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유망문화직종- 캐릭터디자인

산업적 가치 뿐만 아니라 살아있는 성격을 만드는 디자인

 

이 선 실 / (르포라이터)

캐릭터는 홍보와 상품가치를 지닌 자본주의의 꽃

미키마우스 모자, 세일러문 운동화, 텔레토비 인형, 아기 공룡 둘리 음료수, 프로야구 선수 박찬호의 백넘버인 61번이 새겨진 T셔츠와 점퍼, 서울시의 캐릭터인 왕범이 시계....... 우리 주변에는 수 많은 캐릭터 상품이 존재한다. 캐릭터 상품은 흔히 인기 만화영화의 주인공을 응용한 아동물로 생각하기 쉽다.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아동용 장난감이나 의류, 그리고 청소년의 팬시 용품에 주로 응용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캐릭터는 우리 생활 깊숙히 침투해 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의 호돌이, 1993년 대전 엑스포의 꿈돌이는 행사의 성격과 우리나라의 이미지를 세계적으로 알린 대표적인 캐릭터이다. 이들 캐릭터는 행사의 상징으로 이용되기도 했지만, 인형이나 기타 기념상품 그리고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돼 세계인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캐릭터란 어떻게 보면 홍보와 상품가치를 동시에 지닌 자본주의의 꽃이라고 할 수 있다.

캐릭터 산업이 국내에 처음 도입된 것은 지난 76년, 미국 월트디즈니사의 캐릭터가 들어오면서부터다. 1930년대에 선보인 미키마우스는 세계적으로 100여 개의 팬클럽을 가지고 있는 대표적인 캐릭터 상품으로 국내에서만 100억 원의 연수입을 올리고 있다.

그러나 국내 업체가 캐릭터 산업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그보다 10여 년이 지난 88올림픽 이후 호돌이의 성공으로, 국내 기업들은 실제 인물이 아닌 그림만으로 캐릭터가 만들어질 수 있고, 한번 만들어진 캐릭터는 소비자들에게 다른 상품의 광고, 인지도, 이미지를 높이는데 효과가 있다는 것을 체험하게 된다.

주로 디즈니와 일본 캐릭터를 중심으로 완구류, 문구, 팬시 등에 캐릭터 상품이 대거 등장하면서 캐릭터 시장의 규모도 빠르게 성장하기 시작했다. 지난 95년 5000억 원 규모였던 시장은, 최근 1조 원 규모로 추산되며, 2000년대에는 5조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그러나 실제 이 시장을 움직이고 있는 것은 외국의 캐릭터들로, 국내 캐릭터 상품의 80~90%는 디즈니와 일본에 의해 양분되어 있다. 국내 상품으로 그나마 성공을 한 것은 「아기공룡 둘리」와 「영심이」, 「고인돌」 정도로 이제 겨우 걸음마를 시작한 단계이다. 결국 캐릭터 시장의 성장은 그만큼의 외화가 유출된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캐릭터 시장이 이렇게 급성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린이에겐 친구, 어른들에게는 동심·향수를 불러일으켜

캐릭터 산업은 흔히 국민소득 10,000불 시대부터 활성화된다고 알려져 있다. 못 먹고 못 입는 시절에는 욕구나 개성보다는 필요에 의해 상품을 구매한다. 이 시기에는 상품 구매에 있어 선택의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 경제적으로 풍요해지면 구매는 양보다 질로 이동한다. 개인의 기호가 상품 구매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되는 것이다. 캐릭터가 디자인보다 더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떠오른 것은, 바로 이러한 구매 욕구의 변화 때문이다.

최근 우리 캐릭터 시장을 주도하는 것은 10대의 소녀들이다. 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TV의 만화영화를 보며 자란 세대이다. 애니메이션과 출판 만화, 게임은 서로 연결되어 있어, 어느 한 쪽의 성공은 다른 분야로 확대된다. 요즘 청소년들은 하루 종일 만화에 노출되어 있으며,  만화 주인공들은 더 이상 공상 속의 인물이 아니라, 친한 친구처럼 느껴진다. 일본에서는 이런 만화마니아 세대를 신신인류로 부르기도 하는데, 최근 우리나라에도 등장하기 시작한 「코스프레」는 만화에 대한 신세대의 감각을 엿보게 한다. 영어의 커스텀 플레이어 Costume Player에서 유래된 코스프레족은 만화 주인공과 똑같은 헤어스타일에 똑같은 색상과 디자인의 옷을 입고 거리를 활보한다. 이들은 캐릭터 상품으로도 만족하지 못하고 스스로 캐릭터가 되려고 하는 욕망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비단 청소년들의 문제만은 아니다. 국내에서도 인기를 끌었던 영국 코메디 영화 「미스터 빈」에서 주인공 빈은 낡은 곰 인형을 안고 잔다. 그 인형은 아마도 빈이 어릴 때부터 안고 잤던 ‘가장 친한’ 친구였을 것이다. 어린 시절 미키마우스나 도널드 덕을 좋아했던 어른들은, 지금도 미키마우스나 도널드 덕에게 친근감을 느끼고 그의 자녀들에게 캐릭터 상품을 사준다. 캐릭터는 어린이에게는 가장 친한 친구이지만, 어른들에게는 동심과 향수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캐릭터 산업은 흔히 가장 자본주의적인 것으로 생각된다. 분명 그것은 캐릭터의 한 얼굴이다. 그러나 캐릭터는 하나의 생명체이기도 하다. 단순한 그림이라도 그 안에는 성격과 배경이 다 갖추어져 있다. 오래된 캐릭터들은 시대에 따라 옷차림이나 헤어스타일도 변해야 한다. 아기 때부터 함께 했던 캐릭터는 사람의 성장과 함께 나이를 먹고 그의 자녀들에게 다시 좋은 친구가 된다. TV 인기 애니메이션은 요란하게 붐을 일으키지만 그 생명력은 짧다. 그런 점에서 캐릭터는 애니메이션의 주인공과는 다르다. 오히려 동심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정서에 맞는 캐릭터 만들기

