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프로그램 문화예술 20세기 정리와 21세기 전망 ④ 음악 |
원로에게 듣는다. - 임원식 한국음악계의 중심에서 바쁘게 활동하는 원로 음악인
만난사람 :최종민 음악평론가
최: 선생님 퍽 건강해 뵙니다. 요즘도 늘 바쁘게 음악활동을 하고 계신 것 같던데요. 임: 운동도 열심히 하고 주어진 일도 열심히 하기 때문에 건강한 것 같습니다. 얼마 전에는 수원시향을 지휘했습니다. 추계예술학교의 객원교수로 있기 때문에 매주 2일씩 나가서 오케스트라를 지휘하고 있습니다. 또 내가 창설한 서울예술고등학교에도 일주일에 두 번씩 나가서 오케스트라를 지도하고 있지요. 그 외에 지방의 교향악단이라든가 직업 교향악단에서 요청이 있으면 지휘를 하고 있습니다. 당장 11월에는 광주 시립교향악단의 정기연주회를 맡아서 지휘하게 됩니다. 최: 그러니까 정기적으로 학교에 나가 학생들을 지도하시고 또 공연 무대에도 자주 서시고 외국 가서도 지휘하시고 정말 왕성하게 활동하고 계십니다. 임: 그럼요 아직 현역 그대로입니다. 아마 현역으로 활동하는 음악가 중에는 제일 원로에 속할 겁니다. 최: 선생님께서는 지휘자로서도 큰 일을 많이 하셨지만 우리 나라의 음악인재를 가장 많이 배출한 예원학교와 서울 예술고등학교를 설립한 것이 큰 업적이 될 것 같은데요. 그 이야기 좀 들려주시지요. 임: 설립동기를 먼저 얘기하면 이렇습니다. 나는 피아니스트 윤기선과 함께 8·15 해방후 정부수립 직전에 음악으로 미국유학을 한 최초의 유학생이었습니다. 그 때는 우리 정부가 없기 때문에 여권이 있을 수 없었지요. 때문에 미국 영사관에서 여행증명서를 발부 받아 미국 유학을 떠났었습니다. 뉴욕에 가서 줄리어드 음악학교에서 공부했었는데 어느날 뉴욕 시내를 돌아다니다 보니까 어떤 빌딩에서 음악소리가 나는 거예요. 그래서 유심히 그 빌딩을 쳐다 보니까 The highschool of music and art , 말하자면 예술고등학교라는 간판이 붙어 있습디다. 음악학교라는 것은 알겠는데 예술고등학교라고 하니 궁금해졌지요. 학교에 들어가서 카다로그도 받아 보고 여러 가지를 알아 본 결과 그 학교는 고등학교에서부터 전문교육을 시키는 특수 목적을 가진 고등학교라는 것을 알았지요. 그런데 그 당시 미국에서도 그런 학교는 그 학교 하나밖에 없다는 것이었어요. 나는 유학 가기 전에 이화여고에서 음악선생을 하면서 한국에 하나밖에 없던 고려교향악단을 지휘하는 지휘자였거든요. 그래서인지 그 예술고등학교를 보고는 느끼는 바가 많았습니다.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게 되면 이런 교육기관을 만들어서 한국의 재능 있는 청소년들을 길러 봐야겠다는 그런 생각이었지요. 바로 그것이 서울예고 설립을 추진하게 된 동기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귀국하면서 다시 이화여고에서 교편을 잡게 되었는데 그 당시 교장이었던 신봉조 선생님을 설득하기 시작했습니다. 뉴욕에 그런 학교가 있는데 우리 나라에서 제일 먼저 학교를 만들어 봅시다 하고 권한 것이지요. 그래서 신봉조 교장선생님의 승낙은 얻었는데 그 당시(’48년) 이화여고의 형편으로는 예술고등학교를 설립한다는 것이 무척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그 무렵 효자동에 있던 정명 여자중학교라는 미션스쿨이 학생 수도 줄고 하여 문을 닫게 되니까 그 학교의 부지나 여러 가지 시설들을 같은 미션스쿨인 이화여고에 기증하게 되었습니다. 이건 하늘에서 떨어진 큰 행운이라고 봐야 하지요. 그 무렵 이화여고 교장은 손매리 선생님이었는데 그 정명학교의 부지와 재산을 예고 설립 기본재산으로 하고 문교부에 예고 설립 신청서를 내어 인가를 받게 된 것입니다. 그것이 ’53년이니까 부산에 피난가 있던 시절입니다. 