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리뷰 - 연 극 |
‘탈 대학로’와 한국연극의새로운 방향성 모색
이현우(연극평론가, 순천향대 교수) 연극의 상상력 확장과 새로운 공간필요 대학로는 아직은 연극이 일부 지식인 층이나, 대학생들의 전유물 처럼 여겨지던 1980년을 전후한 때에, 샘터파랑새 소극장(1979년), 대학로 소극장(1979), 그리고 문예회관 대극장, 문예회관 소극장(1981) 등을 필두로 주로 여러 소극장들이 몰려들기 시작하면서 형성되었다. 현재 38개의 극장이 운영되고 있는 대학로는 그 동안 한국 연극의 메카로 확고히 자리매김하면서, 우리 연극의 발전 및 대중화에 절대적인 기여를 해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대학로가 형성된지 20년 가까이 되면서, 최근에는 우리 연극계에 대한 긍정적인 역할 못지 않게, 오히려 우리 연극계의 발전을 지체시킨다는 부정적인 측면이 논의되기 시작하였고, 그래서 심지어는 탈대학로의 움직임이 우리 연극계의 새로운 도약을 위한 대안으로 인식되기에 이르렀다. 탈대학로에 대한 논의는 최근에 와서 부쩍 활발해진 느낌인데, 「한국연극 9월호」에서는 특집으로 “대학로의 극장환경문제”를 다루면서 대학로의 긍정적인 발전안을 모색해보는 가운데, “차라리 탈대학로 운동을(이근삼)”이란 글을 통해 탈대학로의 운동의 가능성도 조심스레 제시해 보고 있으며, 「문화예술 10월호」에서도 “아를르 풍경과 대학로의 풍경”(안치운)이란 논평을 통해 유흥가 처럼 변질되어버린 현재의 대학로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또한 올 5월에는 고려대학교 신문에서 “탈대학로 실험 가능한가”라는 제하의 특집 좌담기사를 실은 바 있다. 고대신문 좌담에는 다른 두 전문연극인들과 함께 필자도 참여하게 되었었는데, 참여자들의 공통된 견해는 탈대학로 실험은 가능하며, 우리 연극의 발전을 위해 그것은 이미 필수적인 단계에 와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앞의 두 대학로 관련 글에서는 대학로의 문제점을 대학로가 연극을 위한 거리에서 상업적 거리, 유흥의 거리, 혼돈과 무질서의 거리로 변질되었음을 공격하고 있는데, 필자는 탈대학로 운동은 이미 시작되었지만, 탈대학로 움직임의 보다 근본적인 당위성은 대학로의 문화적 혼돈상태로 부터의 도피라기 보다는 대학로라는 연극생산체제가 제시하고 있는 규격화의 틀로부터 해방되는 데에 있다고 본다. 사실 현재 대학로 거리의 모습은 가히 혼돈 상황이라 부를만하다. 늘어선 술집에, 온갖 좌판 잡상인들, 연극과는 무관하게 북적이는 인파, 어린 청소년들의 춤판과 고성방가. 그러나 이러한 혼돈은 보기에 따라선 활기찬 대학로의 또 다른 한 모습이며, 부정적인 것이든, 긍정적인 것이든 대학로가 지닌 다양성의 일부일 것이다. 연극이 모든 예술문화 행위의 중심에 서며 그 극성기를 이루었다고 할 수 있는 셰익스피어 시대의 런던 극장가의 모습도 오늘날 우리 대학로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정작 대학로의 문제는 이러한 연극 주변의 환경적 문제라기 보다는 오히려 대학로 연극계 내부에 있는 듯 하다. 현재 대학로에는 38개의 극장이 있는데, 문예회관대극장, 동숭아트홀 등을 제외하고는 이들 대부분이 지하 1층에 위치한 150석 안팎의 소극장들이며, 임대용 건물들이다(「한국연극9월호」 조사 참조). 즉, 이들 대부분의 대학로 극장들은 지하 1층에 위치한 관계로 천장이 매우 낮고, 무대는 좁아서, 공간과 높이를 요구하는 다양한 연극적 실험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며, 객석 수가 적고, 게다가 임대 건물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연극제작비에 분명하고 매우 제한적인 한계선을 긋도록 한다. 이러한 대학로 극장들의 유사한 상황은 대학로 연극에 생산환경, 소비자 성향, 생산비 등과 관련한 일정한 생산 조건을 틀지우게 하고, 그에 따라 제작되는 극작품들의 규격화를 야기한다. 대학로 연극은 각 공연의 내용과 형식과 제목이 다르다고는 하나, 일정한 규격화의 틀안에서 안주하고 있는 상황이며, 파격과 혁신의 도전과 실험을 감행하지 않는다. 바로 여기에 현재 대학로 연극의 진정한 문제점이 노정되어 있다고 본다. 대학로는 이제 더 이상 우리 연극의 역동적인 창조적 기반을 제공하지 못한다. 우리 연극계의 새로운 도약은, 또는 변화는, 우리의 연극적 상상력을 보다 더 확장하고 또 능동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새로운 공간의 확보를 필요조건으로 한다.
