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REVIEW - 국악 |
유성기 음반 복원의 의미 현경채(음악평론가) 담백하게 부르던 동편제 판소리의 맛을 음미하며 천년의 끝에서 국악인들은 복원 연주에 한창이다. 창립 10주년을 맞은 한국 고음반 연구회는 11월 6일 국립국악원 우면당에서 「유성기 음반 복원 연주회」를 개최했다. 인류가 발명한 최초의 음향 기록 자료 유성기 음반, 오케이 Okeh, 콜롬비아 Columbia, 빅터 Victor, 리갈 Regal, 폴리도르 Polydor 등의 레이블로 세상에 선보인 유성기 음반은 1900년 대 초부터 1960년대까지 수천 종을 헤아린다. 이 음반에는 우리민족이 창조한 전통음악의 거의 전분야, 초창기의 양악, 연극, 연예의 최초 음향, 명사들이 육성까지 그 시대가 낳은 온갖 예술과 공연에 관한 방대한 자료들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이번 공연은 20-30년대 유성기 음반에 담긴 김죽파(김운선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던 시절), 정남희(이상 가야금산조), 박춘재(재담소리), 백낙준(거문고산조), 박종기(대금산조), 이선유, 이화중선, 김창룡(이상 판소리), 박월정(서도소리), 고영태(시조), 조모란(가곡), 강춘섭(초금) 등 전설적인 명인들의 유음(遺音)을 안숙선, 김혜란, 이재화, 김일륜, 문현 등 현역 연주자들이 그대로 재현해 들려준 무대였다. 판소리에서 더늠이라 하면 대명창이 스스로 음악적 경륜을 기울여 소리를 짜서 장기로 부르던 대목을 가리킨다. 후기 5명창중 한 분인 이선유(李善有1872 - ?)가 남긴 강산제 「이별가」는 모흥갑(牟興甲)의 더늠으로 전해지는데, 정정렬(丁貞烈)제 춘향가나 김연수(金演洙)제에는 없는 대목이다. 오늘날 춘향가는 정정렬(丁貞烈)제나 김연수(金演洙)제가 주로 전승되고 있는 만큼 모흥갑제 이별가는 요즘 불리워지지 않는 소리이다. 이날 안숙선은 Columbia 음반에 취입된 이선유의 「이별가」와 이화중선의 「소상팔경」이 복원 연주되었다. 이 자료는 동편제 판소리의 대명사격인 송만갑의 소리와 가장 잘 비교해 볼 수 있는 귀중한 것으로 이선유의 춘향전 이별가는 1932년 9월에 발매되었을 1932년 8월 18일 ‘매일신보’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선유와 함께 녹음한 고수는 모두 한성준이며 녹음방식은 모두 전기녹음인데, 소리와 북의 음량이 비교적 균형있게 녹음되었으며, 이선유의 육성과 한성준의 북 가락이 생생하고 분명하게 담겨있어 당시 녹음기술로는 최상의 녹음으로 평가된다. 이 대목은 경드름을 즐겨했던 송만갑의 장기였고, 아들인 송기덕(宋基德)도 음반으로 남겼다. 이선유의 ‘이별가’는 송만갑, 송기덕, 이화중선(李花中仙)의 것과 장단 사설에서 유사성을 보이며 송만갑보다는 경드름을 적게 쓴다. 요새 소리처럼 맛이 진하지 않으며, 오히려 담백한 느낌이 들 정도이다. 안숙선 명창은 아침마다 이번에 복원 연주한 박유선제 ‘이별가’와 이화중선의 ‘소상팔경’으로 목청을 푼다고 한다. 잔재주없이 담백하게 부르던 동편제 판소리의 맛을 음미하며 전설 속의 옛 명창들을 옆에 있는 듯 뿌듯한 마음으로...