예원학교와 서울예고의 설립동기와 과정은 그렇게 된 것입니다. 최: 선생님께서 애써 만드신 그 서울예고가 정말 한국음악의 인재를 절반 정도는 양성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요. 임: 자화자찬 같아 말하기가 쑥스럽습니다만 따지고 보면 한국 음악계 뿐만 아니라 세계의 음악계에서 활동하는 서울예고 출신은 엄청나게 많습니다. 각 교향악단이나 오페라단등의 전문단체로부터 각 대학의 교수에 이르기까지 연주가 교육자 할 것 없이 정말 많습니다. 현재 서울음대 학장이나 한양음대 학장이 모두 서울예고 출신 아닙니까? 최: 이것은 하나의 가정입니다만 만일 선생님께서 학교 경영에 관심이 있고 욕심을 내셨더라면 멋진 예술대학도 만들 수 있었을 것 같은데요. 임: 사실은 그런 생각을 했었지요. 그런데 그 당시 재단의 주체인 이화재단이 그런 여력이 없었고 그 후에는 수도권 학교설립제한이라는 교육법에 묶여서 그런 생각을 실현할 수 없었습니다. 최: 그런 속사정이 있었군요. 선생님께서는 지휘자로서 뿐만 아니라 한국음악계의 한 중심에서 늘 활동하시고 아주 바쁘게 살아오시지 않았습니까? 임: 그저 열심히 일하다 보니까 자꾸만 일이 생겨서 바쁘게 뛰어다니게 되었지요. 그 전에는 외국의 연주가가 한국에 오는 경우는 아주 드물었습니다. 그런 시대에 나는 하나밖에 없는 교향악단의 지휘자로서 자주 연주회를 가졌지요. 연주회를 하면 외국의 대사나 대사관 직원들은 자주 구경을 와요. 그것이 자기네 음악이니까 오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들은 구경을 오면 연주회가 끝난 다음 그냥 가지 않아요. 지휘자를 만나서 인사를 한다든지 축하를 해 주고 가요. 그러다 보니까 서로 친하게 되고 또 정보도 교환하게 되었지요. 한 때는 외국에서 한국 음악계에 보낼 공문이 있으면 나에게 보낼 정도로 내가 외국에 알려진 한국의 음악가였지요. 나는 늘 청소년들의 음악 조기교육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데요, 우리 나라 청소년들의 음악교육을 위해서는 국제적인 음악단체와 교류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었지요. 그래서 알아보니까 유네스코 산하에 국제청소년 음악연맹이라는 단체가 있어서 연락을 하고 초청 받아서 가 보니까 유럽에서는 청소년의 개념이 이쪽하고 달라요. 30세까지가 청소년이에요. 우리는 청소년 하면 중·고등학교 학생을 생각하는데 말이에요. 우리나라는 내가 ’72년에 독일 아우스부르그에 옵서버 자격으로 참가하여 모든 절차를 알아 가지고 와서 서울예고를 중심으로 서류를 만들어 제출하였는데 ’73년 이스라엘 총회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되어 신규로 정식 회원국이 된 겁니다. 그 때부터 명실공히 청소년 음악교육의 국제적기구에 회원으로 가입된 것이지요. 지금도 내가 한국 회장인데 그 때부터 지금까지 한 해도 빠지지 않고 국제 행사에 참가하고 있습니다. 최 : 임원식 선생님 하면 교향악운동을 얘기 하지 않을 수 없는데요. 우리 나라의 교향악운동은 홍난파 선생님이 시작했다고 하지만 현대적 의미의 교향악단을 만들고 본격적인 활동을 전개한 분은 선생님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임 : 하긴 역사라는 것도 보기에 따라서 다를 수 있지만 우리나라의 교향악운동도 그래요. 일제시대에 홍난파 선생이라든지 계정식·현재명·김성태 선생 같은 분들이 외국에 가서 공부하고 돌아와서 개인적으로 활동했었는데 그 때에는 우리나라에 음악계라든가 음악학교도 없었고 교향악단이나 오페라단 같은 것도 없었지요. 오케스트라라는 것이 일제 말기에 경성방송국에 10여명이 모여서 연주하는 정도였으니 뭐 아주 빈약했던 것이지요. 