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리뷰  - 출  판

과학을 따라다닌 역사학의 운명

 

김기협(중앙일보 문화전문위원)

20세기가 끝나 가는 시점에서 새 세기, 새 천년을 바라보는 들뜬 전망들이 여기저기 터져나오는 가운데, 지나간 시대를 되돌아 보는 차분한 시각도 학계와 출판계에서 적지않게 찾아볼 수 있다. 그 중에서도 과거를 뒤돌아 보는 학문인 역사학이 걸어온 자취를 살피는 한 권의 책이 특히 독자들을 차분한 성찰의 세계로 이끌어준다. 조지 이거스의 「20세기 사학사」(푸른역사)다.

동양이건 서양이건 19세기 이전에는 역사는 있어도 ‘역사학’이란 전문분야는 없었다. 역사의 지식과 이해는 인문적 교양의 한 부분으로 모든 지식인에게 관심의 대상이었지만, 직업적 전문성이 필요할 만큼 엄격한 방법론을 적용시키는 분야는 아니었다. 교양인으로서 기본 자질을 갖춘 사람이라면 누구든 역사를 논할 수 있었다. 전문적으로 직업화된 역사학은 19세기 중엽 독일에서 나타났다. 영국과 프랑스보다 뒤늦게 근대화에 나선 독일에서 급격히 확장되고 있던 대학제도를 배경으로, 국가주의 이념 구축의 선봉 노릇을 역사학이 맡았던 것이다. 독일에서 틀을 잡은 역사학은 19세기 후반 국가주의 바람을 타고 세계 각지로 번져 나갔다.

직업화된 역사학은 ‘과학적’ 방법론을 무기로 삼아 전통적인 이야기체 역사서술로부터 자신을 차별화했다. 레오폴트 폰 랑케는 절대적 객관성을 역사인식의 기준으로 내세웠고, 칼 막스는 역사발전의 법칙성을 과학적 역사학의 요건으로 보았다. 근대정신의 주인공이 과학의 권위에 의탁함으로써 역사학은 역사에 관한 담론을 독점했을 뿐 아니라 인간의 본질을 역사적 조건에 귀착시키는 ‘역사주의’까지 태어나게 했다.

 

역사학 - 관심의 중점이 문화사로 변화

「20세기 사학사」는 ‘근대역사학’의 통사(通史)라 할 수 있다. 그 중 오늘의 독자들에게 가장 흥미를 일으키는 것은 역사학의 오늘의 문제 (포스트모더니즘의 도전)를 다룬 제3부다. 근대적 세계관에 본질적 의문을 제기하는 포스트모더니즘 담론은 종래 역사학의 연구방법과 서술방법만을 문제삼는 것이 아니라, 그 탐구대상인 ‘역사’의 실재까지 의문의 대상으로 만들고 있다. 이 총체적 공세 앞에 역사학은 자신의 역할을 어떻게 지킬 수 있을까 하는 것이 문제다.

포스트모더니즘의 도전은 크게 ‘거대담론의 거부’와 ‘언어의 전환’이란 두 측면으로 파악된다. 역사발전의 법칙성을 부정하고 보편적 이념을 외면하는 거대담론 거부 경향은 역사학 연구주제의 파편화로 나타난다. 유럽중심, 남성중심, 산업생산력중심의 근대화과정이 한 고비를 넘기면서 변화의 중심부에 편중돼있던 가치관이 풀려남으로써 문화다원주의가 득세하는 현상과 밀접하게 관련된 변화다.

거대담론의 거부가 이념적 애너키즘이라면 언어의 전환은 방법론적 애너키즘이다. 현상과 표현 사이의 원천적 간격을 지적한 구조주의 언어학 이론을 더욱 극단화해 계승한 포스트모더니즘은 양자간의 연관성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며 언어의 유동성을 강조한다. 이것은 근대역사학의 첫번째 원리인 ‘실제성’을 차단함으로써 그 근거를 박탈하는 것이다. 과거의 사실을 기록한 언어가 과거의 사실과 연관성을 가지지 않은 독립체일 뿐이라면 역사학의 담론이 어떻게 엄밀성을 전제로 성립할 수 있겠는가.