캐릭터 디자이너가 중요한 것은 바로 캐릭터의 이런 성격 때문이다. 단순히 산업적 가치가 있는 예쁜 캐릭터를 만드는 것보다는 오랫동안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성격을 창조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림만 그리는 것이 아니라 캐릭터의 시나리오를 써야 살아있는 캐릭터가 창조된다. 또한 캐릭터는 상품에 이용되기 때문에, 개별 상품에 대한 이해도 깊어야 한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캐릭터 산업은 동심이 사라진 상업주의가 아닐까 우려된다. TV 애니메이션의 인기를 등에 업은 제품들이 나타났다 사라지고, 아이들은 새로운 애니메이션이 방영될 때마다 새로운 유행을 창출해 간다. 특히 이런 애니메이션들은 대부분 일본 작품이기 때문에 국내 정서에는 어울리지 않는 것이 많다. 최근 유행했던 「짱구」나 「몬스터」들은 오히려 어린이들의 정서를 해칠 수도 있다. 가히 캐릭터의 공해라고 할 수 있다.

국내 캐릭터의 개발이 시급한 것은 바로 이런 점 때문이다. 캐릭터에 대한 수요는 커지고 외국 캐릭터는 물밀 듯 밀려들지만, 우리 어린이들과 함께 꿈을 나눌 우리 정서를 지닌 캐릭터들은 출현하지 않고 있다.

90년대 후반에는 이러한 캐릭터 산업의 잠재성과 캐릭터의 중요성에 눈을 뜨고 만화가와 디자이너, 기업들이 앞다투어 캐릭터 산업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우리 캐릭터 산업이 자리를 잡기에는 아직 요원해 보인다. 그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는 국내 애니메이션이나 게임의 부진을 들 수 있다. 캐릭터의 보급에 가장 효과적인 것은 역시 애니메이션과 게임, 이것은 국내 뿐만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캐릭터를 알릴 수 있는 효과를 지니고 있다. 다행히 최근 애니메이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고, 게임도 자체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있으므로 21세기에는 캐릭터 산업의 기간이 마련될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테마파크를 중심으로 유행이나 시류에 영향을 받지 않는 캐릭터들이 다양하게 개발되고 있다. 또 서울시의 왕범이를 비롯해서 각 지자체들이 그 고장의 특징을 나타내는 캐릭터들을 개발, 향토 특산품과 기념품 그리고 지역 축제 등에 이용하고 있다.

문제는 이렇게 개발된 캐릭터들을 어떻게 사람들에게 알리고 상품화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호돌이나 꿈돌이처럼 아무리 잘 만들어진 캐릭터라도 사람들에게 파고 들지 못하면 그 생명을 마감해야 한다. 따라서 캐릭터 디자이너와 기획자, 상품디자이너, 영화 제작자들이 서로 연계되는 산업 구조를 갖추는 것이 시급하다. 그와 함께 우리 정서에 맞는 캐릭터를 만들어 오랜 시간 동안 애정을 갖고 키워나가는 정성도 필요하다.

국내 캐릭터 디자이너들은 세계적인 수준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들의 손 끝에서 21세기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세계적인 캐릭터들이 탄생되기를 기대해 본다. (사진제공·에버랜드)

 

 

에버랜드 상품디자인실

만화를 좋아하는 7명의 디자이너들이 모여있는 에버랜드 상품 디자인실. 이곳은 우리나라 캐릭터 산업의 산실이다. 에버랜드 대표 마스코트인 「킹코」, 「콜비」를 비롯하여 귀염둥이 팬더를 모델로 한 「밍밍」, 「리리」 등 현재까지 16종류의 캐릭터를 개발했다. 92년부터 본격적으로 캐릭터 산업에 눈을 뜬 에버랜드 상품 디자인실은 그동안 아기공룡 둘리의 캐릭터 사업에 참여하여 국내 캐릭터 상품을 고급화 시켰으며, 흥행작 「쉬리」의 캐릭터 상품 개발에도 앞장섰다. 최근에는 야구선수 이승엽의 캐릭터 상품을 개발 중. 이들은 평면 캐릭터로는 시장성이 없다고 내다보고 동적이고 생명력이 있는 캐릭터 개발에 중점을 두고 있다. 제 각각 개성이 강한 7명의 디자이너들이지만, 어린이들에게 꿈과 정서를 줄 수 있는 따뜻하고 밝은 캐릭터를 만들어야 한다는 점에는 공통적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캐릭터가 지금의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서도 사랑받을 수 있는 캐릭터가 되는 것을 목표로 오늘도 캐릭터를 낳기 위한 산고를 겪고 있다.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