교향곡을 연주할 수 있는 교향악단이 만들어진 것은 해방후의 일입니다. 나는 ’46년에 외국에서 돌아와서 교향악단의 초대 상임 지휘자가 되었는데 그 때에는 우리 나라에 그 교향악단 하나밖에 없었어요. 최 : 그 때와 지금을 비교하면 정말 금석지감이 있지요? 임 : 지금은 정기 연주회를 하고 직업적으로 봉급을 받아 가면서 활동하는 교향악단만 해도 전국에 15개 이상 있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그 보다 조금 작은 단체들도 20여개 있고 각 대학이나 학교의 교향악단까지 하면 정말 엄청나게 많은 교향악단이 있습니다. 최 : 교향악단의 수준은 얼마나 발전했을까요? 임 : 지금의 대학교 학생 오케스트라가 초창기의 직업교향악단 보다 훨씬 수준이 높습니다. 지금 고등학교 과정인 서울예고의 교향악단만 해도 옛날의 교향악단 보다는 월등히 수준이 높지요. 최: 그렇게 따지니까 ’46년부터 지금까지 50여년간 우리 나라의 교향악단은 양적으로도 엄청나게 늘어났지만 질적으로도 큰 발전을 이루었다고 할 수 있군요. 임 : 그래요 우리 나라가 해방 되었을 때는 우리 나라에 음악과가 한 둘밖에 없었어요. 이화여전에 음악과가 있었고 연대에 종교음악과가 있었고 평양의 숭실전문학교에 음악하는 선교사들이 있어서 개인적으로 음악을 가르치고 배우는 일들은 있어도 음악대학이라는 것은 없던 시대이니까 무슨 악단이라든가 하는 단체는 있을 수 없었습니다. 때문에 우리 나라 서양음악을 논한다면 8·15 해방 후가 서양음악 역사의 시작이라고 봐야 합니다. 그 이전에 서양음악을 했던 몇 사람의 대 선배님들은 역사적 존재가치는 있어도 악단이랄까 음악계를 형성하는 역할은 하지 못했던 것이지요. 최 : 서양음악의 역사는 대개 작곡가의 작품 역사처럼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나라의 서양음악계를 둘러보면 온통 연주만 있지 작곡이 없는 것 같은 아쉬움을 느낍니다. 왜 우리 나라에서는 작곡 분야가 부진하게 되었다고 보십니까? 임 : 연주 공부는 바이올린이나 피아노 할 것 없이 어려서부터 배우는데 그 진도가 매우 빠릅니다. 중학교나 고등학교 학생만 되어도 상당한 수준의 기량을 갖게 되거든요. 그런데 작곡은 그렇지 못하잖아요? 중학생이나 고등학생이 작곡을 잘한다는 얘기는 듣기 힘들잖아요. 이것은 교육에 문제가 있어서 이기도 합니다. 음악인의 한 사람으로서 이런 생각도 하게 됩니다. 우리 나라에서 공부 잘 하는 사람들은 영문과를 간다, 법과를 간다 하지만 세계 무대에서 우리 나라를 빛내고 소위 국위를 선양하는 사람들은 음악하는 사람이 제일 많다는 것이지요. 음악인들이 그 만큼 애국하고 있는 것이예요. 얼핏 생각해도 정경화·김영욱·강동석·장영주·장한나·정명훈·조수미·홍혜경 등 얼마나 많습니까? 지금도 21세기의 유망주들이 속속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도 모두 국내에서 음악교육을 받은 것이 아니라 어린 나이에 유학을 가서 서양에서 공부한 사람들입니다. 우리 나라 음악도들이 재능은 있지만 국내의 음악교육으로는 세계적이 될 수 없다는 얘기도 되는 것 아닙니까? 모두가 다 한국의 교육제도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최: 선생님 말씀은 많은 한국출신의 음악가가 외국에서 공부했다는 것이 한국의 교육이 잘 못 되었기 때문이라고 하셨는데요. 그렇다면 한국 교육에 어떤 문제점이 있다고 보십니까? 임 : 우선 한국 사람들 사고방식부터 문제가 있어요. 음악공부를 할 사람이 음악 잘 가르치는 교수를 찾아 학교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남들이 말하는 일류학교를 선호하다 보니까 본래 목적을 제쳐 두고 일류학교에만 가려고 합니다. 