연극이 관객을 찾아 나서야… 다행한 것은 우리 연극계가 대학로 연극의 이러한 문제점에 대해 이미 인지하고, 대응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가장 주목할 만한 행보는 연출가 김아라가 이끄는 극단 무천에게서 발견된다. 김아라는 97년에 죽산에 자신의 야외극장 M. Camp Theatre를 열고, 97년 「오이디프스」, 98년「인간, 리어」, 99년「햄릿 프로젝트」 등 기존의 대학로나 또는 그 밖의 서울 어느 곳의 무대에서도 생각할 수 없었던, 실험적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M. Camp Theatre의 주변 자연환경은 그대로 무대장치의 일부가 되며, 자연과 하나된 그 무대는 늘 깊고 역동적인 에너지를 발산한다. 97년 「오이디프스」 공연에서 이오카스테로 분한 남명렬이 덴마크 독일 일본 영국 등 여러 나라에서 온 음악인들의 연주에 맞추어 서서히 무대를 가로지르며 공연장 뒤편의 언덕을 넘어가던 장면은 야외극장의 폭과 깊이 만이 연출해 낼 수 있는 인상깊은 장면이었다. 이번 「햄릿 프로젝트」에서도 김아라는 자신의 야외무대를 십분 활용했다. 무대 중앙에는 햄릿을 고립시킨 커다란 물웅덩이가 파여져 있고, 그 위에 햄릿의 2평 남짓한 공간이 놓여 있다. 무대의 양쪽 끝에는 10미터 높이의 거대한 휘장막이 설치되고, 그것은 공사장의 거대한 철구조물을 바닥과 계단으로 삼아 햄릿의 세계가 되어버린 중앙의 물웅덩이를 에워싸며 서로를 연결한다. 공사중인 거대한 건축물을 연상시키는 이러한 무대장치는 에워싸인 등장인물들의 불안한 고립과 외소화를 강조한다. 선왕 햄릿이 커다란 기계음을 내는 포크레인을 타고 하늘에서 하강하는 장면에서는 야외극장의 장점이 더욱 명확히 드러난다. M. Camp Theatre의 공연물들은 작품 자체의 성공 여부에 대한 논의를 떠나 우리 연극계에 결핍되어 있는 실험과 새로운 창조의 기운으로 가득하다. 한편, 1999년 3월에는 극단 독립극장이 양수리에 자리한 ‘두물워크샵’이란 공연공간에서 「오레스테스 3부작」을 기획하였다. 이 번 「오레스테스」 공연은 김아라의 경우와는 또 다르게 가능한 한 원 텍스트에 충실하며 희랍비극 본래의 모습에 가까이 다가가는데 목적을 둔 것이었다.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오레스테스」를 원작 그대로 3 부작 모두를 공연하였고, 그래서 공연시간이 두 번의 휴식 시간을 포함하여 거의 5시간이나 되었다. 운영방식에 있어서도 원 텍스트의 의도대로 코러스의 역할에 중점을 두어, 30명 가까운 코러스들이 무대를 꽉 채우며, 극의 해설자이자, 배우이고, 심지어 관객이자 무대배경의 역할까지 고스란히 떠맡았다. 원작의 규모를 수용해줄 수 있는 공간의 확보와, 또 무거운 비극을 5시간 동안 감상해 줄 적극적이고 진지한 관객의 확보가 이 공연이 풀어야 할 숙제였을 것이다. 극단 측은 이러한 문제를 서울의 중심부가 아닌, 양수리 ‘두물워크샵’이란 공연공간에서 해결했다. 극단은 5개월여의 준비 끝에 안정감있는 대작을 선보였고, 관객들도 거의 매번 좌석을 채워주는 열정을 과시했다. 