 

근대역사학의 굴곡

이념의 구심점을 잃고 엄밀성에 대한 자신감을 훼손당한 역사학은 일상생활화, 미시사(微視史) 등 새로운 연구분야로 비중을 옮기는 한편 기존 연구분야에서도 해석의 틀을 운용하는 방법에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고 이거스는 관찰한다. 그는 포스트모더니즘의 도전이 역사학에 치명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적절한 대응을 통해 오히려 발전의 계기로 삼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보편이념에 얽매여 온 과거 연구주제의 편중성을 벗어날 수도 있고, 언어와 현실 사이의 간격을 융통성 있게 파악함으로써 더 풍부한 해석의 길을 찾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근대역사학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개관한 이거스의 책에서 아쉬운 것은 과학의 방향에서 바라보는 시각이다. 방법론의 측면에서 근대역사학을 지배한 것은 과학의 개념이다. 인간의 과거 행적을 ‘과학적’으로 파악한다는 자부심이 근대역사학으로 하여금 자신있는 관점을 내놓게 해 온 것이다. 랑케 이후 근대역사학은 과학을 닮음으로써 ‘힘’을 가질 수 있다고 믿어왔다. 포스트모더니즘의 도전은 역사학의 과학성을 부정함으로써 근대역사학 이전의 ‘이야기역사’로 되돌리려는 위협이라 할 수 있다. 과학의 개념도 변해 왔으며 근대역사학의 굴곡은 이로부터 영향을 받아 왔다. 랑케가 믿었던 ‘과거의 실제성’과 ‘시간의 연속성’은 뉴튼의 세계관에 근거를 둔 것이었다. 반면 아날학파 일부에서 제기한 ‘시간의 복층성’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원리를 배경으로 한 것이었고, 구조주의 언어학에서 말하는 ‘언어의 유동성’은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이론과 통하는 것이었다. 과학의 본질적 요건으로 가장 흔히 지목되는 ‘합리성’과 ‘경험성’은 서로 모순을 일으키는 경향이 있다. 토머스 쿤의 패러다임 이론은 두 성질이 엇갈리는 구조적 패턴을 해명한다. 세계관의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는 패러다임 전환기를 막 지난 뒤에는 새로 세워진 패러다임을 중심으로 합리성에 의거해 관찰된 현상을 ‘해석’하는 작업이 주종을 이룬다. 그러나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확립된 패러다임에 맞지 않는 현상들이 새로 주목을 끌게 되는데, 이를 ‘묘사’하는 작업에서는 경험성이 부각되게 된다.

 

역사학의 실용주의적 대응책

거대담론의 퇴조는 합리성의 계절에서 경험성의 계절로 넘어가는 변화라고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변화에는 묘한 우연이 작용하는 것처럼 보인다. 한편에서는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쇠퇴로 거대담론의 주제가 약화되어 왔고, 다른 한편에서는 사상계에서 과학의 위상이 저하되는 데서 기존 패러다임의 피로현상을 살필 수 있는데, 이 두 가지 요인이 역사학의 거대담론 퇴조에 함께 작용하는 것이다. 역사학에 대한 포스트모더니즘의 가장 심각한 위협은 ‘객관성’의 실종이다. 역사학자들이 문제를 받아들이는 데도 쿤의 패러다임 이론이 좋은 참고가 될 것이다. 쿤은 과학의 객관성이 절대적 진리에 입각한 것일 수 없으며, 역사적·문화적 조건 속에서 특정 패러다임을 공유하는 ‘과학계’안에서 담론의 기준으로 의미를 가질 뿐이라는 상대주의적 과학관을 제시했다.

과학이 과학계의 울타리를 넘어서는 지배력을 가지는 것처럼 보인 것이 환상이었듯, 역사학이 역사학계의 범위를 넘어서서 ‘힘’을 발휘하려 한 것도 망상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객관성에 대한 근대역사학의 강박에서 벗어나 문학적 상상력에 기대며 역사학계의 울타리를 넓혀나가는 것이 포스트모더니즘의 도전에 대한 역사학의 실용주의적 대응책이 될 것 같기도 하다.

90년대 들어 여러 분야 첨단 과학자들이 대중의 교양을 위한 과학서 집필에 대거 나서게 된 것은 과학이 사상계에 군림하던 근대적 상황이 끝나가고 있는 변화를 보여준다. 과학이 대중의 흥미를 발전의 동력으로 삼던 17세기 상황이 얼만큼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과학성’을 빙자해 대중과 격리된 고답적 위치를 지키던 역사학이 ‘이야기투’를 다시 가다듬어 대중에게 돌아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역사책 읽기를 좋아하는 비전공 독자들은 이거스의 책을 읽으며 앞으로 더 자신감을 가지고 역사공부에 접근할 전망을 세워도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