비근한 예로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을 가는 학생들만 해도 그래요. 서울대학교의 ‘음악대학’이 목표가 돼서 그 곳에 음악 공부를 하러 가는 경우 보다는 ‘서울대학교’가 일류대학이니까 그 서울대학교를 가기 위해서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을 가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봅니다. 이런 사고방식이 문제라는 것이지요. 그 다음은 우리 나라 교육제도에 또한 큰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교육부에서 내놓는 입시제도라는 것이 교육을 해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특히 예능교육이나 음악교육은 그렇다고 봐요. 외국에서는 피아노나 첼로를 하고 싶은 학생이 진학을 할 경우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그 다음은 그 학생의 음악 재능과 공부 수준을 고려해서 누구나 똑 같은 자격으로 대학에 지망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나라에서는 무슨 예비고사 성적이 몇 점 이상이어야 대학에 갈 수 있다. 수능시험이 어떻다 해서 교육부가 간섭하고 있어요. 대학이라는 것은 일류가 되든 이류가 되든 대학에 관계하는 사람들이 학교를 발전시키고 노력해서 만들어 가는 것인데 우리 나라 교육부는 그들이 다 간섭하고 통제하고 하잖아요. 그래가지고는 좋은 대학을 만들 수도 없고 바람직한 교육을 할 수도 없습니다. 교수가 학생을 마음대로 뽑을 수도 없고 학생이 배우고 싶은 교수를 자유로이 택할 수도 없게 학제가 되어 있습니다. 무엇보다 음악 하는 학생들에게 너무 많은 과목을 요구하는 시험제도가 문제입니다. 피아노를 잘 하는 학생을 뽑아야 음악대학이 잘 될 텐데 피아노는 적당히 하고 영어나 수학등을 잘하는 학생을 뽑게 되는 것이 우리 나라 입시제도 아닙니까? 나는 이런 문제에 대해서 상당한 불만을 가지고 있고 이런 문제들이 개선되어야 우리 나라 교육이 바로 선다고 생각합니다. 최 : 그런데 우리 나라 사람들이 음악에 대단한 재능을 가지고 있는 것은 확실하지요? (한국 사람은 음악에 대단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우리의 문화가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과거 우리의 생활이란 농촌에서도 일할 때에는 반드시 노래하면서 일했고 놀 때에는 더욱 많은 노래를 했다. 농악이나 삼현육각이 널리 보급되어 있었고 궁중에는 6세기부터 계속 음악단체가 있어서 왕실의 음악을 담당했었다. 굿을 할 때에도 음악을 사용하고 불교에서 재를 올릴 때에도 음악을 사용하고 근엄한 유교의 큰제사에도 종묘제례악이나 문묘제례악 같은 음악을 사용하였다. 이런 우리의 문화 덕분에 우리 모두는 음악에 대단한 재능을 유전 축적할 수 있었던 것이다. ) 임 : 그래요. 우리 나라 사람들이 음악에는 대단한 재능을 타고났다고 봐요. 최 : 우리 나라 학생들이 재주는 있는데 한국에서 음악공부를 하려고 하니까 한국의 음악교육 제도가 좋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일찍이 외국으로 나가 공부하게 되었고 그 덕분에 세계적인 음악가가 많이 배출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말하자면 역설적으로 우리 나라의 교육제도가 나쁘기 때문에 세계적인 음악가가 나오게 되었다는 얘기가 되네요. 임 : 글쎄요. 그러나 그것은 극소수의 여유있는 학생들의 경우이고 많은 학생들은 한국 교육제도의 불합리성 때문에 불이익을 보고 있다고 할 수 있지요. 