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리뷰  - 무 용

‘한국무용의 현대무용에서의 위치 -서동요와 높새바람

 

한혜리(무용평론가, 경성대 교수)

 

우리 무용계가 지금까지도 굳건히 고집하고 있는 한국무용과 현대무용 그리고 발레라는 3분법의 장르 구별은 학계에서 각각의 개념을 명확히 하지 않는 한 그 체제는 영원히 지속될  것 같다. 대학 무용(학)과의 실기시험 분류, 무용 festival의 초청작 안배 및 경연대회의 부문 분류 그리고 수상작 선정에서  3분법의 기준은 무너뜨리지 못하는 성벽이다.

안무자의 표현방식과 상관없이 단지 사용 테크닉에 의존한 분류법은 90년대를 지나면서 이 세 분야의 테크닉적 넘나듦이 초래한 의상이나 신체 훈련 방법의 차용이 각 영역에서는 마치 새로운 시도로 평가받는 기이한 현상도 경험했다. 19세기에 높이 쌓았던 예술 장르간의 벽이 20세기 말에 허물어지면서 예술계의 지각 변동은 계속되고 있다. 예술 장르간 합병의 방법론이 작품의 독창성을 평가하는데 중요한 기준이 된 것은 무용의 측면에서 본다면 움직임의 테크닉적 난이도와 에너지 분출 방법의 다양화 작업은 이미 한계에 이르렀기 때문일 것이다.

19세기의 클래식 발레가 행위 자체에서 더 이상의 지적 의미를 가지지 못하는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였을 때 새로운 종류의 무용이 발생했듯이 지금 펼쳐지고 있는 낯선 형태의 작업이 무용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인지 조차 의심해 볼 때가 있다. 이러한 세계적 조류에서 가(歌)·무(舞)·악(樂)의 합병을 주장하는 무용단의 존재는 이전과는 다른 의미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한국 예술의 전통에서 비롯된 무용양식을 시대정신에 맞게 실현해 낼 수 있다면 무용역사책에 기록되는 민족무용 하나는 소유한 지구 가족의 일원이 될 수 있는 것이 확실하다.

 

가(歌)·무(舞)·악(樂)이 융합된 형태를 제시할 날을 기다리며…

 이런 의미에서 작업의 의도가 시대적 설득력이 있는 서울예술단의 10월 2일 향가 사랑의 노래, 공연은 ‘한국무용’이라고 불려지는 장르의 현대 무용 contemporary dance에서의 위치를 가늠하게 한 무대라 할 수 있다. 서울예술단의 향가 공연은 서동요, 헌화가, 찬기파랑가를 각기 다른 안무자의 개별 작품으로 공연했다.

신라 및 고려시대의 시가 장르의 이름인 향가를 제목으로 한 이 공연의 기획은 부제를 통해 사랑의 노래로 밝히고 있으나 서동요와 헌화가가 어떤 사람에게서 느끼는 사랑의 마음을 표현한 노래라고 한다면 찬기파랑가에는 화랑을 기리면서 화랑의 정신을 이어받으려는 의지가 숨어있다.

「서동요」는 기록문화로서 최초의 향가이며, 전해오는 민요를 향가로 재 기록했다는 설이 유력하기는 하나 로맨틱한 사연으로 시대를 초월해 널리 알려진 작품이다. 이렇게 이미 알려진 내용의 노래를 무용으로 만드는 작업은 안무자에게 상당한 부담이다. 이미 알려진 소설을 영화화하는 작업과 같아서 관객 각자의 연상에 부합해야함은 물론이고 그들 상상의 차원을 넘어서야 호소력을 지니고 감동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손인영이 안무한 ‘서동요’는 마치 각색이 덜 끝난 대본을 가지고 연극을 하는 배우들의 무대와 같은 인상을 준다. 단지 네 줄의 불확실한 내용의 노랫말에 의지해 10분이 넘는 작품을 전개하려는 의도로 내용을 붙여 나가기는 했으나 왜 주제가 서동요 이여야 했을까에 대한 의문이 드는 것은 그 향가가 가진 본질과 가치를 무용적으로는 찾아내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모든 향가가 그렇듯이 신라를 강하게 만든 국가적 이념인 불교와 화랑도 정신이 이 사랑의 노래에도 깔려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보편적 연상이다.

