을수록 좋은 것이다. 부디 부산 시민 모두가 관심을 갖는 효산국악제가 되길 바라고 다시 한번 신명숙 명인과 백혜숙 교수의 노고에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