최 : 요즘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음악학교에 한국 유학생이 엄청나게 많이 간다고 하던데요? 임 : 그게 사실이예요. 많은 학생들이 유학을 가는데 그들 대부분은 한국에서 대학을 다니다 가거나 대학을 졸업한 후에 가요. 그러니까 너무 늦지요. 그래서 내가 늘 강조하는 것은 음악의 조기교육이예요. 아주 어린 나이에서부터 제대로 음악공부를 할 수 있도록 제도적인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어린 학생들은 외국에 나가서 공부하기 힘들잖아요. 그러니까 우리 나라에서 어린 시절부터 음악공부를 제대로 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최 : 아마 국립예술종합학교가 그러한 목적을 위해서 만들어진 학교이니까 앞으로는 상당 부분 예술교육에 대한 갈증이 풀릴 것이란 생각도 듭니다. 임 : 나는 국립예술종합학교가 출범한 것을 환영하고 도움이 된다면 어떤 일이라도 할 용의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학교가 발전되어야 합니다. 최 : 얘기를 조금 바꾸어 볼까요? 선생님께서는 교향악단 운동을 꾸준히 해 오셨는데 처음 KBS교향악단을 만든 것이 언제입니까? 임 : 내가 처음 KBS교향악단을 만든 것은 ’53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후 ’70년인가 국립극장 소속으로 국립교향악단이 되었다가 ’80년대에 민간으로 이양한다하여 다시 KBS 소속이 되고 오늘날의 KBS교향악단이 되었습니다. 최: 교향악 운동을 하시면서도 많은 문제점을 발견하셨을 것 같은데요? 임 : 느낀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먼저 우리 나라 악단 발전에 아주 저해되는 정말 심각한 문제를 좀 얘기해야 되겠어요. 우리 나라의 악단들은 교향악단이든 합창단이든 대개 시나 도 같은 행정기관에 소속되게 됩니다. 그런데 이 행정기관의 장들이 음악행정에는 식견이 없다는 것이지요. 예술단체를 운영하는데 예술논리가 아닌 행정논리나 경제논리로 운영하려 하지요. 교향악단을 지휘하는 예술가가 극장장이나 행정부서장의 지시를 받는 것처럼 만들어 놓고 예술활동에 대한 투자는 거의 하지 않고 그냥 월급만 주면 음악이 나온다고 생각해요. 선진국에서는 예술단체를 그렇게 운영하지 않아요. 과거에는 행정논리에 의해서 움직였는데 요즘은 경제논리까지 끼어 들어 예술단체도 돈을 벌어야 된다는 식이 되었어요. 매년 얼마를 투자하는데 왜 이 정도의 입장료 수입밖에 못 올리느냐 하는 식이거든요. 미국이나 프랑스 같은 나라에서 돈 벌기 위해서 교향악단을 만드는 줄 아십니까? 문화에 돈을 투자하는 것은 정부의 책임입니다. 국민들이 낸 세금으로 그런 고급문화를 육성해야 그것이 나라의 얼굴이 되고 국민의 문화수준을 높이는 것이 되지 당장 돈을 못 벌면 해체한다 어쩐다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 나라에서는 그런 논리가 횡행하니 그것이 문제라는 거예요. 최 : 이제는 정보화도 가속도가 붙고 우리 나라의 세계화 전략도 어느 정도 성숙되어 가니까 앞으로는 그런 문제들이 좀 개선되지 않겠습니까? 임 : 제발 개선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각 시·도의 장들이 외국의 예를 좀 배웠으면 해요. 외국처럼 어떤 지휘자와 계약을 하면 그 지휘자에게 전권을 맡기고 계약기간이 만료 될 때 평가를 하는 것이지요. 평가해서 잘 했으면 계속 맡기고 불만이 있으면 다른 지휘자를 초빙하면 되지 않아요. 