유인촌의 ‘극단 유’의 행보도 ‘탈대학로’의 관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유인촌은 지난 봄 강남의 한복판인 청담동에 자신의 극장 ‘유 씨어터’를 개관하고 「햄릿」을 개관기념공연으로 올렸다. 청담동은 연극이나 그 밖의 예술문화와는 전혀 상관없는 곳으로 인식된 곳이고, 극장들이 주로 몰려있는 대학로나 신촌 등지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교통도 불편하다. 그러나 유인촌 대표는 “고급 연극”, “고급 관극”의 기치를 내걸고, 청담동의 이미지에 걸맞는 ‘고급 극장’을 설립했다. 그의 개관 기념 작품 「햄릿」은 이러한 그의 목표를 우선은 충분히 달성했다고 본다. 패션과 유행의 거리에 불 유인촌의 연극바람이 기대된다. 연극이 관객을 전제한 예술인 이상, 연극의 발전을 관객의 문제와 따로 떼어서 생각할 수 없다. 연극의 발전을 위해서는 연극 자체의 다양성 확보도 중요하지만, 그것은 궁극적으로는 관객의 다양성 확보 내지 저변 확대의 문제와 맞물려 있다. ‘탈 대학로’는 새로운 관객층을 개발하고, 보다 적극적으로 관객에게 다가선다는 맥락에서도 큰 의미를 갖는다. 독립극장의 「오레스테스」 공연이나, 유인촌의 ‘유 씨어터’가 적극적인 관객 내지 고급 관객을 지향했다면, 다른 한편에서 ‘한국 셰익스피어 학회’가 올 봄 ‘극단 서울 페스티벌’을 창단하면서 「베니스의 상인」을 가지고 서울의 여러 구민회관이나 의정부, 동두천 시민회관을 찾아 공연을 한 것은 연극에 낯설어 하거나 셰익스피어를 전혀 접할 기회가 없던 일반 시민들에게 직접 다가가 연극과 셰익스피어를 경험케했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작업이었다. 셰익스피어 학회원으로 이 공연에 참여했던 필자로서는 느낀 점이 많았는데, 그 중 하나가 몇몇 구민회관이나 인근 지역의 시민회관은 퍽 괜찮은 공연장으로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이었으며, 아직 우리에게는 잠재적 연극 수요가 많다는 것이었다. 대학로는 이미 일정한 계층, 일정한 수준, 일정한 연령층의 관객에게 점령당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는 연극이 관객을 찾아나설 시점이다.
기존 연극의 틀을 벗어나 탈 대학로’ 움직임은 ‘대학로 해체’를 의미하지 않는다. 대학로에 더해진 우리 연극의 다양화를 의미한다. 그것은 새로운 연극조건을 형성하는 일이며, 새로운 연극의 창조를 가능케할 새로운 환경을 조성하는 일이다. 이러한 다양화의 과정은 ‘춘천 국제 연극제’, ‘수원성 국제 연극제’, ‘거창 연극제’, 그리고 ‘과천 세계 공연 예술제’ 등 지방의 다양한 국제 연극제에 의해 더욱 촉진될 것이다. 이러한 지방 연극제는 대학로와는 다른 환경, 다른 관객을 대상으로 하는 지방연극의 활성화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우리 연극계는 방향은 제대로 잡았다. 그 결과를 기대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