그리고 우리 나라 최초의 정형시인 향가 중에서 사구체 형식을 지니고 있는 서동요가 민요에서 비롯되었다는 강력한 증거가 되는 것은 그 형식과 리듬이 근래까지 아이들에게  불려지고 있는 전통적인 동요에 있다는 것도 모든 사람이 그 향가에 대해 알고있는 일반적 지식이다. 이러한 보편성의 토대를 내용 형식 어느 부분에서도 느낄 수 없는 손인영의 서동요 각색은 주제 선택 이유의 타당성을 제시해주기에 충분치 못했다. 더욱이 향가의 발생시기를 지나치게 인식하게 만드는 의상과 무대미술이 함께 만들어 내는 작품의 배경은 작품과 관객 사이의 시대적 거리감만을 유발했고, 오랜만에 우리에게 다가온 젊고 의욕적인 공식 무용단체 장의 작품에서 민족문화를 바탕으로 한 신선한 자극을 기대한 관객에게 만족을 주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향가가 지금, 우리의 무용에 줄 수 있는 영감으로서 좋은 소재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착상은 우리에게 어떤 새로운 문을 열어준 것이 분명하다.

표현성에 있어 해방 이후 송범에서 비롯되는 한국의 무용극식 표현방식과 한국의 초기 ‘현대무용’이라 불리는 테크닉이 움직임에 자주 발견되어 손인영식 표현법이 명확히 드러나거나 자리잡지 못하고 있지만 자신의 정신적 의도를 반영하는데 움직임(신체)을 사용하도록 정신을 유도하는 방법론을 발견하여  歌·舞·樂이 융합된 무용의 형태를 제시할 날이 오기를 기다린다.  

 

실험과 혁신을 거듭하는 노력과 발전의 모습을 보여주길…

저고리와 치마 그리고 버선을 벗어버린 무용수들의 변형 된 한국의 전통 춤을 보면서 무용에 대한 본인의 지식을 평가해 보고 싶어하는 아마추어 팬들은 이것을 무슨 무용이라고 불러야할지 갈등을 느낀다. 그래서 ‘이제는 장르가 무너지고 있다’, ‘분류는 더 이상 의미가 없다’ 등으로 위로(?)하고는 한다.

이런 갈등을 처음 안겨주고 그들의 첫 시도가 충격적이었던 창무회의 춤은 이제 하나의 아류를 형성했다. 그리고 그 선두 주자 중의 한 사람인 최은희의 작품 ‘높새바람’(10월 2일 부산문화회관 대강당 공연)은 창무류의 춤이 어떻게 시대성을 수용하고 있는지를 궁금해하는 관객에게 창무회 주요 멤버가 직접 만들고 춤을 추었다는 것에서 공연은 호기심을 유발하기에 충분하다. ‘높새바람’도 안무자 생각의 배경은 미타사상이나 미륵사상이지만 이러한 종교적 색채를 작품 뒤로 숨기는 것이 창무류의 특성이고 이 작품에서도 예외 없이 방법론에서는 제의 식의 형태를 취하고 리듬과 춤사위에서는 무속의 분위기를 창출했다.

움직임의 개발이나 구성 면에서 그 원리가 서양무용의 방법론과 가까운 것과는 대조적으로 제단을 만들고 머리에 깃털을 꽂은 분위기는 민족 정서가 강하게 묻어난다. 이러한 소도구나 무대 미술의 선택이 안무자 개성에 의거한 것이라기 보다는 창무류 표현방식의 내려오는 전통이라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의도적인 것이 흔히 내포할 수 있는 억지와 부조화가 없어 자연스럽다. 이미 하나의 유형을 형성하여 굳어진 표현법은 독창성이 주는 충격과는 다른 여유를 관객으로 하여금 갖게 만든다. 눈에 띄는 충격이 아니라 오래되어 익숙한 것에서 작은 변화를 발견해내는 즐거움을 느끼게 해주는 무용도 우리에게 필요하다.

그리고 새로운 양식이 전통으로 자리잡아갈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것도 무용을 사랑하는 관객의 몫일 수 있다. 하나의 무용 양식이 전통이 되려면 그리고 그것이 의미를 가지려면 축적된 방법론 위에 변화와 혁신이 계속되어야 한다.

무용수의 연륜만큼 쉼 없이 무대 위에서 춤추는 열정과 시대적 변화를 외면하지 않고 실험과 혁신을 거듭하는 노력과 발전의 모습이 작품에서 감지되기 위해서는 주제나 내용의 선정 혹은 움직임의 활용에서의 변화가 아쉬운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