금년도 문화의 날에 대통령께서 문화계에 대해서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셨는데 그것이 꼭 실천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지금까지 우리 나라 악단들이 제대로 발전하지 못하게 된데에는 일부 공무원들의 책임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내가 오랜 경험에서 뼈저리게 느낀 것이기 때문에 특히 강조하고 싶은 말입니다. 최 : 그런 가운데서도 우리 나라의 악단은 양적으로도 엄청나게 팽창했고 질적으로도 꽤 발전했다고 할 수 있지요. 임 : 양적으로야 많이 늘어 났지요. 그러나 우리 나라의 악단 수준은 세계 수준에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세계적인 음악가가 많이 배출되었지만 음악단체로는 아직 어림도 없습니다. 기획력도 부족하고, 지휘 능력 앙상불 능력 사회적인 기능등 여러 가지가 세계적인 수준에서 보면 아직 어린아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최 : 음악청중은 어떻게 변했다고 보십니까? 국악의 예를 보면 70년대까지만 해도 국악공연을 하게 되면 대부분 무료 공연이었고 그래도 청중이 부족하기 때문에 별별 묘수를 다 고안해 내면서 공연을 했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거든요. 지금은 매일 국악공연이 이루어지지만 90%이상이 유료공연이고 많은 청중이 자발적으로 몰립니다. 심지어는 너무 많이 와서 입장사절을 하고 로비에서 VTR로 공연을 관람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서양음악의 경우는 어떻다고 보십니까? 임 : 서양음악의 경우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음악가가 귀국연주회를 한다든가 또 세계적인 연주단체가 내한 연주를 할 때에는 청중이 구름처럼 몰려 듭니다. 입장료도 비싸고요. 그런데 보통 한국 음악가들의 연주회는 아직도 친척이나 동문 제자등을 초대하고 초청해서 오는 사람들이 주된 청중이어서 발표회의 의미를 감소시키고 있습니다. 몇몇을 제외한 국내의 음악가들 상당수가 그런식으로 음악활동을 하고 있으니 진정한 음악청중이 형성되었다고 보기도 어렵지요. 그러나 우리 나라 음악 애호가들의 심미안은 굉장히 높아지고 있습니다. 음반도 많고 영상자료도 나오고 또 기계가 얼마나 멋있게 나옵니까? 그런 음향기기들을 쉽게 구할 수 있으니까 집에 앉아서도 멋진 음악을 얼마든지 감상하거든요. 그래서 청중들의 안목은 고급이 되어 가는데 정작 연주회에 가 보면 그런 기계로 듣던 음악 보다도 감흥이 모자라는 경우가 얼마든지 있지 않겠어요? 하기는 기계로 듣는 음악과 현장에서 듣는 음악은 다른 것이고 진정한 음악감상은 현장에서 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앞으로는 연주가와 청중들이 함께 노력하면서 진정한 음악적 감흥에 젖을 수 있는 음악회를 만들어 가도록 해야 합니다. 최 : 국립극장을 민영화해야 한다는 얘기가 있었던 것으로 아는데요. 임 : 왜 그런말이 나왔는지 그 이유를 자세히는 모르지만 내가 알기에 그것도 경제논리 때문인 것 같아요. 국립극장이 일년에 500억씩 쓰면서 수입은 50억도 안되니 민영화해서 적자폭을 줄여 보자 그런 생각 아니겠어요? 그러나 그런 생각은 정말 잘못된 생각입니다. 앞서도 지적했지만 어느 나라 국립극장이 돈벌이를 위해서 예술행정을 합니까? 국립극장은 나라가 세운 극장입니다. 국립극장을 왜 세웠는지 그 의미를 생각해 봐야지요. 국립극장은 나라가 문화의식이 있어서 수준 높은 예술을 저렴한 가격으로 많은 국민들에게 보여 주어서 국민들로 하여금 수준 높은 교양인이 되도록 하려는 것이기 때문에 국민들이 낸 세금으로 하는 것인데 이런 국립극장이 타산이 안 맞으니 민영화한다는건 말도 안되는 소리입니다. 최 : 돈 얘기가 나왔으니까 말인데요. 