중요한 자료로 쓰이고 있는 유성기 음반에 담긴 우리음악 김혜란 명창(중요무형문화재 제 57호 경기민요 보유자 후보)이 복원한 소리는 박춘재의 재담소리 장대장 타령 중 장님무당 대목과 만포첨사 타령 대목이다. 명창 박춘재(朴春載 1881-1948)는 십이잡가, 휘몰이 잡가, 서도잡가, 선소리, 경제 판소리는 물론 재담의 명인으로 한때 장안을 떠들썩하게 했던 분, 그가 소리하는 경서도 민요와 재담을 들으면 세 살 먹은 아이도 울다가 웃음이 터져 나올 정도로 그는 특이한 해학을 발휘하던 당대 인물이다. 박춘재 명창이 공연하는 그 날이 곧 장날이라는 말이 될 만큼 청중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았다. 박춘재는 문영수와 함께 등장 능란한 말솜씨로 재담을 주고받으며, 청중들을 웃기고 울리기도 하며 한 세기를 풍미했었다. 박춘재의 재담소리는 문영수 명창을 거쳐 장소팔 고춘자의 근대 공연으로 이어지면서 재담부분이 강조되고 소리 부분은 전승이 끊긴 상태이다. 이번에 김혜란 명창은 닛뽀노홍 K220A 유성기판에 담겨있는 박춘재 재담소리 장대장 타령 중 일부를 복원하는데 성공했다. 공연 전 김혜란 명창은 처음에는 전통사회 재담의 말투가 어색하고, 담백한 소리가 재미없는 듯 하였으나 끊임없이 듣고 따라 하면서 많은 공부가 되었다고 자신의 소감을 피력하였다. 박춘재 재담소리 장대장 타령을 자신의 레퍼토리로 잘 다듬어 가까운 시일 내에 완창 발표회를 계획하고 있다고도 했다. 안타깝게도 잃을 뻔했던 소리를 다시 찾은 의미 있는 일이다. 이런 소중한 유성기의 음반은 당시 궁중을 드나들던 명창들이 녹음해서 그 녹음된 밀초 원반을 미국으로 가져가 빅타축음기 회사에서 음반으로 만든 뒤 다시 서울로 수송해 상류층에 판 것들이고, 1909년부터는 미국과 일본의 합작으로 대부분이 일본에서 생산된 것들이다. 유성기 음반에 담긴 음악들은 당시 우리 음악을 연구하는 학자들에게 둘도 없는 중요한 자료로 쓰이고 있다. 유성기 음반 복원연주는 전승이 끊긴 전통음악을 당대의 명인들이 남긴 유음에 근거해서 원래의 모습을 찾아보는 것에 첫째 의미가 있고, 혹은 전승 되고 있는 음악을 원형과 비교해봄으로써 음악의 변천사를 더듬어 볼 수 있다는 것에 특별한 가치와 의미가 있다. 우리 음악 중 영산회상 가곡과 같은 정악은 악보가 있으므로 그 음악의 전승이 끊어졌을지라도 악보를 통하여 어느 정도 그 음악의 특징을 짐작할 수 있지만, 판소리 산조 민요 같은 민속음악은 예전에는 악보가 없었으므로 전승이 끊어졌으면 그 음악의 특징을 알 길이 없다. 우리전통음악 가운데에는 악보도 없이 전승이 끊어진 것들이 많지만 유성기음반에 보전되어 있는 음악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일본에서 평원한 음반과 축음기가 다소 널리 보급되기 시작한 것은 노일전쟁(1904)이후이다. 그러나 미국과 일본을 통해 만들어진 음반은 고가품으로 그 당시 상류 사회에서의 기호물이었기때문에 일반인들 사이에서는 쉽게 찾을 수 없었던 것도 당연한 것이 현실이었다.
생기를 불어넣어 살아 있는 음악으로 재탄생 1960년대 초부터 문화재 전문위원 이보형(민속학, 고음반 학회 회장)선생이 일제 때 판소리 취입을 한 바 있던 판소리 명창들을 찾아봤으나 음반을 가지고 있던 명창이 거의 없어 실망한 적이 있다고 한다. 그 후 남대문시장이며, 왕십리, 청계천 고물 시장을 뒤져 한국음악 SP판을 수집했는데, 이보형 선생이 귀중하게 생각하고 찾았던 음반은 다음 몇 가지 경우에 해당했다고 한다. 첫째는 한국음악학 연구에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것들이다. 예를 들어 유성준, 이선유, 이동백, 김창룡과 같은 명창들의 판소리와 백낙준 거문고 산조, 하규일 가곡, 김종조 배뱅이굿과 같은 것들이다. 판소리 동편제 명인 유성준이나 이선유의 음반은 동편제 연구의 중요한 자료가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수집된 동편제 음반은 이번에 안숙선 명인에 의해 복원되었고, 거문고 산조의 창시자인 백낙준(1876-1930)은 무려 3장의 음반에 진양조, 중모리, 엇모리, 잔모리의 장단구분으로 약 20분 정도 분량이 담겨져 있는데 이재화(추계예대 교수)에 의해 복원 연주되었다. 