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리뷰  - 음 악

다양하고 맛갈난 산조의 성찬

 - 10월에 유난히 많았던 산조공연들

 

현경채(음악평론가)

산조의 다양한 모습을 선보인 무대

10월은 산조 음악의 달인가? 싶게 독주회에서부터 산조 페스티벌까지 다양한 산조 공연이 마련되었다.

10월 산조 음악의 첫 테이프를 끊은 공연은 10월 6일 국립국악원 우면당에서 있었던 죽파 김난초 선생 서거 10주기 추모음악회. 1989년 9월 10일 타계한 김죽파 명인을 추모하기 위해 마련된 이 음악회는 민간풍류, 살풀이, 가야금 산조 등의 프로그램을 그의 제자와 지인들의 무대로 꾸며졌다. 가야금 산조는 구한말 일제 시대에 활약했던 김창조(金昌祖 1865∼1919)가 기틀을 만들었다고 전한다. 김죽파(金竹坡 1911∼1989)는 바로 그의 맏손녀이다. 김죽파는 조부에게 가야금산조를 배웠고, 조부가 작고하자 김창조의 수제자인 한성기(韓成基 1889∼1950)에게 전수 받아 오늘날의 김죽파류 가야금 산조로 완성하였다고 한다. 이번 음악회는 김죽파 명인을 추모하며 그가 남기고 간 불후의 명작 김죽파류 가야금 산조를 재조명하기 위하여 그의 제자들이 마련한 자리이다. 이번 공연에서는 김죽파 명인이 남긴 「민간풍류」와 「김죽파류 가야금 산조」의 아름다움을 다시금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또 다른 산조 음악회는 지난 8일에서 10일, 10월 둘째주 주말 전주에서 있었던 제1회 산조페스티벌이다. 가야금, 해금, 대금 등의 전통악기로 연주되는 산조음악 뿐만 아니라 전자오르간, 마림바, 색서폰으로도 산조 음악을 연주해 산조의 다양한 모습을 선보인 무대였다. 이 공연은 단아한 조선의 한옥이 밀집해있는 전주 교동의 전통찻집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8일 첫 공연은 조선 건축의 단아한 맛을 품고 있는 경기전 앞 뜰에서 ‘산조 그 다양한 접근’을 주제로 열렸다. 가야금 명인 강정렬(姜貞烈)이 신관용류 가야금 산조를 연주하고, 전태준이 대금 산조를 연주했다. 일본의 다카다 미도리가 타악기 마림바로 산조를 연주했는데 다카다 미도리는 일본에서 가야금의 명인 지성자에게 산조를 배웠고, 그 어법으로 마림바 산조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의 능청스런 연주는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이영철의 전자오르간 산조와 뒤를 이은 프리 재즈의 대가 강태환의 알토 색서폰 산조, 그리고 이어서 김창수는 인도 라가(한국의 산조와 비길만한)를 시타르로 연주했다.

둘째날 공연은 ‘산조, 그 새로운 시도’를 주제로 교동 전통 찻집 다문에서 열렸다. 강은일(해금), 허윤정(거문고), 이지영(가야금) 등 30대 국악인의 창의적인 산조가 연주된 축제의 장이었다. 마지막 공연에서는 ‘산조, 그 뿌리를 찾아서’라는 제목으로 김죽파를 기리는 씻김굿과 양승희의 김창조류 가야금 산조가 연주되었다.

 

듣는 이의 마음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던 열린음악

서양악기로 연주하는 산조 어법의 음악은 몇 해전 KBS홀에서 있었던 FM 국악무대에서 가수 김수철이 연주한 기타 산조와 한국종합예술학교의 유병은 교수의 작품으로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산조(1993),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산조(1993), 피아노 산조 2번(1994), 베를린 산조(1995) 그리고 황성호 교수 작곡의 바이올린과 첼로를 위한 “노리” 시리즈 등이 있다. 산조를 응용한 이러한 서양악기 작품이 치밀한 계획으로 작곡된 것이라면, 이번의 산조페스티벌에서 마림바와 전자오르간, 알토 색서폰이 연주한 산조는 이미 연주자 자신이 산조 어법이 충분히 체득된 상태에서 즉흥적으로 연주된 것으로 서로 다르다. 후자의 맛갈난 연주는 당연한 결과 일 것이다.