음악가들이 음악으로 산다는 것은 음악으로 돈을 벌어서 그것으로 생활한다는 뜻인데요. 음악가가 음악행위를 통해서 돈을 버는 경우는 연주를 해서 돈을 벌고 음반을 만들어 수입을 올리고 또 작품을 팔아서 돈을 벌고 해야 하는데 아직 우리 나라의 서양음악계에는 그렇게 해서 살아가는 음악가가 많지 않은 것 같아요. 일부는 전문단체에 소속되어 음악활동으로 살아가지만 많은 음악가가 교직에 몸 담고 있으면서 음악교육으로 돈을 벌고 또 더 많은 음악전공자가 학원을 경영하거나 레슨을 하면서 살아가니까 말입니다. 임 : 음악 수요자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요. 음악 수요자가 늘어나긴 했는데 아직 연주회장에는 초대권을 뿌려서 청중을 동원하고 돈 많은 음악 학도가 오히려 돈을 들여가며 리셉션도 하는 식으로 연주회를 하니까 분위기가 제대로 성숙되어가지 못하는 것 같아요. 최 : 이제 선생님의 국악에 대한 생각을 좀 말씀 해 주셨으면 합니다. ’59년에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에 국악과가 생긴 이래 지금은 여러 대학에 국악과가 있어서 많은 졸업생이 나오고 있습니다. 대학의 국악과 설치에 대한 선생님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임 : 서양음악을 가르치는 대학에 국악과가 많이 설치되어 있습디다. 그런데 나는 그런 제도로 국악과를 운영하는 것에 대해서 반대의견을 가지고 있어요. 그런 식으로 국악과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국악은 옛날 그대로 보존하면서 국악교육도 옛날 식으로 해야지 거기에 서양식이 끼어 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거든요. 그 보물 같은 국악을 왜 이상하게 만들고 있습니까? 고려자기는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지 그 고려자기에 무슨 현대적 감각을 가미해서 어떻게 다른 식으로 만들고 뜯어고치고 하면 고려자기의 가치가 제대로 유지되겠습니까? 국악과가 그런 식으로 음악대학에서 공부하도록 만들었기 때문에 국악과 출신들이 작곡해서 연주하는 것을 들어 보면 과거 일본 사람들이 화양합주(和洋合奏)라고 해서 오케스트라에 일본악기를 넣어서 연주한다든지 하는 것과 같이 서양악기와 국악기를 몇 개 편성해서 효과를 노리는 경우가 있던데 그것은 실험성의 효과는 약간 있을 지 모르지만 국악의 정신에도 어긋나고 국악적인 아름다움도 살릴 수 없다고 보아요. 그러니까 국악의 오리지날리티는 손상시키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국악은 순수한 국악을 보존하고 그 아름다움을 그대로 발전시켜야지 이것 저것 섞어서 이상한 것을 만드는 것은 좋지 않다고 봅니다. 국립국악원이 그런 일을 할 수 있도록 더 많은 예산을 지원해야 된다고 보는 것이지요. 최 : 하기는 국악계에 서양음악의 논리와 방법이 판을 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크로스 오버 뮤직이라고 해서 서양악기와 국악기를 섞어 연주하는 것이 일상적인 것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임 : 일본에서도 처음에는 그렇게 했는데 얼마 가지 않아 다시 옛날 방식으로 돌아오게 되었던 것입니다. 최 : 글쎄요. 우리 나라 국악계도 빨리 방향감각을 찾아야 할 텐데 걱정입니다. 그런데 우리 나라의 음악계는 어쨌든 많이 발전했습니다. 음악인의 수도 늘었고 음악가들의 수준도 높아졌고 무엇보다 세계적인 음악가가 많이 나왔습니다. 