당시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던 20-50대 연주자들에게 유성기음반의 유음은 더할 수 없는 귀중한 음반이다. 100년전 거문고산조 창시자인 백낙준이 직접 연주한 음악은 현재 연주의거문고 산조와 몇가지 다른 점이 발견되었다. 진양조와 중모리의 연주 속도가 매우 빨라서 현행의 연주속도로 연주 한다면 대략 30여분이 소요된다. 음고, 조율, 괘 조건 등이 정악에 준하였다. 생명력 넘치는 소리 흐르는 곡선미, 리듬의 넘나듦, 절묘한 휴지부 여백이 많은 잔모리, 대현의 대범한 자출 연주의 멋 등은 거문고 산조 창시자 다운 예술경지를 유감없이 발휘한 귀중한 음악이다. 둘째는 옛 명인들의 명 연주가 담긴 것들이다. 예을 들어 이병성의 가곡, 김창환 송만갑 이동백 정정렬의 판소리, 김계선의 대금 청성자진 한잎과 평조회상, 백낙준의 거문고 산조, 안기옥 정남희의 가야금 산조, 박종기 대금산조 강춘섭의 초금연주 등이다. 일제때에 대금으로 세상을 떠들석하게 했던 김계선(金桂善 1891-1943) 명인의 대금 청성자진한잎과 평조회상은 임재원(목원대 교수)에 의해 복원되었는데, 현행에 비해 템포가 빠르고, 전반적으로 음고가 낮았으며, 농음이 촉한 것이 이색적이었다. 정남희제 가야금산조(2장의 리갈 레이블로 진양조 중머리 잔머리의 구성으로)는 정남희(1905-1984) 자신의 연주로 1934년 취입된 것(배연형 소장)을 김일륜(숙명여대 교수)이 복원 연주했다. 무엇보다도 박진감에 압도되는 연주였다. 약간 빠른 듯한 진양조는 정확한 템포를 지니고 있었으며, 자진모리에서의 현란한 기교는 눈이 부실 정도였다. 강약의 대비가 특히 두드러지는 데, 아주 작게 탈 때 는 가야금 소리가 마치 잘 훈련된 카운터 테너에게서 듣는 피아니시모 소리로 착각들 정도로 환상적이었다. 역사 속의 정남희제 가야금산조에 생기를 불어넣어 살아있는 음악으로 재탄생시키는 감동의 순간으로 이번 복원 연주회의 하이라이트가 바로 김일륜이 연주한 정남희제 가야금산조가 아니었나 싶다.
단절 위기의 음악을 복원해... 또한 이번 복원 연주에서 관심을 끈 것은 대금 산조를 완성시킨 전설적인 명인 박종기(朴鐘基 1879-1939)가 취입한 오케이 음반의 대금 산조 국거리를 그의 증손자 박환영(서울시 국악관현악단 대금 부수석)이 박종기 명인이 생전에 불던 젓대로 재현한 것이다. 당시 산조 대금은 지금 것보다 길다. 이번에 복원 연주된 박종기의 산조는 한범수의 대금산조에 잘 나타나있는데 이것은 한범수의 대금 산조론에서 자신이 음반을 통해 박종기로부터 다 배우지 못한 가락을 완성했다고 하는 것과 일치한다. 강춘섭의 초금(풀피리)연주로 SP판에 남아있는 ‘인생 칠십 고래희’는 이진원(중국 북경 중앙음악학원 박사과정)에 의해 복원 연주되었다. 풀피리는 나뭇잎을 아랫입술에 대고 가볍게 휘파람을 불 듯 김을 넣어 풀잎의 진동을 만들어 소리를 낸다. 풀피리의 연주는 전승이 잠시 끊겼다가 얼마전 박찬범에 의해 연주가 된바 있다. 셋째는 매우 드물게 발견되는 명인 명창의 연주가 담긴 음반이다. 장판개 김창환의 판소리 하규일의 가곡, 강태홍, 한성기의 가야금산조와 같은 음반은 희귀 음반이다. 이런 음반이 나타났을 때는 값의 고하를 막론하고 사들였다고 한다. 그 당시 헌 음반은 엿장수들이 수집하여 고물상에 넘겼고, 고물상에서는 이것들을 단추 공장이나 건전지 공장 에 넘겼다. 그 당시에는 플라스틱이 귀하던 때라 에버나이트로 만든 SP음반을 녹여서 단추나 건전지 약의 재료로 썼다고 하니 가슴이 아플 따름이다. 젊은 김죽파의 가야금산조는 또다른 감칠맛으로 권도희에 의해 고영태의 시조는 문현(국립국악원 학예연구관)에 의해, 조모란의 여창가곡은 김영기에 의해 복원 연주되었는데, 김영기는 조모란의 음색을 똑같이 재현하여 모창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라는 평을 들었다. 김죽파의 산조와 김창룡의 단가의 반주를 민속악 현장조사의 일인자인 이보형 회장이 직접 맡아 연주하는 성의를 보였는데, 무대 위의 정식 공연은 처음이었던지 어설픈 무대매너에 관객들이 무척 즐거워했다. 고음반 학회 회원들은 전국을 누비며 발로 뛴 결실로 이제는 상당부분의 음반을 수집했고, 전승 단절의 위기에 있는 음귀한 음악들을 복원하여 연주회사를 마련한 것은 한국음악사의 대단한 업적으로 기록될 것이다. |