전주 제1회 산조페스티벌은 세가지 점에서 성공적인 기획 공연으로 평가된다. 첫째는 서양 악기로 자유로이 연주되는 산조 음악을 보면서 산조가 21세기 세계를 대표하는 음악 어법으로 자리 잡지 않을까? 라는 가능성을 확인하게 되었다는 점이고, 둘째는 찻집과 같은 작은 공간을 선택하므로 연주자와 관객의 교감을 중요시하던 산조 원래의 멋을 충분히 살리어 마치 사랑방에서 연주하던 예전의 공연 모습이 재현되었는데, 관객의 미묘한 감정변화를 쉽게 느낄 수 있었던 연주자들은 연주 효과를 더욱 극대화 할 수 있었다는 점이며, 셋째는 서울 중심의 공연으로 상대적으로 소외되었던 지방의 팬들에게 공연의 장을 마련하여 음악 감상의 기회를 주었다는 점이다.

그밖에도 10월의 산조 공연으로 13일 국립국악원 우면당의 정대석 거문고 독주회로 한갑득류 거문고 산조 전 바탕 연주회가 있었다. 정대석은 사실 그 동안 거문고의 창작 음악 분야에 비교적 많은 노력을 기울인 음악인이다.

그가 작곡한 거문고 독주곡 ‘수리재’나 지난 6월 국립국악원의 거문고 역사 축제에서 초연된 거문고 합주곡 ‘미리내’등 그가 작곡한 거문고 음악은 다분히 현대적 기법이다. 그는 거문고의 다양한 주법을 개발하고 거문고 레퍼터리를 풍부하게 한 장본인이다. 이렇듯 그 동안 거문고 음악 전문 작곡가로 더욱 유명한 정대석이 이번엔 자신이 진정한 거문고 연주자이기를 선언하고 인정받고자 하는 마음에서 공연 내용을 창작 거문고 음악이 아닌 한갑득류 거문고 산조 전 바탕으로 마련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렇다 한국의 진정한 음악인들은 결국 자신의 음악성을 산조 음악으로 승부를 내고자 한다. 산조 음악에 자신의 삶의 희로애락을 담아 자유롭게 즉흥적으로 연주하며 끊임없이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 내고자 한다. 짧으면 15분, 길면 70여분으로… 때문에 흔히 산조는 틀에 박힌 음악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열린 음악이라고 한다. “어떻게 가락을 잘 만들어서 듣는 사람의 심장을 건드려주나 하고 끊임없이 연구를 하니 가락이 한정 없어. 수시로 변해. 공연 때마다 다르고 탈 때마다 달라…” 정대석의 스승이자 거문고의 명인이었던 한갑득(韓甲得 1919∼1987)이 생전에 한 말이다. 정대석의 작곡적인 재능은 혹시 이러한 스승에게서 고스란히 이어받은 것은 아닐런지. 이날 정대석은 가장 느린 진양조부터 중모리, 엇모리, 중중모리를 거쳐 자진모리로 휘몰아치듯 빠르게 내닫는 장단의 구성으로 쉼 없이 흘러가면서 죄었다 풀었다 하며 듣는 이의 마음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으며 자신의 기량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산조의 매력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아쉬움을 남겼던 변주

서울의 국립국악원 우면당에서는 10월에 많은 산조 공연이 있었다. 8일 정순희의 연주로 정남희제 황병기류 가야금 산조 공연이 있었고, 18일에는 중요무형문화재 제23호 가야금 산조 보유자 이영희와 제자들의 가야금 연주회가 있었다. 그밖에도 23일에는 이생강 명인의 무대로 대금 산조와 피리 산조의 공연이, 29일에는 서울대학교의 이재숙 교수의 김병호류 가야금 산조 전바탕 연주가 10월 산조의 달 대단원의 막을 장식했다. 이재숙은 가야금 산조 여섯 유파 발표기획 시리즈로서, 1994년 김죽파류 가야금 산조를 시작으로 1995년 강태홍류, 1997년 성금연류, 1998년 김윤덕류를 발표한 바 있고, 올해는 그 다섯 번째로 김병호류를 연주했다.

산조 음악의 또 다른 형태로 산조를 합주나 병주로 연주하는 경우가 있다. 이는 흔히 스승과 제자사이에 이루어진다. 이 때는 제자는 정형화된 원래의 선율을 연주하고 스승은 그 가락에 살을 붙여 옥타브로 변주한다든지 장식음을 더하거나 하는 즉흥 변주로 혼자 타는 산조의 맛을 더하게 된다. 이영희와 제자들의 공연에서도 스승과 제자가 함께 하는 산조 합주가 있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선율이 연주되어 아쉽게도 이러한 재미를 찾아 볼 수 없었던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