그러나 러시아 음악이 세계음악에서 크게 인정받는 것처럼 한국음악이라고 인정받을만한 작품들이 그 동안 한국의 작곡가들에 의해서 나오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임 : 그 점이 문제예요. 우리 나라 작곡가들이 세계적인 작곡 콩쿨에 입상하기도 하고 현대음악제 같은데에 초청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직 우리 나라의 작곡 수준은 한국적이면서 세계적인 작품이 나오는 것 같지 않아요. 우리 나라는 서양음악의 전통이 짧고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에 잘못하면 외국 것의 모방이 되어 버릴 염려가 있지요. 그래서 우리 나라 작곡가들 작품을 보면 아방가르드식으로 기존 것을 모방하지 않고 무언가를 만들어 보려고 노력하는데 그렇게 하다 보니까 재미 없고 어려운 음악을 만들기 쉬워요. 재미가 없으면 연주자들이 즐겨 연주하지 않게 되고 그래서 작곡이 발전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그렇지만 계속 노력하면 여러 사람의 노하우가 축적되어 좋은 작품들이 나오게 되겠지요. 윤이상 같은 분은 외국에 나가 공부하고 그 곳에서 활동했기 때문에 성공한 예이지만 20세기에 우뚝한 작곡가라고 하지 않습니까? 최 : 한국의 음악현상 가운데 한국가곡이라고 하는 분야는 청중들도 늘어나고 성악가들도 즐겨 부르는 일종의 대중화를 달성한 분야가 되었는데요. 한국가곡에 대한 선생님의 견해를 말씀해 주세요. 임 : 얼마 전에 어느 방송사에서 가곡제를 하는데 나에게 감사패를 주더군요. 주는 것이어서 받긴 받았지만 정말 쑥스러웠습니다. 내가 뭐 한국가곡의 발전에 기여한 바도 없고 한국가곡이라는 것에 대해서 나는 그리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지도 않습니다. 한국가곡은 매스컴에서 홍보를 하고 성악가들이 대중을 의식해서 열심히 부르니까 오늘날 한국 음악회의 상당부분이 가곡을 부르는 음악회가 되다시피 되었는데 정말 한국적인 현상이지요. 그런 가곡 가지고 세계적인 성악가가 될 수 있습니까? 또 그런 가곡이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습니까? 한국의 성악가들도 진짜 서양의 대작에 도전해야지 늘 한국가곡만 불러 가지고는 곤란하다고 생각합니다. 최 : 그래도 한 세기 동안 우리 나라 음악계는 많은 발전을 이룩하였습니다. 21세기 문화의 세기를 앞두고 우리 음악계의 원로로서 미래의 음악발전을 위해서 무엇이 제일 중요한 문제인지 한 번 더 짚어 주시지요. 임 : 앞서도 지적했지만 우리 나라 음악 발전을 위해서 아주 중요한 문제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교육부의 정책이 예술교육에 합당한 쪽으로 바뀌어야 입시에서부터 학교의 운영에 이르기까지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음악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예술단체의 운영에 있어서 공무원들의 행정논리나 경제논리가 지배할 수 있는 구조적 모순을 제거하여야 수준 높은 예술단체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음악학교나 음악단체들은 잘 하려고 노력하는데 오히려 행정적인 간섭과 규제가 많아서 제대로 발전하지 못하는 측면이 많기 때문에 이 점을 특히 강조하는 바입니다. 최 : 장시간 동안 좋은 말씀 많이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늘 건강하시고 계속 많은 활동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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