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Review - 무용 |
한국춤 무대에 나타난 새로운 바람 문애령 무용평론가 현대적인 안무법과 한국무용의 접목 한국무용가 손인영이 미국의 포스트-모더니즘을 연상시키는 공연을 하고 양성옥이 일본 음악에 춤을 추는가 하면 전통예술원 교수들은 악·가·무 일체라는 공연예술의 전통을 되살려 화려한 기교의 조화를 음미할 수 있는 무대를 만들었다. 공연을 매일 보더라도 다 볼 수 없을 만큼 풍성했던 9월의 무대에서 발견된 새로운 바람은 분명 어떤 변화를 잉태하고 있었다. 미국에서 활동하다가 최근에 서울예술단의 안무자로 귀국한 손인영은 전통무용도 했고 국립무용단에서도 활동한 경력이 있다. 하지만 그는 이제 극도의 현대적인 안무법을 한국무용과 접목시키는 작업을 보여주면서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번 야외무대(토탈미술관 9월2일) 역시 여러 면에서 신선한 것이었다.
한국창작 춤의 또 다른 변환기 좁은 출입구를 지나 내려가면 잔디가 깔린 조그만 언덕 모양의 정원이 나온다. 공연장에 흐르는 음악의 분위기가 마치 영화 「몬트리올의 예수」에서 장소를 이동하며 펼쳐지는 연극의 배경음악 같아서 이 공연 역시 행위자를 따라 관객이 이동해야 한다는 사실이 당연한 것처럼 느껴졌다.풀밭에서 나타난 물의 요정이 일종의 신고식을 한 후 장면은 커다란 물웅덩이로 옮겨진다. 그 곳에서 손인영이 보인 몸짓은 물에 빠져 질식하는 사람의 거센 움직임 같았다. 그 사이 사이에 안무자는 자신의 어린시절에 대해 많은 얘기를 했다. 자연의 아름다움과 유아기에 대한 향수가 배어있었다. ‘물춤‘, ‘이방인의 연가’, ‘물이야기’ 등의 제목이 연결돼서 「물의 춤」을 이뤘다. 손인영이 작품 중에 이야기를 넣는 방식은 미국의 포스트 모던 댄서들이 80년대에 내용을 부활시키면서 사용한 전통과 무관해 보이지 않았다. 즉 내용 묘사에서 동작보다는 언어를 직접 사용하는 것으로 메러디스 멍크가 즐겼던 스타일이 보다 강조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차이점이라면 개인의 자세한 신상을 드러내면서 전쟁이나 인종차별주의 혹은 성차별 등 보다 큰 사회문제를 생각해 보는 기회로 삼았다는 것인데 「물의 춤」에도 그런 이미지가 있었다. 손인영 같은 한국무용가가 최신의 안무법을 직접 도입하리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웠다. 미국의 현대무용은 현대무용가들이 받아들일 것으로 믿었기 때문에 의외의 결과였다. 한편 창작을 논할때 방법론은 누구에게나 필요한 것인 만큼 용기있는 자의 선택이 그를 선구자로 만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로써 한국창작춤은 또다른 변환기를 맞이한 셈이다.
한국과 일본의 교류공연 9월
둘째 주는 ‘일본에서 보다 더 많은 일본 공연을 본다’는 우스개 소리가
나올 만큼 일본 공연물이 많았다. 그중에서 「달밤, 눈위에 피는 꽃」(9월9일
호암아트홀)은 거문고 연주에서 일본무용을 춤추고 샤미센 연주에서
한국무용을 춤추는 교류공연으로 관심을 끌었다.일본의 공연문화에 대한
갈증이 컸던 이유는 미국이나 유럽, 러시아의 공연까지도 쉽게 접하면서
유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교수음악회(9월14일 국립국악원 예악당) 역시 새롭게 등장한 공연형식임에 분명하다. 올해가 두 번째로 한국음악과 무용 그리고 전통연희가 같은 무대에서 펼쳐졌다. 「청성곡과 수룡음. 춤」에서 단소, 생황, 양금, 춤의 명인들이 한 작품을 위해 모인 것 처럼 「악·가·무 :공명」에서는 박병천의 북춤과 김덕수의 장구가 만났다. 태평소의 최경만을 기억하게 된 것도 문외한을 위한 교육효과가 충분했다는 증거가 될 것이다.박병천의 북춤은 한국춤의 한 특징으로 일컬어지는 ‘신명’을 느끼게 했다. 힘이 풀린듯한 다리에서 나오는 발놀림의 장난기가 놀랍더니 엇박자로 힘을 가하는 동체의 흔들림에서는 민속연희의 귀중함을 깨닫게 할 정도였다. 가무악의 재결합은 본래의 맛을 되살리는 필수적인 과정임에 분명했다.
한국무용의 다양한 움직임 북춤이 꾸밈없는 흥겨움을 보였다면 양성옥의 장구춤은 장구를 메고 편채를 쥐는 방법까지가 치밀하게 꾸며져 치장의 묘미를 보이는 대조를 이뤘다. 신무용의 특징중 하나가 민속춤을 깔끔하게 다듬었다는데 있듯이 장구를 이동하고 춤을 추고 장단을 치는 일련의 움직임이 한치의 오차없이 계산된 것이었다. 예뻐보이지 않을 위험성을 모두 차단한 이후에 펼쳐지는 묘기같은 기교 또한 오늘날의 한국무용이 잃어버린 신무용의 매력이었다. 요즈음 신인들의 무대를 보면 현대무용 처럼 보이는 한국무용이 만들어지는가 하면 일본의 부토가 연상되는 한국 창작춤도 유행하고 있다. 때로는 모든 면에서 동서의 구분이 불가능한 공연들도 나오고 있다. 아울러 9월의 공연들이 다양함의 방법과 범위를 더욱 넓힌 것이다. 다양성은 자유로운 분위기의 소산이다. 마음껏 생각할 수 있는 자유가 되살아나고 있다는 조짐이 한국무용가들의 공연장에서 느껴진다. 정리와 선별작업은 뒤로 미루고 우선은 다양한 움직임을 환영하며 관찰할 단계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